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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간웅 (1)
북형주 남양군을 제압한 조비는 승상 조조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귀환해야 했다.
남양군에 대한 지배권을 일시적으로 장수에게 양도한 이후, 팔건장들과 함께 허도로 돌아왔다. 남양군 37현을 모두 토벌한 공을 치하 받았으며, 관료와 무장들에게도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되었다.
“잠시 이쪽으로······.”
조정으로 입궐한 조비를 곽가가 문득 불렀다.
“조정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언제는 좋았나.”
특히 승상 때문에 분란이 그치질 않지.
조비는 조조에 대항하는 황실 세력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곽가를 떠보기 위해서 모른 척 일관했다.
이제 곧 관도대전이 시작된다.
조조와 원소의 대결.
하남과 하북을 장악한 두 패권들의 전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거대한 전쟁의 징조가 울리는 이 때,
조조의 억압 속에서 고개를 숙이던 관료들이 서서히 발호하기 시작하였다.
“그대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말해도 되겠나?”
“공자께서 저에게 주시는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조비는 언제나 한 수 앞서 있다.
그렇기에 곽가는 그 말에 한 톨이라도 흘리지 않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조비로서는 그저 미리 알고 있는 미래를 알기에 한 수 앞서있는 것이었지만, 곽가가 보기에는 시대를 읽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곽가를 비롯하여 순욱과 정욱 등 수많은 모사들이 조비의 말을 기다렸다.
“거기장군 동승, 그리고 그 일파들이 문제가 아닌가?”
동승은 황제 유협을 이각과 곽사로부터 지켜낸 일등공신이다.
목숨을 구해준 동승을 유협은 생명의 은인이라 여겼으며, 그의 딸을 귀비로 맞이하였다. 지금은 동귀비가 유협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총애가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황제의 가장 큰 총애를 받는 신하.
그 신하는 승상 조조가 아닌 거기장군 동승이었다.
동승으로서는 황제의 모든 신임을 받고 있으니 의기양양해져서 그 일파들을 거느리고 다녔고, 간혹 술자리에서 조조의 통치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反) 조조파 세력의 대표주자가 바로 동승이다. 그 동승을 의심하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이것 봐라?’
조비의 추천으로 고대하던 조정 관료가 된 서서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보아하니 조정의 분위기가 심상찮은 모양이다.
예주 영천군 사람이었던 서서는 자신의 고향에 으리으리한 궁궐이 지어졌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지금은 그 정경을 감탄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선 장수들에게 동승의 집을 특별히 경계하라고 지시를 해야겠군.”
“예, 이미 분부를 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승상의 식사를 포함하여 모든 경호에도 빈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곽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으로선 조조의 신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조조군은 오로지 승상 조조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으며, 설령 후계자 조비가 있다고는 해도 조조의 존재는 조조군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조조군 문사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온 조비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복 옷소매를 펄럭이던 서서가 물었다.
“반란의 징조다.”
“바, 반란! 황제 폐하가 계신 이 궁궐에서 변란이 터진단 말입니까!”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
조정으로 첫 입궐하자마자 변란이 터질 것 같다니!
서서로서는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조비가 모사들과 나누던 대화내용을 통해서 언뜻 들었다.
황제를 옹립하고 조정을 장악한 조조.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누리는 동승.
이 둘의 대결은 원소와의 전쟁에 앞서 반드시 해치워야 할 일이었다.
“조정이 어수선하다. 그만큼 동승의 권위가 상당하다는 뜻이겠지.”
조정의 대소사는 승상 조조의 명령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빈틈없는 물결처럼 완벽하게 일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평소 질서 바른 모습과는 달리 매우 어수선했다.
관료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기에 바빴으며, 조비가 나타나자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던 관료들이 자리를 피했다.
혹시라도 동승의 일파라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철저히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머지않아서 조정에 큰 사단이 날 것이라고 여겼다.
“도련님, 승상을 뵈러 오신 모양이군요!”
승상부로 향하자 그 입구를 지키고 있던 허저를 만날 수 있었다.
허저는 매우 큰 체격이라 장신인 조비도 고개를 올려봐야 할 정도였다.
한편 서서는 덩치 큰 거인을 보고선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우락부락한 장수가 조조군에 있었다니. 과연 전쟁을 하면 백전백승이라는 그 전적이 이해가 된다.
허저는 오랜만에 조비를 보아 기뻤는지 심각한 조정 분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승상께 기별을 넣어라.”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잠시 기다리기를 수 분.
조조로부터 출입을 허가받았다.
서서에게는 잠시 허저의 말상대를 부탁하고는 홀로 승상부로 들어섰다.
“승상,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수고했다.”
조조가 대답했다.
부자관계라고 하기에는 매우 삭막한 관계였다.
조조로서는 좀 더 아들의 전공에 찬사를 해주고 싶었지만, 무뚝뚝한 아들은 분명 그를 거부할 것이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남양군 37현을 정복했다!
아비로서 아들의 그 눈부신 전공을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조조의 씰룩거리는 입술이 그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동승이 소란을 부리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조조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조정의 일을 꺼내들었다.
그 말에 조조가 침음을 삼켰다.
“어차피 제거해야 할 가시였다. 별다를 것도 없지.”
동승은 조조가 협천자(挾天子)를 하기 이전부터 유협을 따랐던 장수였다.
비록 동탁의 휘하였다고는 하나, 장안에서부터 이각과 곽사로부터 보호해주었으므로 유협은 특히 동승을 좋아하고 있었다.
열후와 거기장군에 임명된 동승.
그를 두고 왈가왈부가 많았다. 동승이 황제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나, 이각과 곽사 같은 무리들과 함께 동탁의 총애를 받은 무장이었던 터라 그 출신 성분이 악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를 열후로 임명한 것도 그렇고, 거기장군이라는 관직도 너무 과다한 포상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만. 그를 쳐낼 확고한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조정의 분위기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장군 동승을, 황제의 제일가는 총애를 받는 신하를 쳐낼 정당성이 없었다. 확고한 증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철두철미한 성격의 동승이 꼬투리가 될 만한 증거를 남겼을 리가 없다.
“증거는 만들면 그만이 아니더냐.”
조조가 말했다.
이미 동승은 조정의 장악권을 두고 척을 지고 있는 관계로 유명하였으므로, 언제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언제 반란의 증거가 들춰지더라도 모든 이들이 납득할 것이라는 뜻이다.
동승의 실수는 자신의 역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태생이 무장인 동승이 뛰어난 지모를 가진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진심으로 조조를 몰아내려 하였다면, 그 역심부터 감춘 채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을 행하였어야 했다.
“이번 기회에 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모두 쳐내겠다.”
원소를 상대하기 전에, 내부의 적부터 정리한다.
조조가 조정의 숙청을 강조했다.
조비는 그 말에 매우 지당하다며 찬성표를 던졌다,
과연 난세의 간웅이다.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조차도 그 혜안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조조는 이미 동승을 죽일 기회를 짜두고 있었고, 미리 계획한 증거들을 세상 밖에 드러내는 순간 동승은 목 없는 귀신이 될 것이다.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내부의 적부터 청소한다. 언제나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조조가 가르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조비에게 통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 * *
가후는 서서와 함께 조비의 추천을 받아서 조정 관료가 되었다.
그는 조정에 입궐하자마자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주군이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그를 처리하고 싶었다. 물론 순전히 조비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출세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었다.
‘숙청이 시작되는 순간 공백이 크게 생겨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관대작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열린다는 뜻이지.
가후는 문무백관들이 파르르 떨면서 몸을 사리고 있는 와중에, 오히려 대범하게 조정을 누비면서 출세의 기회를 잡으려 했다.
위기는 곧 기회.
그게 바로 가후의 좌우명이었다.
우선 조비의 휘하 병력 3백을 준비시켰다.
조정에 변란이 터지자마자 궁궐의 담벼락을 넘을 수 있는 날랜 병력들을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조정에서 변란이 터지는 순간,
그를 빠르게 진압하여 일등 공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조비였다.
조조의 후계자이며, 동시에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란이 터지길 기다리는 것 같구려.”
고순이 물었다.
충직한 무장이었던 고순으로선 기회주의자인 가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끼를 발견한 이리처럼 보였다.
가후는 평소 조비의 무장들과 어울리는 뛰어난 처세술을 보여주었는데, 그를 증명하듯 조비의 사병집단에서 책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주군을 위해 더러운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책사 아니겠습니까?”
“크흠. 우선 책사의 말에 따르겠소만.”
황제가 기거하는 궁궐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
고순도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지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가후처럼 출세에 흥미를 두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무장으로서 본분을 다하려는 것뿐이다.
“그런데 언제 궁궐로 쳐들어가면 되는 것이오?”
“주공께서 연락을 주실 겁니다. 이미 우리는 패를 가지고 있거든요.”
조조와 조비처럼 교활한 무리들이 동승 따위를 죽이는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가후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음에도 그를 간파하고 있었다.
동승은 그저 미끼에 불과하다. 분명 조조는 동승을 미끼로 삼아서 황실에 있는 분란 세력들을 모두 끄집어낼 게 분명했다.
“황실과 조정은 우리들이 먹어치웁니다.”
동승 일파에게 휘둘러져서야 면목이 서질 않습니다.
동탁군의 잔당이 아직도 조정에 남아 설치고 있으니, 조정에 발전이 없는 겁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황제의 총애만 믿고 깝죽거리는 무능력자.
시골에서 태어나 본인의 능력만으로 난세를 살아남은 가후로서는 동승 같은 무리들을 크게 혐오했다.
‘이미 원소와의 전쟁은 시작됐다.’
이건 그 신호탄이다.
전쟁을 알리는 효시가 쏘아졌다.
북형주 남양군을 제압한 조비는 승상 조조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귀환해야 했다.
남양군에 대한 지배권을 일시적으로 장수에게 양도한 이후, 팔건장들과 함께 허도로 돌아왔다. 남양군 37현을 모두 토벌한 공을 치하 받았으며, 관료와 무장들에게도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되었다.
“잠시 이쪽으로······.”
조정으로 입궐한 조비를 곽가가 문득 불렀다.
“조정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언제는 좋았나.”
특히 승상 때문에 분란이 그치질 않지.
조비는 조조에 대항하는 황실 세력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곽가를 떠보기 위해서 모른 척 일관했다.
이제 곧 관도대전이 시작된다.
조조와 원소의 대결.
하남과 하북을 장악한 두 패권들의 전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거대한 전쟁의 징조가 울리는 이 때,
조조의 억압 속에서 고개를 숙이던 관료들이 서서히 발호하기 시작하였다.
“그대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말해도 되겠나?”
“공자께서 저에게 주시는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조비는 언제나 한 수 앞서 있다.
그렇기에 곽가는 그 말에 한 톨이라도 흘리지 않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조비로서는 그저 미리 알고 있는 미래를 알기에 한 수 앞서있는 것이었지만, 곽가가 보기에는 시대를 읽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곽가를 비롯하여 순욱과 정욱 등 수많은 모사들이 조비의 말을 기다렸다.
“거기장군 동승, 그리고 그 일파들이 문제가 아닌가?”
동승은 황제 유협을 이각과 곽사로부터 지켜낸 일등공신이다.
목숨을 구해준 동승을 유협은 생명의 은인이라 여겼으며, 그의 딸을 귀비로 맞이하였다. 지금은 동귀비가 유협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총애가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황제의 가장 큰 총애를 받는 신하.
그 신하는 승상 조조가 아닌 거기장군 동승이었다.
동승으로서는 황제의 모든 신임을 받고 있으니 의기양양해져서 그 일파들을 거느리고 다녔고, 간혹 술자리에서 조조의 통치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反) 조조파 세력의 대표주자가 바로 동승이다. 그 동승을 의심하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이것 봐라?’
조비의 추천으로 고대하던 조정 관료가 된 서서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보아하니 조정의 분위기가 심상찮은 모양이다.
예주 영천군 사람이었던 서서는 자신의 고향에 으리으리한 궁궐이 지어졌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지금은 그 정경을 감탄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선 장수들에게 동승의 집을 특별히 경계하라고 지시를 해야겠군.”
“예, 이미 분부를 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승상의 식사를 포함하여 모든 경호에도 빈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곽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으로선 조조의 신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조조군은 오로지 승상 조조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으며, 설령 후계자 조비가 있다고는 해도 조조의 존재는 조조군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조조군 문사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온 조비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복 옷소매를 펄럭이던 서서가 물었다.
“반란의 징조다.”
“바, 반란! 황제 폐하가 계신 이 궁궐에서 변란이 터진단 말입니까!”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
조정으로 첫 입궐하자마자 변란이 터질 것 같다니!
서서로서는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조비가 모사들과 나누던 대화내용을 통해서 언뜻 들었다.
황제를 옹립하고 조정을 장악한 조조.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누리는 동승.
이 둘의 대결은 원소와의 전쟁에 앞서 반드시 해치워야 할 일이었다.
“조정이 어수선하다. 그만큼 동승의 권위가 상당하다는 뜻이겠지.”
조정의 대소사는 승상 조조의 명령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빈틈없는 물결처럼 완벽하게 일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평소 질서 바른 모습과는 달리 매우 어수선했다.
관료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기에 바빴으며, 조비가 나타나자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던 관료들이 자리를 피했다.
혹시라도 동승의 일파라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철저히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머지않아서 조정에 큰 사단이 날 것이라고 여겼다.
“도련님, 승상을 뵈러 오신 모양이군요!”
승상부로 향하자 그 입구를 지키고 있던 허저를 만날 수 있었다.
허저는 매우 큰 체격이라 장신인 조비도 고개를 올려봐야 할 정도였다.
한편 서서는 덩치 큰 거인을 보고선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우락부락한 장수가 조조군에 있었다니. 과연 전쟁을 하면 백전백승이라는 그 전적이 이해가 된다.
허저는 오랜만에 조비를 보아 기뻤는지 심각한 조정 분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승상께 기별을 넣어라.”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잠시 기다리기를 수 분.
조조로부터 출입을 허가받았다.
서서에게는 잠시 허저의 말상대를 부탁하고는 홀로 승상부로 들어섰다.
“승상,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수고했다.”
조조가 대답했다.
부자관계라고 하기에는 매우 삭막한 관계였다.
조조로서는 좀 더 아들의 전공에 찬사를 해주고 싶었지만, 무뚝뚝한 아들은 분명 그를 거부할 것이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남양군 37현을 정복했다!
아비로서 아들의 그 눈부신 전공을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조조의 씰룩거리는 입술이 그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동승이 소란을 부리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조조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조정의 일을 꺼내들었다.
그 말에 조조가 침음을 삼켰다.
“어차피 제거해야 할 가시였다. 별다를 것도 없지.”
동승은 조조가 협천자(挾天子)를 하기 이전부터 유협을 따랐던 장수였다.
비록 동탁의 휘하였다고는 하나, 장안에서부터 이각과 곽사로부터 보호해주었으므로 유협은 특히 동승을 좋아하고 있었다.
열후와 거기장군에 임명된 동승.
그를 두고 왈가왈부가 많았다. 동승이 황제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나, 이각과 곽사 같은 무리들과 함께 동탁의 총애를 받은 무장이었던 터라 그 출신 성분이 악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를 열후로 임명한 것도 그렇고, 거기장군이라는 관직도 너무 과다한 포상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만. 그를 쳐낼 확고한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조정의 분위기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장군 동승을, 황제의 제일가는 총애를 받는 신하를 쳐낼 정당성이 없었다. 확고한 증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철두철미한 성격의 동승이 꼬투리가 될 만한 증거를 남겼을 리가 없다.
“증거는 만들면 그만이 아니더냐.”
조조가 말했다.
이미 동승은 조정의 장악권을 두고 척을 지고 있는 관계로 유명하였으므로, 언제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언제 반란의 증거가 들춰지더라도 모든 이들이 납득할 것이라는 뜻이다.
동승의 실수는 자신의 역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태생이 무장인 동승이 뛰어난 지모를 가진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진심으로 조조를 몰아내려 하였다면, 그 역심부터 감춘 채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을 행하였어야 했다.
“이번 기회에 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모두 쳐내겠다.”
원소를 상대하기 전에, 내부의 적부터 정리한다.
조조가 조정의 숙청을 강조했다.
조비는 그 말에 매우 지당하다며 찬성표를 던졌다,
과연 난세의 간웅이다.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조차도 그 혜안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조조는 이미 동승을 죽일 기회를 짜두고 있었고, 미리 계획한 증거들을 세상 밖에 드러내는 순간 동승은 목 없는 귀신이 될 것이다.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내부의 적부터 청소한다. 언제나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조조가 가르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조비에게 통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 * *
가후는 서서와 함께 조비의 추천을 받아서 조정 관료가 되었다.
그는 조정에 입궐하자마자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주군이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그를 처리하고 싶었다. 물론 순전히 조비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출세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었다.
‘숙청이 시작되는 순간 공백이 크게 생겨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관대작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열린다는 뜻이지.
가후는 문무백관들이 파르르 떨면서 몸을 사리고 있는 와중에, 오히려 대범하게 조정을 누비면서 출세의 기회를 잡으려 했다.
위기는 곧 기회.
그게 바로 가후의 좌우명이었다.
우선 조비의 휘하 병력 3백을 준비시켰다.
조정에 변란이 터지자마자 궁궐의 담벼락을 넘을 수 있는 날랜 병력들을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조정에서 변란이 터지는 순간,
그를 빠르게 진압하여 일등 공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조비였다.
조조의 후계자이며, 동시에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란이 터지길 기다리는 것 같구려.”
고순이 물었다.
충직한 무장이었던 고순으로선 기회주의자인 가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끼를 발견한 이리처럼 보였다.
가후는 평소 조비의 무장들과 어울리는 뛰어난 처세술을 보여주었는데, 그를 증명하듯 조비의 사병집단에서 책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주군을 위해 더러운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책사 아니겠습니까?”
“크흠. 우선 책사의 말에 따르겠소만.”
황제가 기거하는 궁궐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
고순도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지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가후처럼 출세에 흥미를 두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무장으로서 본분을 다하려는 것뿐이다.
“그런데 언제 궁궐로 쳐들어가면 되는 것이오?”
“주공께서 연락을 주실 겁니다. 이미 우리는 패를 가지고 있거든요.”
조조와 조비처럼 교활한 무리들이 동승 따위를 죽이는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가후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음에도 그를 간파하고 있었다.
동승은 그저 미끼에 불과하다. 분명 조조는 동승을 미끼로 삼아서 황실에 있는 분란 세력들을 모두 끄집어낼 게 분명했다.
“황실과 조정은 우리들이 먹어치웁니다.”
동승 일파에게 휘둘러져서야 면목이 서질 않습니다.
동탁군의 잔당이 아직도 조정에 남아 설치고 있으니, 조정에 발전이 없는 겁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황제의 총애만 믿고 깝죽거리는 무능력자.
시골에서 태어나 본인의 능력만으로 난세를 살아남은 가후로서는 동승 같은 무리들을 크게 혐오했다.
‘이미 원소와의 전쟁은 시작됐다.’
이건 그 신호탄이다.
전쟁을 알리는 효시가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