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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형주 (3)
형주를 가장 효율적으로 먹어치울 수 있는 방법.
조비는 눈앞의 비루한 청년에게 물었다.
배운 것 없어 보이는 이 청년이 자신의 마음에 들 정도의 현답(賢答)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지만, 그저 심심풀이 삼아 물어본 것이다.
“형주를 먹어치워? 대체 누구시기에 그런 물음을······.”
서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비를 지키기 위해서 장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군.”
조성과 송헌이 칼을 찬 서서를 향해 의심스럽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태연한 조비의 모습으로 보아하건대 위험인물이라고 파악하진 않았지만, 조비의 앞에서 대뜸 칼을 차고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신분도 알 수 없는 자가 조비의 앞에 있었으니 장수들이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를 본 서서가 혹시나 싶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자환? 조씨 가문?”
물론 조씨(曹氏) 성을 쓰는 자들은 많다.
하지만 갑옷을 두껍게 걸친 장수와 병사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정도의 높은 신분을 가진 자는 매우 적다.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의 조씨 일가들이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겠지.
서서는 연주 조씨 일가들 중에서 지금 형주에 있을 법한 자들을 추려보았다.
단 한 명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만약 그 사람이 맞는다면, ‘조 같은 놈’이라고 말한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자환이라는 것은 혹시······.”
“자(字)다. 본명은 조비다.”
“그럼 나는, 아니 저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내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네 목은 이 정자 아래에 떨어진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만약 다른 귀족가 공자였다면 서서는 능글맞은 모습으로 어영부영 넘기려고 했겠지만, 상대는 형주에서도 악명을 크게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박망현(博望縣). 노양현(魯陽縣). 산도현(山都縣).
조비에 의해 초토화가 된 군현들이다. 유표에게 깊이 충성하여 성채에 병사들을 모으고 항거를 펼쳤다.
결국 세 군현의 현령과 그 일파들이 대거 숙청당하고 말았다.
현령의 식솔 수백 명이 살해당하고, 나머지 일족들은 재산을 빼앗겨 한순간에 노비가 되었다.
지금 세 군현의 마을 어귀에는 저항을 일삼은 현령의 목이 장대에 매달린 상태.
조조군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 말로(末路)를 보여줌으로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 사람은 진짜로 죽일 셈이다!’
사람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자.
서서는 조비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으면서 그를 희대의 냉혈한이라 평가했다.
“말해라.”
형주 지도를 서서에게 넘겼다.
그와 동시에 조비를 지키던 장수들이 더욱 거리를 좁혔다.
도망칠 곳은 없다.
제아무리 날쌘 서서라 할지라도 조조군의 장수들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눈앞의 장수들은 과거 여포군 소속이었던 맹장들이다. 병사들도 제법 많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서서가 조비를 인질로 잡는다고 할지라도 살아나갈 방도는 애초에 없었다.
서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외쳤다.
“우선 유표군의 입지기반을 담당하고 있는 일족은 채씨(蔡氏) 일가와 괴씨(蒯氏) 일가입니다. 형주 사람들은 채씨 가문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유표의 측근 모사들은 죄다 괴씨 일가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벼락출세한 채씨 일가에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형주의 유력호족인 채풍의 명성은 유명하고, 채씨 일가와 외척들도 모두 상당한 거물들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가문의 역사가 짧고, 일가가 대대로 조정에 출사한 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형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크게 딸리는 게 약점이다.
반면 괴씨 일가는 여남원씨 가문보다야 못하지만, 고관대작의 벼슬을 대에 걸쳐서 매번 배출한 명문가로 유명했다. 형주 이외에서 그 명성을 들은 명사들이 많아 모였고, 괴씨 일가는 그들을 선생으로 임명하고 학당을 열어 유교를 숭상하였기에 형주에서는 인자한 성인들로 추앙하고 있었다.
“한쪽은 벼락출세한 부호(富豪). 다른 한쪽은 유교의 성인인가.”
“지금 당장에는 채씨 가문의 영향력이 커 보이겠지만, 인맥도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남형주에 특히 괴씨 가문에 연관된 태수들이 많으니, 세력은 비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두 가문의 분열을 이용하라?”
“예! 유표의 아내인 채부인은 항상 괴씨 가문을 배척하고 있는데다가, 아들 유종을 후계자로 임명하는 문제 때문에 매번 괴월, 괴량 형제와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적절히 이용하기만 해도 크게 세력이 약화될 게 분명합니다.”
물론 괴씨 일가가 갑자기 장남 유기를 따를 일은 없다.
유기는 어릴 적에 어미를 잃고 외척의 힘이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반면 유종은 든든한 외척을 언제나 곁에 두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유종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형주를 먹어치울 수 있는 명확한 답이 되지 않는다.”
조비가 대답했다.
그 말에 서서는 조비를 두고 ‘더럽게 눈치 빠른 인간’이라 생각했다.
두 가문의 대립을 이용하는 방법.
그것은 조비로서도 이미 예측해두고 있던 전략일 것이다. 그렇기에 조비의 마음에 차지 않은 것일 테고.
“군사를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은?”
“크흠!”
그 말에 서서가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본인조차도 놀라울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침음을 삼키며 기다리기를 잠시,
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동을 통일한 소패왕(小覇王)이 아비 손견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강하군(江夏郡)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었다.”
원술의 휘하 군벌이었던 손책이 군사를 이끌고 강동에서 독립.
황제를 참칭한 원술이 멸망할 것을 예견한 손책이 미리 선수를 쳐서 원술로부터 손을 떼게 되었다. 만약 원술의 휘하 군벌로 체류하였다면 원술과 함께 멸망하였으리라.
손책은 매우 적절한 시기에 강동 정벌을 성공함으로써, 원술이 가진 잔존 기반을 흡수하면서 더욱 크게 성장했다. 그리고 그 기반을 전력으로 바꾼 손책은 아비의 원수인 황조를 죽이기 위해 강하군을 공격하며 세력을 떨쳐나갔다.
“손책과 손을 잡으십시오.”
“내가 왜?”
애초에 동맹은 동등한 세력들끼리 맺는 것.
비록 강동을 통일하였다고는 하나, 조조군의 입장에서는 시골 촌구석에서 센 척하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손책은 기세등등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유명하였기에 조조군에 종속되려 하지 않고, 동등한 동맹이 아니고선 절대로 구슬릴 수 없는 자였다. 한나라 13주에서 가장 인구수가 떨어지고 척박하며 문화 형성이 덜 된 미개한 지역을 다스리는 주제에, 하남을 통일한 조조군과 동맹을 맺겠다는 것은 지극히 우스운 일이다.
“손책이 강하를 공격하는 사이, 공자께서는 양양성(襄陽城)이 아닌, 남군(南郡)을 취하십시오.”
손가에게 원수를 갚아주는 대신, 물자를 손책군에 대라고 하십시오.
다혈질에 젊은 혈기가 왕성한 손책은 아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야 가릴 게 없습니다.
북형주의 번성과 양양성을 그대로 두고 남군을 취하는 전략은 매우 위험하다.
유표군의 본대가 언제 성문 밖을 뛰쳐나와서 보급로를 끊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서는 장강을 이용해서 손책군의 배를 빌려 물자를 운송한다면 그 취약한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남군을 취했을 때의 이점은?”
“유표군의 북형주 거점에 운송되는 모든 물자들이 끊어집니다.”
말려 죽이십시오.
서서는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조비 또한 입가를 늘어뜨리며 웃음을 흘렸다.
장강 위의 수성(水城)을 함락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스로 항복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남군의 강릉성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하다.
남군을 점령하면 남형주의 모든 물자들이 끊어진다.
사실상 물자들을 남형주에 국한되어 운용하고 있는 유표군으로선 지지기반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수준의 일이다.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계책에는 수많은 허점이 보인다.”
“그건 장수들의 역할입니다. 전쟁에서 나아가 백 번을 능히 이기는 장수들이라면 남군의 강릉성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전술과 전략이 전쟁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싸워야 하는 것은 장수와 병사들.
그들이 용감하게 목숨을 걸고 싸워주지 않는다면 뛰어난 전술과 전략으로 무장한들,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 말에 조비가 옳다고 여겼다.
“네 이름은 묻겠다.”
“서서. 자는 원직이라 합니다.”
과연.
조비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이름을 듣고서도 끝까지 입을 떠벌릴 수 있는 담력과 용기.
분명 촌구석 범부(凡夫)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죽을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살려달라고 울고 불며 매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서서는 그러지 않았다
죽을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스스로 머리를 굴리며 꾀를 짜냈다.
궤변에 가까운 전술들이었지만 적어도 조비의 머릿속에서는 서서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죽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발악.
그것이 조비의 살의를 물리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을 위기에 놓이면 포기부터 한다. 일부만이 저항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 일부만이 저항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지게 된다.”
네 목숨을 거둘 이유가 없어졌다.
조비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송헌과 조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뽑아든 검을 다시 집어넣었고, 병사들도 뒤로 물러섰다.
조비가 입을 열었다.
“조조군에 들어와라. 원하는 벼슬을 주겠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벼슬을 요구할 경우에는 네 목이 날아간다.
서서는 몇 번인지 모를 죽을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건 네 꾀를 들은 보수다.”
조비가 궤짝을 내밀었다. 수경선생 사마휘에게 주려하였으나 다시 되돌려 받은 금괴가 가득 든 궤짝이었다. 누런 황금이 가득 들은 궤짝을 본 서서의 얼굴이 당혹에 물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를 본 서서가 소리쳤다.
“나를 돈으로 사려는 건가! 날 모욕할 셈이로군!”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도 많은 돈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당장에 먹을 쌀도 구할 수 없었던 서서로서는 황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수경선생, 죄송합니다.’
이 황금을 받지 않으면 저와 어머니는 당장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굶어 죽습니다.
돈에 홀랑 넘어가는 것은 청백한 선비와는 거리가 매우 먼 탐욕이다.
하지만 청백도 그럴 만한 형편이 되는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지, 살인죄라는 전과가 있으면서 형주로 쫓겨나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서서에게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명예였다.
청렴한 명예를 버리고 세속의 영광을 쥐겠다.
서서는 조조군에 임관하겠음을 밝혔다.
형주를 가장 효율적으로 먹어치울 수 있는 방법.
조비는 눈앞의 비루한 청년에게 물었다.
배운 것 없어 보이는 이 청년이 자신의 마음에 들 정도의 현답(賢答)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지만, 그저 심심풀이 삼아 물어본 것이다.
“형주를 먹어치워? 대체 누구시기에 그런 물음을······.”
서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비를 지키기 위해서 장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군.”
조성과 송헌이 칼을 찬 서서를 향해 의심스럽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태연한 조비의 모습으로 보아하건대 위험인물이라고 파악하진 않았지만, 조비의 앞에서 대뜸 칼을 차고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신분도 알 수 없는 자가 조비의 앞에 있었으니 장수들이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를 본 서서가 혹시나 싶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자환? 조씨 가문?”
물론 조씨(曹氏) 성을 쓰는 자들은 많다.
하지만 갑옷을 두껍게 걸친 장수와 병사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정도의 높은 신분을 가진 자는 매우 적다.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의 조씨 일가들이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겠지.
서서는 연주 조씨 일가들 중에서 지금 형주에 있을 법한 자들을 추려보았다.
단 한 명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만약 그 사람이 맞는다면, ‘조 같은 놈’이라고 말한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자환이라는 것은 혹시······.”
“자(字)다. 본명은 조비다.”
“그럼 나는, 아니 저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내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네 목은 이 정자 아래에 떨어진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만약 다른 귀족가 공자였다면 서서는 능글맞은 모습으로 어영부영 넘기려고 했겠지만, 상대는 형주에서도 악명을 크게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박망현(博望縣). 노양현(魯陽縣). 산도현(山都縣).
조비에 의해 초토화가 된 군현들이다. 유표에게 깊이 충성하여 성채에 병사들을 모으고 항거를 펼쳤다.
결국 세 군현의 현령과 그 일파들이 대거 숙청당하고 말았다.
현령의 식솔 수백 명이 살해당하고, 나머지 일족들은 재산을 빼앗겨 한순간에 노비가 되었다.
지금 세 군현의 마을 어귀에는 저항을 일삼은 현령의 목이 장대에 매달린 상태.
조조군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 말로(末路)를 보여줌으로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 사람은 진짜로 죽일 셈이다!’
사람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자.
서서는 조비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으면서 그를 희대의 냉혈한이라 평가했다.
“말해라.”
형주 지도를 서서에게 넘겼다.
그와 동시에 조비를 지키던 장수들이 더욱 거리를 좁혔다.
도망칠 곳은 없다.
제아무리 날쌘 서서라 할지라도 조조군의 장수들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눈앞의 장수들은 과거 여포군 소속이었던 맹장들이다. 병사들도 제법 많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서서가 조비를 인질로 잡는다고 할지라도 살아나갈 방도는 애초에 없었다.
서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외쳤다.
“우선 유표군의 입지기반을 담당하고 있는 일족은 채씨(蔡氏) 일가와 괴씨(蒯氏) 일가입니다. 형주 사람들은 채씨 가문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유표의 측근 모사들은 죄다 괴씨 일가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벼락출세한 채씨 일가에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형주의 유력호족인 채풍의 명성은 유명하고, 채씨 일가와 외척들도 모두 상당한 거물들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가문의 역사가 짧고, 일가가 대대로 조정에 출사한 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형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크게 딸리는 게 약점이다.
반면 괴씨 일가는 여남원씨 가문보다야 못하지만, 고관대작의 벼슬을 대에 걸쳐서 매번 배출한 명문가로 유명했다. 형주 이외에서 그 명성을 들은 명사들이 많아 모였고, 괴씨 일가는 그들을 선생으로 임명하고 학당을 열어 유교를 숭상하였기에 형주에서는 인자한 성인들로 추앙하고 있었다.
“한쪽은 벼락출세한 부호(富豪). 다른 한쪽은 유교의 성인인가.”
“지금 당장에는 채씨 가문의 영향력이 커 보이겠지만, 인맥도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남형주에 특히 괴씨 가문에 연관된 태수들이 많으니, 세력은 비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두 가문의 분열을 이용하라?”
“예! 유표의 아내인 채부인은 항상 괴씨 가문을 배척하고 있는데다가, 아들 유종을 후계자로 임명하는 문제 때문에 매번 괴월, 괴량 형제와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적절히 이용하기만 해도 크게 세력이 약화될 게 분명합니다.”
물론 괴씨 일가가 갑자기 장남 유기를 따를 일은 없다.
유기는 어릴 적에 어미를 잃고 외척의 힘이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반면 유종은 든든한 외척을 언제나 곁에 두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유종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형주를 먹어치울 수 있는 명확한 답이 되지 않는다.”
조비가 대답했다.
그 말에 서서는 조비를 두고 ‘더럽게 눈치 빠른 인간’이라 생각했다.
두 가문의 대립을 이용하는 방법.
그것은 조비로서도 이미 예측해두고 있던 전략일 것이다. 그렇기에 조비의 마음에 차지 않은 것일 테고.
“군사를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은?”
“크흠!”
그 말에 서서가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본인조차도 놀라울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침음을 삼키며 기다리기를 잠시,
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동을 통일한 소패왕(小覇王)이 아비 손견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강하군(江夏郡)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었다.”
원술의 휘하 군벌이었던 손책이 군사를 이끌고 강동에서 독립.
황제를 참칭한 원술이 멸망할 것을 예견한 손책이 미리 선수를 쳐서 원술로부터 손을 떼게 되었다. 만약 원술의 휘하 군벌로 체류하였다면 원술과 함께 멸망하였으리라.
손책은 매우 적절한 시기에 강동 정벌을 성공함으로써, 원술이 가진 잔존 기반을 흡수하면서 더욱 크게 성장했다. 그리고 그 기반을 전력으로 바꾼 손책은 아비의 원수인 황조를 죽이기 위해 강하군을 공격하며 세력을 떨쳐나갔다.
“손책과 손을 잡으십시오.”
“내가 왜?”
애초에 동맹은 동등한 세력들끼리 맺는 것.
비록 강동을 통일하였다고는 하나, 조조군의 입장에서는 시골 촌구석에서 센 척하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손책은 기세등등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유명하였기에 조조군에 종속되려 하지 않고, 동등한 동맹이 아니고선 절대로 구슬릴 수 없는 자였다. 한나라 13주에서 가장 인구수가 떨어지고 척박하며 문화 형성이 덜 된 미개한 지역을 다스리는 주제에, 하남을 통일한 조조군과 동맹을 맺겠다는 것은 지극히 우스운 일이다.
“손책이 강하를 공격하는 사이, 공자께서는 양양성(襄陽城)이 아닌, 남군(南郡)을 취하십시오.”
손가에게 원수를 갚아주는 대신, 물자를 손책군에 대라고 하십시오.
다혈질에 젊은 혈기가 왕성한 손책은 아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야 가릴 게 없습니다.
북형주의 번성과 양양성을 그대로 두고 남군을 취하는 전략은 매우 위험하다.
유표군의 본대가 언제 성문 밖을 뛰쳐나와서 보급로를 끊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서는 장강을 이용해서 손책군의 배를 빌려 물자를 운송한다면 그 취약한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남군을 취했을 때의 이점은?”
“유표군의 북형주 거점에 운송되는 모든 물자들이 끊어집니다.”
말려 죽이십시오.
서서는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조비 또한 입가를 늘어뜨리며 웃음을 흘렸다.
장강 위의 수성(水城)을 함락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스로 항복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남군의 강릉성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하다.
남군을 점령하면 남형주의 모든 물자들이 끊어진다.
사실상 물자들을 남형주에 국한되어 운용하고 있는 유표군으로선 지지기반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수준의 일이다.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계책에는 수많은 허점이 보인다.”
“그건 장수들의 역할입니다. 전쟁에서 나아가 백 번을 능히 이기는 장수들이라면 남군의 강릉성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전술과 전략이 전쟁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싸워야 하는 것은 장수와 병사들.
그들이 용감하게 목숨을 걸고 싸워주지 않는다면 뛰어난 전술과 전략으로 무장한들,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 말에 조비가 옳다고 여겼다.
“네 이름은 묻겠다.”
“서서. 자는 원직이라 합니다.”
과연.
조비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이름을 듣고서도 끝까지 입을 떠벌릴 수 있는 담력과 용기.
분명 촌구석 범부(凡夫)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죽을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살려달라고 울고 불며 매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서서는 그러지 않았다
죽을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스스로 머리를 굴리며 꾀를 짜냈다.
궤변에 가까운 전술들이었지만 적어도 조비의 머릿속에서는 서서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죽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발악.
그것이 조비의 살의를 물리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을 위기에 놓이면 포기부터 한다. 일부만이 저항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 일부만이 저항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지게 된다.”
네 목숨을 거둘 이유가 없어졌다.
조비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송헌과 조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뽑아든 검을 다시 집어넣었고, 병사들도 뒤로 물러섰다.
조비가 입을 열었다.
“조조군에 들어와라. 원하는 벼슬을 주겠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벼슬을 요구할 경우에는 네 목이 날아간다.
서서는 몇 번인지 모를 죽을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건 네 꾀를 들은 보수다.”
조비가 궤짝을 내밀었다. 수경선생 사마휘에게 주려하였으나 다시 되돌려 받은 금괴가 가득 든 궤짝이었다. 누런 황금이 가득 들은 궤짝을 본 서서의 얼굴이 당혹에 물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를 본 서서가 소리쳤다.
“나를 돈으로 사려는 건가! 날 모욕할 셈이로군!”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도 많은 돈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당장에 먹을 쌀도 구할 수 없었던 서서로서는 황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수경선생, 죄송합니다.’
이 황금을 받지 않으면 저와 어머니는 당장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굶어 죽습니다.
돈에 홀랑 넘어가는 것은 청백한 선비와는 거리가 매우 먼 탐욕이다.
하지만 청백도 그럴 만한 형편이 되는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지, 살인죄라는 전과가 있으면서 형주로 쫓겨나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서서에게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명예였다.
청렴한 명예를 버리고 세속의 영광을 쥐겠다.
서서는 조조군에 임관하겠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