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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는 귀신같이 거짓말을 알아채는 민혁의 능력에 놀라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민혁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거짓말을 했다가는 민혁에게 맞아 죽을 것만 같아 갑자기 오금이 저려왔다.

마흔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만 얘기해 주세요.”

케네디는 어차피 민혁이 다 알고 있는 이상 더는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케네디의 말은 민혁이가 유추한 것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수입한 냉동 컨테이너는 성 과장과 협의를 통해서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으로 내부적인 방침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LK상사에 결제해 줘야 할 수입 대금은 신 사장이 책임지기로 했고, 부대비용은 LK상사에서 책임지는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났다.

그래서 자신들은 최대한 빨리 폐기 처분하는 쪽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고 부장과 성 과장이 민혁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나름대로 노력했단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였다.

즉, 자신은 버려지는 패라는 뜻이었다.

“컨테이너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나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인맥을 전부다 동원했는데… 끝내 실패했습니다.”

“나에 대해서 성 과장, 그 인간이 뭐라고 합니까?”

“어리바리한 사람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민호, 이 개새끼. 내가 너는 반드시 복수해 준다.’

“그리고 또 뭐라고 했나요?”

“어차피 잘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제풀에 쓰러질 거라고도 했고요.”

“혹시 신 사장님이 성 과장한테 리베이트를 주나요?”

“주는 것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사장님께 여쭤보세요.”



신경섭 사장의 사무실은 첸나이 시내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2층 건물이었다.

1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2층은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직원은 한국 사람이 두 명, 인도 사람이 아홉 명이었다.

신경섭 사장은 활짝 웃으며 민혁을 맞아주었다.

그 모습만 보면 민혁을 상대로 음습한 음모를 꾸몄을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강민혁 씨,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인도에서 뵈니까 새롭긴 하네요.”

민혁도 그런 신 사장의 태도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어제와 그제는 내가 뉴델리에 일이 있어 가지고요. 미안했습니다.”

민혁은 그 순간 신 사장의 눈을 쳐다보았다.

[거짓말!]

역시나 예의 머릿속 음성이 판독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 말인즉슨, 뉴델리에 안 가고 여기 첸나이에 있었다는 뜻이다.

케네디의 말마따나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성 과장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고 자신을 일부러 피한 것이다.

그러면서 민혁은 오늘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상대방이 눈을 들여다보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머릿속에 있는 누군가가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케네디와 신 사장을 통해 그 짐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민혁은 전혀 모른 척 의뭉을 떨며 공치사를 건넸다.

“바쁘면 좋은 거 아닌가요?”

“하하, 바쁘기만 하면 뭐 합니까. 돈이 되어야지요.”

“에이, 사장님께서 인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돈을 모조리 쓸어 담는다는 말이 있던데요.”

“허허허, 누가 그럽디까?”

“꽃송이의 장 사장님이 그러시던데요.”

“장 사장이 그랬다고요?”

“네. 그분 말씀이 인도 전역에 안 다니시는 데가 없다더라고요.”

“그 말은 맞긴 한데, 벌이는 잘 안 돼요.”

신 사장과의 전초전은 이 정도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할 때였다.

이미 케네디를 통해 대부분의 내용을 파악했지만, 확인 차원으로 컨테이너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이제 업무적인 대화 좀 나누시죠.”

“그럽시다.”

“컨테이너는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거짓말!]

굳이 판독기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민혁은 한결 걱정을 덜었다는 듯 연기를 하며 미끼를 던졌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그러면 이번 말까지는 처리가 될까요?”

“음, 아무래도 다음 달까지는 가야 할 것 같아요.”

[거짓말!]

‘응? 이것도 거짓말이라고? 그럼 내가 잘리고 난 후에 폐기 처분을 시도하겠다는 말인가?’

민혁은 이쯤에서 슬쩍 찌르기를 한 번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여태까지 컨테이너를 못 찾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 그게… 갑자기 세관장이 바뀌는 바람에…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신 사장은 역시 노련한 사업가답게 막힘없이 술술 핑계를 둘러댔다.

당연히 전부 거짓말이었다.

사람이 좋게좋게 상대를 해주니, 완전 호구 취급을 하고 있었다.

문득 이 인간만 아니었다면 이 먼 인도에 올 일도 없었을 테고, 지난 화요일에 집단 린치를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민혁은 갑자기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 인간의 거짓말이나 들어주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게 아니잖아?’

민혁은 이쯤해서 강하게 한 방 날리기로 마음먹었다.

성질이 나서 계속 변명이나 듣다가는 치솟는 울화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회사에서 잘리고 나면 이 사람과는 영원히 얼굴 마주칠 일이 없을 테니, 더는 참을 이유도 없었다.

“사장님, 선수들끼리 왜 그러십니까?”

“험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세관에서 폐기 처분해 준답니까?”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모두 헛소리입니다.”

“아이~참, 우리 서로 솔직해져 보자구요. 사장님이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쇠고기를 통관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신 사장은 순간 급소를 찔러 들어오는 말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온 이상, 더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험험, 알고 오셨소?”

“내가 여기 놀러 온 줄 아십니까? 있는 그대로 다 털어놓으세요.”

“사실은 내가 세관하고…….”

또, 또! 거짓말이었다.

자신이 의심할 경우를 대비해 시나리오를 하나 만들어둔 것 같았다.

하여간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신 사장님, 성 과장이 그렇게 거짓말 하라고 시킵디까?”

“네? 아니, 그게 무슨…….”

“우리 피곤하게 그러지 말자구요. 이미 사장님이 성 과장, 그리고 고 부장하고 짬짜미한 것도 다 알고 있다니까요?”

“…….”

“내가 잘리고 난 다음에 컨테이너 폐기 처분을 시도할 건가요?”

“그건 아니고…….”

“그리고 내가 그냥 쉽게 잘려준답니까?”

“…….”

신 사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민혁의 반격에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민혁은 지금이 승부처라는 것을 직감하며 묵직한 폭탄을 투하시켰다.

“본사 감사실에서는 모르고 있을 것 같나요?”

“네? 아니, 감사실에서 어떻게…….”

“내가 여기 올 때 이미 감사실에 투서를 넣고 왔어요.”

“그, 그럼… 감사실에서도 알고 있단 말입니까?”

“아니, 이쯤 되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아실 만한 분이 왜 자꾸 장난을 치려고 그러십니까?”

너무나도 놀라운 사태에 신 사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어떻게든 자신만은 빠져나가 보려고 짱구를 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한참 만에야 입을 연 신 사장은 민혁에게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거짓말!!]

그런데 또 거짓말이었다.

“어휴, 사장님은 참 한결같이 양파 같으신 분이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까도 까도 거짓말이 끝이 없으시네요.”

“…….”

“이제 사장님이 선택하실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

“앞으로도 이렇게 저한테 계속 거짓말로 일관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사장님은 형사 고소를 당하시겠죠.”

“…….”

“다른 한 가지가 궁금하시죠? 솔직하게 이실직고하고 선처를 바라세요.”

“…….”

신 사장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치명타를 먹일 시간이 되었다.

민혁은 최후의 선고를 내리듯 마지막 미끼를 던졌다.

“사장님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성민호 과장과 고인선 부장이 과연 사장님한테만 리베이트를 받았을까요?”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죠?”

“감사실에서 조사를 시작하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부정과 비리가 터져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장님은 자연히 형사 고소 수순으로 넘어갈 겁니다.”

신 사장은 또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민혁은 그의 입이 열릴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주었다.

마침내 신 사장이 백기 투항을 하고 나왔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 과장하고 합의하신 대로 일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음, 합의 내용도 알고 있어요?”

민혁은 케네디한테 들은 얘기를 그럴듯하게 각색해서 말을 꺼냈다.

“내가 얘기한 게 틀립니까?”

“아니요, 맞습니다.”

“그럼 이제 솔직하게 얘기해 보세요. 성 과장하고 어떻게 엮여 있습니까?”

“좋습니다. 사실 저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게 또 무슨 소리입니까?”

신 사장은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7년 전에 당시 과장이던 고인선이 이곳으로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가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인도 세관에 문제가 있어서 해결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날은 그렇게 인사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럼 그다음에는요?”

“3일 뒤에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었어요. 인도 첸나이 세관의 직원 둘을 데리고 왔는데… 그때, 저한테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누가요? 고 부장이요?”

“네, 그렇습니다.”

“어떤 제안이었는데요?”

민혁은 녹음을 위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신 사장은 목이 마른지 탁자 위에 놓인 잔을 들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에 민혁도 덩달아서 물을 마셨다.

“저더러 맥주를 수입해 보라고 했습니다.”

“음, 첸나이는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지 않나요? 당연히 통관이 되지 않을 텐데요?”

“당시 첸나이 세관의 직원들이 뇌물을 대가로 무사통과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래서요?”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내가 역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소주도 가지고 들어온 건가요?”

“네. 그때 소주 2,000박스와 맥주 10,000박스를 가지고 들어왔어요.”

“돈 좀 벌었겠네요?”

신 사장은 그때를 떠올리려는 듯 눈을 감고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이것저것 떼고 한 3억 가까이 번 것 같아요.”

“고 부장에게는 얼마를 주셨어요?”

“현찰로 1억에 매달 5백만 원씩 리베이트를 주는 조건으로 합의를 했어요.”

“음, 그렇다면 그 계약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말입니까?”

신 사장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5억이 넘는 돈을 줬다는 말이군요.”

“네. 저한테 리베이트 준 장부가 있으니까, 한 부 복사해서 드릴게요.”

이 정도면 고인선 부장은 확실하게 잡아 넣을 수 있을 듯했다.

민혁은 이번엔 성 과장에 관해서 질문을 쏟아냈다.

“성 과장은 어떻게 만났어요?”

“고 과장이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어요. 그때가 4년 전이었나… 자신의 후임이라면서 소개를 시켜주더군요.”

“성 과장한테도 리베이트를 대줍니까?”

“월급 형식으로 매월 5백만 원씩 주고 있어요.”

“그럼 두 인간한테 매월 천만 원씩 리베이트를 줘왔던 겁니까? 적자는 안 났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적자는 안 났어요.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싸게 잘 찾아줬거든요.”

“두 사람한테 월급 형식으로 리베이트만 줬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수입할 때마다 별도로 또 줬습니다.”

“이거, 완전 도둑놈들이네요.”

“…….”

“그럼 두 인간한테 모두 얼마나 준 겁니까?”

“저도 정확하게 계산은 안 해봤는데, 고 부장은 10억이 넘고, 성 과장도 얼추 비슷합니다.”

“알았습니다. 그럼 소고기 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신 사장은 목이 마른지 물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탁자에 놓인 잔은 다 비워진 상태라 회의실 밖의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너무도 심각한 분위기에 얼른 물병을 내려놓고는 도망치듯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신 사장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연신 물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회한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민혁 씨도 알다시피 나는 고 부장하고 성 과장한테 코가 꿰어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올해 3월 중순경에 서울에서 고 부장하고 성 과장을 만났는데, 뜬금없이 쇠고기를 수입하라 하더라고요. 인도는 다른 것은 몰라도 쇠고기만 절대 안 되기에 극구 반대했어요. 그랬더니 이미 손을 써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만 믿고 덜커덕 수입을 하셨어요?”

“내가 성 과장한테 안 된다고 몇 번 얘기를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요?”

“그랬더니만, 온갖 좋은 조건은 다 제시를 했어요.”

민혁은 문득 자신이 작성한 수출 계약서의 내용이 생각났다.

금액이 크긴 하지만 이렇게 바로 떠오를 정도는 아니었는데, 역시나 기억력도 많이 강화가 된 것 같았다.

“그럼 CIF 조건과 T/T 조건도 성 과장이 먼저 제안을 한 거란 말인가요?”

“그렇죠. 내가 LK상사하고 거래를 한 지가 7년이 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물건을 외상으로 받아봤어요.”

민혁은 성 과장이 왜 이런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쇠고기 수출을 감행했는지 언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성 과장이 왜 쇠고기 수출을 밀어붙였을까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성 과장의 지인이 부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 사람한테도 리베이트를 받았겠네요?”

“성 과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그나저나, 쇠고기 통관은 왜 막힌 겁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 운이 없었어요.”

“왜요?”

신 사장은 당시의 상황을 순순히 털어놓았는데, 민혁이 생각하기에도 정말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