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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관도에 부는 바람 (2)
안량과 문추가 이끄는 3만 병력이 복양성(濮陽城)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이 전령을 통해서 전해졌다.
이로써 훗날 관도대전(官渡大戰)이라 불리게 될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복양성이 함락되었다는 말은 곧 조조의 핵심 본거지인 연주로 향하는 길목이 열렸다는 말과 같았다.
복양성을 넘어 펼쳐지는 백마와 연진.
이 두 거점들까지도 적의 수중에 넘어가게 되는 순간, 조조군은 허도까지 밀리게 될 것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조는 백마와 연진을 최대한으로 수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복양성이 순식간에 함락되다니요!”
“원소군의 세력이 만만치가 않으니 걱정입니다!”
조정 관료들이 복양성 함락을 두고 큰 우려를 나타냈다.
조조로서는 복양성을 지키기 어려우니 병력을 일부러 백마와 연진으로 철수시킨 것이지만, 전술을 모르는 신료들에게 있어선 초전부터 원소군에게 패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복양성이 원소군의 본진인 업성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전략의 우위를 빼앗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아직 군세가 넉넉하고 장수들 또한 용맹하니, 믿고 맡기심이 옳습니다.”
순욱의 말에 신하들이 입을 다물었다.
비록 순욱은 조조의 측근이었지만, 동시에 황실에 충성하는 관료이기도 했다.
반란이 진압되고서 분위기가 흉흉한 지금, 조정 신하들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직 전황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복양성이 함락되었다고 한들, 주 전력은 아직 백마와 연진에 건재하였기 때문이다.
하후돈을 비롯한 여러 맹장들이 이미 북쪽으로 파견된 상태였고, 곽가와 정욱 등 수많은 모사들도 모두 백마와 연진으로 나아간 상태였다.
조인은 예주로, 장패는 서주로 향하면서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특히 예주와 서주는 반란이 걱정되는 곳이었는데, 장패는 서주 군벌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서주 백성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고 있었으므로 진규와 진등 부자와 함께 서주를 관리하게 되었다.
“아직 허도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낙양이 적의 손에 넘어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장안성이 함락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대신이라는 자들이 벌써부터 분란을 자초하는 건가.”
조조가 노기를 띤 채로 말하자, 대신들이 입을 꾹 다물고 뒤로 물러섰다.
조정에서 승상이 보이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거기장군 동승을 처형하고 그 일파들을 숙청하면서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으니, 지금으로선 유협을 따르는 자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조조는 모든 군사권을 쥐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전시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편제들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근위병단조차도 조조의 허락 없이는 사소한 이동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조정 신하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폐하, 어서 역적 원소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조조의 엄명을 이기지 못한 유협이 애써 붓을 들어 원소 토벌문을 작성하였다.
토벌문은 익주의 유장과 서량의 마등을 포함하여 각 군벌들에게 전해졌다.
물론 지방의 군벌들은 조조와 원소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터라 그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오히려 원소를 도왔으면 도왔지, 불리함이 명백한 조조를 도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억제력은 발휘할 수 있었다.
조조군은 황제 유협이 역적으로 규정한 원소군과 전쟁 중이다. 그렇기에 다른 군벌들이 만약 조조군 영토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곧 유협의 명령을 어긴 역적 행위가 된다.
“승상, 서둘러 역적 원소를 토벌하길 바라오.”
유협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
임신한 동귀비가 처형당한 이후, 유협의 마음은 완전히 조조로부터 떠난 지 오래였다.
이전부터 조조를 크게 미워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증오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차라리 이번 전쟁에서 콱 져버리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비록 자신이 황제에서 폐위된다고 해도, 조조의 몰락이 보고 싶었다.
“신 조조, 황명을 받들어 역적 원소를 처단하겠나이다.”
황제에게 절을 올린 조조가 정예군단과 함께 허도를 나섰다.
조조가 전략거점지로 선택한 지역은 관도성(官渡城)이었다.
관도성은 백마와 연진을 뒷받침할 수 있는 후방 거점이자, 연주와 사예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물자들을 쉽게 운송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 *
“무사히 돌아오세요, 상공.”
초선이 건네는 갑옷을 입은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바느질이 아주 뛰어났다.
여포의 첩이라서 그런 것인지, 특히 사내의 의복을 꿰매는 게 특기였다.
조비는 그를 무심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지금은 난세다. 초선이라는 여성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줄 리가 없었다. 지아비 여포를 죽인 게 바로 자신의 아비 조조였기 때문이다. 조비는 자신이 그녀를 소유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그녀에게서 받는 이 호의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군사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장료가 와서 보고했다.
그 말에 조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초선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무사히 다녀오겠다는 말도 없었다.
그런 인사치레 말을 하기엔 관계가 서먹하였던 탓이다.
조비가 냉랭하게 고개를 돌리자, 머쓱해졌는지 장료가 대신해서 고개를 숙이며 초선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인사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돌아올 건데 그럴 필요야 있겠는가.”
조비는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 근거 모를 오만함에 장료는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편, 그가 이끌었던 전쟁은 모두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여겼다.
“출전한다!”
조비의 휘하 병력들이 허도를 나섰다.
그리고 조비가 직접 선두에서 인솔하면서 말머리를 꺾어 사예주 낙양으로 향했다.
백마와 연진을 수비하기 위해서 동쪽으로 향한 군세들과는 달리, 조비의 군세만은 서쪽 길을 선택하였다. 그를 두고 장수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았지만, 전략가인 조비가 설마 실수를 하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응이 컸다.
“어째서 사예주로 향하는 건가요?”
여령기가 물었다.
그 말에 내달리고 있던 조비가 대답했다.
“우리는 정공(正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조비 성격에 정정당당하게 적과 싸우는 전쟁은 맞지 않았다.
최대한 비열하고 가혹하게.
적이 예상하지 못한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기습이야말로 전쟁의 진가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공은 아니지만, 그 어떤 군단보다도 역할이 중요한 주공(主攻)이다.’
조비가 일언반구도 해주지 않았지만, 가후는 이미 조비의 전략에 대해서 간파하고 있었다.
이미 원소군 모사들도 알아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도 반응할 수 없다. 설령 반격을 해온다고 한들, 이미 조비의 군세가 북쪽으로 올라간 뒤에나 반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서가 미리 낙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군세가 등장하자 그를 맞이하였다.
낙양은 폐허에 가까운 수준의 열악함을 자랑했다.
그래서 서서는 미리 낙양성으로 가서 군사들을 먹일 식량을 저장할 창고를 건설해두었고, 사방에 군사를 배치하여 치안을 확보한 상태였다.
“상태는 어떤가?”
조비의 물음에 서서가 고개를 내저었다.
“낙양성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이 낙양이 한나라의 수도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다 무너진 성벽.
온전한 초가집조차도 없는 폐허.
낙양은 오랫동안 버려진 상태였는데, 사예주가 조조의 통치를 받고 있었음에도 낙양 재건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너무도 많은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낙양을 다시 번영시키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망가졌다.
‘이게 낙양.’
여령기의 눈에 보이는 것은 낙양의 폐허였다.
분명 이 끔찍한 광경을 아버지도 보았겠지.
그뿐인가? 역적 동탁이 낙양을 불바다로 만드는데 찬성했다. 그 당시의 아버지는 동탁의 심복으로 여러 만행을 자행했었기 때문이다.
여령기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팔건장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낙양에 입성하고서부터 비교적 말이 줄어들었다.
그들 대부분이 동탁의 장수들이었으며, 장료와 고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설마 이 낙양에 돌아오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으리라.
“문화, 최대한 많은 전령들을 북쪽과 동쪽으로 보내라. 그리고 각 거리마다 역참(驛站)을 만들도록.”
“그리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낙양의 별동대를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조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였다.
거짓 정보를 듣고 움직이는 순간 전멸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정보가 너무 늦어지면 적절한 시기를 맞추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다수의 인원들을 할애하면서까지 역참을 만든 것이다.
갈아탈 수 있는 말들을 배치하고, 최대한 날랜 병사들을 전령으로 뽑았다.
“고순, 형양(滎陽)으로 가서 저장한 군량들을 모두 낙양으로 수송하라 전해라.”
“명 받들겠습니다.”
사예주는 말 그대로 기아(飢餓)의 땅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땅에서 조비는 최대한의 살림을 쥐어짜내면서 군량을 확보했다.
그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쥐어짜냈을까.
하지만 지금은 감성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순간, 사예주 백성보다도 더한 처지에 놓이게 될 테니 말이다.
각 장수들이 모두 명령을 받은 채로 떠났고, 조비의 곁에는 여령기만 남게 되었다.
“제게 하명하실 일이라도?”
“전투가 벌어지는 즉시 내 신변을 지켜라. 총대장인 내가 죽으면 전투는 그대로 끝난다.”
여자에게 몸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굴욕적일 수도 있겠지만, 조비는 여령기의 무예가 출중하다는 점을 들어서 그녀에게 경호를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여령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명령에 모든 이들의 목숨이 걸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그가 이끌었던 전쟁은 모두 승리했다.
방식이 끔찍하고 교활하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효율적인 면에서는 매우 탁월한 결과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여령기는 공적인 면에 대해선 조비를 크게 인정하고 있었다.
“적진 한복판으로 가게 될 테니, 최대한 주의하는 게 좋을 거다.”
말을 마친 조비가 잠시 눈을 감았다.
며칠 동안이나 전쟁 준비로 인해 바빴으니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려는 것이다.
자는 도중 누군가가 목숨을 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호위장에게 신임을 주고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곯아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조비에게 있어선 이게 마지막 휴식이었다.
이제 곧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게 될 터이니.
안량과 문추가 이끄는 3만 병력이 복양성(濮陽城)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이 전령을 통해서 전해졌다.
이로써 훗날 관도대전(官渡大戰)이라 불리게 될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복양성이 함락되었다는 말은 곧 조조의 핵심 본거지인 연주로 향하는 길목이 열렸다는 말과 같았다.
복양성을 넘어 펼쳐지는 백마와 연진.
이 두 거점들까지도 적의 수중에 넘어가게 되는 순간, 조조군은 허도까지 밀리게 될 것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조는 백마와 연진을 최대한으로 수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복양성이 순식간에 함락되다니요!”
“원소군의 세력이 만만치가 않으니 걱정입니다!”
조정 관료들이 복양성 함락을 두고 큰 우려를 나타냈다.
조조로서는 복양성을 지키기 어려우니 병력을 일부러 백마와 연진으로 철수시킨 것이지만, 전술을 모르는 신료들에게 있어선 초전부터 원소군에게 패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복양성이 원소군의 본진인 업성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전략의 우위를 빼앗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아직 군세가 넉넉하고 장수들 또한 용맹하니, 믿고 맡기심이 옳습니다.”
순욱의 말에 신하들이 입을 다물었다.
비록 순욱은 조조의 측근이었지만, 동시에 황실에 충성하는 관료이기도 했다.
반란이 진압되고서 분위기가 흉흉한 지금, 조정 신하들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직 전황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복양성이 함락되었다고 한들, 주 전력은 아직 백마와 연진에 건재하였기 때문이다.
하후돈을 비롯한 여러 맹장들이 이미 북쪽으로 파견된 상태였고, 곽가와 정욱 등 수많은 모사들도 모두 백마와 연진으로 나아간 상태였다.
조인은 예주로, 장패는 서주로 향하면서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특히 예주와 서주는 반란이 걱정되는 곳이었는데, 장패는 서주 군벌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서주 백성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고 있었으므로 진규와 진등 부자와 함께 서주를 관리하게 되었다.
“아직 허도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낙양이 적의 손에 넘어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장안성이 함락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대신이라는 자들이 벌써부터 분란을 자초하는 건가.”
조조가 노기를 띤 채로 말하자, 대신들이 입을 꾹 다물고 뒤로 물러섰다.
조정에서 승상이 보이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거기장군 동승을 처형하고 그 일파들을 숙청하면서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으니, 지금으로선 유협을 따르는 자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조조는 모든 군사권을 쥐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전시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편제들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근위병단조차도 조조의 허락 없이는 사소한 이동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조정 신하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폐하, 어서 역적 원소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조조의 엄명을 이기지 못한 유협이 애써 붓을 들어 원소 토벌문을 작성하였다.
토벌문은 익주의 유장과 서량의 마등을 포함하여 각 군벌들에게 전해졌다.
물론 지방의 군벌들은 조조와 원소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터라 그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오히려 원소를 도왔으면 도왔지, 불리함이 명백한 조조를 도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억제력은 발휘할 수 있었다.
조조군은 황제 유협이 역적으로 규정한 원소군과 전쟁 중이다. 그렇기에 다른 군벌들이 만약 조조군 영토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곧 유협의 명령을 어긴 역적 행위가 된다.
“승상, 서둘러 역적 원소를 토벌하길 바라오.”
유협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
임신한 동귀비가 처형당한 이후, 유협의 마음은 완전히 조조로부터 떠난 지 오래였다.
이전부터 조조를 크게 미워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증오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차라리 이번 전쟁에서 콱 져버리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비록 자신이 황제에서 폐위된다고 해도, 조조의 몰락이 보고 싶었다.
“신 조조, 황명을 받들어 역적 원소를 처단하겠나이다.”
황제에게 절을 올린 조조가 정예군단과 함께 허도를 나섰다.
조조가 전략거점지로 선택한 지역은 관도성(官渡城)이었다.
관도성은 백마와 연진을 뒷받침할 수 있는 후방 거점이자, 연주와 사예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물자들을 쉽게 운송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 *
“무사히 돌아오세요, 상공.”
초선이 건네는 갑옷을 입은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바느질이 아주 뛰어났다.
여포의 첩이라서 그런 것인지, 특히 사내의 의복을 꿰매는 게 특기였다.
조비는 그를 무심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지금은 난세다. 초선이라는 여성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줄 리가 없었다. 지아비 여포를 죽인 게 바로 자신의 아비 조조였기 때문이다. 조비는 자신이 그녀를 소유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그녀에게서 받는 이 호의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군사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장료가 와서 보고했다.
그 말에 조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초선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무사히 다녀오겠다는 말도 없었다.
그런 인사치레 말을 하기엔 관계가 서먹하였던 탓이다.
조비가 냉랭하게 고개를 돌리자, 머쓱해졌는지 장료가 대신해서 고개를 숙이며 초선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인사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돌아올 건데 그럴 필요야 있겠는가.”
조비는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 근거 모를 오만함에 장료는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편, 그가 이끌었던 전쟁은 모두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여겼다.
“출전한다!”
조비의 휘하 병력들이 허도를 나섰다.
그리고 조비가 직접 선두에서 인솔하면서 말머리를 꺾어 사예주 낙양으로 향했다.
백마와 연진을 수비하기 위해서 동쪽으로 향한 군세들과는 달리, 조비의 군세만은 서쪽 길을 선택하였다. 그를 두고 장수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았지만, 전략가인 조비가 설마 실수를 하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응이 컸다.
“어째서 사예주로 향하는 건가요?”
여령기가 물었다.
그 말에 내달리고 있던 조비가 대답했다.
“우리는 정공(正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조비 성격에 정정당당하게 적과 싸우는 전쟁은 맞지 않았다.
최대한 비열하고 가혹하게.
적이 예상하지 못한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기습이야말로 전쟁의 진가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공은 아니지만, 그 어떤 군단보다도 역할이 중요한 주공(主攻)이다.’
조비가 일언반구도 해주지 않았지만, 가후는 이미 조비의 전략에 대해서 간파하고 있었다.
이미 원소군 모사들도 알아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도 반응할 수 없다. 설령 반격을 해온다고 한들, 이미 조비의 군세가 북쪽으로 올라간 뒤에나 반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서가 미리 낙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군세가 등장하자 그를 맞이하였다.
낙양은 폐허에 가까운 수준의 열악함을 자랑했다.
그래서 서서는 미리 낙양성으로 가서 군사들을 먹일 식량을 저장할 창고를 건설해두었고, 사방에 군사를 배치하여 치안을 확보한 상태였다.
“상태는 어떤가?”
조비의 물음에 서서가 고개를 내저었다.
“낙양성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이 낙양이 한나라의 수도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다 무너진 성벽.
온전한 초가집조차도 없는 폐허.
낙양은 오랫동안 버려진 상태였는데, 사예주가 조조의 통치를 받고 있었음에도 낙양 재건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너무도 많은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낙양을 다시 번영시키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망가졌다.
‘이게 낙양.’
여령기의 눈에 보이는 것은 낙양의 폐허였다.
분명 이 끔찍한 광경을 아버지도 보았겠지.
그뿐인가? 역적 동탁이 낙양을 불바다로 만드는데 찬성했다. 그 당시의 아버지는 동탁의 심복으로 여러 만행을 자행했었기 때문이다.
여령기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팔건장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낙양에 입성하고서부터 비교적 말이 줄어들었다.
그들 대부분이 동탁의 장수들이었으며, 장료와 고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설마 이 낙양에 돌아오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으리라.
“문화, 최대한 많은 전령들을 북쪽과 동쪽으로 보내라. 그리고 각 거리마다 역참(驛站)을 만들도록.”
“그리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낙양의 별동대를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조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였다.
거짓 정보를 듣고 움직이는 순간 전멸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정보가 너무 늦어지면 적절한 시기를 맞추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다수의 인원들을 할애하면서까지 역참을 만든 것이다.
갈아탈 수 있는 말들을 배치하고, 최대한 날랜 병사들을 전령으로 뽑았다.
“고순, 형양(滎陽)으로 가서 저장한 군량들을 모두 낙양으로 수송하라 전해라.”
“명 받들겠습니다.”
사예주는 말 그대로 기아(飢餓)의 땅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땅에서 조비는 최대한의 살림을 쥐어짜내면서 군량을 확보했다.
그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쥐어짜냈을까.
하지만 지금은 감성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순간, 사예주 백성보다도 더한 처지에 놓이게 될 테니 말이다.
각 장수들이 모두 명령을 받은 채로 떠났고, 조비의 곁에는 여령기만 남게 되었다.
“제게 하명하실 일이라도?”
“전투가 벌어지는 즉시 내 신변을 지켜라. 총대장인 내가 죽으면 전투는 그대로 끝난다.”
여자에게 몸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굴욕적일 수도 있겠지만, 조비는 여령기의 무예가 출중하다는 점을 들어서 그녀에게 경호를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여령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명령에 모든 이들의 목숨이 걸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그가 이끌었던 전쟁은 모두 승리했다.
방식이 끔찍하고 교활하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효율적인 면에서는 매우 탁월한 결과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여령기는 공적인 면에 대해선 조비를 크게 인정하고 있었다.
“적진 한복판으로 가게 될 테니, 최대한 주의하는 게 좋을 거다.”
말을 마친 조비가 잠시 눈을 감았다.
며칠 동안이나 전쟁 준비로 인해 바빴으니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려는 것이다.
자는 도중 누군가가 목숨을 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호위장에게 신임을 주고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곯아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조비에게 있어선 이게 마지막 휴식이었다.
이제 곧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게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