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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후환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 (1)
여포군이 멸망한 이후, 장패는 후환이 두려워 동해군(東海郡)까지 멀리 도망친 상태였다.
팔건장이라고 불리지만 장패는 사실상 독립군벌에 가까웠고, 여포의 부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연히 그를 향한 충성심도 없었으니 여포군이 몰락하자 곧바로 몸을 내뺀 것이다.
여포가 서주를 공격할 때는 도적떼들을 이끌고 대등하게 싸운 전과가 있으며, 그 여포조차도 장패를 이기지 못해 진궁이 화해를 요청하고 나서야 여포와 대등한 동맹관계를 맺었다. 서주에 세운 독립 세력을 버리고 도망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예 군단인 조조군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하여 멀리 도망쳤다.
“장군을 잡겠다는 벽서(壁書)는 물론, 사방에 경계병들이 쫙 깔렸습니다.”
윤례가 와서 보고하자, 장패가 침음을 삼켰다.
조조군이 자신을 대대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말에, 장패는 필시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찾는 것이라 여겼다. 여포군의 모든 장수들이 항복하여 정식으로 조정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주에서 조조의 악명이 워낙 짙다보니 두려운 마음에 앞섰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죽인 조조다.
분명 도망친 적장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을 터. 여포와 맞서 싸운 전적이 있는 장패였지만, 조조에게는 벌벌 떨었다.
고민 끝에 동해군을 지나 청주(青州)로 도망치려 했으나, 결국 서주 국경을 지키고 있던 조조군 병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원소군으로 도망치려 한 것을 미리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미리 매복을 하고서 장패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패는 그대로 서주성까지 압송.
서주를 다스리고 있던 조비를 만나게 되었다.
“내 부하가 되겠나.”
“당연히 되겠습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던 행동과는 달리, 그는 조비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조조는 무섭지만 조정군이 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여포군 장수들도 비록 항장이지만 교위 벼슬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터라,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지방 군벌로서 비천한 삶을 살았던 장패로선 중앙 조정의 군관이 된다는 것 자체가 흡족한 일이었다.
또한 동료인 손관, 오돈, 윤례, 창희 등 자신의 부하 장수들도 모두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으니, 장패를 따르던 군세들은 조조군의 임관을 크게 환영했다.
“그런데 왜 도망친 건가?”
이렇게 쉽게 제안을 받아들일 거면서.
조비의 물음에 장패는 멋쩍었는지 뒷머리를 긁었다.
“이렇게 환대해주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분명 팔다리를 분지르거나 찢어죽일 줄 알았습죠.
장패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로 팔건장들이 모두 모였다.”
조비가 자신의 부하 장수들을 보며 말했다.
장료와 고순. 그리고 장패.
조조는 항복한 여포군 장수들을 모두 조비 휘하로 편입시켰으므로, 여포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 학맹을 제외한 모든 장수들이 조비의 군문에 모여들었다.
여포의 정실부인인 엄씨와 첩 초선, 그리고 딸 여령기의 신변까지.
모두 조비의 관할이 되었으므로, 사실상 여포군을 완전히 흡수한 것은 조비라 할 수 있었다. 이제 곧 서주를 떠나 다시 허도로 귀환하게 될 것이지만, 과거 여포군이었던 장수진들은 계속해서 조비의 관할이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제안을 하고 싶다. 서로 돈독하게 친분을 다질 겸, 사냥이 어떤가?”
조비의 말에 장수들이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설마 이 시점에서 사냥을 제의할 줄이야.
물론 사내들끼리 모여서 사냥을 하며 마음을 다진다는 것은 매우 괜찮은 제안처럼 보이겠지만, 사냥 중에는 활을 들고 검을 휘두를 수 있었으므로 조비에겐 위험의 소지가 있었다. 항장들이 언제든 앙심을 품고 등 뒤에서 암습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조비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다.
장패를 비롯한 다른 장수들은 조정군 군관이 되어 매우 만족하고 있었지만, 고순과 장료는 아직 조비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여령기 같은 경우에는 아예 조비를 크게 증오했다.
그런 관계들끼리 사냥을 하자?
고순과 장료로선 주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함정이 아닐까.
그 점이 우려스럽다. 간교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조비가 대뜸 사냥을 제안한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 속이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냥감은 소패성에 있다.”
황숙 유비.
서주에 머무르고 있는 그 귀 큰 놈을 죽여야겠다.
조비의 발언에 장수들이 크게 놀랐다.
사내처럼 갑옷을 걸치고 있던 여령기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사냥을 하자는 것이 황제의 숙부를 죽이자는 말이었을 줄이야.
사슴이나 토끼, 호랑이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사냥으로 일컬어 말하다니. 유비에게 무슨 원한을 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를 대뜸 죽이자는 말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장패가 손을 들어 말했다.
“하지만 주군, 유비는 서주 백성들에게 민심이 두터운 인물입니다. 그런 자를 죽이시면 서주인들은 절대로 마음을 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장패는 도겸과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고, 유비와도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서주가 유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서주 백성들의 반발을 우려했다.
진규와 진등 부자가 조조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는 하나, 완전한 의미에서 서주를 복속시킨 것은 아니다.
서주 대학살 당시 가족을 잃은 호족들은 아직도 조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조조군의 통치를 반대하는 반란이 그치질 않고 있었다.
서주는 거대한 화약고다.
표면적으로는 조조군의 지배를 받고 있으나, 그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조조를 반대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화약고에 불을 지필 수 있는 행위를 저지르겠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으로 보였다.
유비를 죽인다.
그것은 서주와 다시 한 번 전쟁을 하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서주는 아군에게 마음을 열 가능성이 낮다. 만약 아군이 원소군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면 그 때를 노려서 언제든지 배반하겠지.”
서주인의 마음을 얻겠다는 그 마음 자체가 지나친 오만이다.
사람은 자신이 잃은 것을 크게 기억하는 법이고, 그를 잃은 고통에서 오는 증오는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을 테니까.
“이건 승상 조조의 명령이 아닌, 나 조자환의 독단이다. 내 독단으로 유비를 죽이고, 승상에게 처벌을 받는다면 적어도 세간의 여론을 잠재울 수는 있겠지.”
후계자의 자리를 걸고서라도 유비를 죽여야 한다.
조비는 조조군의 후계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유비를 죽이려고 했다.
그 자는 위험하다.
훗날 조씨 일가를 크게 위협할 인간이 될 터.
그렇기에 조씨 일가를 사랑하는 조비로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유비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 * *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송헌이 물었다.
후계자의 자리를 걸고서라도 유비를 죽이겠다는 조비의 말은 팔건장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조조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을 터인데.
조조의 다른 자식들은 너무 어리고, 장남 조비가 아버지 조조를 따라 종군하며 수많은 공헌을 했으니 이미 후계자로서의 지위는 확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아비가 늙어 병들기만 기다리면 승상의 자리는 물론, 중원의 패자라는 지위까지도 모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겨우 유비 하나 죽이자고 그것을 모두 내건다는 것은 팔건장에게 있어서 뜻밖의 의문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주군께서 승상의 지위를 모두 물려받을 거요. 다른 누가 주군을 대신할 수 있겠소? 지금은 주군을 향한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기꺼이 나서야겠지.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 출세 싫어하는 사람 있소?”
장패가 발언했다.
그는 조조를 가장 많이 닮은 조비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언젠가 조조로부터 승상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은 물론, 어쩌면 왕의 지위에까지 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유망주를 위해서 싸우는 건 당연하다.
그의 명령을 받들어 충실히 수행한다면 옆에서 떡고물을 먹으면서 크게 출세할 수가 있을 테니까.
여러 군식구들을 잔뜩 데리고 있는 장패로선 출세를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다.
시골 잡배부터 시작해서 군벌이 되었고, 지금은 조정군의 군관이 되었다. 언젠가는 더 큰 벼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니, 지금은 주군의 첫 명령을 받드는 게 우선이다.
“이 속물 같은 놈이.”
고순이 장패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아직 여포의 시체가 썩지도 않았건만, 조비를 주군이라 호칭하는 것에부터 그의 충견이 되어버린 장패의 행동에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장료 또한 장패의 행동에서 꺼림칙함을 느꼈다.
반면 다른 팔건장들은 그 말이 옳다면서 장패에게 찬성했다.
조조군에 항복하여 조정군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조조군 소속으로서 아무런 공헌이 없었기에 지금의 지위가 매우 불안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조비에게 점수를 따는 것은 물론, 후계자의 총애를 얻어서 더욱 출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평생 여포를 쫓아 전쟁터를 돌아다닌 장수들은 이제 척박하고 외진 시골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눈부시고 화려한 수도로 가서 멋들어지게 살고 싶었다.
“아가씨는요?”
“우리들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시겠나?”
여령기가 어느 순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낀 장료가 물었고, 고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팔건장들은 모두 살고 싶어서 여포를 배반한 역적들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고순과 장료는 여포의 처자식들을 지키기 위해서 조조군에 항복한 것이나, 어쨌든 아비를 배신한 것은 마찬가지니 증오하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일부러 모습을 감춘 것이리라.
딸아이처럼 여긴 여령기에게 짙은 미움을 받고 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입으로는 출세를 논하면서도 그 표정에 평온함이 없었다.
“아가씨께서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조비의 앞에서 망언을 한다든지, 그도 아니면 그를 암살하려 든다든지.
여령기의 무예는 다른 장수들에 못지않았으므로, 조비를 암살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조비는 무예를 모르는 샌님이었기에 여령기에게 잘못 걸리면 반항조차 못하고 살해당할 위험이 컸다.
“내가 지켜보고 있겠네.”
고순이 말했다.
유비를 죽이기 위한 사냥.
그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가 있었지만, 팔건장들 모두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병사들을 이끌고 소패성으로 가서 유비를 죽인다.
서주 백성들을 위문하고 있는 유비의 공헌을 치하하고자 방문하는 척 연기를 하면서 그의 목에 검을 쑤셔 박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문제다.
여포군이 멸망한 이후, 장패는 후환이 두려워 동해군(東海郡)까지 멀리 도망친 상태였다.
팔건장이라고 불리지만 장패는 사실상 독립군벌에 가까웠고, 여포의 부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연히 그를 향한 충성심도 없었으니 여포군이 몰락하자 곧바로 몸을 내뺀 것이다.
여포가 서주를 공격할 때는 도적떼들을 이끌고 대등하게 싸운 전과가 있으며, 그 여포조차도 장패를 이기지 못해 진궁이 화해를 요청하고 나서야 여포와 대등한 동맹관계를 맺었다. 서주에 세운 독립 세력을 버리고 도망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예 군단인 조조군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하여 멀리 도망쳤다.
“장군을 잡겠다는 벽서(壁書)는 물론, 사방에 경계병들이 쫙 깔렸습니다.”
윤례가 와서 보고하자, 장패가 침음을 삼켰다.
조조군이 자신을 대대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말에, 장패는 필시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찾는 것이라 여겼다. 여포군의 모든 장수들이 항복하여 정식으로 조정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주에서 조조의 악명이 워낙 짙다보니 두려운 마음에 앞섰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죽인 조조다.
분명 도망친 적장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을 터. 여포와 맞서 싸운 전적이 있는 장패였지만, 조조에게는 벌벌 떨었다.
고민 끝에 동해군을 지나 청주(青州)로 도망치려 했으나, 결국 서주 국경을 지키고 있던 조조군 병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원소군으로 도망치려 한 것을 미리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미리 매복을 하고서 장패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패는 그대로 서주성까지 압송.
서주를 다스리고 있던 조비를 만나게 되었다.
“내 부하가 되겠나.”
“당연히 되겠습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던 행동과는 달리, 그는 조비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조조는 무섭지만 조정군이 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여포군 장수들도 비록 항장이지만 교위 벼슬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터라,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지방 군벌로서 비천한 삶을 살았던 장패로선 중앙 조정의 군관이 된다는 것 자체가 흡족한 일이었다.
또한 동료인 손관, 오돈, 윤례, 창희 등 자신의 부하 장수들도 모두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으니, 장패를 따르던 군세들은 조조군의 임관을 크게 환영했다.
“그런데 왜 도망친 건가?”
이렇게 쉽게 제안을 받아들일 거면서.
조비의 물음에 장패는 멋쩍었는지 뒷머리를 긁었다.
“이렇게 환대해주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분명 팔다리를 분지르거나 찢어죽일 줄 알았습죠.
장패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로 팔건장들이 모두 모였다.”
조비가 자신의 부하 장수들을 보며 말했다.
장료와 고순. 그리고 장패.
조조는 항복한 여포군 장수들을 모두 조비 휘하로 편입시켰으므로, 여포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 학맹을 제외한 모든 장수들이 조비의 군문에 모여들었다.
여포의 정실부인인 엄씨와 첩 초선, 그리고 딸 여령기의 신변까지.
모두 조비의 관할이 되었으므로, 사실상 여포군을 완전히 흡수한 것은 조비라 할 수 있었다. 이제 곧 서주를 떠나 다시 허도로 귀환하게 될 것이지만, 과거 여포군이었던 장수진들은 계속해서 조비의 관할이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제안을 하고 싶다. 서로 돈독하게 친분을 다질 겸, 사냥이 어떤가?”
조비의 말에 장수들이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설마 이 시점에서 사냥을 제의할 줄이야.
물론 사내들끼리 모여서 사냥을 하며 마음을 다진다는 것은 매우 괜찮은 제안처럼 보이겠지만, 사냥 중에는 활을 들고 검을 휘두를 수 있었으므로 조비에겐 위험의 소지가 있었다. 항장들이 언제든 앙심을 품고 등 뒤에서 암습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조비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다.
장패를 비롯한 다른 장수들은 조정군 군관이 되어 매우 만족하고 있었지만, 고순과 장료는 아직 조비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여령기 같은 경우에는 아예 조비를 크게 증오했다.
그런 관계들끼리 사냥을 하자?
고순과 장료로선 주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함정이 아닐까.
그 점이 우려스럽다. 간교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조비가 대뜸 사냥을 제안한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 속이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냥감은 소패성에 있다.”
황숙 유비.
서주에 머무르고 있는 그 귀 큰 놈을 죽여야겠다.
조비의 발언에 장수들이 크게 놀랐다.
사내처럼 갑옷을 걸치고 있던 여령기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사냥을 하자는 것이 황제의 숙부를 죽이자는 말이었을 줄이야.
사슴이나 토끼, 호랑이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사냥으로 일컬어 말하다니. 유비에게 무슨 원한을 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를 대뜸 죽이자는 말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장패가 손을 들어 말했다.
“하지만 주군, 유비는 서주 백성들에게 민심이 두터운 인물입니다. 그런 자를 죽이시면 서주인들은 절대로 마음을 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장패는 도겸과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고, 유비와도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서주가 유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서주 백성들의 반발을 우려했다.
진규와 진등 부자가 조조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는 하나, 완전한 의미에서 서주를 복속시킨 것은 아니다.
서주 대학살 당시 가족을 잃은 호족들은 아직도 조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조조군의 통치를 반대하는 반란이 그치질 않고 있었다.
서주는 거대한 화약고다.
표면적으로는 조조군의 지배를 받고 있으나, 그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조조를 반대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화약고에 불을 지필 수 있는 행위를 저지르겠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으로 보였다.
유비를 죽인다.
그것은 서주와 다시 한 번 전쟁을 하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서주는 아군에게 마음을 열 가능성이 낮다. 만약 아군이 원소군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면 그 때를 노려서 언제든지 배반하겠지.”
서주인의 마음을 얻겠다는 그 마음 자체가 지나친 오만이다.
사람은 자신이 잃은 것을 크게 기억하는 법이고, 그를 잃은 고통에서 오는 증오는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을 테니까.
“이건 승상 조조의 명령이 아닌, 나 조자환의 독단이다. 내 독단으로 유비를 죽이고, 승상에게 처벌을 받는다면 적어도 세간의 여론을 잠재울 수는 있겠지.”
후계자의 자리를 걸고서라도 유비를 죽여야 한다.
조비는 조조군의 후계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유비를 죽이려고 했다.
그 자는 위험하다.
훗날 조씨 일가를 크게 위협할 인간이 될 터.
그렇기에 조씨 일가를 사랑하는 조비로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유비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 * *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송헌이 물었다.
후계자의 자리를 걸고서라도 유비를 죽이겠다는 조비의 말은 팔건장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조조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을 터인데.
조조의 다른 자식들은 너무 어리고, 장남 조비가 아버지 조조를 따라 종군하며 수많은 공헌을 했으니 이미 후계자로서의 지위는 확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아비가 늙어 병들기만 기다리면 승상의 자리는 물론, 중원의 패자라는 지위까지도 모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겨우 유비 하나 죽이자고 그것을 모두 내건다는 것은 팔건장에게 있어서 뜻밖의 의문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주군께서 승상의 지위를 모두 물려받을 거요. 다른 누가 주군을 대신할 수 있겠소? 지금은 주군을 향한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기꺼이 나서야겠지.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 출세 싫어하는 사람 있소?”
장패가 발언했다.
그는 조조를 가장 많이 닮은 조비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언젠가 조조로부터 승상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은 물론, 어쩌면 왕의 지위에까지 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유망주를 위해서 싸우는 건 당연하다.
그의 명령을 받들어 충실히 수행한다면 옆에서 떡고물을 먹으면서 크게 출세할 수가 있을 테니까.
여러 군식구들을 잔뜩 데리고 있는 장패로선 출세를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다.
시골 잡배부터 시작해서 군벌이 되었고, 지금은 조정군의 군관이 되었다. 언젠가는 더 큰 벼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니, 지금은 주군의 첫 명령을 받드는 게 우선이다.
“이 속물 같은 놈이.”
고순이 장패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아직 여포의 시체가 썩지도 않았건만, 조비를 주군이라 호칭하는 것에부터 그의 충견이 되어버린 장패의 행동에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장료 또한 장패의 행동에서 꺼림칙함을 느꼈다.
반면 다른 팔건장들은 그 말이 옳다면서 장패에게 찬성했다.
조조군에 항복하여 조정군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조조군 소속으로서 아무런 공헌이 없었기에 지금의 지위가 매우 불안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조비에게 점수를 따는 것은 물론, 후계자의 총애를 얻어서 더욱 출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평생 여포를 쫓아 전쟁터를 돌아다닌 장수들은 이제 척박하고 외진 시골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눈부시고 화려한 수도로 가서 멋들어지게 살고 싶었다.
“아가씨는요?”
“우리들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시겠나?”
여령기가 어느 순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낀 장료가 물었고, 고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팔건장들은 모두 살고 싶어서 여포를 배반한 역적들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고순과 장료는 여포의 처자식들을 지키기 위해서 조조군에 항복한 것이나, 어쨌든 아비를 배신한 것은 마찬가지니 증오하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일부러 모습을 감춘 것이리라.
딸아이처럼 여긴 여령기에게 짙은 미움을 받고 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입으로는 출세를 논하면서도 그 표정에 평온함이 없었다.
“아가씨께서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조비의 앞에서 망언을 한다든지, 그도 아니면 그를 암살하려 든다든지.
여령기의 무예는 다른 장수들에 못지않았으므로, 조비를 암살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조비는 무예를 모르는 샌님이었기에 여령기에게 잘못 걸리면 반항조차 못하고 살해당할 위험이 컸다.
“내가 지켜보고 있겠네.”
고순이 말했다.
유비를 죽이기 위한 사냥.
그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가 있었지만, 팔건장들 모두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병사들을 이끌고 소패성으로 가서 유비를 죽인다.
서주 백성들을 위문하고 있는 유비의 공헌을 치하하고자 방문하는 척 연기를 하면서 그의 목에 검을 쑤셔 박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