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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형주 (1)



“제까짓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사마휘가 포권을 취하며 조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비는 신야현 일대를 모두 장악하고 나서 수경선생 사마휘를 수소문하고 나섰다. 명성이 크게 알려지진 않았는지 수색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비로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이 혹시 조조군이 해코지라도 할까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수색에 난항을 겪다가, 대대적으로 수경선생을 중용하겠다는 격서를 배포하고 나서야 입을 연 것이다.
조비는 그의 거처를 찾아가 공손하게 예를 갖추면서 조정으로 출사할 것을 권유했다.

‘이런 시골 촌부에게 도움이 되어 달라 청하다니.’
여령기가 사마휘의 몹시 낡은 의복과 꾀죄죄한 모습을 보고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환공이 관중(管仲)을 등용하려는 것도 아니고, 형주 사람도 모를 정도의 깡촌에 애써 찾아와 등용하려는 이유가 있을까. 여령기로서는 매번 조비가 머무는 곳에 찾아와 등용을 청하는 문사들을 모두 제쳐두고서 이 촌부를 얻으려는 조비의 행동에 매우 기이하다고 여겼다.
하긴 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만.
사마휘에게 원하는 벼슬이 있다면 뭐든지 주겠다는 말을 하는 조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유표의 등용 제안을 거부하였다고 들었습니다만.”
“허허허. 저 따위에게 어울리는 벼슬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짐만 될 뿐이지요. 형주의 수많은 문사들이 모인 자리에 이 늙은이가 끼어봤자 폐만 될 겝니다.”
그렇다면 뭘 원하십니까.
조비가 대뜸 물었다.

혓바닥 한 번 엄청 기십니다.
이제 서로 인사말도 다 끝난 것 같으니 본론 좀 꺼냅시다.
조비가 계속해서 무언의 압박을 건넸지만, 사마휘는 매번 말을 돌리면서 본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피해가고 있었다.
“부귀영화를 원했다면 이 깡촌에서 살지도 않았겠지요.”
조비가 가져온 금궤 짝에 손을 얹으며 사마휘가 말했다.
사마휘의 아내가 누런 황금이 가득 들은 궤짝을 보고는 탐욕을 어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반면, 사마휘는 돌덩이마냥 여기면서 사양하고 나섰다. 그 뒤에 있던 아내의 눈빛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 귀한 황금을 사양하다니.
저 황금이라면 분명 현령의 자리는 물론 태수의 자리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마휘의 명성이라면 어느 세력이든 간에 귀하게 대접하겠지만, 그 정도로 조비가 가져온 금궤는 상상을 초월하는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다.
“선생께서 문하생들을 거두시어 가르침을 주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아직 소인은 그럴 뜻이 없어 문하생이 없습니다만?”
그 말에 사마휘의 부인 또한 사실이라 답했다.
조비는 자신이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제갈량은 물론 서서와 방통까지 사마휘의 문하생이 되기 전에 왔음을 인지하였다.
너무 서둘렀다.
아직 관도대전도 시작하기 이전이거늘, 시기를 따지고 본다면 아직 제갈량은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문하생이 되었을 리가 없겠지. 그럼에도 조비가 찾아온 이유는 그만큼 제갈량이라는 존재를 크게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뒤의 처자께서는 공자의 배필이시온지?”
여자가, 그것도 절세의 미녀가 갑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흔한 일은 아닌 터라 궁금증을 느낀 모양이다.
사마휘의 물음에 여령기는 절대로 아니라며 빽 소리를 질렀다.
어디를 가든 조비의 아내라고 오해를 받으니 그 답답함과 짜증이 확 몰려온 탓에 내지른 외침이었다.
“이 늙은이도 참! 집안일에 관련된 걸 대뜸 물어보고!”
그것도 요즘 젊은이한테!
부인이 사마휘의 등을 찰싹 때리며 주의를 줬다.
“이거 실례. 제가 잠시 노망이 든 모양입니다.”
“예, 그렇게 보이네요.”
아직 벽에 똥칠은 하지 않으신 것 같지만요.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기는 조비와는 다르게 앙심을 품고 있었는지 여령기가 독설을 날렸다.
“방해될 거면 나가.”
“진짜 나갈까요?”
“아니다. 그냥 옆에 있어라.”

수경선생의 저택으로 오기 이전,
갑옷을 입은 여령기에게 치근덕거리던 주변 남정네들이 모두 그녀의 주먹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본 조비로선 여령기를 함부로 바깥에 내보낼 수도 없었다.
칼을 들지도 않았는데도 맨손으로 덩치 큰 남정네들을 때려눕히는 여령기는 그야말로 멧돼지 그 자체였다. 아비 여포를 어찌나 닮았는지 장정들을 손으로 집어던지질 않나, 통나무를 휘두르는데도 조금도 지치지 않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주 찾아와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조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사마휘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순순히 나서려는 조비의 모습에 사마휘의 부인은 애가 타기 시작했다.
늙은이가 드디어 출세하여 빛을 보는가 싶었더니, 유표의 사자가 왔을 때처럼 벼슬을 한사코 거부해버렸다. 원하는 관직이 있다면 뭐든지 주겠다는 말에도 사마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유표의 수하 문사도 아니고 황제가 기거하는 허도의 황실 관료를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건넸다.
한낱 시골의 촌부 늙은이를 황실 관료에 임명하겠다는 조비의 제안은 매우 파격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마휘의 마음은 굳건했다. 결국 애가 타는 것은 그의 부인이었다.
“그럼 이 황금도 들고 가시지요.”
“아닙니다. 밥을 얻어먹고, 시간을 허비하게 하였으니 이건 그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 황금들은 촌부의 집에 있기에는 과분한 물건이 아니옵니까?”

저 늙은이에게 황금을 죄다 준다고?
그냥 공짜로?
옆에 있는 여령기로선 누런 황금들을 그냥 촌부에게 줘버리려는 조비의 행동은 미치광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황금이 흙 파기만 하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귀한 순도 높은 황금을 모두 넘기겠다는 건가. 그것도 임관을 거부한 늙은이에게.
“이 황금은 두 분의 혼례 비용에 대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혼례 따윈 없고 부부도 아냐!”
여령기가 소리쳤다.
앙칼진 고양이마냥 소리치는 그녀의 행동에는 분노가 담겨져 있었다.
이 늙은이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불쾌한 말을 지껄였기 때문이다.


* * *


북형주 남양군의 37현을 모두 장악한 조비는 왕이나 다름없는 신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형주는 지리적으로 사예주의 남쪽 부근에 붙어 있는데다가, 사예주의 난리를 피해서 온 사람들이 워낙에 많았으므로 정치와 계략에 능한 명사들도 많았다. 자연 속에 은거하며 살아가던 학자들이 조비가 인재를 널리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죄다 달려왔지만, 조비의 마음에 드는 인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경선생의 등용에 실패한 탓일까.
다른 인간들은 그저 벼슬을 구걸하기 위해 온 거지처럼 보였다.
‘제갈량이 문하생으로 있었다면.’
당연히 등용을 청하였을 것이다.
나이가 어려 분별력이 없을 때일수록 등용하기 쉽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황금, 관직, 미녀들을 원한다면 뭐든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마휘의 집에서는 제갈량은 물론 방통과 서서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일렀다.
조비는 자신이 제갈량의 존재를 크게 두려워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했다.
“그 얼굴만이라도 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누가 보면 그 제갈량이라는 사람이 항아(姮娥)에 필적하는 여신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요.”
연모하던 여인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는 이유가 뭐죠? 여령기가 옆에서 물었다.

반면 조비는 다른 이유에서 제갈량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만약 제갈량의 등용이 어려웠다면 차라리 사마휘의 집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의 소재는 물론 방통과 서서의 거처도 불분명하였으므로, 우선 그들이 스스로 사마휘의 문하생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스스로 찾아오게 될 인재들이다.
애써 사마휘를 먼저 죽여서 인재들의 소재를 놓칠 수는 없다.
우선 조비는 사마휘가 기거하는 마을에 자주 관리들을 보내어 그에게 문하생이 생기는지를 염탐하게 하였다.
등용하거나, 죽이거나.
형주 제갈량에 관한 일은 우선 뒤로 미루어야 할 것 같았다. 너무 시기가 일렀던 탓이다.

“두 분께서 나가 계시는 동안에는 별다른 변고가 없었습니다.”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장료가 보고를 올렸다.
심드렁하게 보고를 받던 조비와는 달리, 보고를 올리던 장료의 얼굴은 착잡하기가 그지없었다.
요 근래에 들어서 여령기가 자주 조비와 함께 다니고 있으니, 그녀를 딸처럼 여기는 장료로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보아하니 여령기도 나름 조비에게 호감을 느끼는 듯하였다.
아비 여포의 원수라고는 하나, 조비는 그녀를 무장으로 대우하면서 호위장에 임명하였다. 여자가 무슨 무장이냐며 폄하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장으로 중용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 배려심에서 어쩌면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조군을 매우 미워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조조의 아들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장료는 여령기가 원수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형주에는 뛰어난 문사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관직을 구하는 명사들이 줄을 지어 서있으니, 그들을 만나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관직을 구하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온 명사들.
그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명단들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 명단이 매우 길어서 보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그를 살펴보던 조비는 자신이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음에 탄식했다.

벼슬만 축내는 놈들 같으니라고.
물론 그들이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갈량을 추적하기 위해 나선 조비의 입장에서는 그저 촌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제갈량 한 명을 얻을 수 있다면, 지금 담장 밖에서 벼슬을 구걸하는 문사들 1백 명을 내쫓아도 좋았다. 그 정도로 제갈량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왜 유표군에 임관하지 않았지?”
문득 궁금증이 들어 물었다.
“이미 채씨 일족들이 장악하고 있어, 일족과 관련되지 않은 자들에 한해서는 벼슬길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연줄이 없으면 출세도 못하는 세상이군.”
조조군에 물자를 제공하고 있던 호족들이 자신의 자식을 볼모로 바치면서까지 출세시키려는 것을 본 조비가 혀를 찼다.
자신의 자식을 볼모로 보내면서까지 아득바득 출세하려 들 줄이야.
하긴 지방의 무지렁뱅이로 살 바에야, 역사서에 이름 한 글자라도 적히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일 테니까.
“가후는 어디 있는가?”
“지금 명사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장료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