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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이기기 위한 조건 (4)
조비군과 원담군이 조우하게 된 곳은 하내군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짜기였다.
이미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골짜기 높은 고지들마다 조비군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원담은 마치 조비가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쪽은 군사가 더 많다.
또한 등 뒤에는 지원군들이 신호를 보내면 달려와 줄 예정이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전예가 이끄는 유주 기병대와 청주의 보병대.
유주와 청주를 대표하는 병단을 불렀으니 원담은 자신감이 넘치기만 했다.
“이 전투에 승리하여 대세는 이쪽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군 안량이 백마성 공략에 지지부진하던 이 때,
이 골짜기에서 대승을 거두는 순간 십만 대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대격변을 낳을 것이다. 원담은 필시 자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핵심인물임을 잊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골짜기 밑에서 양군이 충돌.
골짜기는 어느 한쪽이 도주하기 위해 발을 빼는 순간, 그대로 적에게 속공을 당하는 외나무다리와 같은 장소였다.
“전군 공격!”
여광, 여상 형제가 이끄는 병력이 출격.
지형이 가파른 골짜기였기 때문에 대부분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편 원담군을 대적하기 위해서 돌격을 감행한 장료와 고순의 병력 또한 보병대였다.
함진영.
초반부터 가장 강성한 부대를 꺼내들었다.
고순이 지휘하는 함진영은 방패를 위시한 단창을 이용하여 백병전을 시작했다.
“적을 모조리 죽여라!”
“물러서지 마라! 도망칠 곳도 없다!”
도망칠 수 없이, 오로지 적을 섬멸해야만 한다.
아군 병력이 후미를 막고 있으므로 도주는 불가능.
조비는 병사들에게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을 강요하였고, 그 어떤 전략도 없었다. 이 골짜기에 왔다는 것은 곧 순수한 병력 싸움을 요구한 것과 다름없었다.
“병력은 이쪽이 우위다!”
“계속 밀어붙여라! 공격을 멈추지 마라!”
여광과 여상이 분전하며 아군들을 지휘했다.
하지만 전진은 더디기만 했다.
최대한 병사들의 간격을 좁혀서 적병을 돌파하려 하였으나, 함진영은 무너지지 않았다. 태세를 무너뜨리는 일도 없었다.
하북에서만 싸운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함진영이라는 부대명은 돌파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리어 다수의 병력을 격파하기 시작하는 함진영의 위세에 경악했다.
‘순수한 병력 싸움에서라면 절대 지지 않는다.’
점점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는 함진영을 보며 조비가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자신의 군단은 원담의 군세에 맞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을 보여주었다.
원소가 업성 인근에 정예병을 배치시켰을 리가 없다.
그는 아비 조조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고, 최대한 많은 정예부대들을 인솔하여 복양성으로 향했다.
따라서 원담이 이끄는 부대는 모두 예비대.
나이가 많은 노병이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어린 병사들일 게 분명했다.
원소가 업성 기습을 계산하지 못하여 대비하지 않았으니, 분명 어쭙잖은 병력을 업성에 두었을 게 뻔하다.
반면, 아군은 그 유명한 함진영.
중원 최강이라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최정예 부대들이다.
천하무쌍 여포를 따라 전쟁을 종군하였으므로 담력 또한 강했고, 언제나 대군을 상대로 싸워야만 하였기에 원담군을 보고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신호를 보내라.”
“알겠습니다!”
그 말에 조성이 뛰어나갔다.
고지를 점령한 기수들이 더욱 크게 깃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성을 지르며 아군의 사기를 고무시킨다. 북을 치며 아군의 승리를 기원하였으며, 점점 적병의 사기를 깎아내렸다.
머리 위에서 적병이 함성을 지른다.
인간이라면 응당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명백히 병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돌파하지 못하는 적장들로선 조바심이 들었다.
“어째서 이기지 못하는 거냐!”
후방에서 병사들의 상황을 살피던 원담이 소리쳤다.
분명 이쪽이 우위였을 터.
이 곳은 원소군의 영역. 본거지에 가까운 곳에서 싸우고 있었으니, 분명 유리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전황은 뭐란 말인가? 용호상박의 고착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오히려 조비군에게 밀리고 있지 않은가!
원담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래선 승부가 되지 않는다. 이런 좁은 골짜기에서의 전투는 대군이라는 장점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힘과 힘의 싸움으로 귀결되는 개싸움이 된다.
옆에 있던 공손독이 말했다.
“좁은 골짜기에서는 병력의 우위가 사라집니다. 필시 조비는 그를 노렸을…….”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그래도 그렇지, 왜 적에게 밀린단 말이오? 조비에게 왜 지냐고!”
아군은 백전불패의 원소군이다!
거기다 아군은 고향을 지킨다는 숭고한 사명까지 가진 부대가 아닌가!
여기서 밀리면 다시 업성이 노려지리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 터.
필시 원담은 아군 병사들이 겁쟁이라 제대로 전투에 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 예측은 정확했다.
맹렬한 돌격을 감행한 함진영의 위세에 놀라 전방의 부대들이 겁을 먹은 상태였다.
비록 대군이나 전방의 부대가 겁을 먹고 물러난다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대등한 싸움은 물 건너 간 격이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압도적인 학살.
힘과 힘의 대결에서 한쪽이 패배하는 순간, 사나운 늑대에게 물린 순한 양처럼 그저 안타까운 비명만 토해낼 수밖에 없다.
곽조가 말했다.
“전예 장군으로부터 보고입니다! 아군 기병대로 하여금 골짜기를 돌아 적의 후미를 공격하겠다고 합니다.”
그 말에 원담이 격노했다.
“무슨 헛소리인가! 골짜기를 우회했다간 아군은 전멸하고 말 거다! 당장 이쪽으로 오라고 해!”
좁은 골짜기는 그 폭이 넓고 산세가 험하여 기병대를 운용하기엔 최악의 환경이다. 우회에 성공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는가.
전예는 아군 기병대가 우회하여 적을 공격할 때까지, 싸움을 길게 지연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원담에게 조롱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미 전세가 무너지기 직전인데, 기병대가 우회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청주 보병대는!”
“이미 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아군의 후미부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청주의 병력은 도합 8천.
조비가 이끄는 군세와 대등한 병력이다.
비록 싸움에서 큰 손실을 봤지만, 그 손실의 수십 배에 달하는 병력이 이제 곧 도착한다.
“좋아! 그래야지!”
청주 보병대가 합류하였다는 소식에 이제야 서늘했던 간담이 쑥 내려앉았다.
원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진영의 공세에 놀란 아군이 물러나고 있었지만, 이제 곧 전황이 역전되리라 믿었다.
기수들을 보내어 아군을 고무시켰다.
후방에 청주 보병대가 합류하였으며, 병력은 적보다 더 큰 우위를 점하기 되었음을 알렸다. 원담은 병력의 우위를 통해서 아군의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리려 하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전방의 부대들이 등을 보이며 퇴각하기 시작했다.
체력의 소진이 찾아온 함진영이 물러섰다.
그와 발을 맞춰서 팔건장이 이끄는 병력들이 공세를 감행했다.
전략적으로 부대 교체는 매우 어려운 난이도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여포군 밑에서 단련된 장수들에게 있어선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목숨을 나눈 적이 있기에 가능했다.
“퇴각하라!”
“물러나라. 이대로는 다 죽는다!”
여광과 여상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
문득 팔건장의 위세에 공포가 들었고, 그만 무턱대고 퇴각 명령을 내려버린 것이다.
뒤늦게 두 장수들은 아뿔싸 비명을 토해내지만 이미 명령은 전달된 뒤였다.
병사들이 앞 다투어 퇴각을 시작하면서 아우성을 쳤고, 이미 뒤에는 몇 겹에 달하는 아군 부대들이 길목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퇴각할 수도 없었다.
원담은 돌파력을 늘리기 위해서 병사들의 간격을 최대한 좁혔다.
앞으로 가자니 적이 무섭고, 뒤로 가자니 아군이 버티고 있다.
병사들의 과밀화된 밀집현상이 벌어졌다.
거기다 청주 보병대가 합류해버리면서 좁은 골짜기는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 * *
“아군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여령기가 전황을 보고했다.
원담은 병력의 우위를 그토록 믿었지만, 도리어 독이 되어버렸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밀집 대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아군들끼리 밟고 싸우면서 보다 먼저 도망가겠다고 싸우는 꼴이 펼쳐졌다.
분명 적은 아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공법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군에는 전략이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해전술(人海戰術)은 전략의 가장 큰 완성이라 평가된다.
하지만 그 대군을 부술 방법이 있다면?
결국 대군이라고 해봤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인간의 공동체다.
그 두려움을 자극시키고 불안에 떨게 만든다면 대군이라고 해봤자 결국에는 하찮은 무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거기다가 좁은 골짜기라는 지형.
과밀하게 몰린 병력.
머리 위에선 조조군의 깃발과 함께 적병의 함성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니, 공포를 자극시키는 요소로 충분했다.
“전술과 전략이라는 건 결국 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적이 적을 죽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일인가?
원소군은 서로 아군끼리 먼저 도망치겠다고 싸우기 시작했고, 그 분란이 보병대형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여령기가 순수한 의미에서 조비의 전략에 감탄했다.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할지도 모른다.
이건 가히 전략의 승리라 할 수 있었다.
적은 군세로 다수의 적으로부터 승리를 거둔다.
역사를 뒤져보아도 소수의 군세가 다수의 적을 이겼다는 문헌은 많지가 않은데, 병력에 열세적인 전투에서 이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병력이 많은 쪽이 이기는 건 당연하다.
원담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언제나 병력이 많은 쪽이 이긴다는 상식이 병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라면 우리들을 이끌기에 충분할지도.’
이 사람이 우리들을 이끌어줘서 다행이다.
팔건장들을 이토록 효율적으로 이끌어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진궁에 못지않은 전술이 아닌가.
지금 보이는 팔건장의 실력은 진궁의 계책에 힘입어 연주 공방전에서 조조군을 압살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팔건장들이 무명을 떨치던 전성기.
연주 공방전이 제1의 전성기였다면, 조조의 아들인 조비의 지휘를 받는 지금이 제2의 전성기였다. 그를 증명하듯 원담의 수많은 군세를 오직 백병전으로 꺾어버렸다.
“대장기를 꺾었다! 원담이 저기 도망친다!”
장료가 이끄는 정예부대가 적의 대장기를 꺾었다.
적의 본진으로 급습에 성공.
대장기를 꺾고 적장을 패주시켰다는 것은 곧 아군의 승리를 뜻했다.
“도망 못 친다.”
너희들이 골짜기에 때려 박은 병력.
오히려 그 대군이 너희들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퇴각로를 막고 서로 싸우게 만들었으니, 대군은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조비가 추격을 명령했다.
원담이 업성으로 도망친다면 업성 어귀까지 쫓아가 죽이겠다.
애초에 이 전투는 어느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조비군과 원담군이 조우하게 된 곳은 하내군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짜기였다.
이미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골짜기 높은 고지들마다 조비군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원담은 마치 조비가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쪽은 군사가 더 많다.
또한 등 뒤에는 지원군들이 신호를 보내면 달려와 줄 예정이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전예가 이끄는 유주 기병대와 청주의 보병대.
유주와 청주를 대표하는 병단을 불렀으니 원담은 자신감이 넘치기만 했다.
“이 전투에 승리하여 대세는 이쪽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군 안량이 백마성 공략에 지지부진하던 이 때,
이 골짜기에서 대승을 거두는 순간 십만 대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대격변을 낳을 것이다. 원담은 필시 자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핵심인물임을 잊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골짜기 밑에서 양군이 충돌.
골짜기는 어느 한쪽이 도주하기 위해 발을 빼는 순간, 그대로 적에게 속공을 당하는 외나무다리와 같은 장소였다.
“전군 공격!”
여광, 여상 형제가 이끄는 병력이 출격.
지형이 가파른 골짜기였기 때문에 대부분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편 원담군을 대적하기 위해서 돌격을 감행한 장료와 고순의 병력 또한 보병대였다.
함진영.
초반부터 가장 강성한 부대를 꺼내들었다.
고순이 지휘하는 함진영은 방패를 위시한 단창을 이용하여 백병전을 시작했다.
“적을 모조리 죽여라!”
“물러서지 마라! 도망칠 곳도 없다!”
도망칠 수 없이, 오로지 적을 섬멸해야만 한다.
아군 병력이 후미를 막고 있으므로 도주는 불가능.
조비는 병사들에게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을 강요하였고, 그 어떤 전략도 없었다. 이 골짜기에 왔다는 것은 곧 순수한 병력 싸움을 요구한 것과 다름없었다.
“병력은 이쪽이 우위다!”
“계속 밀어붙여라! 공격을 멈추지 마라!”
여광과 여상이 분전하며 아군들을 지휘했다.
하지만 전진은 더디기만 했다.
최대한 병사들의 간격을 좁혀서 적병을 돌파하려 하였으나, 함진영은 무너지지 않았다. 태세를 무너뜨리는 일도 없었다.
하북에서만 싸운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함진영이라는 부대명은 돌파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리어 다수의 병력을 격파하기 시작하는 함진영의 위세에 경악했다.
‘순수한 병력 싸움에서라면 절대 지지 않는다.’
점점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는 함진영을 보며 조비가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자신의 군단은 원담의 군세에 맞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을 보여주었다.
원소가 업성 인근에 정예병을 배치시켰을 리가 없다.
그는 아비 조조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고, 최대한 많은 정예부대들을 인솔하여 복양성으로 향했다.
따라서 원담이 이끄는 부대는 모두 예비대.
나이가 많은 노병이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어린 병사들일 게 분명했다.
원소가 업성 기습을 계산하지 못하여 대비하지 않았으니, 분명 어쭙잖은 병력을 업성에 두었을 게 뻔하다.
반면, 아군은 그 유명한 함진영.
중원 최강이라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최정예 부대들이다.
천하무쌍 여포를 따라 전쟁을 종군하였으므로 담력 또한 강했고, 언제나 대군을 상대로 싸워야만 하였기에 원담군을 보고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신호를 보내라.”
“알겠습니다!”
그 말에 조성이 뛰어나갔다.
고지를 점령한 기수들이 더욱 크게 깃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성을 지르며 아군의 사기를 고무시킨다. 북을 치며 아군의 승리를 기원하였으며, 점점 적병의 사기를 깎아내렸다.
머리 위에서 적병이 함성을 지른다.
인간이라면 응당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명백히 병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돌파하지 못하는 적장들로선 조바심이 들었다.
“어째서 이기지 못하는 거냐!”
후방에서 병사들의 상황을 살피던 원담이 소리쳤다.
분명 이쪽이 우위였을 터.
이 곳은 원소군의 영역. 본거지에 가까운 곳에서 싸우고 있었으니, 분명 유리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전황은 뭐란 말인가? 용호상박의 고착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오히려 조비군에게 밀리고 있지 않은가!
원담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래선 승부가 되지 않는다. 이런 좁은 골짜기에서의 전투는 대군이라는 장점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힘과 힘의 싸움으로 귀결되는 개싸움이 된다.
옆에 있던 공손독이 말했다.
“좁은 골짜기에서는 병력의 우위가 사라집니다. 필시 조비는 그를 노렸을…….”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그래도 그렇지, 왜 적에게 밀린단 말이오? 조비에게 왜 지냐고!”
아군은 백전불패의 원소군이다!
거기다 아군은 고향을 지킨다는 숭고한 사명까지 가진 부대가 아닌가!
여기서 밀리면 다시 업성이 노려지리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 터.
필시 원담은 아군 병사들이 겁쟁이라 제대로 전투에 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 예측은 정확했다.
맹렬한 돌격을 감행한 함진영의 위세에 놀라 전방의 부대들이 겁을 먹은 상태였다.
비록 대군이나 전방의 부대가 겁을 먹고 물러난다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대등한 싸움은 물 건너 간 격이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압도적인 학살.
힘과 힘의 대결에서 한쪽이 패배하는 순간, 사나운 늑대에게 물린 순한 양처럼 그저 안타까운 비명만 토해낼 수밖에 없다.
곽조가 말했다.
“전예 장군으로부터 보고입니다! 아군 기병대로 하여금 골짜기를 돌아 적의 후미를 공격하겠다고 합니다.”
그 말에 원담이 격노했다.
“무슨 헛소리인가! 골짜기를 우회했다간 아군은 전멸하고 말 거다! 당장 이쪽으로 오라고 해!”
좁은 골짜기는 그 폭이 넓고 산세가 험하여 기병대를 운용하기엔 최악의 환경이다. 우회에 성공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는가.
전예는 아군 기병대가 우회하여 적을 공격할 때까지, 싸움을 길게 지연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원담에게 조롱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미 전세가 무너지기 직전인데, 기병대가 우회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청주 보병대는!”
“이미 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아군의 후미부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청주의 병력은 도합 8천.
조비가 이끄는 군세와 대등한 병력이다.
비록 싸움에서 큰 손실을 봤지만, 그 손실의 수십 배에 달하는 병력이 이제 곧 도착한다.
“좋아! 그래야지!”
청주 보병대가 합류하였다는 소식에 이제야 서늘했던 간담이 쑥 내려앉았다.
원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진영의 공세에 놀란 아군이 물러나고 있었지만, 이제 곧 전황이 역전되리라 믿었다.
기수들을 보내어 아군을 고무시켰다.
후방에 청주 보병대가 합류하였으며, 병력은 적보다 더 큰 우위를 점하기 되었음을 알렸다. 원담은 병력의 우위를 통해서 아군의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리려 하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전방의 부대들이 등을 보이며 퇴각하기 시작했다.
체력의 소진이 찾아온 함진영이 물러섰다.
그와 발을 맞춰서 팔건장이 이끄는 병력들이 공세를 감행했다.
전략적으로 부대 교체는 매우 어려운 난이도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여포군 밑에서 단련된 장수들에게 있어선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목숨을 나눈 적이 있기에 가능했다.
“퇴각하라!”
“물러나라. 이대로는 다 죽는다!”
여광과 여상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
문득 팔건장의 위세에 공포가 들었고, 그만 무턱대고 퇴각 명령을 내려버린 것이다.
뒤늦게 두 장수들은 아뿔싸 비명을 토해내지만 이미 명령은 전달된 뒤였다.
병사들이 앞 다투어 퇴각을 시작하면서 아우성을 쳤고, 이미 뒤에는 몇 겹에 달하는 아군 부대들이 길목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퇴각할 수도 없었다.
원담은 돌파력을 늘리기 위해서 병사들의 간격을 최대한 좁혔다.
앞으로 가자니 적이 무섭고, 뒤로 가자니 아군이 버티고 있다.
병사들의 과밀화된 밀집현상이 벌어졌다.
거기다 청주 보병대가 합류해버리면서 좁은 골짜기는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 * *
“아군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여령기가 전황을 보고했다.
원담은 병력의 우위를 그토록 믿었지만, 도리어 독이 되어버렸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밀집 대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아군들끼리 밟고 싸우면서 보다 먼저 도망가겠다고 싸우는 꼴이 펼쳐졌다.
분명 적은 아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공법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군에는 전략이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해전술(人海戰術)은 전략의 가장 큰 완성이라 평가된다.
하지만 그 대군을 부술 방법이 있다면?
결국 대군이라고 해봤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인간의 공동체다.
그 두려움을 자극시키고 불안에 떨게 만든다면 대군이라고 해봤자 결국에는 하찮은 무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거기다가 좁은 골짜기라는 지형.
과밀하게 몰린 병력.
머리 위에선 조조군의 깃발과 함께 적병의 함성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니, 공포를 자극시키는 요소로 충분했다.
“전술과 전략이라는 건 결국 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적이 적을 죽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일인가?
원소군은 서로 아군끼리 먼저 도망치겠다고 싸우기 시작했고, 그 분란이 보병대형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여령기가 순수한 의미에서 조비의 전략에 감탄했다.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할지도 모른다.
이건 가히 전략의 승리라 할 수 있었다.
적은 군세로 다수의 적으로부터 승리를 거둔다.
역사를 뒤져보아도 소수의 군세가 다수의 적을 이겼다는 문헌은 많지가 않은데, 병력에 열세적인 전투에서 이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병력이 많은 쪽이 이기는 건 당연하다.
원담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언제나 병력이 많은 쪽이 이긴다는 상식이 병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라면 우리들을 이끌기에 충분할지도.’
이 사람이 우리들을 이끌어줘서 다행이다.
팔건장들을 이토록 효율적으로 이끌어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진궁에 못지않은 전술이 아닌가.
지금 보이는 팔건장의 실력은 진궁의 계책에 힘입어 연주 공방전에서 조조군을 압살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팔건장들이 무명을 떨치던 전성기.
연주 공방전이 제1의 전성기였다면, 조조의 아들인 조비의 지휘를 받는 지금이 제2의 전성기였다. 그를 증명하듯 원담의 수많은 군세를 오직 백병전으로 꺾어버렸다.
“대장기를 꺾었다! 원담이 저기 도망친다!”
장료가 이끄는 정예부대가 적의 대장기를 꺾었다.
적의 본진으로 급습에 성공.
대장기를 꺾고 적장을 패주시켰다는 것은 곧 아군의 승리를 뜻했다.
“도망 못 친다.”
너희들이 골짜기에 때려 박은 병력.
오히려 그 대군이 너희들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퇴각로를 막고 서로 싸우게 만들었으니, 대군은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조비가 추격을 명령했다.
원담이 업성으로 도망친다면 업성 어귀까지 쫓아가 죽이겠다.
애초에 이 전투는 어느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