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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0의 법칙

(2화)



어차피 곧 벗을 셔츠라며 2710이 당당하게 내 가슴에 얼굴을 가져왔다. 익숙한 향이 더욱 짙어졌다. 나는 가만가만 2710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빠진 것 같은데.

“내가 보고 싶었다는 말 했던가?”

“응. 아까 차에 타자마자 그랬잖아. 보고 싶었다고.”

“그래?”

이상하다. 그럼 뭐가 빠졌지?

“사랑한다는 말은?”

“그건 안 했어.”

못난 남편 같으니라고. 2주 만에 만난 아내에게 아직 그 말을 해 주지 못했다니.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기에, 이 남자가 변했구나 했지. 2주 사이에 다른 여자가 생겼나, 지금 의심하는 중이야.”

내 가슴에 바짝 얼굴을 밀착한 채, 투정을 쏟아 내는 2710이 나를 웃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2710은 의심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내가 오랜 시간 미국에서 근무할 때도, 2710은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어 주었다.


‘희준 씨가 어딜 가서 나 같은 여자를 만나? 물론 더 예쁜 여자를 찾을 수도 있을 거고, 더 능력 있는 여자도 있기야 하겠지. 그래도 나만큼 당신 좋아하는 여자는 없을걸?’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부심 삼는 여자라니. 그런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없어서, 나 역시 그 시간들을 오직 2710만을 바라보며 걸어왔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2710을 안아 줄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힘든 시간을 버틴 데 대한 보상과도 같았다.

“내 사랑에 대한 의심을 빨리 풀어야겠는데?”

나는 품 안에 있는 2710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 쥐며 언제 봐도 예쁜 그녀의 입술을 덧그리듯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선 원초적인 갈등이 지나갔다. 술을 많이 마셔서 술 냄새가 날 텐데. 그리고 여기서 키스를 시작하면 키스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주차장에서 시작된 키스가 섹스로 이어진 횟수는 손으로 꼽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우리 집이 주택이고, 주차장을 우리만 쓴다는 것에 안도해 나는 겁도 없이 차 안에서 2710의 몸을 안곤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차 안에서의 섹스는 긴장감 때문에 사람을 더 미치게 했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라 해도 섹스는 일방적일 수 없었다. 만약 한 번이라도 2710이 거부했다면 차 안에서 섹스를 하는 건 부부라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2710은 내가 원할 때마다 과감하게 나에게 몸을 맡기곤 했다.

2주 만에 만난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망설이는 나에게 먼저 달려든 건 2710이었다. 조수석 쪽으로 몸을 내민 2710의 말캉한 입술이 내 입술을 빨았다. 술 냄새를 의식하는 나를 무시하듯, 2710은 내 입술을 열고 혀로 치아를 훑으며, 이래도 자신의 키스를 받아 주지 않겠냐고 시위했다.

“아, 정말. 이길 수가 없어.”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가 덮쳐 오는데 술 냄새 따위야. 나도 머뭇거리던 태도를 싹 바꿔 키스를 되돌려 주기 시작했다. 2710은 두 팔로 내 목을 안으며 무게 중심을 서서히 나에게로 옮겼다. 나는 한 팔로 힘껏 2710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혔다. 눕혀진 내 몸 위로 2710이 올라타듯 안정된 자세로 정착했다.

솔직히 2710의 아래에서 포위당한 것 같은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내 몸의 중심은 어서 그녀에게 닿게 해 달라 아우성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의 자세는 분명 야했다. 허벅지 위쪽까지 잔뜩 말려 올라간 2710의 스커트와 잔뜩 벌어진 그녀의 다리. 무엇보다 그녀가 가진 고유한 존재감이.

“이 자세는 뭔가 좀…….”

내가 말끝을 흐리자 2710이 두리번거리며 우리의 모습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이상할 게 없는데 왜 그래?”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녀가 회사에서 보여 주는 단아한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당긴 뒤 스타킹을 신은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내 뺨에 입을 맞춰 왔다. 아주 근접한 거리에서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나른하게 웃어 보인 그녀는 내 귀로 천천히 입술을 가지고 왔다. 귓바퀴를 따라가던 혀가 귓불까지 내려왔다. 연이어 내 귓불을 빨던 2710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제 솔직히 말해도 돼. 내 키가 커서 SUV 샀다는 거, 다 핑계지?”

“무슨 소리야?”

“나보다 키 큰 여자들도 다 세단 타고 다닌다고. 나랑 차에서 이러려고 SUV 사 준 거 아냐?”

“그렇게 되나? 그래, 그렇다 치자.”

시야가 넓어서 안전하다는 장점을 내세우며 2710의 생일날 선물해 준 차건만, 나의 순수한 의도가 이렇게 짓밟힐 줄이야. 하지만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나누기엔 확실히 세단보다는 SUV가 적합했다. 우리 같은 장신들에게는 특히나 더.

볼멘소리를 하던 2710이 내 몸 위에 자신의 몸을 포개며 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고양이처럼 작은 혀가 내 입술을 핥았다. 간지러움에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몹시도 귀여워서 당장이라도 깨물어 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조금 더 괴롭힘당하고 싶었다. 나를 자극하고, 그로 인해 달뜨는 그녀를 보는 건 언제나 좋았으니까.

“하아.”

격정적인 움직임도 좋았지만 이렇게 아기자기한 스킨십을 해 오는 것도 흥분되긴 마찬가지였다. 셔츠 틈으로 들어온 그녀의 손가락이 내 살을 간지럽히고 입 안을 맴도는 그녀의 혀가 나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나는 잔뜩 달아오르고 말았다.

뜨거운 날숨과 들숨이 우리 둘 사이를 오갔다. 2710은 퍽 바빠졌다.

키스와는 별개로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내 얼굴을 쓰다듬던 손이 넥타이 위를 배회했다.

다급해진 나는 몸을 움직여 2710을 도왔다. 풀린 넥타이와 코트, 슈트 재킷이 차례차례 뒷좌석에 던져졌다. 2710의 손이 내 허리띠에 닿았을 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커트 아래로 손을 넣어 그녀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추운 날 자꾸 치마 입고 다닐 거야?”

“주차장에서 차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추위를 느낄 틈이 어디 있어?”

피가 몸의 중심으로 몰리며 어서 갑갑한 바지와 드로어즈를 벗어 던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2710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더 가까워질 것도 없는 우리 사이를 좁혔다. 탐스러운 입술을 할짝거리자 그녀가 고개를 젖혔다. 그 순간을 노려 곧게 뻗은 그녀의 쇄골을 혀끝으로 쓸었다.

“흣.”

2710은 간지럼을 잘 참지 못했다. 그녀의 긴 목을 핥고 입술로 누르자 2710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가 움찔대자 우리의 하체가 맞닿았다. 뻐근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더 깊게 그녀와 키스했다. 숨이 뜨거워졌다. 몸이 저절로 들썩거렸다.

“하…….”

그녀가 다시 신음을 흘렸다. 이번엔 내 몸이 떨렸다. 2주면 오래되긴 했지.

2710이 출장을 떠나기 전날 밤, 마치 마지막이기라도 한 것처럼 늦은 밤까지 침대가 흔들리도록 서로를 안았건만 그때가 무색해졌다. 모른다면 모를까, 안 이상은 그녀에게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2710에 대한 내 갈증은 평생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달콤한 샘물에 입술을 축이듯, 2710의 입술 맛을 음미하며 핥았다. 습해진 두 개의 혀가 만났다.

“하아, 나 없는 2주 동안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

“그러게. 나 정말 어떻게 참았을까?”

등을 쓸어 올리며 그녀가 입은 니트 티를 벗겨 냈다. 레이스로 촘촘하게 장식된 연보라색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나는 홀린 듯 그녀의 가슴을 쳐다봤다. 뽀얀 살결을 감싼 연보라색 브래지어라니. 마치 그녀의 가슴 위에 피어난 꽃 같았다. 다 벗겨 버리기엔 아까운 모습이었다.

후크를 푸는 대신, 브래지어 캡을 아래로 내렸다. 브래지어 양쪽 끈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며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하아.”

지체할 여력이 없었다. 예쁜 살덩이 두 개 중 하나를 움켜쥐며 다른 하나를 다급하게 입에 넣었다. 2710이 애원하는 소리를 냈다.

“여보 제발…….”

“왜?”

“이제 해.”

“뭘?”

그녀가 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는지 알면서 짓궂게 물었다. 2710의 숨이 급해져 왔으나 모른 척했다.

원래도 농담과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2710에게는 남들에게보다 더 개구지게 구는 편이었다. 그녀는 늘 나쁜 남자라고 나를 타박했지만, 약 올라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어서 내 장난의 강도는 전보다 더 강해져만 갔다.

그건 침대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710을 애태우고 간지럽히는 게 왜 그렇게 좋은 건지.

“김희준 씨. 지금 우리가 그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조금은 나른한 목소리로 도발해 오는 그녀에게 나도 강하게 맞섰다.

“그래? 그럼 준비됐는지 확인해 보자.”

2710의 허리로 손을 가지고 가 팬티스타킹을 천천히 내려 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넓은 차라도 조수석에서 스타킹을 벗기기엔 무리였다.

“에이.”

결국 참다못해 스타킹을 힘껏 쥐고 손목을 비틀어 찢어 버렸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불과 한 달 전에도 드레스 룸에서 2710의 스타킹을 찢은 적이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다 눈이 맞았던 어느 날 아침, 나는 거슬리는 스타킹을 그렇게 치워 버렸다.

중요한 순간에 방해가 된다면 스타킹을 찢는 것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었다. 2710도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내 뺨과 이마에 자잘한 입맞춤을 뿌려 댔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다시 내 윗입술을 혀로 훑으며 간지럽히는 그녀 때문에, 나의 욕구는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아, 잠깐만.”

손을 내밀어 조수석 앞 수납함에서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

“하여간.”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킥킥대는가 싶던 그녀가 조금 더 다리를 벌려 왔다. 찢어진 팬티스타킹 틈으로 레이스 팬티 위를 쓰다듬었다.

“앗.”

당황하는 듯한 소리를 뱉는 그녀를 보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내 손길에 그녀는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허리를 비틀기도 했고, 다급하게 내 턱을 들어 올려 혀를 빨아들이기도 했다.

“하아, 희준 씨.”

더 깊은 곳을 헤집자 조금 더 격한 교성이 터져 나왔다. 부르르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보며 나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반응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너무해.”

더 이상은 못 참겠는지 2710이 다급하게 내 허리띠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정확하고 노련한 손길이었다. 오랜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휴…….”

“아흑.”

허전함을 느낄세라, 2710은 보란 듯이 나에게 자신의 몸을 맞췄다. 확실히 팬티를 벗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살짝 팬티를 밀어 내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