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8화] 이기기 위한 조건 (3)
후계자들의 전쟁.
원담이 퍼뜨린 소문이 위군(魏郡)을 넘어 원소군 본진에까지 들려왔다.
원소는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직접 정예병을 인솔하여 업성을 급습하였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업성 주변의 논밭들이 모두 불타면서 다수의 농토들의 소실되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기주의 곡창지대를 개발한 원소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당장 제가 군사를 이끌고 가 조비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장합이 콧방귀를 끼며 소리쳤다.
설마 뒤를 노릴 줄이야.
하내군 방면에서 적이 쳐들어올 줄은 예상도 못했다.
사예주로 보낸 세작들로부터 아무 보고도 받지 못한데다가, 이 자리에 모인 장수들 중에서 적의 급습이 업성에 있을 것이라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업성을 공격하다니…….”
“대체 주변 군세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오?”
조조의 아들이 업성을 공격했다.
장수들은 그가 불태운 곡창지대의 손실을 논하고 있는 반면, 원소는 과연 원담이 조비를 격퇴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품었다.
물론 원담의 군사적 재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원담은 공손찬과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보였고, 소수의 군대만으로 청주를 모두 통일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원상이 이끄는 것보다는 낫다.
원소는 셋째 아들 원상을 총애하고 있었지만, 그 군사적 재능에 대해선 형편없다고 여겼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남?”
그 말에 심배가 대답했다.
“우선 아군으로선 발을 빼기가 어렵습니다. 앞에 조조군의 본대가 있으니, 업성 경비를 위해 군대를 나누게 되면 조조는 그 혼란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원소는 조비 또한 그 아비인 조조와 마찬가지로 승냥이 같은 놈이라 여겼다.
일부러 지금 시기에 군사를 일으켜 업성을 공격했다.
안량이 백마성 공략에 지지부진하고, 본대가 복양성에 주둔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군사를 물릴 수가 없다.
이미 원소군은 백마성, 연진성, 복양성 부근에 군사 주둔이 모두 끝난 상태.
전면 배치된 상황에서 따로 군사를 빼낸다면 약점구멍이 생겨나고 만다.
그를 놓칠 조조가 아니다.
아비와 자식 놈이 쌍으로 앞뒤에서 괴롭히고 있다.
“업성에 병력은 넉넉합니다. 거기다가 유주의 기병대가 합류하면 능히 격퇴할 수 있습니다.”
“원담 님이 명령을 내리면 청주의 병력도 합류할 것이니 심려하시진 마시지요.”
여위황과 휴원진의 말에 원소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부하들 앞에서 너무 심려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이야말로 군주로서 의젓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원소는 자신이 너무 원담을 못 미더워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군주로서의 자질은 부족한 아이지만, 자신의 듬직한 장남이 아닌가? 후계자 자리에서 밀어내긴 했지만, 원담을 미워한 적은 없었다.
군사적 재능으로 원상을 도와주기를.
그렇게 여겼기에 원담을 내쫓지 않고 청주자사라도 임명하여 중용하였다.
‘그래. 기주와 청주, 유주의 병력들이 합류하면 적어도 2만은 넘을 터. 기습군 정도야 쉽게 격퇴할 수 있겠지.’
청주는 원담의 오랜 통치를 받는 지역이었고, 유주는 오랑캐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다수의 수비대를 만리장성에서 빼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업성의 논밭을 불태우면서 기주 출신의 병사들이 크게 분노하였을 것이니, 분명 조비를 공격하는데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원소는 아들 원담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적의 기습군이라 해도 1만은 넘지 않을 터.
그에 반해 원소군은 본국에도 여러 군단들을 남겨두었으니, 원담의 능력으로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 *
원담은 우선 전령들을 각 주에 보내어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서두르지 않았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은 오히려 원담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기주(冀州). 유주(幽州). 청주(青州).
3개의 주에서 속속히 지원군을 보내겠다는 서한이 도착하였으니 필시 적병의 배에 달하는 군대가 몰려올 것이다.
업성 인근에 병력들을 보내어 지역을 지키는 한편, 원담 자신은 성벽 위에 올라가 적병의 동태를 살폈다. 아직 적은 퇴각하지 않았는데, 주변에 똬리를 틀고서 약탈을 펼치며 자급자족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 건방진 놈.’
기습군이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분명 업성의 기습을 성공하였음에도 도망치지 않는 것은 필시 자신을 괄시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 모습이 원담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렇지 않아도 원소군 내부에서도 괄시와 푸대접을 동시에 받는 신분이었는데, 적으로부터도 무시를 받고 있었으니 그 마음이 고울 리가 없었다. 게다가 조비는 서한을 묶은 화살을 쏘아 원담의 용렬함과 후계자에서 쫓겨난 패배자라는 식의 욕설을 전달했다.
“적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여상이 달려와 보고했다.
그 말에 원담이 황급히 적을 바라보았는데, 과연 여상의 말처럼 퇴군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하내군(河內郡)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게 틀림없다.
이대로 적을 돌려보냈다간 원상에게서 군사권을 빼앗은 자신의 처지만 우습게 되는 것이다. 업성을 총괄하는 사령관이 되었으니, 적어도 면목을 세울 수 있는 전과가 필요했다.
“여광, 여상 장군! 서둘러 군사들을 모으시오!”
당장 저들을 치겠소이다!
그 말에 여광과 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지방에서 지원군이 도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업성의 병력만으로도 조비의 군사를 격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원담이 원하는 것은 아비에게 자랑할 수 있는 성과였다.
적장 조비의 수급은 물론, 업성을 침략한 자들의 떼죽음을 원했다. 적의 피와 시체로 시산혈해를 이루어 보고한다면 필시 아비도 다시 총애를 보내주겠지.
하지만 원담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조비군은 매우 신속하게 퇴각에 성공했다.
이미 퇴각 계획까지 짜둔 정예군이다.
기병대에 치중을 두고 있어 이동거리가 길고, 주파속도 또한 빠르다.
“적의 흔적을 찾아라! 사예주라도 가서 그 목을 잘라야한다!”
원담이 애가 탄 듯 소리쳤다.
적병이 물러난 것을 가장 애달프게 여기는 이가 원담이었다.
그 말에 장수들은 부리나케 전령들을 보내어 주변을 수색하게 하였다.
적은 8천에 달하는 군세.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필시 그 이동 반경을 알아챌 수 있으리 여겼는데, 과연 반나절도 안 되어 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적이 벌써 목야(牧野)를 점령했습니다!”
“조가(朝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을 질렀는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하내군으로 퇴각하던 조비군이 돌연 아군 도시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를 들은 원담은 혹시 눈속임이 아닐까 싶어 수색대를 파견토록 하였는데, 그들로부터 적의 점령이 사실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적의 깃발이 올라왔음은 물론, 도시 안에서 적병들로 가득하다고 하였다.
“적은 분명 업성을 기습하기 위해서 왔을 터. 그런데 왜 아군의 도시와 고을들을 점령한단 말이오? 설마 고작 8천으로 아군 군단을 이길 수 있으리라 여긴 건가.”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예측이었다.
조비는 조조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다.
적의 영토를 점령하고 다스리기 위해선 적병의 세 배에 달하는 병력이 필요한 법. 전략의 기본조차 모르는 행동을 조비가 하였을 리가 없었다.
원담은 계속 수상하게 여기면서 함부로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조비가 보낸 서한들. 분명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이 적혀 있었지만, 그것이 유인책의 일환이라는 것은 원담도 알고 있었다.
당장에 그 조비라는 놈을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군사들을 함부로 잃는다면 승리를 거둬봤자 아비에게 꾸중만 들을 뿐이다.
“병력으로 봐도 크게 열세일 텐데……. 기습에 성공하였음에도 왜 도망치지 않는 거지?”
“적이 아군을 우습게 본 게 아니겠습니까? 전공에 눈이 멀어 약탈품이라도 챙기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원담의 말에 곽조가 대답했다.
곽조는 조비가 전공에 눈이 멀지 않은 이상에야, 구태여 아군 지역을 점령할 리가 없다고 하였다. 그 말은 들은 원담이 과연 그럴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서는 무릇 교만한 마음이 들기 마련.
기습에 성공하였다고 하여 기주가 자기 세상이 되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비라는 자에게 강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서둘러 지원부대에게 전령을 보내시오! 각 거리를 좁히고 전투가 벌어지는 즉시 합류하라고!”
압도적인 병력으로 찍어 눌러주마.
원담은 적이 퇴각을 중지하고 목야와 조가에 있는 것을 매우 큰 행운이라 여겼다. 지원부대가 도착하기를 적이 스스로 기다려주는 셈이 아닌가.
“전예 장군이 이끄는 유주 기병대가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청주 보병대도 갓 언덕을 넘었다고 하니, 이제 곧 합류할 겁니다.”
도합 2만에 달하는 병력.
8천에 달하는 기습군 따위야 단숨에 갈아버릴 수 있었다.
이미 따 놓은 승리라며 흡족한 웃음을 짓는 원담에게 또 다시 전령들이 들이닥쳤다.
“보고 드립니다! 조비군이 내황현(內黃縣)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무안현(武安縣) 또한 공격 받고 있다 합니다.”
사방에서 봉화가 올랐다.
적의 침략을 알리는 연기가 가득 피어올랐는데, 특히 위군의 부유한 고을들로 유명한 곳들이었다.
마치 기회라는 듯이 병력을 분산시켜서 약탈을 일삼고 있다.
그를 들은 원담은 가만히 있으니 자신을 허수아비로 여긴다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제 지원군도 곧 도착한다.
더 이상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조비는 바로 눈앞에 있다.
지금의 원한을 천배 만배로 갚아주기 위해서 전투를 벌일 일만 남았다.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으니 적들을 도륙 낼 일만 남았다!”
원담이 검을 빼들었다.
그러자 여광과 여상 형제가 이에 동조하였으며, 곽조와 공손독도 따랐다.
그 병력이 1만에 달하고, 지원 병력을 합치면 2만에 달한다.
전투가 벌어지는 즉시 지원군이 호응하여 줄 것이기에 불리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2만을 상대해야 하는 적들만 불쌍한 처지다.
원담에게 있어 적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로지 분노만을 가슴속에 태우고 있을 뿐이다.
“우리들의 고향을 불태운 조비에게 복수하자! 그 살을 씹어 백성들의 비통함을 달래겠다!”
원담의 외침에 장수와 병사들이 호기롭게 병장기를 들었다.
그 말이 옳다.
적은 침략군. 백성들의 논밭을 불태운 간악한 자들이다!
그를 응징하지 못한다면 천하무적이라 불리는 원소군의 명성에 금이 가리라.
“적이 다시 퇴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공손독의 보고에 원담이 이를 드러냈다.
“설령 적들이 기병대가 많을지라도 하내군으로 도착하기 전에는 그 후미를 잡을 수 있을 거다.”
눈앞에 보이는 순간 모조리 요절을 내주마.
원담은 지금까지 참아왔던 분노를 모두 폭발시켰다. 그 동안 적들이 자신을 기만하고 속여 왔으니, 응당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라며 전군에 속도를 높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후계자들의 전쟁.
원담이 퍼뜨린 소문이 위군(魏郡)을 넘어 원소군 본진에까지 들려왔다.
원소는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직접 정예병을 인솔하여 업성을 급습하였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업성 주변의 논밭들이 모두 불타면서 다수의 농토들의 소실되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기주의 곡창지대를 개발한 원소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당장 제가 군사를 이끌고 가 조비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장합이 콧방귀를 끼며 소리쳤다.
설마 뒤를 노릴 줄이야.
하내군 방면에서 적이 쳐들어올 줄은 예상도 못했다.
사예주로 보낸 세작들로부터 아무 보고도 받지 못한데다가, 이 자리에 모인 장수들 중에서 적의 급습이 업성에 있을 것이라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업성을 공격하다니…….”
“대체 주변 군세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오?”
조조의 아들이 업성을 공격했다.
장수들은 그가 불태운 곡창지대의 손실을 논하고 있는 반면, 원소는 과연 원담이 조비를 격퇴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품었다.
물론 원담의 군사적 재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원담은 공손찬과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보였고, 소수의 군대만으로 청주를 모두 통일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원상이 이끄는 것보다는 낫다.
원소는 셋째 아들 원상을 총애하고 있었지만, 그 군사적 재능에 대해선 형편없다고 여겼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남?”
그 말에 심배가 대답했다.
“우선 아군으로선 발을 빼기가 어렵습니다. 앞에 조조군의 본대가 있으니, 업성 경비를 위해 군대를 나누게 되면 조조는 그 혼란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원소는 조비 또한 그 아비인 조조와 마찬가지로 승냥이 같은 놈이라 여겼다.
일부러 지금 시기에 군사를 일으켜 업성을 공격했다.
안량이 백마성 공략에 지지부진하고, 본대가 복양성에 주둔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군사를 물릴 수가 없다.
이미 원소군은 백마성, 연진성, 복양성 부근에 군사 주둔이 모두 끝난 상태.
전면 배치된 상황에서 따로 군사를 빼낸다면 약점구멍이 생겨나고 만다.
그를 놓칠 조조가 아니다.
아비와 자식 놈이 쌍으로 앞뒤에서 괴롭히고 있다.
“업성에 병력은 넉넉합니다. 거기다가 유주의 기병대가 합류하면 능히 격퇴할 수 있습니다.”
“원담 님이 명령을 내리면 청주의 병력도 합류할 것이니 심려하시진 마시지요.”
여위황과 휴원진의 말에 원소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부하들 앞에서 너무 심려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이야말로 군주로서 의젓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원소는 자신이 너무 원담을 못 미더워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군주로서의 자질은 부족한 아이지만, 자신의 듬직한 장남이 아닌가? 후계자 자리에서 밀어내긴 했지만, 원담을 미워한 적은 없었다.
군사적 재능으로 원상을 도와주기를.
그렇게 여겼기에 원담을 내쫓지 않고 청주자사라도 임명하여 중용하였다.
‘그래. 기주와 청주, 유주의 병력들이 합류하면 적어도 2만은 넘을 터. 기습군 정도야 쉽게 격퇴할 수 있겠지.’
청주는 원담의 오랜 통치를 받는 지역이었고, 유주는 오랑캐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다수의 수비대를 만리장성에서 빼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업성의 논밭을 불태우면서 기주 출신의 병사들이 크게 분노하였을 것이니, 분명 조비를 공격하는데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원소는 아들 원담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적의 기습군이라 해도 1만은 넘지 않을 터.
그에 반해 원소군은 본국에도 여러 군단들을 남겨두었으니, 원담의 능력으로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 *
원담은 우선 전령들을 각 주에 보내어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서두르지 않았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은 오히려 원담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기주(冀州). 유주(幽州). 청주(青州).
3개의 주에서 속속히 지원군을 보내겠다는 서한이 도착하였으니 필시 적병의 배에 달하는 군대가 몰려올 것이다.
업성 인근에 병력들을 보내어 지역을 지키는 한편, 원담 자신은 성벽 위에 올라가 적병의 동태를 살폈다. 아직 적은 퇴각하지 않았는데, 주변에 똬리를 틀고서 약탈을 펼치며 자급자족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 건방진 놈.’
기습군이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분명 업성의 기습을 성공하였음에도 도망치지 않는 것은 필시 자신을 괄시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 모습이 원담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렇지 않아도 원소군 내부에서도 괄시와 푸대접을 동시에 받는 신분이었는데, 적으로부터도 무시를 받고 있었으니 그 마음이 고울 리가 없었다. 게다가 조비는 서한을 묶은 화살을 쏘아 원담의 용렬함과 후계자에서 쫓겨난 패배자라는 식의 욕설을 전달했다.
“적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여상이 달려와 보고했다.
그 말에 원담이 황급히 적을 바라보았는데, 과연 여상의 말처럼 퇴군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하내군(河內郡)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게 틀림없다.
이대로 적을 돌려보냈다간 원상에게서 군사권을 빼앗은 자신의 처지만 우습게 되는 것이다. 업성을 총괄하는 사령관이 되었으니, 적어도 면목을 세울 수 있는 전과가 필요했다.
“여광, 여상 장군! 서둘러 군사들을 모으시오!”
당장 저들을 치겠소이다!
그 말에 여광과 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지방에서 지원군이 도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업성의 병력만으로도 조비의 군사를 격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원담이 원하는 것은 아비에게 자랑할 수 있는 성과였다.
적장 조비의 수급은 물론, 업성을 침략한 자들의 떼죽음을 원했다. 적의 피와 시체로 시산혈해를 이루어 보고한다면 필시 아비도 다시 총애를 보내주겠지.
하지만 원담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조비군은 매우 신속하게 퇴각에 성공했다.
이미 퇴각 계획까지 짜둔 정예군이다.
기병대에 치중을 두고 있어 이동거리가 길고, 주파속도 또한 빠르다.
“적의 흔적을 찾아라! 사예주라도 가서 그 목을 잘라야한다!”
원담이 애가 탄 듯 소리쳤다.
적병이 물러난 것을 가장 애달프게 여기는 이가 원담이었다.
그 말에 장수들은 부리나케 전령들을 보내어 주변을 수색하게 하였다.
적은 8천에 달하는 군세.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필시 그 이동 반경을 알아챌 수 있으리 여겼는데, 과연 반나절도 안 되어 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적이 벌써 목야(牧野)를 점령했습니다!”
“조가(朝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을 질렀는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하내군으로 퇴각하던 조비군이 돌연 아군 도시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를 들은 원담은 혹시 눈속임이 아닐까 싶어 수색대를 파견토록 하였는데, 그들로부터 적의 점령이 사실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적의 깃발이 올라왔음은 물론, 도시 안에서 적병들로 가득하다고 하였다.
“적은 분명 업성을 기습하기 위해서 왔을 터. 그런데 왜 아군의 도시와 고을들을 점령한단 말이오? 설마 고작 8천으로 아군 군단을 이길 수 있으리라 여긴 건가.”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예측이었다.
조비는 조조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다.
적의 영토를 점령하고 다스리기 위해선 적병의 세 배에 달하는 병력이 필요한 법. 전략의 기본조차 모르는 행동을 조비가 하였을 리가 없었다.
원담은 계속 수상하게 여기면서 함부로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조비가 보낸 서한들. 분명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이 적혀 있었지만, 그것이 유인책의 일환이라는 것은 원담도 알고 있었다.
당장에 그 조비라는 놈을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군사들을 함부로 잃는다면 승리를 거둬봤자 아비에게 꾸중만 들을 뿐이다.
“병력으로 봐도 크게 열세일 텐데……. 기습에 성공하였음에도 왜 도망치지 않는 거지?”
“적이 아군을 우습게 본 게 아니겠습니까? 전공에 눈이 멀어 약탈품이라도 챙기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원담의 말에 곽조가 대답했다.
곽조는 조비가 전공에 눈이 멀지 않은 이상에야, 구태여 아군 지역을 점령할 리가 없다고 하였다. 그 말은 들은 원담이 과연 그럴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서는 무릇 교만한 마음이 들기 마련.
기습에 성공하였다고 하여 기주가 자기 세상이 되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비라는 자에게 강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서둘러 지원부대에게 전령을 보내시오! 각 거리를 좁히고 전투가 벌어지는 즉시 합류하라고!”
압도적인 병력으로 찍어 눌러주마.
원담은 적이 퇴각을 중지하고 목야와 조가에 있는 것을 매우 큰 행운이라 여겼다. 지원부대가 도착하기를 적이 스스로 기다려주는 셈이 아닌가.
“전예 장군이 이끄는 유주 기병대가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청주 보병대도 갓 언덕을 넘었다고 하니, 이제 곧 합류할 겁니다.”
도합 2만에 달하는 병력.
8천에 달하는 기습군 따위야 단숨에 갈아버릴 수 있었다.
이미 따 놓은 승리라며 흡족한 웃음을 짓는 원담에게 또 다시 전령들이 들이닥쳤다.
“보고 드립니다! 조비군이 내황현(內黃縣)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무안현(武安縣) 또한 공격 받고 있다 합니다.”
사방에서 봉화가 올랐다.
적의 침략을 알리는 연기가 가득 피어올랐는데, 특히 위군의 부유한 고을들로 유명한 곳들이었다.
마치 기회라는 듯이 병력을 분산시켜서 약탈을 일삼고 있다.
그를 들은 원담은 가만히 있으니 자신을 허수아비로 여긴다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제 지원군도 곧 도착한다.
더 이상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조비는 바로 눈앞에 있다.
지금의 원한을 천배 만배로 갚아주기 위해서 전투를 벌일 일만 남았다.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으니 적들을 도륙 낼 일만 남았다!”
원담이 검을 빼들었다.
그러자 여광과 여상 형제가 이에 동조하였으며, 곽조와 공손독도 따랐다.
그 병력이 1만에 달하고, 지원 병력을 합치면 2만에 달한다.
전투가 벌어지는 즉시 지원군이 호응하여 줄 것이기에 불리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2만을 상대해야 하는 적들만 불쌍한 처지다.
원담에게 있어 적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로지 분노만을 가슴속에 태우고 있을 뿐이다.
“우리들의 고향을 불태운 조비에게 복수하자! 그 살을 씹어 백성들의 비통함을 달래겠다!”
원담의 외침에 장수와 병사들이 호기롭게 병장기를 들었다.
그 말이 옳다.
적은 침략군. 백성들의 논밭을 불태운 간악한 자들이다!
그를 응징하지 못한다면 천하무적이라 불리는 원소군의 명성에 금이 가리라.
“적이 다시 퇴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공손독의 보고에 원담이 이를 드러냈다.
“설령 적들이 기병대가 많을지라도 하내군으로 도착하기 전에는 그 후미를 잡을 수 있을 거다.”
눈앞에 보이는 순간 모조리 요절을 내주마.
원담은 지금까지 참아왔던 분노를 모두 폭발시켰다. 그 동안 적들이 자신을 기만하고 속여 왔으니, 응당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라며 전군에 속도를 높이라는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