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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후환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 (2)
유비를 죽인다.
어느 정도 유비와 안면이 있는 팔건장(八健將)들로선 꽤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비가 서주에서 가지고 있는 입지는 상당했고, 서주 백성들은 유비를 어버이처럼 경외하고 있었다.
도겸에게 서주목의 지위를 물려받은 이후, 단시간에 서주의 민심을 손에 넣은 유비의 처세술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인덕(仁德)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선정(善政).
서주의 상징을 이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명령이니 따르겠지만, 내심 내키지 않는다고 할까.
“귀 큰 놈을 죽여 충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매우 쉬운 임무가 아니겠소?”
장패는 유비를 죽이는 건 인의에 어긋나나, 주군의 명령을 받드는 무장으로선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하곤 휘하 병력들을 대동하여 즉시 소패성으로 향했다.
장패의 병력은 원래부터 서주의 군벌이었으니, 그 움직임에 제한이 없다.
서주 전역에 발발한 반란을 평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소패성 인근까지 진출하고, 다른 병력들과 함께 소패성에 들이쳐서 유비를 죽인다.
명분으로는 완벽했다.
그렇기에 소패성의 유비도 조비의 흉계에 대해선 간파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우리는 항장이다. 그 충성심을 의심받아선 안 되지.”
주군을 팔아넘겨서 살아남았다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배신자의 도리일 터.
송헌과 성렴, 위속 등의 장수들도 장패에 동참하면서 병력을 이끌었다.
장료와 고순도 결국 유비 사냥에 참전하게 되었다.
명령은 명령, 거부할 권리가 없음을 알고서 유비를 죽이는 데 동참하였다.
여포군 장수였던 자들이 모두 나섰다.
모두 전쟁터에서 출중한 전공을 남겼으며, 뛰어난 무명을 지닌 자들이었기에 그 실력에 의심가는 점이 없었다.
조비는 이 훌륭하고 우수한 사냥개들이 유비를 물어다 줄 것이라 확신했다.
팔건장들이 실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포를 따라 종군한 무장들이 아닌가. 겨우 촌부와 그 의형제 따위를 상대로 수백 명의 병사들이 패주할 리가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수십 기의 기병대들과 함께 소패성으로 나아가기로 하였는데, 그 옆에는 중무장한 여령기가 따랐다. 특히 활을 잘 쏘았는지 화살이 가득 든 화살통이 허리에 매여져 있었다.
여령기가 물었다.
“왜 유비를 죽이려는 거죠?”
그녀는 아비의 죽음에 유비가 관여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를 원망하진 않았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보면 서주로 받아들여준 유비를 아비인 여포가 배반하였기에 서주 쟁란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손님이 오히려 안하무인격으로 집주인에게서 집을 빼앗은 격이었으니, 여령기로선 그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유비는 어질고 선행에 밝은 성인이다.
그렇기에 여령기는 필시 조비가 그런 유비를 질시하여 죽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녀가 보기에 유비는 그저 백성들을 위무하고 보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성인처럼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를 들은 조비가 말했다.
“천하가 자신을 성인으로 여기게끔 하는 능력, 그게 바로 유비의 무서운 점이다.”
수도 없이 많은 가면들을 번갈아 쓰면서 성인 연기를 한다.
분명 그 안에 든 것은 간교하고 교활한 너구리였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서 성인을 흉내 내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당신이 그저 유비를 개인적으로 미워해서 죽이려는 걸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조비에게 악감정을 가진 여령기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조비에게 괄대하듯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비는 그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로부터도 충성을 얻어낼 수 있을 터, 지금은 미움의 대상으로 마음껏 그녀의 미움을 받기로 하였다.
조비가 여령기와 함께 수십 기의 기병대를 이끌고 사냥터에 온 시점에서, 전혀 예기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유비 님을 죽이지 마라!”
“썩 꺼져라, 조조의 앞잡이들아!”
“천벌 받을 것들! 이 몹쓸 것들!”
백성들이 수천, 아니 수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되어 조비의 군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도저히 서주 백성들을 해산시킬 수 없었던 팔건장들로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백성들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힌다면 조조군은 서주에서 민심을 크게 잃게 된다. 유비를 죽이는 것으로 민심의 악화는 어느 정도 감수를 했다고는 하나, 유비의 발자취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을 그르칠 순 없었다.
“무슨 일인가.”
그 말에 송헌이 달려와 보고했다.
“소패성에 가기도 전에 그 길목을 백성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동해군(東海郡)을 시작으로 낭야국(琅邪國)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10만 명 이상은 몰렸다는 뜻이군.”
조비가 말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장료와 고순이 뒤이어 보고하길, 유비를 죽이러 조조군이 병력을 보냈다는 소식이 서주 전역에 파다하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뜨렸다. 조조군이 여포를 제압하고 하비성을 점령함과 동시에,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조조군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빌어 처먹을.”
조비가 입가를 비틀며 욕설을 내뱉었다.
“유비가 백성들을 방패막이로 이용했군요.”
장료가 말했다.
그 말에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간교한 놈!
조비는 진심을 담아 유비를 욕했다.
혼자서 어질고 착한 척을 다하더니, 본인이 궁지에 몰리자 도망치기 위해서 백성들을 고기방패로 삼았다. 여기서 조조군이 제2차 서주 대학살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통치에 반대하는 서주 백성들을 도륙내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미 서주에서 저지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주 백성들을 고기방패로 내세웠다.
유비의 명성은 서주에서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뜬소문을 듣고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백성들이 길목을 점거하고 막아서는 현 상황에서는 유비의 뒤를 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과연 주군이 말씀하신 대로 유현덕은 아주 간교한 놈입니다.”
“백성들을 이용해서 본인만 도망치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조성과 후성도 기가 찬 듯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 샌님 같던 유비에게 이런 간사한 면이 있었을 줄이야.
미처 서주에서 더부살이를 할 때는 알지 못했지만, 유비의 그 마음속에는 시커먼 귀신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
“백성들을 이용하다니······. 그런 만행을.”
여령기도 제법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성인으로 여긴 유비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천하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서 천하를 방랑하던 아비를 보호해준 은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신뢰를 보내던 백성들을 등쳐먹는 악한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 또한 유비의 처세술이라는 거겠지.”
백성들이 어느 정도 물러서자, 조비가 직접 장수들과 함께 소패성으로 입성하였다.
소패성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하였는지, 유비의 가솔(家率)들이 몸을 정갈하게 하고서 대기하고 있었다. 유비의 정실부인이었던 미부인과 첩 감부인, 유비의 여러 처첩들까지. 처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남은 상태였다.
유비의 식구들을 지키고 있던 무장은 관우뿐이었다. 장비를 비롯한 다른 장수들은 아마도 유비를 따라서 서주를 벗어난 것 같았다.
조비가 관우를 보며 말했다.
“귀 큰 놈은 이미 도망친 모양이군. 하여간 도망치는 재주는 탁월한 놈이다.”
“형님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너희 조씨 일가를 토벌하기 위한 병력을 이끌고서.”
당장이라도 청룡언월도를 휘두를 것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장료와 고순이 조비의 앞에 서면서 관우에 대적했다.
관우로서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건장한 남성들은 몸이 날랜 덕분에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딸린 식구들은 조조군의 추격을 피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소패성에 남았다.
관우는 끝까지 유비의 처자식을 지키려는 목적이었는지 수호병처럼 본인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유비의 처자식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 관운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충직한 무장이 내놓은 으름장에, 조비가 실소하며 말했다.
“그대가 뛰어난 무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수백 명의 병사들을 뚫고 유비의 처자식들을 지키는 게 가능할지 묻고 싶군.”
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수백 명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내걸면서 활시위를 당겼다.
추격부대가 이미 소패성을 장악했다.
팔건장들이 모두 관우를 향해 검을 치켜들고 있었으며, 이미 유비의 처자식들은 포로로 붙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놈!”
당장이라도 유비의 처자식들을 모두 죽이려는 조비의 행동에 관우가 크게 분노했다.
이 간교한 놈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고순과 장료가 지키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유비의 처첩들이 울고 불면서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하자, 그제야 관우도 청룡언월도를 내리면서 조비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조비.
그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유비가 서주로 와서 뿌리를 내렸던 인연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허도로 압송한다.”
조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유비의 처자식들을 포로로 잡아서 허도로 보낸다.
관우는 혹시라도 조조군 병사들이 유비의 처자식들에게 무례를 범할까 크게 경계했지만, 그와 친분이 있던 장료로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전쟁과 관계가 없는 부녀자와 아이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정도로 팔건장들은 명예를 모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비록 유비가 백성들을 이용해서 도망쳤다고는 하나, 그 책임을 처자식들에게 묻는 것은 매우 소인배 같은 행동이다.
“왜 죽이지 않죠?”
여령기가 물었다.
물론 그녀로서는 유비의 처자식들을 죽이자는 의미에서 꺼낸 말이 아닌, 그저 궁금증에서 우러나온 물음이었다.
“목 비틀어봤자 얻을 게 없다. 오히려 포로로 붙잡고 있는 쪽이 효율적이지.”
유비는 처자식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 말은 곧 처자식들보다도 본인의 생존을 더 우선시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인간이 가족들이 몰살당한다고 해서 격노하여 다시 소패성으로 돌아올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놈은 뱀이다.
오히려 가족들을 죽인다면 그 죽음을 명분으로 조조군의 악행을 널리 알리고 다니겠지. 유비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고 싶진 않다.
“유비가 서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선 추격대를 보내어 끝까지 추적에 나선다.”
소패성에서 도망친다고 한들, 유비가 향할 수 있는 곳은 원소군이 있는 하북밖에 없다.
이미 원술이 다스리던 회남 지역은 조조군의 관할이었으니, 사실상 유비가 도망칠 수 있는 경로는 하북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조비는 인근 태수는 물론 조조군 장수들에 이르기까지, 수십 기의 전령들을 모두 보내어 유비를 잡아들일 것을 명령하였다.
유비를 죽인다.
어느 정도 유비와 안면이 있는 팔건장(八健將)들로선 꽤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비가 서주에서 가지고 있는 입지는 상당했고, 서주 백성들은 유비를 어버이처럼 경외하고 있었다.
도겸에게 서주목의 지위를 물려받은 이후, 단시간에 서주의 민심을 손에 넣은 유비의 처세술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인덕(仁德)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선정(善政).
서주의 상징을 이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명령이니 따르겠지만, 내심 내키지 않는다고 할까.
“귀 큰 놈을 죽여 충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매우 쉬운 임무가 아니겠소?”
장패는 유비를 죽이는 건 인의에 어긋나나, 주군의 명령을 받드는 무장으로선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하곤 휘하 병력들을 대동하여 즉시 소패성으로 향했다.
장패의 병력은 원래부터 서주의 군벌이었으니, 그 움직임에 제한이 없다.
서주 전역에 발발한 반란을 평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소패성 인근까지 진출하고, 다른 병력들과 함께 소패성에 들이쳐서 유비를 죽인다.
명분으로는 완벽했다.
그렇기에 소패성의 유비도 조비의 흉계에 대해선 간파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우리는 항장이다. 그 충성심을 의심받아선 안 되지.”
주군을 팔아넘겨서 살아남았다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배신자의 도리일 터.
송헌과 성렴, 위속 등의 장수들도 장패에 동참하면서 병력을 이끌었다.
장료와 고순도 결국 유비 사냥에 참전하게 되었다.
명령은 명령, 거부할 권리가 없음을 알고서 유비를 죽이는 데 동참하였다.
여포군 장수였던 자들이 모두 나섰다.
모두 전쟁터에서 출중한 전공을 남겼으며, 뛰어난 무명을 지닌 자들이었기에 그 실력에 의심가는 점이 없었다.
조비는 이 훌륭하고 우수한 사냥개들이 유비를 물어다 줄 것이라 확신했다.
팔건장들이 실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포를 따라 종군한 무장들이 아닌가. 겨우 촌부와 그 의형제 따위를 상대로 수백 명의 병사들이 패주할 리가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수십 기의 기병대들과 함께 소패성으로 나아가기로 하였는데, 그 옆에는 중무장한 여령기가 따랐다. 특히 활을 잘 쏘았는지 화살이 가득 든 화살통이 허리에 매여져 있었다.
여령기가 물었다.
“왜 유비를 죽이려는 거죠?”
그녀는 아비의 죽음에 유비가 관여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를 원망하진 않았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보면 서주로 받아들여준 유비를 아비인 여포가 배반하였기에 서주 쟁란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손님이 오히려 안하무인격으로 집주인에게서 집을 빼앗은 격이었으니, 여령기로선 그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유비는 어질고 선행에 밝은 성인이다.
그렇기에 여령기는 필시 조비가 그런 유비를 질시하여 죽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녀가 보기에 유비는 그저 백성들을 위무하고 보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성인처럼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를 들은 조비가 말했다.
“천하가 자신을 성인으로 여기게끔 하는 능력, 그게 바로 유비의 무서운 점이다.”
수도 없이 많은 가면들을 번갈아 쓰면서 성인 연기를 한다.
분명 그 안에 든 것은 간교하고 교활한 너구리였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서 성인을 흉내 내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당신이 그저 유비를 개인적으로 미워해서 죽이려는 걸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조비에게 악감정을 가진 여령기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조비에게 괄대하듯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비는 그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로부터도 충성을 얻어낼 수 있을 터, 지금은 미움의 대상으로 마음껏 그녀의 미움을 받기로 하였다.
조비가 여령기와 함께 수십 기의 기병대를 이끌고 사냥터에 온 시점에서, 전혀 예기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유비 님을 죽이지 마라!”
“썩 꺼져라, 조조의 앞잡이들아!”
“천벌 받을 것들! 이 몹쓸 것들!”
백성들이 수천, 아니 수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되어 조비의 군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도저히 서주 백성들을 해산시킬 수 없었던 팔건장들로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백성들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힌다면 조조군은 서주에서 민심을 크게 잃게 된다. 유비를 죽이는 것으로 민심의 악화는 어느 정도 감수를 했다고는 하나, 유비의 발자취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을 그르칠 순 없었다.
“무슨 일인가.”
그 말에 송헌이 달려와 보고했다.
“소패성에 가기도 전에 그 길목을 백성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동해군(東海郡)을 시작으로 낭야국(琅邪國)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10만 명 이상은 몰렸다는 뜻이군.”
조비가 말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장료와 고순이 뒤이어 보고하길, 유비를 죽이러 조조군이 병력을 보냈다는 소식이 서주 전역에 파다하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뜨렸다. 조조군이 여포를 제압하고 하비성을 점령함과 동시에,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조조군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빌어 처먹을.”
조비가 입가를 비틀며 욕설을 내뱉었다.
“유비가 백성들을 방패막이로 이용했군요.”
장료가 말했다.
그 말에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간교한 놈!
조비는 진심을 담아 유비를 욕했다.
혼자서 어질고 착한 척을 다하더니, 본인이 궁지에 몰리자 도망치기 위해서 백성들을 고기방패로 삼았다. 여기서 조조군이 제2차 서주 대학살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통치에 반대하는 서주 백성들을 도륙내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미 서주에서 저지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주 백성들을 고기방패로 내세웠다.
유비의 명성은 서주에서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뜬소문을 듣고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백성들이 길목을 점거하고 막아서는 현 상황에서는 유비의 뒤를 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과연 주군이 말씀하신 대로 유현덕은 아주 간교한 놈입니다.”
“백성들을 이용해서 본인만 도망치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조성과 후성도 기가 찬 듯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 샌님 같던 유비에게 이런 간사한 면이 있었을 줄이야.
미처 서주에서 더부살이를 할 때는 알지 못했지만, 유비의 그 마음속에는 시커먼 귀신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
“백성들을 이용하다니······. 그런 만행을.”
여령기도 제법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성인으로 여긴 유비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천하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서 천하를 방랑하던 아비를 보호해준 은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신뢰를 보내던 백성들을 등쳐먹는 악한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 또한 유비의 처세술이라는 거겠지.”
백성들이 어느 정도 물러서자, 조비가 직접 장수들과 함께 소패성으로 입성하였다.
소패성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하였는지, 유비의 가솔(家率)들이 몸을 정갈하게 하고서 대기하고 있었다. 유비의 정실부인이었던 미부인과 첩 감부인, 유비의 여러 처첩들까지. 처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남은 상태였다.
유비의 식구들을 지키고 있던 무장은 관우뿐이었다. 장비를 비롯한 다른 장수들은 아마도 유비를 따라서 서주를 벗어난 것 같았다.
조비가 관우를 보며 말했다.
“귀 큰 놈은 이미 도망친 모양이군. 하여간 도망치는 재주는 탁월한 놈이다.”
“형님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너희 조씨 일가를 토벌하기 위한 병력을 이끌고서.”
당장이라도 청룡언월도를 휘두를 것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장료와 고순이 조비의 앞에 서면서 관우에 대적했다.
관우로서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건장한 남성들은 몸이 날랜 덕분에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딸린 식구들은 조조군의 추격을 피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소패성에 남았다.
관우는 끝까지 유비의 처자식을 지키려는 목적이었는지 수호병처럼 본인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유비의 처자식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 관운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충직한 무장이 내놓은 으름장에, 조비가 실소하며 말했다.
“그대가 뛰어난 무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수백 명의 병사들을 뚫고 유비의 처자식들을 지키는 게 가능할지 묻고 싶군.”
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수백 명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내걸면서 활시위를 당겼다.
추격부대가 이미 소패성을 장악했다.
팔건장들이 모두 관우를 향해 검을 치켜들고 있었으며, 이미 유비의 처자식들은 포로로 붙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놈!”
당장이라도 유비의 처자식들을 모두 죽이려는 조비의 행동에 관우가 크게 분노했다.
이 간교한 놈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고순과 장료가 지키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유비의 처첩들이 울고 불면서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하자, 그제야 관우도 청룡언월도를 내리면서 조비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조비.
그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유비가 서주로 와서 뿌리를 내렸던 인연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허도로 압송한다.”
조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유비의 처자식들을 포로로 잡아서 허도로 보낸다.
관우는 혹시라도 조조군 병사들이 유비의 처자식들에게 무례를 범할까 크게 경계했지만, 그와 친분이 있던 장료로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전쟁과 관계가 없는 부녀자와 아이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정도로 팔건장들은 명예를 모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비록 유비가 백성들을 이용해서 도망쳤다고는 하나, 그 책임을 처자식들에게 묻는 것은 매우 소인배 같은 행동이다.
“왜 죽이지 않죠?”
여령기가 물었다.
물론 그녀로서는 유비의 처자식들을 죽이자는 의미에서 꺼낸 말이 아닌, 그저 궁금증에서 우러나온 물음이었다.
“목 비틀어봤자 얻을 게 없다. 오히려 포로로 붙잡고 있는 쪽이 효율적이지.”
유비는 처자식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 말은 곧 처자식들보다도 본인의 생존을 더 우선시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인간이 가족들이 몰살당한다고 해서 격노하여 다시 소패성으로 돌아올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놈은 뱀이다.
오히려 가족들을 죽인다면 그 죽음을 명분으로 조조군의 악행을 널리 알리고 다니겠지. 유비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고 싶진 않다.
“유비가 서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선 추격대를 보내어 끝까지 추적에 나선다.”
소패성에서 도망친다고 한들, 유비가 향할 수 있는 곳은 원소군이 있는 하북밖에 없다.
이미 원술이 다스리던 회남 지역은 조조군의 관할이었으니, 사실상 유비가 도망칠 수 있는 경로는 하북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조비는 인근 태수는 물론 조조군 장수들에 이르기까지, 수십 기의 전령들을 모두 보내어 유비를 잡아들일 것을 명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