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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관도에 부는 바람 (1)
원소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정에서 거기장군 동승이 반란.
그 결과 동승이 처형당하고 다수의 관료들이 살해당했다는 보고를 들은 원소는 뛸 뜻이 기뻤다.
조조가 동귀비를 처형했다.
동귀비는 황제의 아이를 잉태 중이었으니, 그 결과 뱃속에 있는 황제의 아이까지 죽인 셈이 되어버렸다.
이건 완벽한 명분이다.
조조로서는 내부의 적을 단속하고자 조정을 물갈이한 것이겠지만, 천하에 자신이 역적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령 역적 행위에 가담한 후궁이라 할지라도 임신한 상태라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시간을 주고, 100일 동안은 젖먹이에게 젖을 물릴 시간을 주는 법이다.
유교 사상에 입각한 한나라에 있어, 조조의 잔인한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행위.
청류파 인사들을 두루 대동하고 있던 원소군은 말 그대로 들끓는 용암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조조를 성토하며 당장 그를 토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군사를 일으키자는 상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를 본 원소는 자신의 의도대로 전쟁의 징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에 흡족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여유를 지켰다.
“공장, 조조를 규탄하는 격문을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원소군의 손꼽히는 문사, 진림이 붓을 들었다.
그가 작성할 내용은 조조의 모든 죄목을 기록한 격문.
조조는 천하의 역적이며, 그의 아비와 조부는 모두 비열한 환관이니 더러운 핏줄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진림은 십상시로 인해 환관의 존재가 백성들에게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부정적인 의미를 조조에게 덧씌워서 그가 천하의 역적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토조격문(討曹檄文).
학문을 어느 정도 아는 자들이라면 그 누구나 진림이 쓴 문장을 필사하는데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 필사한 격문을 하북 4개 주는 물론 하남 전역에 배포했다. 조조는 하남에 뿌려진 격문을 거두려고 하였으나, 원소에게 동조해 배반한 내부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회수가 쉽지가 않았다.
“천하가 나에게 들어오려고 하고 있다.”
“주군, 당장 군사를 몰아 허도를 공격하십시오! 조조는 민심을 잃고 황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는 역적입니다. 안에서 분명 호응할 것이므로 걱정이 없습니다.”
심배가 단기결전에 입각한 과격한 주전론을 꺼내들었다.
원소군의 모사들 중, 심배는 타협성이 없는 독불장군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주장한다. 당장 천하의 정세를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이 원소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에 전쟁을 벌이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아닙니다! 조조가 원하는 바가 바로 전면전이니, 오히려 지금은 시간을 들여 지구전을 펼칠 때입니다!”
심배의 주장에 맞서서 전풍이 발언했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다.
황제처럼 깃발을 높게 쳐들고 북을 치며 웅장함을 보이고 싶었던 원소로서도 내심 마음이 상했다.
전풍의 주장에도 틀린 바가 없었지만, 직접 대군을 통솔하여 허도를 함락시키고 싶었던 원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천하의 패자임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 원소의 마음이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영웅다운 면모를 천하에 보여주고 싶었다.
“조조는 사상누각(砂上樓閣) 위에 집을 지은 상태입니다. 서주에서 반란이, 사예주는 도적떼들이, 예주에서는 아군을 지원하는 호족들이 있습니다. 결국 조조가 지배하고 있는 4개 주들 중에 그의 아군인 곳은 연주(兗州) 밖에 없습니다.”
조조가 믿을 수 있는 곳은 연주 뿐.
사예주에 믿음을 걸어볼 수도 있겠지만, 동탁의 폭정과 함께 삼보의 난을 겪었기 때문에 이미 사예주는 초토화가 된 폐허라고 볼 수 있었다.
폐허가 된 영토가 과연 도움이나 될까?
오히려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보게, 원호. 자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만, 지금은 우선 천하에 아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네. 조조보다 못한 것이 없고, 물자와 병력들이 풍부한데 이를 숨긴다는 것은 너무 치졸한 짓이야.”
십만 대군을 직접 일으켜서 역적 조조를 정벌한다.
원소에게 있어선 최고의 무용담이었다. 개선장군처럼 함락한 허도로 들어가 조정에 깃발을 꽂게 된다면 천하의 주인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천하의 모든 만민들이 복종할 것이며, 황제보다도 더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원소는 유협을 폐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탁에게 옹립된 유협 따위는 원소의 성에 차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탁, 이각, 조조에게 연이어 휘둘린 황제는 암군(暗君)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불길함에 자신의 대의가 더럽혀질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는 유협은 원소를 지지하고 있었다.
자신을 역적들로부터 구원해주리라 믿고 있다. 이미 조조에게 그런 식으로 당해놓고는 아직도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리라 믿는 그 나약함에 혀를 찼다.
“안량, 문추!”
원소의 부름에 범처럼 사나운 장수들이 고개를 숙였다.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긴 인상이다.
두 장수들은 하북 최강의 맹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반동탁 연합군 시절부터 원소에게 충의를 보낸 장수들이다. 당연히 원소도 두 장수들을 크게 총애하고 있었다.
“군사를 내어줄 터이니 복양성(濮陽城)을 점령하라!”
복양성은 조조의 거점인 동군(東郡)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거점이다.
원소의 업성과 동군의 정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이 복양성을 점령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복양성을 점령하는 순간부터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복양성을 점령하게 되면 그 뒤에 있는 백마와 연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저도 나서고 싶습니다. 청주에 넉넉하게 병력들이 있으니, 두 장군들에게 합류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게 틀림없습니다!”
청주자사 원담이 나섰다.
그의 말에 원소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찌푸려졌다.
큰아들이지만, 원담은 용렬하고 탐욕스런 호족들과 친하게 지낸 탓에 원소로부터 큰 미움을 받고 있었다. 장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옛적에 후계자 자리에서 방출되었으며, 지금은 청주 통치에 있어 여러 문제점이 발각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신분이었다.
아들만 아니었어도 목을 베었다.
세금을 몇 배로 올린 탓에 청주 백성들로부터 큰 원망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무능한 지방관을 당장이라도 쫓아내고 싶었지만, 부자간의 정에 약한 원소는 원담을 계속 청주자사로 두었다.
“넌 청주로 내려가 근신하고 있어라. 그리고 이번 전쟁에 절대로 나서지 마라. 이건 엄명이다!”
“하, 하지만 아버님! 전 아버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원소는 “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라고 소리치고 싶은 입을 간신히 참았다.
문무백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꼴사나운 싸움을 보여줄 순 없었다.
군주로서의 몸가짐에 신경 쓰고 있는 원소로선, 원담이라는 아들은 그 체면을 완전히 깎아먹는 치부와 같았다.
그래서일까. 특히 원담에게는 가시가 돋친 모습을 보였다.
“쯧.”
장남이라는 녀석이 저런 꼴이라니.
원소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군사적인 부문에 있어선 뛰어나지만, 군주로서의 그릇이 너무 부족하다.
청주를 통일하고 원소군에 복속시킨 원담의 자질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결국 잘 싸우는 장수에 불과했다.
“역시 원상 밖에 없겠어. 저런 녀석에게 후사를 맡기느니,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지.”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은 ‘차남 원희’를 떠올렸지만, 그는 너무 병약하여 항상 골골 기침을 달고 있는 처지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누가 병든 닭을 좋아하겠는가? 병석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원희는 자연스럽게 원소군 신하들로부터 잊혀 진 상태였다.
* * *
하북제일미(河北第一美)는 누가 뭐라 해도 유주자사 원희의 부인인 견희(甄姬)였다.
절세미녀를 아내로 둔 원희를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지만, 정작 원희가 아비 원소로부터 유주자사에 임명되어 부임지 유주로 떠나고 견희는 그대로 기주 업성에 남게 되면서 사실상 부부생활이 길진 않았다. 게다가 원희는 항상 기침을 달고 사는 병약한 몸이었으므로, 정상적인 생활조차도 불가능했다.
“전쟁이라고요?”
견희가 짐짓 두렵다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는 용렬한 공손찬 따위가 아니다.
승상 조조. 천하를 찬탈하고 황제 유협을 옹립한 하남의 패자였다.
원소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이나 조조가 자신과 대등한 인재임을 발언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앞뒤를 알 수 없는 전황에 직면하리라 예상했다.
물론 원소군이 조조군에 비해 병력과 물자 면에서 큰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조의 휘하에는 용맹한 무장과 뛰어난 모사들이 많았으므로 우려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원소 님께서 직접 나서신다고 합니다.”
견희가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자, 집안 하인들은 무엇이 걱정이냐며 대답했다.
원소는 지금까지 그 어떤 전쟁에서도 패배한 전적이 없다.
하북의 귀신이라 불렸던 백마장군 공손찬을 상대로도 연승을 거두었으니, 분명 조조와의 전쟁에도 큰 승리를 거둘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원소군은 패배를 모른다.
기주목 한복, 유주자사 공손찬 등 걸출했던 인물들을 모두 격파하면서 하북을 통일하였으니 그 영웅적인 면모는 분명 천하를 뒤덮기에 충분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분명 백성들의 처지도 곤궁해질 거예요.”
견희는 전쟁이 길어지게 되면 집안에 저장한 곡식들을 모두 구휼미로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집안은 태보(太保) 견감(甄邯)의 후예이며 하북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는데, 수많은 농토를 가진 부호로 이름이 높았다.
견희는 항상 집안 재산으로 선정을 펼쳤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 견희의 마음씨를 높게 산 원소는 그녀를 둘째 아들 원희와 짝지어주면서 집안 며느리로 들였다.
하지만 견희는 지아비 원희를 따라서 유주로 가지 않았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죽고 오라비까지도 죽었으므로, 집안을 이끌 사람이 견희밖에 없었던 탓이다.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었으되, 정작 호적상으로만 부부로 존재할 뿐이다. 원희의 얼굴을 본 적도 몇 번 없었을 정도였다.
“하, 하지만 아깝지 않습니까?”
그 많은 곡식들을 모두 구휼미로 내놓겠다니요.
집안 하인들은 그 동안 견희가 가문을 다스리면서 노고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인의 몸으로 가문을 지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견희가 고개를 저었다.
“높이 선 자가 아래에 있는 자들을 보살핀다. 그건 명문가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남자가 들었다면 어지간한 귀족 나부랭이들보다야 낫다며 박수를 칠 만한 발언이었다.
원소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정에서 거기장군 동승이 반란.
그 결과 동승이 처형당하고 다수의 관료들이 살해당했다는 보고를 들은 원소는 뛸 뜻이 기뻤다.
조조가 동귀비를 처형했다.
동귀비는 황제의 아이를 잉태 중이었으니, 그 결과 뱃속에 있는 황제의 아이까지 죽인 셈이 되어버렸다.
이건 완벽한 명분이다.
조조로서는 내부의 적을 단속하고자 조정을 물갈이한 것이겠지만, 천하에 자신이 역적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령 역적 행위에 가담한 후궁이라 할지라도 임신한 상태라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시간을 주고, 100일 동안은 젖먹이에게 젖을 물릴 시간을 주는 법이다.
유교 사상에 입각한 한나라에 있어, 조조의 잔인한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행위.
청류파 인사들을 두루 대동하고 있던 원소군은 말 그대로 들끓는 용암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조조를 성토하며 당장 그를 토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군사를 일으키자는 상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를 본 원소는 자신의 의도대로 전쟁의 징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에 흡족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여유를 지켰다.
“공장, 조조를 규탄하는 격문을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원소군의 손꼽히는 문사, 진림이 붓을 들었다.
그가 작성할 내용은 조조의 모든 죄목을 기록한 격문.
조조는 천하의 역적이며, 그의 아비와 조부는 모두 비열한 환관이니 더러운 핏줄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진림은 십상시로 인해 환관의 존재가 백성들에게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부정적인 의미를 조조에게 덧씌워서 그가 천하의 역적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토조격문(討曹檄文).
학문을 어느 정도 아는 자들이라면 그 누구나 진림이 쓴 문장을 필사하는데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 필사한 격문을 하북 4개 주는 물론 하남 전역에 배포했다. 조조는 하남에 뿌려진 격문을 거두려고 하였으나, 원소에게 동조해 배반한 내부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회수가 쉽지가 않았다.
“천하가 나에게 들어오려고 하고 있다.”
“주군, 당장 군사를 몰아 허도를 공격하십시오! 조조는 민심을 잃고 황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는 역적입니다. 안에서 분명 호응할 것이므로 걱정이 없습니다.”
심배가 단기결전에 입각한 과격한 주전론을 꺼내들었다.
원소군의 모사들 중, 심배는 타협성이 없는 독불장군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주장한다. 당장 천하의 정세를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이 원소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에 전쟁을 벌이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아닙니다! 조조가 원하는 바가 바로 전면전이니, 오히려 지금은 시간을 들여 지구전을 펼칠 때입니다!”
심배의 주장에 맞서서 전풍이 발언했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다.
황제처럼 깃발을 높게 쳐들고 북을 치며 웅장함을 보이고 싶었던 원소로서도 내심 마음이 상했다.
전풍의 주장에도 틀린 바가 없었지만, 직접 대군을 통솔하여 허도를 함락시키고 싶었던 원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천하의 패자임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 원소의 마음이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영웅다운 면모를 천하에 보여주고 싶었다.
“조조는 사상누각(砂上樓閣) 위에 집을 지은 상태입니다. 서주에서 반란이, 사예주는 도적떼들이, 예주에서는 아군을 지원하는 호족들이 있습니다. 결국 조조가 지배하고 있는 4개 주들 중에 그의 아군인 곳은 연주(兗州) 밖에 없습니다.”
조조가 믿을 수 있는 곳은 연주 뿐.
사예주에 믿음을 걸어볼 수도 있겠지만, 동탁의 폭정과 함께 삼보의 난을 겪었기 때문에 이미 사예주는 초토화가 된 폐허라고 볼 수 있었다.
폐허가 된 영토가 과연 도움이나 될까?
오히려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보게, 원호. 자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만, 지금은 우선 천하에 아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네. 조조보다 못한 것이 없고, 물자와 병력들이 풍부한데 이를 숨긴다는 것은 너무 치졸한 짓이야.”
십만 대군을 직접 일으켜서 역적 조조를 정벌한다.
원소에게 있어선 최고의 무용담이었다. 개선장군처럼 함락한 허도로 들어가 조정에 깃발을 꽂게 된다면 천하의 주인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천하의 모든 만민들이 복종할 것이며, 황제보다도 더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원소는 유협을 폐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탁에게 옹립된 유협 따위는 원소의 성에 차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탁, 이각, 조조에게 연이어 휘둘린 황제는 암군(暗君)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불길함에 자신의 대의가 더럽혀질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는 유협은 원소를 지지하고 있었다.
자신을 역적들로부터 구원해주리라 믿고 있다. 이미 조조에게 그런 식으로 당해놓고는 아직도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리라 믿는 그 나약함에 혀를 찼다.
“안량, 문추!”
원소의 부름에 범처럼 사나운 장수들이 고개를 숙였다.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긴 인상이다.
두 장수들은 하북 최강의 맹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반동탁 연합군 시절부터 원소에게 충의를 보낸 장수들이다. 당연히 원소도 두 장수들을 크게 총애하고 있었다.
“군사를 내어줄 터이니 복양성(濮陽城)을 점령하라!”
복양성은 조조의 거점인 동군(東郡)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거점이다.
원소의 업성과 동군의 정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이 복양성을 점령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복양성을 점령하는 순간부터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복양성을 점령하게 되면 그 뒤에 있는 백마와 연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저도 나서고 싶습니다. 청주에 넉넉하게 병력들이 있으니, 두 장군들에게 합류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게 틀림없습니다!”
청주자사 원담이 나섰다.
그의 말에 원소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찌푸려졌다.
큰아들이지만, 원담은 용렬하고 탐욕스런 호족들과 친하게 지낸 탓에 원소로부터 큰 미움을 받고 있었다. 장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옛적에 후계자 자리에서 방출되었으며, 지금은 청주 통치에 있어 여러 문제점이 발각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신분이었다.
아들만 아니었어도 목을 베었다.
세금을 몇 배로 올린 탓에 청주 백성들로부터 큰 원망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무능한 지방관을 당장이라도 쫓아내고 싶었지만, 부자간의 정에 약한 원소는 원담을 계속 청주자사로 두었다.
“넌 청주로 내려가 근신하고 있어라. 그리고 이번 전쟁에 절대로 나서지 마라. 이건 엄명이다!”
“하, 하지만 아버님! 전 아버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원소는 “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라고 소리치고 싶은 입을 간신히 참았다.
문무백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꼴사나운 싸움을 보여줄 순 없었다.
군주로서의 몸가짐에 신경 쓰고 있는 원소로선, 원담이라는 아들은 그 체면을 완전히 깎아먹는 치부와 같았다.
그래서일까. 특히 원담에게는 가시가 돋친 모습을 보였다.
“쯧.”
장남이라는 녀석이 저런 꼴이라니.
원소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군사적인 부문에 있어선 뛰어나지만, 군주로서의 그릇이 너무 부족하다.
청주를 통일하고 원소군에 복속시킨 원담의 자질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결국 잘 싸우는 장수에 불과했다.
“역시 원상 밖에 없겠어. 저런 녀석에게 후사를 맡기느니,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지.”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은 ‘차남 원희’를 떠올렸지만, 그는 너무 병약하여 항상 골골 기침을 달고 있는 처지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누가 병든 닭을 좋아하겠는가? 병석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원희는 자연스럽게 원소군 신하들로부터 잊혀 진 상태였다.
* * *
하북제일미(河北第一美)는 누가 뭐라 해도 유주자사 원희의 부인인 견희(甄姬)였다.
절세미녀를 아내로 둔 원희를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지만, 정작 원희가 아비 원소로부터 유주자사에 임명되어 부임지 유주로 떠나고 견희는 그대로 기주 업성에 남게 되면서 사실상 부부생활이 길진 않았다. 게다가 원희는 항상 기침을 달고 사는 병약한 몸이었으므로, 정상적인 생활조차도 불가능했다.
“전쟁이라고요?”
견희가 짐짓 두렵다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는 용렬한 공손찬 따위가 아니다.
승상 조조. 천하를 찬탈하고 황제 유협을 옹립한 하남의 패자였다.
원소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이나 조조가 자신과 대등한 인재임을 발언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앞뒤를 알 수 없는 전황에 직면하리라 예상했다.
물론 원소군이 조조군에 비해 병력과 물자 면에서 큰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조의 휘하에는 용맹한 무장과 뛰어난 모사들이 많았으므로 우려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원소 님께서 직접 나서신다고 합니다.”
견희가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자, 집안 하인들은 무엇이 걱정이냐며 대답했다.
원소는 지금까지 그 어떤 전쟁에서도 패배한 전적이 없다.
하북의 귀신이라 불렸던 백마장군 공손찬을 상대로도 연승을 거두었으니, 분명 조조와의 전쟁에도 큰 승리를 거둘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원소군은 패배를 모른다.
기주목 한복, 유주자사 공손찬 등 걸출했던 인물들을 모두 격파하면서 하북을 통일하였으니 그 영웅적인 면모는 분명 천하를 뒤덮기에 충분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분명 백성들의 처지도 곤궁해질 거예요.”
견희는 전쟁이 길어지게 되면 집안에 저장한 곡식들을 모두 구휼미로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집안은 태보(太保) 견감(甄邯)의 후예이며 하북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는데, 수많은 농토를 가진 부호로 이름이 높았다.
견희는 항상 집안 재산으로 선정을 펼쳤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 견희의 마음씨를 높게 산 원소는 그녀를 둘째 아들 원희와 짝지어주면서 집안 며느리로 들였다.
하지만 견희는 지아비 원희를 따라서 유주로 가지 않았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죽고 오라비까지도 죽었으므로, 집안을 이끌 사람이 견희밖에 없었던 탓이다.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었으되, 정작 호적상으로만 부부로 존재할 뿐이다. 원희의 얼굴을 본 적도 몇 번 없었을 정도였다.
“하, 하지만 아깝지 않습니까?”
그 많은 곡식들을 모두 구휼미로 내놓겠다니요.
집안 하인들은 그 동안 견희가 가문을 다스리면서 노고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인의 몸으로 가문을 지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견희가 고개를 저었다.
“높이 선 자가 아래에 있는 자들을 보살핀다. 그건 명문가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남자가 들었다면 어지간한 귀족 나부랭이들보다야 낫다며 박수를 칠 만한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