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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이기기 위한 조건 (1)
국경선에서 주둔만 하고 있을 뿐이었던 원소군이 드디어 움직였다.
복양성을 점령한 안량과 문추가 출격.
그와 함께 원소가 이끄는 본대가 업성을 출발하여 남진을 시작하였다.
십만 대군이 움직인다.
만약 원소군의 진군을 본 사람이라면 그 어마어마한 웅장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모두 빛나는 병장기로 무장하였으며, 각 부대들 간에 치중이 부족하거나 떨어지는 병단이 없었다. 마치 완벽을 추구하는 원소의 성격을 반영한 듯이 정병(精兵)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진격! 진격!”
“우리 손으로 하남을 떨어트리자!”
깃발을 높게 들고 북을 치며 진군을 알렸다.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자, 그 모습을 보던 백성들이 하북의 승리가 될 것이라며 떠들기에 바빴다.
총사령관 원소는 직접 백마를 탄 채로 군사들의 으뜸이 되었으며, 갑옷을 입지 않고 가벼운 정장만을 입고 있었다.
승자로서의 오만.
원소는 스스로를 천하의 패자라 자칭하였다.
그러면서도 심배와 봉기를 곁에 두면서 항상 모든 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니, 그런 원소를 이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한 바가 없었다.
반동탁 연합군이 해체된 이후, 원소는 하북을 통일하기 위해서 여러 전투를 일으켰지만 패배를 경험한 적 없는 불패의 지휘관이었다.
“우선 복양성을 지휘부로 두고, 안량과 문추에게 명령하여 백마와 연진을 떨어트린다.”
원소는 조조로부터 빼앗은 복양성을 선택했다.
복양성에 주둔하면 백마와 연진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심배는 지휘부를 너무 전면에 세웠음을 지적하였지만, 원소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열심히 싸우는데 혼자서 뒤로 내뺄 순 없다며 복양성 주둔을 고집했다.
“이 원본초. 비록 갑옷을 입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병사들을 사지에 내몰고서 스스로의 목숨을 아낀 적은 없다!”
하북의 명장 장합과 고람이 언제나 원소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호랑이 같은 안량과 문추가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전면으로 나섰으니, 복양성에 주둔한다고 해서 조조군의 공격을 받을 리가 없었다. 전면에 지휘부를 두었으되 본인의 안전에도 경계를 아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총사령관이 목숨을 잃는 순간,
그 전쟁은 잇따른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패배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 배치도는 완벽하다.
전술에 조예가 깊은 심배가 구성한 배치였는데, 물 흐를 틈이 없이 완벽하여 조조군의 모사들을 놀라게 하였을 정도였다.
“맹덕과의 전쟁이다. 분명 맹덕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나의 숨통을 조일 터. 그렇다면 내가 먼저 맹덕의 숨통을 조여야겠다!”
안량을 대장으로 뽑고, 곽도와 순우경을 부장으로 삼은 뒤에 백마성의 공격을 명령하였다.
저수는 안량이 무모하고 저돌적인 성질이라 차라리 순우경을 대장으로 삼으라 하였으나 묵살 당했다. 애초에 이 전쟁을 반대한 저수였기에 원소는 그가 전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랑이 같은 안량이 백마성을 먹어치울 것이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비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안량을 원소는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주군의 명령을 받들어, 당장에 백마성을 함락시켜 보이겠나이다!”
* * *
한편 안량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백마성에서는 아무런 혼란도 없었다.
오히려 병사들끼리 서로 정비하면서 적병을 기다릴 뿐, 안량이 하북 최고의 맹장이라는 소문을 들었을 터인데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군태수 유연.
유연이 전쟁에 참전한 기록은 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능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연은 과거 동군태수였던 조조가 직접 임명한 후임자다.
문무에 뛰어나고, 특히 병사들을 조련하는데 특출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백마성에 주둔한 병사들은 모두 동군 출신이었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조조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사병(士兵)이었다.
“쏴라!”
황하를 일제히 건너기 시작한 안량군을 향해서 화살들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하지만 피해는 매우 경미하다.
백마성에는 충분한 병력이 주둔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아직 조조군의 본대는 관도성에 있을 뿐 백마와 연진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전령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제때 올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유연은 그 무서운 안량을 소수의 병력으로만 막아야 하는 처지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승상을 위하여!”
유연이 직접 검을 휘두르며 성벽 위를 기어오르던 적병을 베어 죽였다.
한편 안량은 말을 타고 직접 백마성 주변을 돌며 병사들에게 용전을 촉구했다.
안량의 외침을 들은 병사들은 서둘러 성벽을 오르기 시작하였으며, 순우경이 이끄는 부대들 또한 충차를 이용해서 성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안량과 순우경은 모두 전투에 이골이 난 장수였다.
특히 순우경은 과거 조조, 원소와 함께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에 임명되었을 정도로 군사에 몸을 담은 경력이 길었다.
군략이 뛰어나며 물러섬이 없다.
저돌적인 안량을 대신하여 군사들을 이끌었는데, 그 용병술이 뛰어나 백마성을 향한 공성이 매우 매서웠다.
“조조의 본대가 어디까지 왔다고 하더냐?”
순우경이 전령을 통해 적 본대의 위치를 물었다.
그 말에 다급히 달려온 전령이 보고했다.
“적 본대가 백마 공격을 알아채고서 급히 달려오는 중이나, 이제 진류군(陳留郡)을 갓 넘었습니다.”
“갑자기 들이치리라고는 조맹덕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구나.”
순우경은 조조가 제음군(濟陰郡)까지는 도달하였으리라 여겼지만, 예상외로 조조가 굼뜬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여겼다.
이제 겨우 진류군을 넘었다니.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진 조조답지 않은 일이다.
여러 번 전령을 통해서 살폈다.
조조의 본대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할 것이니, 전령들의 정보가 틀릴 일은 없다.
순우경은 조조의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백마성을 깨트리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무식하고 배운 것 없는 안량을 대장으로 모시는 것은 못 미더운 일이었지만, 안량은 자신의 주제는 알아서 군사권을 모두 순우경에게 넘겼다. 덕분에 순우경은 백마성을 함락시키면 모든 공헌을 자기가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예상대로 쉽게 끝나진 않겠습니다.”
곽도가 말했다.
안량이 직접 분전하고 있음에도 백마성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백마성 수비대가 반격을 시작했다.
간혹 성문이 열리면서 기병대가 출몰하여 충차부대들을 괴롭혔고, 공병대들이 겁을 먹으면서 잠시 공성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 지지부진한 성과에 약이 올랐는지 순우경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후방부대까지 모두 불러 세워라. 모두 공세로 전환하여 백마성을 함락시켜야 한다!”
이 전투는 분명 원소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리라.
하무와 왕마 같은 머저리들이 망쳐놨던 전황을 회복시키기 위한 중요한 전투였다.
원소라면 직접 복양성에서 백마성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구경하길 원할 것이다.
병력만 해도 1만이 넘는다.
그런 대병력이 겨우 백마성 같은 좀스러운 움막 하나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치욕으로 남을 일이다. 설령 함락에 성공한다고 한들, 시일이 차일피일 늦어지면 원소의 진노를 감당해야 될 지도 모른다.
“안량 장군, 왜 이렇게 늦어지는 것이오?”
“적의 공세가 워낙 거세어 아군들이 겁을 먹었소이다. 하지만 이 안량이 무조건 백마를 함락시킬 것이니, 순우경 장군은 안심해도 좋소.”
내일 아침 해가 밝아오기 전까지는 함락시켜 보이겠소이다.
안량의 호기로운 말에 순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1만에 달하는 대군.
거기다가 군사를 이끄는 선봉장은 안량이다. 곽도도 병사를 직접 지휘하여 몰아치고 있었으니, 안량의 말대로 백마성은 내일을 맞이하지 못하고 함락될 게 분명했다.
* * *
“출진을 시작한다.”
안량군이 백마성을 공격.
원소군 본대가 업성을 출격하여 복양성에 주둔하였다.
잇따른 소식들을 전령으로부터 들은 조비가 드디어 움직였다.
사예주(司隸州) 하내군(河內郡)에 주둔한 채로 병력을 모으고 있던 조비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라서 8천에 달하는 병력들이 쏜살같이 내달렸다.
오로지 원소의 본대가 업성을 비우길 기다렸다.
원소군 무장들의 관심은 백마와 연진, 그리고 조조군의 본대가 있는 위치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을 터.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히 움직여라!”
“백마성이 함락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
팔건장들은 이 거대한 전쟁에서 자신들이 핵심역할이라 굳게 믿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출세를 거듭하겠다.
그를 위해선 어느 무장들보다도 높은 공헌을 쌓아야 하고, 어느 무장들보다도 많은 적의 수급을 얻어야 한다.
조비의 휘하 장수들은 모시는 주군만큼이나 자신감에 가득 찬 상태였다.
마치 미래를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조비의 의도대로 적병의 시선이 모두 남쪽을 향해서만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본인의 고향이 노려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하내군에서 시작된 출진.
사예주에 포함된 도시였지만 원소의 본거지인 기주(冀州)와 매우 가깝다.
따라서 기병대에 치중을 둔 조비군은 빠르게 국경선을 넘어서 업성 인근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사예주에 관심을 가지는 자가 없었다.
동탁과 이각에 의해 폐허가 된 후, 원소는 사예주에 대해선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렸는데 그를 역이용해서 사예주를 진격 노선으로 선택했다.
사예주 인근 도시와 고을들에 병력을 분산.
신호를 내리자마자 팔건장의 지휘 하에 병력들이 다시 합류하면서 대군을 형성.
분산과 합류를 번갈아 행하면서 적의 이목을 완전히 속였다.
“기주의 모든 논밭을 짓밟아라!”
“보이는 고을들마다 속속히 무너뜨려라!”
“불을 질러 우리들의 존재를 원소에게 보여주자!”
기주 최대의 곡창지대에 불을 지르고 논밭을 말발굽으로 짓밟는다.
가을에 수확을 기다리는 농민들로서는 최악의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불을 지르면서 최대한 과격한 움직임을 보였고, 작렬하는 화염과 병사들의 거친 함성소리가 업성까지 느껴지도록 유도했다.
* * *
“아가씨!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인이 부리나케 달려오며 견희에게 적군의 급습을 알렸다.
지금 업성 백성들 중, 조조군의 공격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성벽 너머에서는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불길이 치솟고 있었으며, 업성 백성들이 봄에 최선을 다해서 일군 논밭들이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있었다.
백성들이 우는 소리를 냈다.
크게 한탄하면서 조조군의 악랄함을 저주했다.
“아군이 분명 조조군을 공격하려고 백마와 연진으로 향했을 텐데요!”
견희가 직접 발걸음을 움직이며 성벽 위로 향했다.
그녀의 진입을 가로막으려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하인이 그녀의 신분을 나서서 밝히자 병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제아무리 병사들이라고 해도 원소의 며느리를 감히 막아설 수 없었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견희가 침음을 삼켰다.
성벽 위에서 본 논밭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어 있었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화염이 번진 상태였다.
이미 업성의 창고에는 대군을 먹일 군량들이 풍부하였지만, 업성 백성들은 당장에 자기가 먹을 곡식들이 모두 불타고 있다면서 울고 불며 소리쳤다. 봄에 힘겹게 기른 곡식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으니, 이를 눈물 흘리지 않으며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지독한 짓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이 지독한 인간 같으니!
이 잔인한 광경을, 이 처참한 지옥을 업성 백성들에게 보여준 자를 저주했다.
국경선에서 주둔만 하고 있을 뿐이었던 원소군이 드디어 움직였다.
복양성을 점령한 안량과 문추가 출격.
그와 함께 원소가 이끄는 본대가 업성을 출발하여 남진을 시작하였다.
십만 대군이 움직인다.
만약 원소군의 진군을 본 사람이라면 그 어마어마한 웅장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모두 빛나는 병장기로 무장하였으며, 각 부대들 간에 치중이 부족하거나 떨어지는 병단이 없었다. 마치 완벽을 추구하는 원소의 성격을 반영한 듯이 정병(精兵)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진격! 진격!”
“우리 손으로 하남을 떨어트리자!”
깃발을 높게 들고 북을 치며 진군을 알렸다.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자, 그 모습을 보던 백성들이 하북의 승리가 될 것이라며 떠들기에 바빴다.
총사령관 원소는 직접 백마를 탄 채로 군사들의 으뜸이 되었으며, 갑옷을 입지 않고 가벼운 정장만을 입고 있었다.
승자로서의 오만.
원소는 스스로를 천하의 패자라 자칭하였다.
그러면서도 심배와 봉기를 곁에 두면서 항상 모든 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니, 그런 원소를 이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한 바가 없었다.
반동탁 연합군이 해체된 이후, 원소는 하북을 통일하기 위해서 여러 전투를 일으켰지만 패배를 경험한 적 없는 불패의 지휘관이었다.
“우선 복양성을 지휘부로 두고, 안량과 문추에게 명령하여 백마와 연진을 떨어트린다.”
원소는 조조로부터 빼앗은 복양성을 선택했다.
복양성에 주둔하면 백마와 연진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심배는 지휘부를 너무 전면에 세웠음을 지적하였지만, 원소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열심히 싸우는데 혼자서 뒤로 내뺄 순 없다며 복양성 주둔을 고집했다.
“이 원본초. 비록 갑옷을 입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병사들을 사지에 내몰고서 스스로의 목숨을 아낀 적은 없다!”
하북의 명장 장합과 고람이 언제나 원소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호랑이 같은 안량과 문추가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전면으로 나섰으니, 복양성에 주둔한다고 해서 조조군의 공격을 받을 리가 없었다. 전면에 지휘부를 두었으되 본인의 안전에도 경계를 아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총사령관이 목숨을 잃는 순간,
그 전쟁은 잇따른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패배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 배치도는 완벽하다.
전술에 조예가 깊은 심배가 구성한 배치였는데, 물 흐를 틈이 없이 완벽하여 조조군의 모사들을 놀라게 하였을 정도였다.
“맹덕과의 전쟁이다. 분명 맹덕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나의 숨통을 조일 터. 그렇다면 내가 먼저 맹덕의 숨통을 조여야겠다!”
안량을 대장으로 뽑고, 곽도와 순우경을 부장으로 삼은 뒤에 백마성의 공격을 명령하였다.
저수는 안량이 무모하고 저돌적인 성질이라 차라리 순우경을 대장으로 삼으라 하였으나 묵살 당했다. 애초에 이 전쟁을 반대한 저수였기에 원소는 그가 전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랑이 같은 안량이 백마성을 먹어치울 것이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비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안량을 원소는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주군의 명령을 받들어, 당장에 백마성을 함락시켜 보이겠나이다!”
* * *
한편 안량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백마성에서는 아무런 혼란도 없었다.
오히려 병사들끼리 서로 정비하면서 적병을 기다릴 뿐, 안량이 하북 최고의 맹장이라는 소문을 들었을 터인데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군태수 유연.
유연이 전쟁에 참전한 기록은 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능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연은 과거 동군태수였던 조조가 직접 임명한 후임자다.
문무에 뛰어나고, 특히 병사들을 조련하는데 특출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백마성에 주둔한 병사들은 모두 동군 출신이었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조조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사병(士兵)이었다.
“쏴라!”
황하를 일제히 건너기 시작한 안량군을 향해서 화살들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하지만 피해는 매우 경미하다.
백마성에는 충분한 병력이 주둔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아직 조조군의 본대는 관도성에 있을 뿐 백마와 연진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전령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제때 올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유연은 그 무서운 안량을 소수의 병력으로만 막아야 하는 처지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승상을 위하여!”
유연이 직접 검을 휘두르며 성벽 위를 기어오르던 적병을 베어 죽였다.
한편 안량은 말을 타고 직접 백마성 주변을 돌며 병사들에게 용전을 촉구했다.
안량의 외침을 들은 병사들은 서둘러 성벽을 오르기 시작하였으며, 순우경이 이끄는 부대들 또한 충차를 이용해서 성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안량과 순우경은 모두 전투에 이골이 난 장수였다.
특히 순우경은 과거 조조, 원소와 함께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에 임명되었을 정도로 군사에 몸을 담은 경력이 길었다.
군략이 뛰어나며 물러섬이 없다.
저돌적인 안량을 대신하여 군사들을 이끌었는데, 그 용병술이 뛰어나 백마성을 향한 공성이 매우 매서웠다.
“조조의 본대가 어디까지 왔다고 하더냐?”
순우경이 전령을 통해 적 본대의 위치를 물었다.
그 말에 다급히 달려온 전령이 보고했다.
“적 본대가 백마 공격을 알아채고서 급히 달려오는 중이나, 이제 진류군(陳留郡)을 갓 넘었습니다.”
“갑자기 들이치리라고는 조맹덕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구나.”
순우경은 조조가 제음군(濟陰郡)까지는 도달하였으리라 여겼지만, 예상외로 조조가 굼뜬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여겼다.
이제 겨우 진류군을 넘었다니.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진 조조답지 않은 일이다.
여러 번 전령을 통해서 살폈다.
조조의 본대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할 것이니, 전령들의 정보가 틀릴 일은 없다.
순우경은 조조의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백마성을 깨트리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무식하고 배운 것 없는 안량을 대장으로 모시는 것은 못 미더운 일이었지만, 안량은 자신의 주제는 알아서 군사권을 모두 순우경에게 넘겼다. 덕분에 순우경은 백마성을 함락시키면 모든 공헌을 자기가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예상대로 쉽게 끝나진 않겠습니다.”
곽도가 말했다.
안량이 직접 분전하고 있음에도 백마성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백마성 수비대가 반격을 시작했다.
간혹 성문이 열리면서 기병대가 출몰하여 충차부대들을 괴롭혔고, 공병대들이 겁을 먹으면서 잠시 공성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 지지부진한 성과에 약이 올랐는지 순우경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후방부대까지 모두 불러 세워라. 모두 공세로 전환하여 백마성을 함락시켜야 한다!”
이 전투는 분명 원소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리라.
하무와 왕마 같은 머저리들이 망쳐놨던 전황을 회복시키기 위한 중요한 전투였다.
원소라면 직접 복양성에서 백마성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구경하길 원할 것이다.
병력만 해도 1만이 넘는다.
그런 대병력이 겨우 백마성 같은 좀스러운 움막 하나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치욕으로 남을 일이다. 설령 함락에 성공한다고 한들, 시일이 차일피일 늦어지면 원소의 진노를 감당해야 될 지도 모른다.
“안량 장군, 왜 이렇게 늦어지는 것이오?”
“적의 공세가 워낙 거세어 아군들이 겁을 먹었소이다. 하지만 이 안량이 무조건 백마를 함락시킬 것이니, 순우경 장군은 안심해도 좋소.”
내일 아침 해가 밝아오기 전까지는 함락시켜 보이겠소이다.
안량의 호기로운 말에 순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1만에 달하는 대군.
거기다가 군사를 이끄는 선봉장은 안량이다. 곽도도 병사를 직접 지휘하여 몰아치고 있었으니, 안량의 말대로 백마성은 내일을 맞이하지 못하고 함락될 게 분명했다.
* * *
“출진을 시작한다.”
안량군이 백마성을 공격.
원소군 본대가 업성을 출격하여 복양성에 주둔하였다.
잇따른 소식들을 전령으로부터 들은 조비가 드디어 움직였다.
사예주(司隸州) 하내군(河內郡)에 주둔한 채로 병력을 모으고 있던 조비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라서 8천에 달하는 병력들이 쏜살같이 내달렸다.
오로지 원소의 본대가 업성을 비우길 기다렸다.
원소군 무장들의 관심은 백마와 연진, 그리고 조조군의 본대가 있는 위치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을 터.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히 움직여라!”
“백마성이 함락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
팔건장들은 이 거대한 전쟁에서 자신들이 핵심역할이라 굳게 믿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출세를 거듭하겠다.
그를 위해선 어느 무장들보다도 높은 공헌을 쌓아야 하고, 어느 무장들보다도 많은 적의 수급을 얻어야 한다.
조비의 휘하 장수들은 모시는 주군만큼이나 자신감에 가득 찬 상태였다.
마치 미래를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조비의 의도대로 적병의 시선이 모두 남쪽을 향해서만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본인의 고향이 노려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하내군에서 시작된 출진.
사예주에 포함된 도시였지만 원소의 본거지인 기주(冀州)와 매우 가깝다.
따라서 기병대에 치중을 둔 조비군은 빠르게 국경선을 넘어서 업성 인근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사예주에 관심을 가지는 자가 없었다.
동탁과 이각에 의해 폐허가 된 후, 원소는 사예주에 대해선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렸는데 그를 역이용해서 사예주를 진격 노선으로 선택했다.
사예주 인근 도시와 고을들에 병력을 분산.
신호를 내리자마자 팔건장의 지휘 하에 병력들이 다시 합류하면서 대군을 형성.
분산과 합류를 번갈아 행하면서 적의 이목을 완전히 속였다.
“기주의 모든 논밭을 짓밟아라!”
“보이는 고을들마다 속속히 무너뜨려라!”
“불을 질러 우리들의 존재를 원소에게 보여주자!”
기주 최대의 곡창지대에 불을 지르고 논밭을 말발굽으로 짓밟는다.
가을에 수확을 기다리는 농민들로서는 최악의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불을 지르면서 최대한 과격한 움직임을 보였고, 작렬하는 화염과 병사들의 거친 함성소리가 업성까지 느껴지도록 유도했다.
* * *
“아가씨!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인이 부리나케 달려오며 견희에게 적군의 급습을 알렸다.
지금 업성 백성들 중, 조조군의 공격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성벽 너머에서는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불길이 치솟고 있었으며, 업성 백성들이 봄에 최선을 다해서 일군 논밭들이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있었다.
백성들이 우는 소리를 냈다.
크게 한탄하면서 조조군의 악랄함을 저주했다.
“아군이 분명 조조군을 공격하려고 백마와 연진으로 향했을 텐데요!”
견희가 직접 발걸음을 움직이며 성벽 위로 향했다.
그녀의 진입을 가로막으려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하인이 그녀의 신분을 나서서 밝히자 병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제아무리 병사들이라고 해도 원소의 며느리를 감히 막아설 수 없었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견희가 침음을 삼켰다.
성벽 위에서 본 논밭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어 있었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화염이 번진 상태였다.
이미 업성의 창고에는 대군을 먹일 군량들이 풍부하였지만, 업성 백성들은 당장에 자기가 먹을 곡식들이 모두 불타고 있다면서 울고 불며 소리쳤다. 봄에 힘겹게 기른 곡식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으니, 이를 눈물 흘리지 않으며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지독한 짓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이 지독한 인간 같으니!
이 잔인한 광경을, 이 처참한 지옥을 업성 백성들에게 보여준 자를 저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