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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후환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 (4)
흔히 씨족들끼리 같은 마을에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경우가 많았다.
원씨 일가가 예주(豫州) 여남군(汝南郡), 조씨 일가가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이었다면 제갈씨들이 모여 사는 곳은 서주(徐州) 낭야국(琅邪國)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조비는 훗날 촉한의 승상이 되는 제갈량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몸소 양도현(陽都縣)이라는 이름의 깡촌에까지 오게 되었다.
“우, 우리를 다 죽일 셈인겨!”
“제일가는 미씨 일가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잖여.”
조조군이 깃발을 나부끼면서 마을을 포위했다.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환경. 제갈씨들은 당장에라도 자신들을 도륙낼 조조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주에서 제일가는 부호(富豪)였던 미씨 일가들이 멸족했다.
일가의 장이었던 미축은 그 동생 미방과 함께 유비를 따라 도망하였다고는 하나, 그를 제외한 모든 식솔들이 처형된 셈이다. 족히 수백 명 이상의 인원들이 도륙 당하였으니 서주 백성들이 얼마나 조조군을 두려워할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제갈량, 아니 제갈현이라는 자를 아는가?”
조비가 물었다.
그 말에 제갈씨의 족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떠올랐는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예장군 태수로 부임받아서 떠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호,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겝니까?!
제갈씨들이 특히 두려움에 떨었다.
제갈씨 일족 중에서도 현명하고 어질기로 유명한 제갈현이 설마 조조군에 밉보였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원술의 명령으로 예장군 태수가 되었으니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역적과 한통속이라고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었다.
“잘못은 아니다. 그저 모셔가기 위해서 온 것이지.”
허탕을 친 모양이군.
제갈현이 예장군 태수에 부임하면서 두 명의 조카들을 데려갔다는 말을 들은 조비가 중얼거렸다.
“제갈현 어른의 조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무튼 어른의 형님이신 태산승(泰山丞)께 세 명의 자식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연주 태산국(泰山國)의 지방관리였던 제갈규가 바로 제갈근과 제갈량, 그리고 제갈균의 아버지다. 세 아들들이 어렸을 적에 이미 요절한 뒤였고, 그 동생인 제갈현이 세 조카들을 키웠다고 한다.
제갈근은 양주로 이사하였고, 나머지 두 조카들은 숙부를 따라 나섰다.
결국 조비가 찾으려 했던 소재들은 모두 서주를 떠났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헛걸음질하였다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낼 법도 했지만, 조비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제갈씨들을 자신의 발밑에 두고자 하였다.
“그럼 제갈현은 예장군에 있는 건가? 원술군이 이미 패망하였으니, 갈 곳도 없을 터인데.”
“형주로 갔다는 이야기를 문득 들었습니다.”
“형주라. 그렇군, 벌써 그 때인가.”
제갈량과 제갈균이 수경선생(水鏡先生)이라 불리는 사마휘의 문하생이 되어 가르침을 받을 때다.
사마휘는 형주의 문사(文士)로 이름이 높은 명인이었으니, 분명 제갈 형제들은 형주에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형주에 있다고 해서 완전히 소재를 파악한 건 아니다.
형주는 매우 드넓은 영토였고, 심지어 북형주만 따로 골라서 살펴본다고 할지라도 그 수색범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너희들 중에 몇을 골라서 이 지역의 현령(縣令)과 승(丞), 위(尉)로 임명하겠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내게 충성심을 바칠 테냐?”
시골 출신이라고 해도, 제갈씨 일족들은 특히 재사(才士)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그렇기에 지방 관리로 갑작스럽게 임명하더라도 문제가 될 건 없었고, 오히려 서주의 유명한 명사 가문을 끌어안음으로서 서주인들의 민심을 장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 그럼 당연합죠! 충성을 바치겠습니다요!”
제갈씨들이 모두 넙죽 엎드리며 조비에게 복종하였다.
촌구석에 사는 자신들을 지방관리로 임명시켜준 것은 물론, 고향땅을 직접 다스리게 해주었으므로 이보다 더한 은혜는 없었다. 미씨 일족처럼 멸족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에 떨었지만, 오히려 조조군의 등장은 제갈씨들에게 전화위복이 되어 찾아왔다.
“형주의 제갈현에게 소식이 닿는다면 전해라. 시급히 가문에 중요한 일을 다뤄야 하니, 서둘러 돌아오라고.”
예장태수 제갈현이 조정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라 여긴 조비는, 제갈씨의 이름을 빌려서 그에게 귀환령을 내릴 방침이었다.
서주 대학살을 일으킨 조조군은 악명으로 유명하다.
또한 조정의 이름을 빌리더라도 승상 조조가 이미 조정을 장악하였음을 모르는 자가 없었으니,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제갈씨 일가가 직접 사람을 보내어 형주에 있는 제갈현과 그 조카들을 부르는 일뿐이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상관은 없다.
매우 우수한 제갈씨들을 모두 복종시켰으니까. 그들이 서주 관리로 존재하는 한, 훌륭하게 군현을 다스려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훗날 촉한의 승상이 될 제갈량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쾌재를 부를 일이 되겠지. 유비에게서 부흥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물론,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 널리 불리게 될 명재상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니까.
“반드시 제갈현 어른을 불러올리겠습니다요!”
제갈씨들도 바보는 아니다.
어째서 자신들을 갑작스럽게 지방직으로 임명시켰는지, 왜 조비가 직접 이 시골에 왔는지 그 이유를 모를 턱이 없었다. 보아하니 제갈현이 크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닌 모양이고, 그 명성을 듣고 등용을 하러 온 것이라고 여겼다.
“충성에는 포상을, 배신에는 죽음을. 너희 제갈씨들은 내가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끝까지 나를 섬겨야 할 것이다.”
그 말에 제갈씨들은 가문의 모든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노라고 다짐했다.
* * *
“허도로 회군한다!”
여포군을 토벌하고 서주를 모두 손에 넣은 조조군이 회군을 결정하였다.
서주는 진규와 진등 부자에게 맡기도록 하였다.
하비태수로 임명된 차주와 낭야승 유대 또한 남겼으니 서주의 반란은 걱정할 게 없었다.
“설마 이렇게 되다니.”
말을 타고 허도로 향하던 여령기가 중얼거렸다.
설마 조조군의 장수가 될 줄이야.
여령기는 조조군 내부에서 신분이 매우 곤란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조비의 호위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디를 믿고서 호위장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직을 맡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조를 비롯한 조조군 중진들에게는 ‘계집에게 관심이 없는 척을 하더니, 역시 너도 남자구나.’라는 취급을 받고 있었다.
전쟁터를 비롯하여 처소에까지 부르는 호위장에 여령기를 임명시켰다는 말은 곧 밤놀이 상대를 맡겼다고도 오해할 수 있었다. 조비로선 여령기를 가까이 함으로서 전 여포군 장수들에게 신임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지만, 주변인들에게는 그것이 남녀 간의 문제로 보인 모양이다.
“어째서 저를 호위장에 임명한 거죠?”
음탕한 짓을 하려거든, 저도 나름대로 저항할 겁니다.
여령기가 독기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조비를 쏘아보았다. 반면 조비는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나를 죽이지 못한다.”
“무슨 근거로요? 조조의 아들이라고 칼날이 목에 박히지 않나요?”
그 말에 조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나도 칼에 찔리면 죽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
내가 바로 너희 어머니를 포로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비의 말에 여령기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여령기는 절대로 개인적인 복수를 이루고자 자신의 어미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효를 무시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 간의 정이 너무 강한 까닭에, 설령 아비를 죽인 조조가 눈앞에 보인다고 할지라도 분한 마음을 품고 끝까지 고개를 숙이며 지낼 성격이었다.
조조와 조비를 죽이고 어머니 엄씨를 대동하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불가능하다.
혼자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마당에, 무예도 모르고 몸이 굼뜬 아녀자를 데리고 어떻게 도망친단 말인가?
“무장으로 살고 싶다는 제안을 받아들여서 호위장에 임명하였는데 무슨 불만인가?”
일반 무장으로 임명했다면 오히려 곤란해졌을 것이다.
여인의 명령에 병사들이 따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조비는 자신의 안위를 담당하는 호위장에 임명하여 조조군의 장수로서 무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준 셈이다.
‘뭐, 전쟁에 첩을 데리고 나선 음탕한 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겠다만.’
어느 군대도 여성을 데리고 전쟁에 참전하진 않는다.
물론 총사령관이 자신이 아끼는 애첩이나 기생들을 대동하고 전쟁에 참전하였다는 일화가 존재하기는 하나, 그런 경우에는 모두 패전을 경험하는 등으로 끝났다.
일심단결 하여도 모자랄 마당에, 여자들을 옆구리에 끼고서 시시덕거리니 어떻게 적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점에 있어선 안심해도 좋았다.
만약 조비가 품에 안으려고 한다면, 여령기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에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분이서 잘 어울리십니다!”
장패는 조비와 여령기가 잘 되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여령기로부터 찢어죽일 것 같은 사나운 눈빛을 받아야 했다.
여령기에게 있어서 조비는 최악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아비를 죽인 조조의 아들이었으며,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억지로 조조군에 임관시켰다. 또한 가족들의 안위를 이용해서 여포군 무장들을 조종하고 있으니, 이 간사한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 자체가 무리에 가까웠다.
벼락에 맞아 죽더라도 그럴 일은 없다.
여령기가 딱 선을 그었다.
“너희는 모두 내 부하 장수들이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용사들을 부하로 부리게 된 입장에서 매우 든든하다고 생각한다.”
여령기에게 있어선 조비가 사탕발림을 한다고 여겨졌지만, 조비는 진심을 담아서 여포군 무장이었던 자들에게 찬사를 건네고 있었다.
서주 정벌을 통해서 뛰어난 무장들을 얻게 된 것은 매우 큰 행운이다.
원 역사 속에서도 팔건장들이 조조군에 협력하게 되나, 고순은 무장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서 주군 여포와 함께 처형장에서 죽는다.
하지만 고순은 지금 조비의 부하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순과 함께 용감무쌍한 함진영(陷陣營)을 모두 손에 넣었으므로, 조비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없었다.
매번 싸울 때마다 격파하지 못하는 적이 없다.
용맹하기로 유명한 여포군 군단에서도 가장 유명한 정예부대.
그들은 모두 조비의 명령을 받고 있었으며, 온전한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여령기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길 거부했고, 고순과 장료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다른 팔건장들은 모두 조비에게 충성심을 바치고 있었기에, 우렁찬 대답으로 충성을 표현하였다.
모시게 된 새로운 주군은 조조의 장남이다.
이대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분명 조조의 뒤를 물려받을 후계자의 총애를 받을 수 있으리라. 들어보니 조조의 아들 중에서도 조비가 특출하게 뛰어나다고 하니, 그가 조조의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될 것임은 분명했다.
흔히 씨족들끼리 같은 마을에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경우가 많았다.
원씨 일가가 예주(豫州) 여남군(汝南郡), 조씨 일가가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이었다면 제갈씨들이 모여 사는 곳은 서주(徐州) 낭야국(琅邪國)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조비는 훗날 촉한의 승상이 되는 제갈량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몸소 양도현(陽都縣)이라는 이름의 깡촌에까지 오게 되었다.
“우, 우리를 다 죽일 셈인겨!”
“제일가는 미씨 일가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잖여.”
조조군이 깃발을 나부끼면서 마을을 포위했다.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환경. 제갈씨들은 당장에라도 자신들을 도륙낼 조조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주에서 제일가는 부호(富豪)였던 미씨 일가들이 멸족했다.
일가의 장이었던 미축은 그 동생 미방과 함께 유비를 따라 도망하였다고는 하나, 그를 제외한 모든 식솔들이 처형된 셈이다. 족히 수백 명 이상의 인원들이 도륙 당하였으니 서주 백성들이 얼마나 조조군을 두려워할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제갈량, 아니 제갈현이라는 자를 아는가?”
조비가 물었다.
그 말에 제갈씨의 족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떠올랐는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예장군 태수로 부임받아서 떠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호,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겝니까?!
제갈씨들이 특히 두려움에 떨었다.
제갈씨 일족 중에서도 현명하고 어질기로 유명한 제갈현이 설마 조조군에 밉보였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원술의 명령으로 예장군 태수가 되었으니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역적과 한통속이라고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었다.
“잘못은 아니다. 그저 모셔가기 위해서 온 것이지.”
허탕을 친 모양이군.
제갈현이 예장군 태수에 부임하면서 두 명의 조카들을 데려갔다는 말을 들은 조비가 중얼거렸다.
“제갈현 어른의 조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무튼 어른의 형님이신 태산승(泰山丞)께 세 명의 자식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연주 태산국(泰山國)의 지방관리였던 제갈규가 바로 제갈근과 제갈량, 그리고 제갈균의 아버지다. 세 아들들이 어렸을 적에 이미 요절한 뒤였고, 그 동생인 제갈현이 세 조카들을 키웠다고 한다.
제갈근은 양주로 이사하였고, 나머지 두 조카들은 숙부를 따라 나섰다.
결국 조비가 찾으려 했던 소재들은 모두 서주를 떠났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헛걸음질하였다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낼 법도 했지만, 조비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제갈씨들을 자신의 발밑에 두고자 하였다.
“그럼 제갈현은 예장군에 있는 건가? 원술군이 이미 패망하였으니, 갈 곳도 없을 터인데.”
“형주로 갔다는 이야기를 문득 들었습니다.”
“형주라. 그렇군, 벌써 그 때인가.”
제갈량과 제갈균이 수경선생(水鏡先生)이라 불리는 사마휘의 문하생이 되어 가르침을 받을 때다.
사마휘는 형주의 문사(文士)로 이름이 높은 명인이었으니, 분명 제갈 형제들은 형주에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형주에 있다고 해서 완전히 소재를 파악한 건 아니다.
형주는 매우 드넓은 영토였고, 심지어 북형주만 따로 골라서 살펴본다고 할지라도 그 수색범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너희들 중에 몇을 골라서 이 지역의 현령(縣令)과 승(丞), 위(尉)로 임명하겠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내게 충성심을 바칠 테냐?”
시골 출신이라고 해도, 제갈씨 일족들은 특히 재사(才士)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그렇기에 지방 관리로 갑작스럽게 임명하더라도 문제가 될 건 없었고, 오히려 서주의 유명한 명사 가문을 끌어안음으로서 서주인들의 민심을 장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 그럼 당연합죠! 충성을 바치겠습니다요!”
제갈씨들이 모두 넙죽 엎드리며 조비에게 복종하였다.
촌구석에 사는 자신들을 지방관리로 임명시켜준 것은 물론, 고향땅을 직접 다스리게 해주었으므로 이보다 더한 은혜는 없었다. 미씨 일족처럼 멸족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에 떨었지만, 오히려 조조군의 등장은 제갈씨들에게 전화위복이 되어 찾아왔다.
“형주의 제갈현에게 소식이 닿는다면 전해라. 시급히 가문에 중요한 일을 다뤄야 하니, 서둘러 돌아오라고.”
예장태수 제갈현이 조정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라 여긴 조비는, 제갈씨의 이름을 빌려서 그에게 귀환령을 내릴 방침이었다.
서주 대학살을 일으킨 조조군은 악명으로 유명하다.
또한 조정의 이름을 빌리더라도 승상 조조가 이미 조정을 장악하였음을 모르는 자가 없었으니,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제갈씨 일가가 직접 사람을 보내어 형주에 있는 제갈현과 그 조카들을 부르는 일뿐이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상관은 없다.
매우 우수한 제갈씨들을 모두 복종시켰으니까. 그들이 서주 관리로 존재하는 한, 훌륭하게 군현을 다스려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훗날 촉한의 승상이 될 제갈량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쾌재를 부를 일이 되겠지. 유비에게서 부흥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물론,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 널리 불리게 될 명재상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니까.
“반드시 제갈현 어른을 불러올리겠습니다요!”
제갈씨들도 바보는 아니다.
어째서 자신들을 갑작스럽게 지방직으로 임명시켰는지, 왜 조비가 직접 이 시골에 왔는지 그 이유를 모를 턱이 없었다. 보아하니 제갈현이 크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닌 모양이고, 그 명성을 듣고 등용을 하러 온 것이라고 여겼다.
“충성에는 포상을, 배신에는 죽음을. 너희 제갈씨들은 내가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끝까지 나를 섬겨야 할 것이다.”
그 말에 제갈씨들은 가문의 모든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노라고 다짐했다.
* * *
“허도로 회군한다!”
여포군을 토벌하고 서주를 모두 손에 넣은 조조군이 회군을 결정하였다.
서주는 진규와 진등 부자에게 맡기도록 하였다.
하비태수로 임명된 차주와 낭야승 유대 또한 남겼으니 서주의 반란은 걱정할 게 없었다.
“설마 이렇게 되다니.”
말을 타고 허도로 향하던 여령기가 중얼거렸다.
설마 조조군의 장수가 될 줄이야.
여령기는 조조군 내부에서 신분이 매우 곤란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조비의 호위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디를 믿고서 호위장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직을 맡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조를 비롯한 조조군 중진들에게는 ‘계집에게 관심이 없는 척을 하더니, 역시 너도 남자구나.’라는 취급을 받고 있었다.
전쟁터를 비롯하여 처소에까지 부르는 호위장에 여령기를 임명시켰다는 말은 곧 밤놀이 상대를 맡겼다고도 오해할 수 있었다. 조비로선 여령기를 가까이 함으로서 전 여포군 장수들에게 신임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지만, 주변인들에게는 그것이 남녀 간의 문제로 보인 모양이다.
“어째서 저를 호위장에 임명한 거죠?”
음탕한 짓을 하려거든, 저도 나름대로 저항할 겁니다.
여령기가 독기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조비를 쏘아보았다. 반면 조비는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나를 죽이지 못한다.”
“무슨 근거로요? 조조의 아들이라고 칼날이 목에 박히지 않나요?”
그 말에 조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나도 칼에 찔리면 죽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
내가 바로 너희 어머니를 포로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비의 말에 여령기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여령기는 절대로 개인적인 복수를 이루고자 자신의 어미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효를 무시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 간의 정이 너무 강한 까닭에, 설령 아비를 죽인 조조가 눈앞에 보인다고 할지라도 분한 마음을 품고 끝까지 고개를 숙이며 지낼 성격이었다.
조조와 조비를 죽이고 어머니 엄씨를 대동하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불가능하다.
혼자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마당에, 무예도 모르고 몸이 굼뜬 아녀자를 데리고 어떻게 도망친단 말인가?
“무장으로 살고 싶다는 제안을 받아들여서 호위장에 임명하였는데 무슨 불만인가?”
일반 무장으로 임명했다면 오히려 곤란해졌을 것이다.
여인의 명령에 병사들이 따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조비는 자신의 안위를 담당하는 호위장에 임명하여 조조군의 장수로서 무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준 셈이다.
‘뭐, 전쟁에 첩을 데리고 나선 음탕한 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겠다만.’
어느 군대도 여성을 데리고 전쟁에 참전하진 않는다.
물론 총사령관이 자신이 아끼는 애첩이나 기생들을 대동하고 전쟁에 참전하였다는 일화가 존재하기는 하나, 그런 경우에는 모두 패전을 경험하는 등으로 끝났다.
일심단결 하여도 모자랄 마당에, 여자들을 옆구리에 끼고서 시시덕거리니 어떻게 적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점에 있어선 안심해도 좋았다.
만약 조비가 품에 안으려고 한다면, 여령기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에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분이서 잘 어울리십니다!”
장패는 조비와 여령기가 잘 되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여령기로부터 찢어죽일 것 같은 사나운 눈빛을 받아야 했다.
여령기에게 있어서 조비는 최악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아비를 죽인 조조의 아들이었으며,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억지로 조조군에 임관시켰다. 또한 가족들의 안위를 이용해서 여포군 무장들을 조종하고 있으니, 이 간사한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 자체가 무리에 가까웠다.
벼락에 맞아 죽더라도 그럴 일은 없다.
여령기가 딱 선을 그었다.
“너희는 모두 내 부하 장수들이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용사들을 부하로 부리게 된 입장에서 매우 든든하다고 생각한다.”
여령기에게 있어선 조비가 사탕발림을 한다고 여겨졌지만, 조비는 진심을 담아서 여포군 무장이었던 자들에게 찬사를 건네고 있었다.
서주 정벌을 통해서 뛰어난 무장들을 얻게 된 것은 매우 큰 행운이다.
원 역사 속에서도 팔건장들이 조조군에 협력하게 되나, 고순은 무장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서 주군 여포와 함께 처형장에서 죽는다.
하지만 고순은 지금 조비의 부하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순과 함께 용감무쌍한 함진영(陷陣營)을 모두 손에 넣었으므로, 조비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없었다.
매번 싸울 때마다 격파하지 못하는 적이 없다.
용맹하기로 유명한 여포군 군단에서도 가장 유명한 정예부대.
그들은 모두 조비의 명령을 받고 있었으며, 온전한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여령기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길 거부했고, 고순과 장료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다른 팔건장들은 모두 조비에게 충성심을 바치고 있었기에, 우렁찬 대답으로 충성을 표현하였다.
모시게 된 새로운 주군은 조조의 장남이다.
이대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분명 조조의 뒤를 물려받을 후계자의 총애를 받을 수 있으리라. 들어보니 조조의 아들 중에서도 조비가 특출하게 뛰어나다고 하니, 그가 조조의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될 것임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