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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간웅 (3)
황제의 정실부인, 황후가 직접 보낸 궁녀를 베어 죽였다.
그를 목격한 이들이 아연실색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황실의 권위가 크게 추락하였음을, 조비의 행동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황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 자가 본색을 드러내며 궁녀들을 참살한 것이다.
“동승은 안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장수들은 동승이 동귀비의 치마폭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으리라 여겼다.
당장이라도 처소 안으로 들어갈 것 같았던 병사들은 망설임이라도 생겼는지 그 문 앞에서 또다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비(貴妃)의 처소에 난입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동귀비는 지금 황제의 아이를 회임한 몸이었다.
뱃속에 있는 황제의 아기를 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역적죄였기 때문이다.
“역적 동승은 썩 나오거라! 귀비의 처소를 더럽힐 셈이냐!”
고순이 소리쳤다.
이윽고 처소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동승이 아닌 그의 딸인 동귀비였다.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태산처럼 불러온 배를 간신히 추스르고 있었다.
임산부의 몸을 하고 있는 동귀비를 보며 병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황제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자칫 몸이라도 닿았다간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과는 달리, 피에 절은 검을 쥐고 있던 조비는 성큼성큼 걸으며 동귀비의 앞에 섰다.
동귀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간악한 놈! 제 아비를 닮아 축생과 다를 바가 없구나! 감히 귀비의 처소를 피범벅으로 만들다니!”
동귀비는 피투성이 시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왔지만, 애써 참아내면서 조비에게 꿋꿋하게 항변했다.
이것은 역적 짓이며, 너는 역적이다!
궁녀들의 피로 얼룩진 조비는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역적이었다.
시대의 간웅. 마치 조조가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았다. 만약 하후돈이나 조인이 보았다면 백이면 백, 조조를 닮았다고 했으리라.
“죄인을 넘기십시오, 당장.”
“죄인은 네놈이다! 황실을 피로 더럽혔으니 만대에 걸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동귀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매달리자, 조비가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바닥에 쓰러트렸다.
여성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고순이 시선을 보내자 곧바로 병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고순 장군.”
“알겠습니다.”
고순이 휘하 병사들과 함께 귀비의 처소로 들어가, 창문을 통해 고개를 힐끗 내밀고 있던 중년 남성을 끌어냈다.
동귀비의 친부, 거기장군 동승이다.
동승은 자신의 반란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귀비의 처소로 도망친 것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결국 조비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자기 주제를 알았으면 알아서 기었어야지.”
무능한 자가 거기장군이라는 고관대작에 오르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동승은 열후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딸을 황제의 후궁으로 보내어 외척으로서의 힘까지 남발하였으므로 조조에게 숙청을 당하게 되었다.
조비의 검이 휘둘러지며 동승을 베었다.
피분수를 그리며 중년 남성의 몸뚱이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휘둘러서 동승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아, 아버지!”
동귀비가 소리치면서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임산부의 몸으로 자신의 아비가 참살당하는 모습을 직접 봐버렸으니 혼절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의 쓰러진 몸을 궁녀들이 추슬렀다.
조비로선 당장에 황제의 아이를 가진 동귀비를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없었으므로 동승의 수급을 병사들에게 챙기도록 하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후에게 받은 수건으로 피범벅이었던 얼굴을 닦았다.
“반란은 종결됐다. 승상에게 전해라.”
조비의 명령을 받든 전령이 승상부로 향했다.
거기장군 동승이 죽고, 그 일파였던 시랑 왕자복, 장수교위 충집, 의랑 오석, 장군 오자란 등이 모두 처형되었으니 거센 반란의 불씨를 잡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직 남은 잔당들이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곧이어 벌어질 대대적인 색출 작업에서 걸러질 것으로 보였다.
“연판장에 도망친 유비의 이름도 있습니다.”
“이미 유비는 하북으로 떠났을 거다. 지난번에 사로잡은 유비의 처자식들을 처형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관우를 조종할 수 있는 끈이 사라진다.
관우는 관도대전에서 안량과 문추를 죽여야 하는 큰 역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몰라도 그가 활약을 하기 전까지는 건들 수 없었다.
* * *
승상 조조는 동승이 계획한 반란을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다.
이번 기회에 조정을 물갈이할 수 있는 적기였다.
조조군 무장들이 병사들을 대동하고서 바쁘게 움직이며, 명단에 적힌 신하들을 모두 체포했다.
승상이 황실을 기만하고 조정을 장악하였다는 비방 상소를 올린 자들이다.
그들은 분명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내부에서 원소에게 옹호할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조정에서 내쫓거나 죽이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동승의 반란에 연좌된 자들만 처형.
반란을 구실로 삼아 솎아낸 정치적 정적들은 먼 지역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결정을 지었다.
승상 통치에 반대하던 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수천 명이 넘어가는 인원들을 모두 처형할 경우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조는 사형보다는 조금 가벼운 유배형으로 끝냈다.
하지만 반란의 수괴였던 동승의 딸은 달랐다.
“다시 생각해보시오, 승상! 귀비는 회임을, 짐의 아이를 가지고 있단 말이오!”
유협이 직접 내달려와 조조의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조조는 귀비는 물론 뱃속의 아이가 언제 자신의 권력에 대항할지 알 수 없다고 여기며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역적은 삼대를 멸하는 법이다.
황제의 아기를 회임하고 있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비든지 간에.
장차 화근이 될 싹은 남김없이 짓밟는 게 현명하다.
“특별히 귀비이기 때문에 사약으로 끝내드리는 겁니다. 폐하.”
조조의 서늘한 눈이 황제를 노려보았다.
동승의 반란을 황제가 몰랐을 리가 없다.
매번 동승을 감싸고돌면서 거기장군에 열후까지 봉해주지 않았던가. 분명 이유가 있어서 동승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권력을 넘겨준 것일 테지.
당장이라도 황제를 갈아치우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유협은 고우나 미우나 결국 협천자라는 조조의 명분을 증명해주는 인물이었고, 원소와의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상징성이었다.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마당에, 그 중요한 상징을 스스로의 손으로 버릴 순 없었다. 아직은 이용가치가 충분하다. 유협은 분명 동승을 이용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조조는 그것에 대해선 불문에 붙였다.
하지만 그 분노를 동귀비가 대신 받아야 했다.
동승을 이용해서 반란을 일으킨 발칙함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젯밤에도 품고 잤을 동귀비를 싸늘한 시체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감히 유협이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수고했다, 아들아.”
“별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고작해야 반란인데.
조비가 대답했다.
승상 통치를 반대하는 조정 관료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이미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반란에 대해선 무미건조한 마음 밖에 없었다. 만약 동승이 성공하였다면 조조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를 두려워해선 정점에 오를 수 없다.
“제 장수들에게 적절한 관직을 내려주십시오.”
“알겠다. 윤허하마.”
이번 반란으로 빈자리가 많이 생겼다.
고순과 장료를 모두 도성 장군으로 임명하고, 나머지 장수들은 벼슬을 한 단계 높여서 오교위에 두었다.
이것으로 조비는 정식으로 도성주둔군의 지휘권을 얻은 셈이 되었다.
그만큼 조조가 아들 조비를 신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부자관계는 냉랭했지만, 군신관계에 있어서는 확고했다.
조조는 아들을 신임했고, 조비는 승상을 믿고 따랐다.
아비로서, 아들로서의 정이 아닌 군신으로서의 충성으로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것으로 원소에게 또 다른 명분이 생겼습니다.”
거기장군 동승과 그 딸인 동귀비를 둘 다 처형했다.
반란에 연루된 관료들도 대거 처형당하였으므로, 원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는 데 큰 명분이 생긴 격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싸우게 될 적이다. 늦든 빠르든 상관이 있느냐?”
“없죠. 이기거나 지거나, 그것만 생각하면 될 뿐이니.”
결국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전쟁에서 이겨야만 권세를 누릴 수 있고, 천하로부터 힘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를 위한 전쟁이다.
원소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권력을 빼앗기 위한 행위.
역으로 전쟁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을 빼앗기겠지만, 애초에 전쟁이라는 행위는 군주들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판돈은 올라갔다.
장기 말들도 여럿 모였다.
천하를 장기판으로 두면서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백마(白馬), 연진(延津). 우선 두 곳만 지키고 있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게 꾀가 있습니다.
조비가 조조에게 고하였다.
십만 대군을 주장하는 원소군의 남진을 막는다.
그 길목이 바로 백마와 연진이었다. 이 두 거점들만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조조로서는 원소군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소수 병력으로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우를 데려가십시오.”
“유비의 의형제를 말하는 거로구나. 사수관에서 화웅을 죽인 무장으로 유명했었지.”
조조는 비록 적장이었지만 관우의 용맹과 무위에 대해서 크게 인정하고 있었다.
특히나 화웅을 죽였던 모습이 어찌나 멋들어지게 보였던지.
따스하게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 맹장 화웅을 죽이고 돌아온 관우는 신장(神將)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조조는 휘하로 들어온 관우를 포섭하기 위해서 여포의 적토마는 물론 여러 재물들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를 들은 조비는 절대로 관우가 조조군에 투항하는 일은 없다고 말하면서, 결국 적이 될 것이니 일이 끝나면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잘 싸우는 장수는 환영해야 마땅하나, 그 장수의 충성심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이 끝나고 죽이는 게 옳다.
“승상은 장수 하나 따위에 연연하실 입장이 아닙니다.”
백 명, 천 명의 장수들을 호령해야 할 자리에 있는 조조가 관우 하나에 목을 매서야 되겠는가. 비록 관우보다는 못하겠지만, 이미 조조의 밑에는 수백 명의 장수들이 충성심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군사를 몰아 북쪽으로 향한다면 능히 원소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의 정실부인, 황후가 직접 보낸 궁녀를 베어 죽였다.
그를 목격한 이들이 아연실색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황실의 권위가 크게 추락하였음을, 조비의 행동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황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 자가 본색을 드러내며 궁녀들을 참살한 것이다.
“동승은 안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장수들은 동승이 동귀비의 치마폭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으리라 여겼다.
당장이라도 처소 안으로 들어갈 것 같았던 병사들은 망설임이라도 생겼는지 그 문 앞에서 또다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비(貴妃)의 처소에 난입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동귀비는 지금 황제의 아이를 회임한 몸이었다.
뱃속에 있는 황제의 아기를 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역적죄였기 때문이다.
“역적 동승은 썩 나오거라! 귀비의 처소를 더럽힐 셈이냐!”
고순이 소리쳤다.
이윽고 처소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동승이 아닌 그의 딸인 동귀비였다.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태산처럼 불러온 배를 간신히 추스르고 있었다.
임산부의 몸을 하고 있는 동귀비를 보며 병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황제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자칫 몸이라도 닿았다간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과는 달리, 피에 절은 검을 쥐고 있던 조비는 성큼성큼 걸으며 동귀비의 앞에 섰다.
동귀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간악한 놈! 제 아비를 닮아 축생과 다를 바가 없구나! 감히 귀비의 처소를 피범벅으로 만들다니!”
동귀비는 피투성이 시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왔지만, 애써 참아내면서 조비에게 꿋꿋하게 항변했다.
이것은 역적 짓이며, 너는 역적이다!
궁녀들의 피로 얼룩진 조비는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역적이었다.
시대의 간웅. 마치 조조가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았다. 만약 하후돈이나 조인이 보았다면 백이면 백, 조조를 닮았다고 했으리라.
“죄인을 넘기십시오, 당장.”
“죄인은 네놈이다! 황실을 피로 더럽혔으니 만대에 걸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동귀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매달리자, 조비가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바닥에 쓰러트렸다.
여성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고순이 시선을 보내자 곧바로 병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고순 장군.”
“알겠습니다.”
고순이 휘하 병사들과 함께 귀비의 처소로 들어가, 창문을 통해 고개를 힐끗 내밀고 있던 중년 남성을 끌어냈다.
동귀비의 친부, 거기장군 동승이다.
동승은 자신의 반란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귀비의 처소로 도망친 것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결국 조비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자기 주제를 알았으면 알아서 기었어야지.”
무능한 자가 거기장군이라는 고관대작에 오르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동승은 열후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딸을 황제의 후궁으로 보내어 외척으로서의 힘까지 남발하였으므로 조조에게 숙청을 당하게 되었다.
조비의 검이 휘둘러지며 동승을 베었다.
피분수를 그리며 중년 남성의 몸뚱이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휘둘러서 동승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아, 아버지!”
동귀비가 소리치면서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임산부의 몸으로 자신의 아비가 참살당하는 모습을 직접 봐버렸으니 혼절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의 쓰러진 몸을 궁녀들이 추슬렀다.
조비로선 당장에 황제의 아이를 가진 동귀비를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없었으므로 동승의 수급을 병사들에게 챙기도록 하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후에게 받은 수건으로 피범벅이었던 얼굴을 닦았다.
“반란은 종결됐다. 승상에게 전해라.”
조비의 명령을 받든 전령이 승상부로 향했다.
거기장군 동승이 죽고, 그 일파였던 시랑 왕자복, 장수교위 충집, 의랑 오석, 장군 오자란 등이 모두 처형되었으니 거센 반란의 불씨를 잡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직 남은 잔당들이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곧이어 벌어질 대대적인 색출 작업에서 걸러질 것으로 보였다.
“연판장에 도망친 유비의 이름도 있습니다.”
“이미 유비는 하북으로 떠났을 거다. 지난번에 사로잡은 유비의 처자식들을 처형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관우를 조종할 수 있는 끈이 사라진다.
관우는 관도대전에서 안량과 문추를 죽여야 하는 큰 역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몰라도 그가 활약을 하기 전까지는 건들 수 없었다.
* * *
승상 조조는 동승이 계획한 반란을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다.
이번 기회에 조정을 물갈이할 수 있는 적기였다.
조조군 무장들이 병사들을 대동하고서 바쁘게 움직이며, 명단에 적힌 신하들을 모두 체포했다.
승상이 황실을 기만하고 조정을 장악하였다는 비방 상소를 올린 자들이다.
그들은 분명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내부에서 원소에게 옹호할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조정에서 내쫓거나 죽이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동승의 반란에 연좌된 자들만 처형.
반란을 구실로 삼아 솎아낸 정치적 정적들은 먼 지역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결정을 지었다.
승상 통치에 반대하던 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수천 명이 넘어가는 인원들을 모두 처형할 경우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조는 사형보다는 조금 가벼운 유배형으로 끝냈다.
하지만 반란의 수괴였던 동승의 딸은 달랐다.
“다시 생각해보시오, 승상! 귀비는 회임을, 짐의 아이를 가지고 있단 말이오!”
유협이 직접 내달려와 조조의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조조는 귀비는 물론 뱃속의 아이가 언제 자신의 권력에 대항할지 알 수 없다고 여기며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역적은 삼대를 멸하는 법이다.
황제의 아기를 회임하고 있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비든지 간에.
장차 화근이 될 싹은 남김없이 짓밟는 게 현명하다.
“특별히 귀비이기 때문에 사약으로 끝내드리는 겁니다. 폐하.”
조조의 서늘한 눈이 황제를 노려보았다.
동승의 반란을 황제가 몰랐을 리가 없다.
매번 동승을 감싸고돌면서 거기장군에 열후까지 봉해주지 않았던가. 분명 이유가 있어서 동승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권력을 넘겨준 것일 테지.
당장이라도 황제를 갈아치우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유협은 고우나 미우나 결국 협천자라는 조조의 명분을 증명해주는 인물이었고, 원소와의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상징성이었다.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마당에, 그 중요한 상징을 스스로의 손으로 버릴 순 없었다. 아직은 이용가치가 충분하다. 유협은 분명 동승을 이용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조조는 그것에 대해선 불문에 붙였다.
하지만 그 분노를 동귀비가 대신 받아야 했다.
동승을 이용해서 반란을 일으킨 발칙함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젯밤에도 품고 잤을 동귀비를 싸늘한 시체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감히 유협이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수고했다, 아들아.”
“별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고작해야 반란인데.
조비가 대답했다.
승상 통치를 반대하는 조정 관료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이미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반란에 대해선 무미건조한 마음 밖에 없었다. 만약 동승이 성공하였다면 조조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를 두려워해선 정점에 오를 수 없다.
“제 장수들에게 적절한 관직을 내려주십시오.”
“알겠다. 윤허하마.”
이번 반란으로 빈자리가 많이 생겼다.
고순과 장료를 모두 도성 장군으로 임명하고, 나머지 장수들은 벼슬을 한 단계 높여서 오교위에 두었다.
이것으로 조비는 정식으로 도성주둔군의 지휘권을 얻은 셈이 되었다.
그만큼 조조가 아들 조비를 신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부자관계는 냉랭했지만, 군신관계에 있어서는 확고했다.
조조는 아들을 신임했고, 조비는 승상을 믿고 따랐다.
아비로서, 아들로서의 정이 아닌 군신으로서의 충성으로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것으로 원소에게 또 다른 명분이 생겼습니다.”
거기장군 동승과 그 딸인 동귀비를 둘 다 처형했다.
반란에 연루된 관료들도 대거 처형당하였으므로, 원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는 데 큰 명분이 생긴 격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싸우게 될 적이다. 늦든 빠르든 상관이 있느냐?”
“없죠. 이기거나 지거나, 그것만 생각하면 될 뿐이니.”
결국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전쟁에서 이겨야만 권세를 누릴 수 있고, 천하로부터 힘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를 위한 전쟁이다.
원소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권력을 빼앗기 위한 행위.
역으로 전쟁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을 빼앗기겠지만, 애초에 전쟁이라는 행위는 군주들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판돈은 올라갔다.
장기 말들도 여럿 모였다.
천하를 장기판으로 두면서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백마(白馬), 연진(延津). 우선 두 곳만 지키고 있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게 꾀가 있습니다.
조비가 조조에게 고하였다.
십만 대군을 주장하는 원소군의 남진을 막는다.
그 길목이 바로 백마와 연진이었다. 이 두 거점들만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조조로서는 원소군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소수 병력으로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우를 데려가십시오.”
“유비의 의형제를 말하는 거로구나. 사수관에서 화웅을 죽인 무장으로 유명했었지.”
조조는 비록 적장이었지만 관우의 용맹과 무위에 대해서 크게 인정하고 있었다.
특히나 화웅을 죽였던 모습이 어찌나 멋들어지게 보였던지.
따스하게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 맹장 화웅을 죽이고 돌아온 관우는 신장(神將)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조조는 휘하로 들어온 관우를 포섭하기 위해서 여포의 적토마는 물론 여러 재물들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를 들은 조비는 절대로 관우가 조조군에 투항하는 일은 없다고 말하면서, 결국 적이 될 것이니 일이 끝나면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잘 싸우는 장수는 환영해야 마땅하나, 그 장수의 충성심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이 끝나고 죽이는 게 옳다.
“승상은 장수 하나 따위에 연연하실 입장이 아닙니다.”
백 명, 천 명의 장수들을 호령해야 할 자리에 있는 조조가 관우 하나에 목을 매서야 되겠는가. 비록 관우보다는 못하겠지만, 이미 조조의 밑에는 수백 명의 장수들이 충성심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군사를 몰아 북쪽으로 향한다면 능히 원소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