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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관도에 부는 바람 (3)



연주 국경선에 이미 수많은 군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복양성을 빼앗긴 조조군은 황하(黃河)를 기점으로 원소군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게 바로 현 국경선에 포진된 조조군의 목표였다.
한편 원소군의 목적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거점을 확보함으로써 대군이 황하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황하를 중심으로 대치 상황이 길어지게 되면, 조조군이 병력을 추스르고 북쪽으로 반격을 걸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원소가 본대를 이끌고 업성을 출격하기 이전.
국경에 주둔하던 원소군 무장들 중 일부가 교만함을 이기지 못하고 출병을 시작했다.
“백마와 연진, 둘 중 한 곳이라도 점령하면 원소 님께 큰 상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오!”
“둘 중 하나라도 점령할 수 있다면야 관도성에 있는 조조의 본진이 훤히 보일 겁니다.”
하무와 왕마가 이끄는 7천 병력들이 움직였다.
중앙에 따로 보고도 없이 단독으로 행한 군사적 움직임이었는데, 단순히 고착상태를 이룰 뿐이었던 전황에 큰 변화를 주게 되었다. 아직 명령이 내려지지 않아 국경선의 다른 부대들은 나서지 않았는데, 하무와 왕마가 이끄는 군단만이 독단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저것들 왜 저러지?”
“아직 명령도 내려지지 않았는데 공격을 한다고?”
공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러면서도 다른 부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원소는 특히 자신의 명령 없이 움직이는 돌출행동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대군을 형성한 원소군들 중, 움직인 병력은 겨우 7천.
다른 장수들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전공에 눈이 멀어버린 하무와 왕마를 탓했다.
설령 그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어도 결국 인과응보인 셈이다. 전공에 눈이 먼 장수를 두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정도로 원소군 무장들은 착해빠지지 않았다.

반면 조조군 측에서는 응전이 없었다.
하무와 왕마는 자신들의 기습이 성공하리라 여겼다.
서둘러 황하를 건넌 다음, 침착하고 날렵하게 이동하면서 연진으로 나아갔다.
연진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조조군 진영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지만, 이상하리만큼 반응이 없었다.
그를 기이하게 여긴 하무가 정찰병을 보내려던 순간, 그들이 방금전까지 머무르고 있었던 아군 진영이 뜨거운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쳐라! 원소군이다!”
“강을 건넌 적들을 모조리 물귀신으로 만들어라!”
연진을 지키는 우금의 병력.
그리고 지원군으로 파견된 악진의 병력이 합류하면서 그 기세가 원소군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반면 원소군은 고작 7천 병력이 단독으로 움직인 데다가, 다른 부대는 모두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조조군에게 포위당한 병력들을 구원해줄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우금과 악진의 병력을 모두 합쳐서 병마 5천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습을 허용 당하게 된 원소군의 입장에서 볼 때는 보다 많은 대군이라 여겨졌다. 7천 병력을 용맹하게 공격하는 5천 병력. 기마대를 이끌던 악진이 적의 예봉을 완전히 꺾어버리면서 전황의 양상이 크게 기울었다.
“내가 바로 우금이다! 적장은 썩 나오거라!”
우금이 직접 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원소군 병사들이 그가 두려워 멀리 달아났다.
아군 진영이 불에 휩싸였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원소군은 사기를 잃었다.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부대가 있는 반면, 선두에서 강을 건너 연진 인근까지 도달한 원소군 부대는 괴멸 직전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후미부대는 악진의 기병대에게 공격을 당했고, 선두부대는 우금의 맹공에 맥을 못 췄다.
심지어 허리에 해당되는 중앙은 완전히 강을 건너지도 못하였으니 7천 병력이라는 장점을 전혀 못 살리게 되었다. 설령 적보다 병력이 많은들, 각 부대들마다 우왕좌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무 장군께서는 어디 계신가!”
“즉시 반격을! 반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부장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명령을 촉구했지만, 하무와 왕마는 적군이 어떻게 아군의 움직임을 눈치 챘냐며 허둥거리기에 바빴다.

원소가 일으킨 하북 정벌전에서도, 공손찬 토벌전에서도 활약하지 않은 일반 무장들이 노련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리가 없다. 호족 출신이라 단숨에 장군의 자리에 오른 낙하산 인사들에게 있어 지금의 이 상황은 꿈에서도 예견하지 못했던 최악의 결과였다.
아군 진영이 잿더미가 되었다.
아군의 비명으로 귀가 먹어버릴 것 같았고, 덜덜 떨리는 입은 명령은커녕 사람의 말조차 내뱉지 못했다.
“퇴각하라! 어서 퇴각을 알리는 북을 쳐!”
결국 부장들이 명령을 내리면서 퇴각을 선언하였다.
조금이라도 많은 병사들을 살려 보내고 싶으면 우선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7천에 달하는 병력이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순 없다. 이미 적병이 아군의 앞과 뒤를 잡고서 흔들어대고 있었으니, 지금으로선 반격해봤자 이길 도리가 없었다.
“이놈들아! 도망치게 둘 줄 알았더냐!”
우금이 이끄는 병력이 도리어 황하를 건너 북쪽 땅까지 추적을 개시하였다.
강을 건너기만 하면 적의 주력공격을 피할 수 있으리라 여긴 원소군에게 있어선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달려드는 우금이 귀신처럼 보였다.
원소군이 패주를 이어나갔다.
연진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는 서쪽으로 점점 규모가 넓어지면서 하내군(河內郡)에까지 도달하였다.
연주에서 시작된 전투가 사예주에까지 닿았다.
하무와 왕마는 도저히 추격의 끈을 놓치지 않는 우금과 악진의 용맹에 기가 질려서 항복을 선언했다. 결국 하무와 왕마를 비롯하여 20여 명에 달하는 원소군 무장들이 모두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관도대전의 첫 전투는 조조군의 압승.
조조에게 가장 기분 좋은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 * *


아직 개전 명령도 내리지 않았건만, 돌발적인 공격으로 아군을 움직였다가 결국 대패를 해버렸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 보고를 받은 원소로서는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공에 눈이 멀어서 공격을 감행. 하지만 도리어 조조군의 역습을 받아서 7천 병력이 모조리 참살당하거나 항복해버렸다는 소식에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였다.
“내가 우습게 보였단 말이냐!”
항복한 하무와 왕마의 식솔들은 모두 업성에 있었다.
아직 업성에서 출격하기 전이었던 원소는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그 식솔들을 모두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아직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이다.
아군 장수의 투항에 군대 전체를 동요하게 둘 순 없었다. 배신의 본보기를 보이고자 잔혹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고, 그 결과 하무와 왕마를 비롯하여 항복한 장수들의 가족이 모두 처형장에서 살해당했다.
“출진하기 전에 우선 아군을 다스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원소군 내부에서 2인자의 실권을 쥐고 있던 심배가 말했다.
심배를 견제하던 인물이 바로 전풍과 저수였는데, 전풍은 전쟁을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저수는 도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심배와 그 일파들이 빈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내부를 단속해야 한다.
첫 패전으로 아군이 혼란스러우니, 비록 조조보다 많은 대군이라고는 하나 사기적인 측면에서 우려스런 상황이다. 참군(參軍)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단속을 언급한 심배의 말에 원소는 과연 옳다면서 윤허했다.

“보고 드립니다! 아군의 군량이 수량과 맞지 않습니다.”
“보양관(補糧官)들의 말에 따르면 허유 선생이 빼돌렸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참군들이 적발한 것은 허유의 군사비리였다.
허유는 본디 탐욕스럽고 오만한 성격이었는데, 전쟁이 벌어지기 이전에도 전쟁물자들을 사사롭게 빼돌려서 이윤을 챙겨왔다. 명문가 출신이라 낙하산 인사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능력도 없으면서 항상 탐욕이 앞서 있었으므로 원소군 내부에서도 꽤나 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장수들은 놀랄 것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매번 비리를 저지르던 허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원소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원소는 오랜 친우이자, 명문가의 자손이었던 허유를 총애하고 있었기에 미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다, 다시 돌려놓겠습니다! 이 허유가 눈이 멀어 잠시 돌았나 봅니다!”
허유가 원소의 앞에 나아가 싹싹 빌면서 용서를 구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이다.
아군의 사기를 돋군다는 명분하에 목이 잘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비리의 대명사였던 허유를 보는 심배와 그 측근들의 모습이 곱지 않았다.
허유는 탐욕스런 소인배라 원소군 내부의 파벌들도 모두 경멸하고 있었는데, 특히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한 심배는 이번 기회에 허유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다.
배신자보다 위험한 것이 바로 허유 같은 간신배다.
매번 원소 옆에서 알랑방귀를 끼면서 온갖 사특한 말을 하였으니,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것이 옳았다.
“죽일 것까지야 있겠는가. 분명 허자원은 죽을죄를 지은 게 확실하지만, 그것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 갚으면 될 게 아니겠나.”
“죄는 죄입니다! 지금처럼 군율을 엄하게 정해야 할 때에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 죄를 상쇄해선 안 됩니다!”
그 말에 원소의 기분이 퍽 상했다.
사사로운 감정이라니? 내가 지금 허유를 사사로운 정만으로 감싸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끔찍이 아끼는 아들인 원상이 골골거리면서 병석에 누운 탓에 기분이 안 좋았는데, 심배의 말에 비위가 상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원소는 심배의 강력한 주청에도 불구하고 허유의 죄를 용서해버렸다.
허유는 원소군 창설에도 깊이 관여한 바가 있으며, 그 집안이 명문가라 수많은 도움을 주었으므로 과거의 전공을 참작해서 죄를 사하겠다는 이유였다.

‘이놈, 심배! 두고 보자!’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면서까지 원소의 발치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던 허유.
지금 그에겐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 이기겠다는 것보다도, 자신을 죽이려 한 심배에 대해서 강한 원한을 품었다.
명문가의 자식으로 곱게 자라서 조정관료까지 된 허유에게 있어, 시골 촌구석에서 현자 소리나 듣던 심배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고작 시골 촌놈에게 죽을 뻔했다는 것은 모욕으로 남았다.
‘이 원소군에는 나를 죽이려는 놈들이 너무 많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장수와 모사들의 눈빛.
그들 중 자신을 호의로 보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허유가 평소부터 남을 깔보고 하대하는 듯한 거만함에 질려버린 것이지만, 허유는 자신은 절대로 잘못한 게 없다고 여겼다. 군사비리도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이지, 그 행동에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허유는 그 원술조차도 혀를 차며 더러운 놈이라 욕을 내뱉었을 정도로 탐욕스런 자였으니, 그의 행동은 오히려 당연했다. 가장 큰 문제는 허유 같은 인간을 측근이랍시고 곁에 둔 원소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