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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이기기 위한 조건 (2)
설령 업성 인근의 논밭이 모두 불탄다고 한들,
원소는 전쟁 이전부터 이미 창고에 군량을 가득 저장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전황에 직접적인 피해가 가해지진 않을 것이다.
이건 심리전이다.
원소군 본대는 언제든지 본진 업성이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알게 되었다.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여긴 업성이 급습을 받았다는 시점에서 이미 견고함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었다.
“위군(魏郡)은 무엇보다 원소의 본진입니다. 기주목 한복으로부터 위군을 빼앗은 이후, 원소는 업성을 수도로 하여 위군 또한 중심지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런 위군을 초토화시킨다.
가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원소가 하북의 패자가 되는데 발판이 된 원소군의 성역.
그 위군이 지금 불바다가 되어 있다.
영글었던 벼는 잿더미가 되었고, 조비군은 가을에 수확을 기다리던 농부의 희망을 짓밟았다.
업성의 백성들은 그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소규모 병단들이 적의 기습을 막아내기 위해 출진하였으나, 도리어 참패를 당해버리고 말았다.
8천에 달하는 군세는 원소군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군이다.
원소는 업성 주변에도 병력들을 배치시켜 두었지만, 그들이 서둘러 합류하지 못한 까닭에 조비에게 각개격파당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적의 움직임을 보건대, 아군이 공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기병대로 하여금 주변을 휘젓고 온 장료가 말했다.
병사들이 오합지졸이다.
본진을 지키는 병력들은 예비대로 편성된 부대였고, 정예병들은 모두 전쟁에 나섰기 때문에 본진은 초식동물의 소굴처럼 나약했다.
‘적 본진을 순식간에 기습하다니.’
여령기는 그런 조비의 배짱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군을 지휘하여 스스로 적진에 뛰어든다.
적어도 조비는 아랫것들에게 명령만 내리고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빠지는 여느 귀족 자제와는 크게 달랐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적진에 뛰어든다.
누구보다도 위험한 자리에서 병사를 지휘했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겠네.’
조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원소가 이끄는 군단만 하더라도 십만 대군이다.
그 십만 대군이 백마와 연진으로 출진하였다고는 하나, 본진을 지키고 있는 원소군 병력도 상당했다. 적어도 업성 인근을 불태운 8천 병력 따위는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는 병력일 것이다.
적에게 언제 포위를 당할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원소군이 지리멸렬하게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태세를 정비하고 반격을 개시한다면 조비로선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주공, 기습은 대성공입니다.”
서서가 말했다.
위군의 여러 고을들을 모두 불태웠다.
서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이런 방식을 택하는 게 옳은가 따졌지만, 백성들을 살육하지 않겠다는 조비의 결단을 듣고서 이 작전에 동의했다.
적어도 백성들을 무참히 살해하진 않는구나.
서서는 조비에게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비의 결단이 인정이나 감정 따위에서 우러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업성은 물론 위군까지 손에 넣게 된다.
일방적인 살육은 반발을 낳는다. 조비는 언젠가 위군 백성들이 자신의 소유물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물러서야 할 것 같습니다.”
“원소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후방 병력을 모두 동원할 게 뻔합니다.”
“적진에 포위당하면 퇴각로가 사라지고 맙니다.”
팔건장들의 말에 조비는 모든 군사들을 물릴 것을 명령하였다.
적진에 고립되는 것.
그게 바로 조비가 가장 우려하는 바였다.
유주를 지키는 병력이 업성을 지키기 위해 내려오거나, 관도로 간 원소군의 일부가 회군하여 돌아온다면 여기가 바로 조비의 무덤이 될 수도 있었다.
“하내군으로 퇴각한다.”
조비가 명령을 내렸다.
* * *
청주자사 원담은 아비 원소에게서 청주로 돌아가라는 축객령을 받았지만, 아직 업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업성 인근이 조조군의 기습을 받고 있다는 말에 성벽 위로 올라가 전황을 살폈는데, 과연 그 말대로 논밭이 모두 불타면서 지독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신평이 말했다.
“이건 기회입니다, 주군!”
“그게 무슨 말이오.”
원담은 신평의 말에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그러자 신평은 도리어 화색을 드러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업성을 공격한 조조군을 격퇴한다면 원소 님에게서 다시 총애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백마와 연진으로 출진하신 원소 님으로선 분명 업성을 공격당했다는 보고를 들으면 회군을 고민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젯거리를 주군께서 해결하신다면 필시 안도와 고마움을 느끼실 겁니다.”
업성을 출격하여 무뢰배들을 직접 처단한다.
적을 쓰러트리고 원소의 총애를 다시 얻어낸다.
그 간드러지는 말에 원담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아군 본진을 공격한 적을 내쫓는다?
과연 그 공헌은 전쟁에 출진한 안량과 문추에 비견될 정도의 무게를 가질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안량과 문추보다도 더한 공헌을 세운 일등 공신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아졌다.
특히 아비의 총애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중치, 과연 혜안이 놀랍소. 어서 군대를 편성하도록 하시오! 내 당장 적장의 목을 쳐버리겠소!”
업성을 다스리는 지방관은 명실상부 기주자사 원상이다.
원소는 친정을 나서기 전, 후계자로 지목한 원상에게 업성을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물론 원소는 적이 업성을 공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다. 아직 원상은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었다. 적이 쳐들어올 줄 알았다면 절대로 애지중지하는 아들에게 업성을 다스리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원담은 원상이 아직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으니, 응당 업성 수비군을 자신이 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원소의 아들이다.
아직 원상이 어리고 원희는 병약하니, 맏이인 내가 나서는 건 당연하다.
그 주장에 원상이 할 말을 잃었다.
“병권을 내게 모두 내놓거라! 지금 대응이 시급한 이 때, 절차를 따질 순 없는 일이다. 내 당장 저것들을 요절내어 백성들의 재산을 불태운 보복을 하겠다.”
“형님께 군사권을 넘기란 말입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원담의 명령에 원상이 극렬하게 반발했다.
이미 후계자 자리에서 쫓겨난 주제에, 이제 와서 자리를 탐내고 있으니 후계자 원상으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담의 속내를 모를 원상이 아니다. 어리지만 총명하고 사리에 밝았다. 그래서 원담이 뭘 꾸미는지도 알고 있었고, 그 시커먼 속내를 가만히 둘 순 없었다.
원상이 원담을 비난하며 군사권을 내놓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원담을 막을 순 없었다.
“네 허락은 필요 없다.”
업성을 지키던 여광과 여상 형제가 이미 원담에게 붙었다.
군사 경험이 없는 원상과는 달리, 원담은 공손찬 토벌전에 참전하고 청주를 평정하는 등의 여러 공헌을 세운 바가 있다. 그렇기에 업성의 군부가 원담을 지지한 것도 당연했다. 어린 후계자보다야 유능한 장수를 우두머리로 세워 적의 급습에 대비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곽조와 공손독 등의 장수들도 모두 원담에게 합류하였으므로, 기주자사라는 명목 좋은 벼슬을 가진 원상은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 일은 당장 공에게 보고할 것이다!”
원담에게 넘어간 장수들을 보며 원상의 친모였던 유부인이 크게 격노했다.
업성 장수들이 아들 원상을 버리고 비천한 원담 따위를 택했다.
물론 장수들로선 본진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후계자 자리를 무조건 아들 원상이 받아야 한다고 여긴 유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후계자 자리를 위협하는 반란으로 보였다.
“아녀자가 전쟁에 대해 뭘 안단 말입니까? 원상이나 끌어안으면서 제가 승전보를 가져오길 기다리기나 하십시오.”
그런 유부인을 원담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부인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지아비의 총애를 이용해서 원상을 후계자로 임명하였고, 기존의 후계자였던 자신은 청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과거의 원한을 잊은 건 아니다. 원담은 바깥의 조조군과 싸워 이겨서 이 모자에게 복수를 하리라 다짐했다.
“주군, 바깥에서 적병을 이끄는 자가 조비라 하옵니다.”
“조비? 조조의 아들놈이 아니더냐!”
오호라. 내가 드디어 적수를 만난 모양이구나!
원담이 크게 기뻐했다.
조조군과 원소군의 후계자가 전쟁에서 만났다.
원담은 이 사실을 업성 백성들에게 크게 알리도록 하였다. 특히 ‘후계자들의 전쟁’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원담은 자신이 원소군의 후계자임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도록 한 것이다.
“이번 전투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게 내린 기회가 아니더냐?”
“그렇사옵니다. 주공.”
신평과 신비 형제가 과연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조비를 쓰러트린다면 조조군의 후계자보다 우월하다는 점이 증명된다.
당연히 원소도 원담을 다시 볼 게 분명했고, 업성 백성들에게도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원소군 내부에서 원담은 이미 쫓겨난 신분이었는데, 만약 업성에서 승전보를 보내온다면 분명 장수들에게도 신임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조비라! 그놈이 내 면목을 세워주려고 잘도 찾아왔구나!”
원담은 후계자 시절부터 조비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언젠가 맞붙게 되리라 여겼다.
천하를 둘로 나눌 순 없으니, 필시 조조군과 전쟁을 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중원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조비를 쓰러트리고 그 영광을 거머쥔다면, 후계자에 다시 내정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렇게 되면 견희도 차지할 수 있겠지.’
원담은 동생 원희의 아내에게 흑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북제일미라 불리는 미녀를 품고 싶은 마음은 남정네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희는 병약하여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고, 업성에 견희를 두고 유주로 떠나버렸으므로 사실상 별거중이나 다름없었다.
원소의 뒤를 이어 하북의 군주가 된다면 하북의 계집들이야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취할 수 있다. 동생의 아내라고 해서 못할 건 없었다.
“원담 님, 병력들이 출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위군은 물론 변란을 들은 발해군(勃海郡)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이걸로 적병들보다 훨씬 병력이 앞섭니다.”
업성에 주둔한 장수들이 대부분 원담에게 합류했다.
원상에게 끝까지 붙은 장수도 있었지만, 이미 주력군들이 모두 원담을 지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떨거지들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원담은 이번 전쟁에 반드시 승리하겠노라 다짐했다.
병력도 훨씬 많을뿐더러, 위군과 발해군이 모두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었으니 절대로 패배할 리가 없었다.
설령 업성 인근의 논밭이 모두 불탄다고 한들,
원소는 전쟁 이전부터 이미 창고에 군량을 가득 저장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전황에 직접적인 피해가 가해지진 않을 것이다.
이건 심리전이다.
원소군 본대는 언제든지 본진 업성이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알게 되었다.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여긴 업성이 급습을 받았다는 시점에서 이미 견고함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었다.
“위군(魏郡)은 무엇보다 원소의 본진입니다. 기주목 한복으로부터 위군을 빼앗은 이후, 원소는 업성을 수도로 하여 위군 또한 중심지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런 위군을 초토화시킨다.
가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원소가 하북의 패자가 되는데 발판이 된 원소군의 성역.
그 위군이 지금 불바다가 되어 있다.
영글었던 벼는 잿더미가 되었고, 조비군은 가을에 수확을 기다리던 농부의 희망을 짓밟았다.
업성의 백성들은 그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소규모 병단들이 적의 기습을 막아내기 위해 출진하였으나, 도리어 참패를 당해버리고 말았다.
8천에 달하는 군세는 원소군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군이다.
원소는 업성 주변에도 병력들을 배치시켜 두었지만, 그들이 서둘러 합류하지 못한 까닭에 조비에게 각개격파당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적의 움직임을 보건대, 아군이 공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기병대로 하여금 주변을 휘젓고 온 장료가 말했다.
병사들이 오합지졸이다.
본진을 지키는 병력들은 예비대로 편성된 부대였고, 정예병들은 모두 전쟁에 나섰기 때문에 본진은 초식동물의 소굴처럼 나약했다.
‘적 본진을 순식간에 기습하다니.’
여령기는 그런 조비의 배짱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군을 지휘하여 스스로 적진에 뛰어든다.
적어도 조비는 아랫것들에게 명령만 내리고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빠지는 여느 귀족 자제와는 크게 달랐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적진에 뛰어든다.
누구보다도 위험한 자리에서 병사를 지휘했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겠네.’
조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원소가 이끄는 군단만 하더라도 십만 대군이다.
그 십만 대군이 백마와 연진으로 출진하였다고는 하나, 본진을 지키고 있는 원소군 병력도 상당했다. 적어도 업성 인근을 불태운 8천 병력 따위는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는 병력일 것이다.
적에게 언제 포위를 당할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원소군이 지리멸렬하게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태세를 정비하고 반격을 개시한다면 조비로선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주공, 기습은 대성공입니다.”
서서가 말했다.
위군의 여러 고을들을 모두 불태웠다.
서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이런 방식을 택하는 게 옳은가 따졌지만, 백성들을 살육하지 않겠다는 조비의 결단을 듣고서 이 작전에 동의했다.
적어도 백성들을 무참히 살해하진 않는구나.
서서는 조비에게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비의 결단이 인정이나 감정 따위에서 우러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업성은 물론 위군까지 손에 넣게 된다.
일방적인 살육은 반발을 낳는다. 조비는 언젠가 위군 백성들이 자신의 소유물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물러서야 할 것 같습니다.”
“원소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후방 병력을 모두 동원할 게 뻔합니다.”
“적진에 포위당하면 퇴각로가 사라지고 맙니다.”
팔건장들의 말에 조비는 모든 군사들을 물릴 것을 명령하였다.
적진에 고립되는 것.
그게 바로 조비가 가장 우려하는 바였다.
유주를 지키는 병력이 업성을 지키기 위해 내려오거나, 관도로 간 원소군의 일부가 회군하여 돌아온다면 여기가 바로 조비의 무덤이 될 수도 있었다.
“하내군으로 퇴각한다.”
조비가 명령을 내렸다.
* * *
청주자사 원담은 아비 원소에게서 청주로 돌아가라는 축객령을 받았지만, 아직 업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업성 인근이 조조군의 기습을 받고 있다는 말에 성벽 위로 올라가 전황을 살폈는데, 과연 그 말대로 논밭이 모두 불타면서 지독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신평이 말했다.
“이건 기회입니다, 주군!”
“그게 무슨 말이오.”
원담은 신평의 말에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그러자 신평은 도리어 화색을 드러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업성을 공격한 조조군을 격퇴한다면 원소 님에게서 다시 총애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백마와 연진으로 출진하신 원소 님으로선 분명 업성을 공격당했다는 보고를 들으면 회군을 고민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젯거리를 주군께서 해결하신다면 필시 안도와 고마움을 느끼실 겁니다.”
업성을 출격하여 무뢰배들을 직접 처단한다.
적을 쓰러트리고 원소의 총애를 다시 얻어낸다.
그 간드러지는 말에 원담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아군 본진을 공격한 적을 내쫓는다?
과연 그 공헌은 전쟁에 출진한 안량과 문추에 비견될 정도의 무게를 가질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안량과 문추보다도 더한 공헌을 세운 일등 공신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아졌다.
특히 아비의 총애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중치, 과연 혜안이 놀랍소. 어서 군대를 편성하도록 하시오! 내 당장 적장의 목을 쳐버리겠소!”
업성을 다스리는 지방관은 명실상부 기주자사 원상이다.
원소는 친정을 나서기 전, 후계자로 지목한 원상에게 업성을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물론 원소는 적이 업성을 공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다. 아직 원상은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었다. 적이 쳐들어올 줄 알았다면 절대로 애지중지하는 아들에게 업성을 다스리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원담은 원상이 아직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으니, 응당 업성 수비군을 자신이 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원소의 아들이다.
아직 원상이 어리고 원희는 병약하니, 맏이인 내가 나서는 건 당연하다.
그 주장에 원상이 할 말을 잃었다.
“병권을 내게 모두 내놓거라! 지금 대응이 시급한 이 때, 절차를 따질 순 없는 일이다. 내 당장 저것들을 요절내어 백성들의 재산을 불태운 보복을 하겠다.”
“형님께 군사권을 넘기란 말입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원담의 명령에 원상이 극렬하게 반발했다.
이미 후계자 자리에서 쫓겨난 주제에, 이제 와서 자리를 탐내고 있으니 후계자 원상으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담의 속내를 모를 원상이 아니다. 어리지만 총명하고 사리에 밝았다. 그래서 원담이 뭘 꾸미는지도 알고 있었고, 그 시커먼 속내를 가만히 둘 순 없었다.
원상이 원담을 비난하며 군사권을 내놓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원담을 막을 순 없었다.
“네 허락은 필요 없다.”
업성을 지키던 여광과 여상 형제가 이미 원담에게 붙었다.
군사 경험이 없는 원상과는 달리, 원담은 공손찬 토벌전에 참전하고 청주를 평정하는 등의 여러 공헌을 세운 바가 있다. 그렇기에 업성의 군부가 원담을 지지한 것도 당연했다. 어린 후계자보다야 유능한 장수를 우두머리로 세워 적의 급습에 대비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곽조와 공손독 등의 장수들도 모두 원담에게 합류하였으므로, 기주자사라는 명목 좋은 벼슬을 가진 원상은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 일은 당장 공에게 보고할 것이다!”
원담에게 넘어간 장수들을 보며 원상의 친모였던 유부인이 크게 격노했다.
업성 장수들이 아들 원상을 버리고 비천한 원담 따위를 택했다.
물론 장수들로선 본진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후계자 자리를 무조건 아들 원상이 받아야 한다고 여긴 유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후계자 자리를 위협하는 반란으로 보였다.
“아녀자가 전쟁에 대해 뭘 안단 말입니까? 원상이나 끌어안으면서 제가 승전보를 가져오길 기다리기나 하십시오.”
그런 유부인을 원담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부인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지아비의 총애를 이용해서 원상을 후계자로 임명하였고, 기존의 후계자였던 자신은 청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과거의 원한을 잊은 건 아니다. 원담은 바깥의 조조군과 싸워 이겨서 이 모자에게 복수를 하리라 다짐했다.
“주군, 바깥에서 적병을 이끄는 자가 조비라 하옵니다.”
“조비? 조조의 아들놈이 아니더냐!”
오호라. 내가 드디어 적수를 만난 모양이구나!
원담이 크게 기뻐했다.
조조군과 원소군의 후계자가 전쟁에서 만났다.
원담은 이 사실을 업성 백성들에게 크게 알리도록 하였다. 특히 ‘후계자들의 전쟁’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원담은 자신이 원소군의 후계자임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도록 한 것이다.
“이번 전투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게 내린 기회가 아니더냐?”
“그렇사옵니다. 주공.”
신평과 신비 형제가 과연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조비를 쓰러트린다면 조조군의 후계자보다 우월하다는 점이 증명된다.
당연히 원소도 원담을 다시 볼 게 분명했고, 업성 백성들에게도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원소군 내부에서 원담은 이미 쫓겨난 신분이었는데, 만약 업성에서 승전보를 보내온다면 분명 장수들에게도 신임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조비라! 그놈이 내 면목을 세워주려고 잘도 찾아왔구나!”
원담은 후계자 시절부터 조비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언젠가 맞붙게 되리라 여겼다.
천하를 둘로 나눌 순 없으니, 필시 조조군과 전쟁을 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중원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조비를 쓰러트리고 그 영광을 거머쥔다면, 후계자에 다시 내정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렇게 되면 견희도 차지할 수 있겠지.’
원담은 동생 원희의 아내에게 흑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북제일미라 불리는 미녀를 품고 싶은 마음은 남정네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희는 병약하여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고, 업성에 견희를 두고 유주로 떠나버렸으므로 사실상 별거중이나 다름없었다.
원소의 뒤를 이어 하북의 군주가 된다면 하북의 계집들이야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취할 수 있다. 동생의 아내라고 해서 못할 건 없었다.
“원담 님, 병력들이 출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위군은 물론 변란을 들은 발해군(勃海郡)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이걸로 적병들보다 훨씬 병력이 앞섭니다.”
업성에 주둔한 장수들이 대부분 원담에게 합류했다.
원상에게 끝까지 붙은 장수도 있었지만, 이미 주력군들이 모두 원담을 지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떨거지들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원담은 이번 전쟁에 반드시 승리하겠노라 다짐했다.
병력도 훨씬 많을뿐더러, 위군과 발해군이 모두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었으니 절대로 패배할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