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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관도대전 (1)



원담은 자신이 패주(敗走) 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황급히 말을 타고 도망쳤다.
등 뒤에서는 아군의 비명소리가 한없이 들려오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버리지 말아달라는 절규가 귓가를 맴돌았다.
“내가 왜 졌단 말인가!”
박차를 가하며 더욱 속도를 올렸다.
여광과 여상이 아군을 죽이면서까지 막힌 길을 열었다.
골짜기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는 그 누구도 아닌 아군에게 막힌 상태였다.
무작정 지원군들이 본대를 보조하기 위해서 골짜기에 들어온 탓이다.
그 때문에 함진영에 내몰린 아군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아군끼리 서로 싸우다가 공멸해버리고 말았다.
“어서 원담 님을 뫼셔라!”
“길을 열지 않으면 내 칼이 용서하지 않겠다!”
머릿수를 따지고 본다면 조비군에 살해당한 병사는 많지 않았다.
서로 치고 박으며 서로 도망치겠다며 싸우기 시작한 아군의 희생이 더욱 컸다. 우습게도 적병에게 죽는 것보다도 아군에게 휘말려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오자 두려움은 더욱 심해졌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람은 더욱 공포를 느낀다.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칼로 자해를 하거나, 땅에 고개를 처박고 살려 달라 애걸복걸하는 병사도 보였다.
그런 병사들을 모두 외면하며 도망치는 걸음을 서둘렀다.
“싸움은 어찌 되었소?”
전예가 다가오며 물었다.
그가 이끌던 유주 기병대가 합류.
조비군의 진격을 막는 것과 동시에 원담의 신병을 확보했다.
“다 죽었소……. 내가 어리석어 다 죽었단 말이오…….”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항상 원소의 장남이 되어, 이기는 전쟁만을 해왔던 원담에게 있어 이번 패전은 너무도 뼈아팠다.
무엇보다도 나약하게 아군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던 자신의 행동이 증오스러웠다. 자신의 이름을 믿고 따라준 병사들을 모두 잃었다는 잔혹함이 마음을 헤집고 다녔다.
“우선 업성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필시 적이 다시 노릴지도 모릅니다.”
전예 또한 참담함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였다.
보다 빨리 움직였다면.
유주 기병대가 골짜기를 우회하여 적의 후미를 잡았다면.
골짜기에서 벌어진 싸움은 필시 원담군의 대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골짜기에서 누가 먼저 포위가 되느냐.
그게 바로 이번 싸움의 중요한 요소였다.

기상천외하게도 조비는 적 지원군의 존재를 적의 포위망에 이용했다.
싸움이 벌어지면서 치열함이 이어진다면, 필시 적 지원군이 달려와 조력하려고 할 것이다. 그를 꿰뚫어본 조비는 각 도시와 고을들을 점령하는 등, 최대한 과장된 군사 행동을 보이며 유인책을 펼쳤다.
‘이 미친놈!’
전예가 욕설을 내뱉었다.
머리로는 깨달았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함진영이 패배하였다면 오히려 골짜기에 갇히는 것은 조비군이었을 터.
그런데도 오직 함진영만 믿고서 이런 싸움을 내걸었다. 좁은 환경이라고 해도 결국 대군을 가진 병력이 이기기 마련. 조비군에게 승산이 희미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결국 조비가 이겼다.
믿고 맡긴 함진영이 활약하였으며, 장수들이 믿음을 가져주었다.
이번 싸움의 요인은 바로 그것에 있다.
“공손독 장군, 먼저 업성으로 가서 원담 님을 모실 준비를 하라고 지시해주시오.”
“알겠소이다.”
전예의 말에 공손독이 부장들과 함께 서둘러 뛰쳐나갔다.
그리고 전예는 자신이 직접 기병대를 인솔하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또 적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다.
골짜기에서 번진 비명소리는 아직도 들리고 있었지만, 그 범위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아마도 골짜기에서는 이미 상황이 끝난 뒤일 것이다. 몇몇 장수들은 아직도 싸움터에 남아서 항전할지도 모르지만, 싸움의 결판은 났다. 저항하려고 한들, 버틸 수는 없겠지.
“아버님께는 뭐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내 모든 군사들을 잃고 말았다!”
싸움에서 패배하고, 겨우 수천 기만을 추슬러서 데려온 원담의 몰골은 참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비틀거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패잔병들.
다들 헤진 갑옷에 피투성이 얼굴이었다. 심지어 병장기를 제대로 들고 있는 병사도 드물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병사들은 패잔병이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추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성문을 열어라!”
전예가 크게 소리쳤다.
분명 공손독이 먼저 업성으로 향했을 터.
그런데도 아직 성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전예가 한참동안이나 굳게 닫힌 업성 성문에 소리쳤지만, 성벽 위에서는 그 어떤 대응도 없었다. 그를 수상하게 여긴 전예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어째서냐.
어째서 업성 신하들은 싸움에서 돌아온 공자를 맞이하지 않는 거냐.
아무리 전투에서 패배해도 그렇지, 원담은 원소의 첫째 아들이자 청주를 다스리는 자사였다. 결코 바깥에서 홀대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다.
이윽고 성벽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소의 정실부인이었던 유부인이었다.
“싸움에서 패배한 패장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려 하는가!”
여장부의 외침에 전예는 물론 원담까지도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저 여편네가 뭐라 지껄이는 거냐.
조비군에게 업성을 빼앗긴 것도 아니거늘, 내가 돌아왔는데 왜 맞이하지 않는 건가.
그래, 우리 관계가 후계자 다툼으로 원수지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원상과 자주 대립하면서 그 친모인 유부인과도 크게 다툰 적이 많았다.
하지만 성문을 열지 않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행위였다.
사람으로서 인정이라는 게 있다면 돌아온 장수를 맞이해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적어도 지친 몸을 눕게 하고, 굶주린 허기라도 채우게 해줘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유부인은 끝내 성문을 열지 않았다.
성문을 담당하던 수문장은 유부인의 명령을 거절할 순 없었는지, 병사들을 모두 뒤로 물렸다.
“원담 님……. 우선 여양성(黎陽城)으로 모시겠습니다.”
여양성이라면 업성에서 그리 멀지 않다.
궁벽한 곳이지만 적어도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원담은 유부인을 언젠가 죽이겠노라 이를 갈면서 순순히 물러났다. 만약 여기서 성문이라도 두들긴다면 성벽 위의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쏠 것 같았다.
저 암여우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지아비의 총애를 이용해서 권세를 쥐락펴락하는 여자.
원담은 패배를 안겨준 조비보다도, 자신에게 최대한의 굴욕을 안긴 유부인에 대한 살의를 키웠다.


* * *


골짜기에서 포로로 잡힌 원담군만 하더라도 1천은 훨씬 넘을 것으로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도망친 적병이 많았다.
항전을 꾀한 적장들도 많았으며,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들도 여럿 벌어졌다. 그를 본 조비는 역시 전쟁이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전예가 그런 말을 했답니까?”
전예가 이끌던 유주 기병대.
그 기병을 사로잡은 조비가 전예가 꺼낸 전술에 손뼉을 쳤다.
과연 훌륭하다.
공손찬의 장수였으나 패망 후, 원소에게 투항한 명장.
전예는 훗날 위나라 명장의 반열에 무조건 이름을 올리는 장수였으니, 필시 그 능력이 출중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서서가 말했다.
“만약 원담이 전예의 전술을 받아들였다면 낭패를 봤을 겁니다.”
상상만 해도 서늘하네요.
서서가 어깨를 벌벌 떨었다.
그에게 있어선 이번이 첫 싸움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크게 긴장한 듯 보였다.

원담의 본대가 함진영의 돌파를 저지하면서 시간을 번다.
그 사이에 전예가 골짜기를 크게 돌아서 아군의 후미를 공격했다면 도리어 포위에 빠지게 되는 건 조비군이다.
앞에는 보병대.
뒤에는 기병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뻔했다.
비록 8천의 병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좁은 지형에서 적에게 포위당하면 몰살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가후가 후후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주공께서는 그것조차 간파하고 계셨습니다. 원담은 전쟁에 능하나 임기응변이 부족합니다. 자신이 직접 대장이 되어 스스로 지휘권을 행사한 적이 많지 않으니, 대장으로서의 경험도 부족하지요.”
그런 우매한 자가 전예의 책략을 받아들이기나 했을까? 그 말에 서서가 과연 옳다고 대답했다.
물론 가후의 말은 가설에 불과하다.
지금 이렇게 대승으로 결과가 끝났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패배하였다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린 목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포로로 잡힌 장수 30여 명의 목을 쳤다.
잡힌 병사들은 스스로 구덩이를 파게하고, 그를 묫자리로 삼게 만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적병들을 생매장시키는 그 모습에 팔건장들은 두려움을 크게 느껴야 했다.
조비는 아군이 포로를 수용할 여유도 없으며, 훗날의 화근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유로 포로로 잡은 병사들을 모두 땅에 파묻어버렸다.
망설임 없는 결단.
그것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자는 없었다.
좁은 골짜기는 싸움터이자, 1천에 달하는 원담군 포로들의 묫자리가 되어버렸다.

“무슨 말을 할지는 잘 안다.”
침묵을 지키는 여령기를 보며 조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기억해둬라. 애꿎은 정나미 때문에 아군의 패배를 불러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장수 실격이라는 것을.”
아군이 패배할 위기를, 죽임을 당할 위기를 최대한 줄인다.
싸움에서, 전투에서 매번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뿐이라면 훌륭한 장수가 아니다.
전쟁이 벌어질 수단을 억제한다.
그게 바로 장수들이 해야 할 근본적인 일이다.
1천 병사들을 생매장시켜서 병력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업성에 크게 공포를 심어주었으니 분명 적들은 감히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겠지. 벌벌 떨면서 성문을 굳게 닫고, 살려달라고 애원할지도 모른다.
싸움에서 흘릴 피를 줄인다.
이것은 모두 아군을 위한 길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악명을 지게 된 들, 결국 모두 장수가 져야할 업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에 여령기가 대답했다.
“당신은 훌륭한 주군입니다."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여령기는 자신의 행동이, 언행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지하고는 조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완벽한 싸움을 본 이라면 누구나가 경탄할 것이다.
장료는 물론 고순도 조비의 능력을 뼈저리게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장수들은 조비가 군신이라며 떠들기까지 했다.
‘누구보다 완벽한 건 사실이야.’
아비를 죽인 자다.
하지만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 이상적인 사람이다. 너무 이상적이고 완벽해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어떻게 이런 사람이 태어났는지가 궁금해졌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로지 극한의 효율과 승리만을 노리는 인간.
차갑고 메마르다.
훌륭한 왕이며 장군이되, 훌륭한 인간이란 느낌이 없었다.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고만 느껴졌다.

“업성으로 다시 간다.”
깃발을 뽑고 이동 준비를 취해라.
조비가 장수들에게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