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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0의 법칙

(3화)



이번엔 2710이 나를 놀렸다. 닿을 듯 말 듯 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애간장을 태웠다.

“이러기야?”

“먼저 시작한 사람이 누군데?”

처음으로 2710을 안았던 날, 부끄러움에 나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게 생각났다. 괜찮다고, 눈을 뜨라고 다독여도 자꾸 눈이 감긴다고 징징거리던 그녀가 귀여워 얼마나 웃었던지. 그랬던 여자가 이제 내 마음을 가지고 놀 만큼 나와 가까워졌다. 수줍음을 타던 그녀도 좋았지만 이렇게 도발하는 그녀도 좋기는 매한가지였다.

보다 못한 내가 2710의 골반을 들었고 우리의 몸을 맞췄다.

“아.”

“하아.”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터져 나온 정직한 신음은 곧 겹쳐진 입술과 입술 속으로 사라졌다.

“좋아. 너무.”

나는 내 입술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덥석 삼키며 오직 그녀를 느끼는 데 집중했다. 압박하고 가두듯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야한 혀의 움직임, 그 끝에 그녀의 호흡이 닿았다.

“오늘따라 더 따뜻해.”

“오랜만이라 그럴까? 아…… 희준 씨.”

엄살을 떨면서도 2710은 천천히 허리를 돌렸다. 위치만을 놓고 보면 내가 열세였다. 그녀에게 꽉 눌린 상황이니 오로지 그녀가 이끄는 대로만 가야 했다. 하지만 자꾸 미련이 남아서 두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쥐고 펴기를 반복했다.

“사모님, 하아, 오늘 왜 이래?”

“아아.”

고개를 드니 입술을 깨무는 그녀가 보였다.

“그러지 마. 소리 내 줘.”

“응? 으응.”

쾌락을 향해 조금 더 깊은 곳을 찾아가듯 2710의 허리 짓은 치밀하고도 정확했다. 한 팔로 헤드레스트를 잡은 그녀는 튕기듯 허리를 움직이며 내가 뭘 더 할 수 없게끔 나를 절정으로 몰아갔다.

살이 만들어 내는 마찰음. 시선을 내려 우리의 교합 지점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아, 조금 천천히 해. 나 미칠 것 같아.”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그녀는 속도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벌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내 가슴에 입을 맞췄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들썩이는 내 가슴을 쓸었다.

2710이 빨리 움직일수록 좋아서 환장하겠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가족이 되어 익숙해지면 섹스도 재미없어질 거라고 누가 그랬나? 익숙함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이토록 강한걸. 질릴 틈이 없었다. 2710과 몸이 엉킬 때면 이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재차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아, 어떻게 된 게 갈수록 더 진화해?”

아플 정도로 2710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황홀했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턱이, 그리고 도톰한 입술이. 나를 향해 웃어 주나 싶던 입술 사이로 새된 교성이 터져 나왔다.

“흑.”

앓는 것 같은 소리가 내 가슴의 온도를 더욱 높여 주었다. 나른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했다.

“이리 와.”

떨어진 그녀의 입술이 아쉬웠다. 녹이듯 그녀의 입술을 혀로 굴리자 그녀 역시 적극적으로 응해 왔다. 손바닥에는 그녀의 보드라운 등과 허리 그리고 가슴이 느껴졌다.

“하아, 하.”

결국 2710이 나를 점령하려 했다. 느리게 허리를 돌리는가 싶던 그녀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허리를 흔들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내 이성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차 천장이 희미해져 갔다.

맥없이 떨어진 내 손은 2710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이 시간을 연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저지시켜 보려했던 나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내가 그럴수록 그녀는 더 빨라졌다. 이렇게 된 거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야가 아득해졌다.

사실 2710에게 맡긴 내 몸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부부니까 이 정도 대담함은 괜찮겠지. 결국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말았다.

“하아.”

나는 그녀의 아래에서 길게 사정했고 가쁜 숨을 고르며 그녀를 당겨 안았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가 집에 돌아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내가, 출장에서 돌아온 거였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아이가 찾아오지 않을까?”

다 벗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닌 흐트러진 모습으로 2710이 내 몸 위에 쓰러졌다. 쌕쌕거리며 한참이나 숨을 내쉬던 2710이 나지막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꼭 아이를 낳으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부쩍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쓸데없는 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티 내지 않았을 뿐 2710은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다.

“둘 다 문제없다잖아. 언젠가는 알아서 오겠지.”

결혼하고 1년간 특별히 피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아기 소식이 없었고, 그래서 산부인과를 찾은 적이 있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나와는 달리 2710의 근심은 짙어졌다. 정상인데 뭐가 문제인 거냐고.

다른 병원을 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거봐. 정상이라잖아. 아직 타이밍이 아닌가 보지. 마음 편히 가지자.’


내 위로에 2710은 씩씩하게 웃었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조금 더 깊게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던 내 무심함에 가슴이 아팠다.

“안 온대도 괜찮아. 너랑 살 비빌 시간도 부족해서 아이에게 애정을 나눠 줄 만큼의 여유가 없어. 어쩌면 내 그릇이 작아서 안 오는 건지도 몰라. 모두 내 탓이야.”

나는 진심이었지만 내 말은 2710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 듯했다.

“당신 아기 좋아하잖아.”

휴우. 2710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얼마 전 조카와 놀아 주며 좋아하던 내 모습이 아마도 마음에 걸려서겠지.

드러내지 말아야지, 단단히 마음을 붙잡아도 조카를 보면 나도 내 감정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세상에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녀석이 방긋 웃으면 나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고, 그 녀석이 울어도 코를 실룩이는 모습이 귀여워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숨긴다고 노력했는데 눈치 빠른 2710이 기어코 그걸 알아챈 거였다.

“너를 더 좋아해. 아이가 생긴대도 나랑 같이 늙어 갈 사람은 너고.”

2710은 말이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그녀가 추울까 봐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슈트 재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에 재킷을 덮어 주며 등을 다독였다.

“의학적으로 접근하지는 말자. 순리대로 가.”

“순리?”

“응. 우리는 항상 순리대로 갔잖아. 딱 이맘때네. 내가 너에게 첫눈에 반했던 그때가. 그때부터 이렇게 함께 있게 되기까지, 우린 그냥 순리를 따른 거야.”

이번엔 내 말이 먹힌 모양이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2710이 웃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숨소리만 들어도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는 걸 보니 우리의 결혼 생활도 잘 발효되는 중이구나 싶었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나는 지금도 생생해. 당신이라는 여자를 처음 만났던 날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희준 씨 처음 봤을 때, 머릿속이 쨍해졌었지.”

“지금 생각하면 처음 본 그날 바로 좋아한다고 말했어도 될 걸, 왜 그렇게 뜸을 들였나 몰라. 진짜 첫눈에 반한 거였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높은 하이힐을 신고 나에게 당차게 걸어오던 여자가 이렇게 내 심장에 귀를 대고 누워 있을 줄은. 한없이 여리기만 한 여자가 그땐 왜 그렇게 대단하고 높아 보였었는지.

“그런데 희준 씨는 뭘 그렇게 고민했어?”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내가 2710에게 수없이 해 준 이야기였다. 2710을 처음 만나 고백을 하기까지, 내가 거쳐야 했던 잔잔한 감정의 굴곡들에 대해.

몇 번이나 고아야 진국이 되는 사골국처럼, 그 순간의 이야기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의미가 커졌다.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차 안의 온도가 식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2710이 어서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듯 내 가슴을 두드렸다.

“몰라서 물어? 모든 상황이 그랬잖아.”

“하긴.”

“그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야. 처음 만나서 고백하기까지라…… 연애와 결혼을 통틀어 그때만큼 풋풋할 때가 있을까?”

순간 이동을 하듯, 나는 2710을 처음 만난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