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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하비성의 짐승 (4)



호치(虎痴)라는 별칭을 가진 허저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저는 항상 근위장으로 승상 조조의 신변을 경호하여 왔는데, 이번 전쟁에서는 조조와 떨어져 예주목 유비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물론 말이 호위였지, 감시병에 가까운 역할이었다. 유비가 혹시라도 도망갈 위험이 있었으니, 가장 믿음직스러운 허저에게 그 중임을 맡겼다.
“하비성에서는 분명 엄청나게 싸우고 있을 텐데. 부러운 녀석들.”
“적병 수급 하나에 돈이 얼마야, 대체.”
조조군에 임관하기 이전부터 허저를 따랐던 병사들이 떠들었다.
하비성 전투에서 공훈을 세우지 못하게 됐다며 투덜거렸고, 고작해야 촌부(村夫) 하나를 감시하는데 동원된 자신의 처지를 불행하다고 여겼다.
조조는 항상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고 용감하게 싸운 병사들에게는 어마어마한 포상과 승진을 내려주었으므로, 특히나 하급 병사들은 인생 출세의 기회라며 싸우길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분을 역전할 수 있는 기화라며 너나 할 것 없이 전쟁터에 나가길 좋아했다.
특히 허저의 병사들은 사납고 용맹하였기에 여포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적병 하나를 더 죽여 포상을 받고 싶다는 탐욕이 강했다. 과거 산적이었던 전적 때문일까. 특히나 출세와 포상에 목이 말라 있었다.
“이놈들! 임무를 게을리 했다간 내 창에 목이 꿰일 줄 알아라!”
허저가 으름장을 놓자 병사들이 후다닥 달려가며 유비를 경호했다.

한편 유비는 소패성에 도착하여 백성들을 위문하고 다스렸는데, 과거 서주목이었던 유비가 서주에 오자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를 반겼다. 도겸의 뒤를 이은 적법한 후계자였기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
서주 백성들은 대학살을 저지른 조조가 다시 서주에 온 것에 대해서 강한 불신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조에게 투항한 유비가 나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여들어 그의 귀환을 반겼다.
“유비 님, 조조가 혹시 저희들을 죽이려는 것은 아닐까요?”
“제 아비를 죽였다고 하여, 언제 죽일까 두렵습니다.”
조조에 대한 두려움. 공포.
그리고 증오.
서주 대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조조는 악행의 대명사나 다름없었다.
만약 유비가 얼굴간판 격으로 서주에 오지 않았더라면 서주 백성들은 조조군의 등장에 놀라 사방으로 달아나버렸을 것이다.
“조조군은 이제 더 이상 그대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네.”
유비가 말했다.
물론 그는 속내의 마음을 담아서 꺼낸 말은 결코 아니었다.

조조군에 반항하지 마라.
조조군의 통치를 받아들이며, 그에게 충성 맹세를 하라.

유비로서는 토악질이 나올 법한 말이었지만, 그는 속내를 숨긴 채로 말해야 했다.
허저를 비롯하여 그 병사들이 눈을 번쩍이며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서주 백성들을 부추겨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그 규모가 늘어나기도 전에 허저의 창에 목숨을 잃게 되겠지.
유비의 곁에는 관우와 장비가 허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고작 두 명의 장수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었다. 허저의 산하에만 수백 명의 병사들이 몰려있다. 특히 그들은 원래 조조를 지키는 근위병이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형님, 우리가 조가 놈의 꼭두각시 역할이나 해야겠수? 당장에 저 두꺼비 같은 놈을 죽이겠수다!”
장비가 허저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짐짓 장비가 돌발행동이라도 벌일까, 관우는 그 점을 우려했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조조는 유비를 서주 민심 달래기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며, 만약 유비가 그 역할을 내던지려는 순간 허저의 창이 등을 꿰뚫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유비는 조금의 내색도 없이 꼭두각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언젠가는 그 때가 올 것이다.
한 황실을 기만하고 업신여긴 역적을 죽일 그 날이.


* * *


“승상,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모두 승상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인의 말에 모든 장수들이 고개를 숙이며 충성을 표시했다.

서주에 매번 찾아오는 우기(雨期)가 도래하였다.
이제 곧 지독한 소나기가 한꺼번에 쏟아질 것이고, 강물을 억지로 막고 있는 제방에 더 큰 힘이 실리게 될 것이다.

조조는 자신이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운이 나빴으면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를 하비성으로 몰아넣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연주 공방전에서 여포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있다.
끝까지 살아남고 살아남아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왔다.
이제 드디어 여포를 멸망시킬 날이 도래하였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병사들을 뒤로 물려라.”
강물에 휩쓸려 죽을 수가 있다.
하비성 인근을 모두 강물의 흐름이 지나도록 도랑을 파두었다.
대량의 강물이 그대로 격류를 일으키며 터질 것이고, 하비성을 쓸어 발긴 강물은 도랑을 타고서 하비성 인근을 모두 물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오로지 하비성만을 노린 수공.
주변 지역에 강물이 확산된다면 수공의 힘이 약해질 우려가 있었으므로, 도랑을 이용하여 물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하비성만을 향하게 하였다.

“이봐 조카님, 이 숙부가 무식해서 그러는데. 이걸로 정말 여포를 죽일 수 있는 거겠지?”
“하후 숙부, 아무리 멧돼지라도 강물에 빠지면 죽는다.”
직접 삽을 들고 흙더미를 파는 작업을 했던 하후돈은 자신의 이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랐다.
자그마치 2만 명에 달하는 병력들이 총동원되었다.
모두 밤낮으로 번갈아서 작업을 하였다. 흙을 파고 또 파는 작업을 몇날 며칠 동안을 반복하였으니, 병사들로서도 매우 간절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하비성에 천벌을 내릴 시간이다.
좌우에 정렬한 부대들은 당장 제방이 터져서 하비성의 여포군이 전멸하는 모습을 구경하길 원했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서 하비성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본다. 병사 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짜릿한 일도 없을 것이다.

천하무쌍의 마지막을 구경하자.
이 두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겠다.

“미치게도 쏟아지는군.”
조비가 고개를 들어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여포의 죽음을 바라기라도 하듯, 하늘에서는 빗물이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는 조조군에게 있어선 최고의 적기가 되어주었다. 기하급수적으로 강물이 불어나면서 제방에 강물이 모이기를 며칠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던 조조군의 시일을 빠르게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를 본 기수들이 크게 깃발을 휘저으면서 제방에서 감독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신호를 요청하였다. 병사들은 도끼를 두 손으로 들고는 제방을 연결하고 있는 밧줄을 세차게 내려쳤고, 기둥 역할을 하던 나무를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꽝! 꽈앙!!
호쾌한 도끼질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 소리 너머로 들리는 도끼 소리는 여포군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와 같았다.
“제방을 터트려라!”
“이걸로 여포도 끝장이다!”
천둥 벼락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제방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으며, 지금까지 제방이 모든 힘을 다해서 저장하고 있던 강물들이 순식간에 노도의 기세처럼 하비성을 때리기 시작했다.

흙더미가 무너졌다.
바윗덩이가 강물을 타고서 세차게 쏘아지더니 하비성 성벽에 꽂히면서 크게 흔적을 남겼다. 제방을 이루던 통나무와 여러 잔해들이 강물을 타고 내려와 하비성을 향해서 진격했다.

하비성은 천혜의 요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성벽이 무사히 강물을 견뎌내고는 있었다. 그 어떤 격류에도 불구하고 우두커니 견디는 성벽은 조조군 병사들이 무심코 비명을 토해낼 정도로 튼튼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성벽과는 달리, 그 위에 선 여포군 병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성벽 위에서 자리를 지키는 건 누구도 못할 짓이다.
병사들은 병장기를 버리고 도망쳤는데, 장수들이 그를 탈영병으로 간주하여 살해하기 시작하면서 더 큰 파장을 낳았다.

“승상, 우선 하비성에 물이 빠질 때까지는 아군도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뒤로 물리고 시기를 기다리시는 편이 현명할 겁니다.”
조비가 말을 몰면서 조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말을 들은 조조는 과연 옳다고 판단했다.
“저 물살 속에서는 배도 동원할 수 없겠구나.”
소용돌이를 치며 하비성을 흔들어놓는 물의 격류.
그를 본 조조는 무리하게 배를 띄워서 하비성을 공격하려 했다간, 도리어 아군에 큰 피해가 전가될 것을 우려하였다.
조급하게 굴 것은 없다.
승기를 잡은 쪽은 바로 아군이다.
전쟁은 속전속결을 기본 원칙으로 하나, 그렇다고 하여 조급함 때문에 대의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하비성 인근에 도랑을 팠다고는 하지만, 결국 이틀이 지나면 모두 무너져 강물도 모두 빠질 겁니다.”
물은 결국 흘러갈 수밖에 없다.
도랑을 파고 제방을 쌓는 등, 물의 흐름을 이용하려고 해도 결국에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남긴 재해에 불과하다. 결국 하비성에 고인 물결들도 모두 흩어질 터.
그러나 그 때가 되면 병사들이 여포에게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신의 또한 물과 함께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산등성이들마다 깃발을 꽂고, 아군의 군세를 최대한 위협적으로 보이게 해야 합니다.”
수공을 당한 하비성에 조금의 희망도 남기지 않는다.
그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조조군을 격퇴할 수 있다는 용기조차도 일말의 남김없이 모두 지워야 한다. 혹시라도 안에서 조조군에 호응해주지 않고 결사항전을 선택한다면 낭패를 볼 우려가 있었다.
“여포의 목은 언제쯤 거둘 수 있겠느냐?”
조조의 물음에 조비가 조용히 답했다.
“여포의 목을 원하신다면 자를 것이고, 살려두실 것이라면 살릴 수 있습니다. 여포의 생사여탈권은 오로지 승상에게 있습니다.”
아니, 여포를 비롯하여 그 장수들의 목숨까지도. 여포의 첩인 초선과 딸인 여령기를 죽일지 말지도 모두 승상에게 있다.
조조가 짐짓 여포를 다시 중용하여 거둘까 그를 생각한 조비가 그런 말을 던졌다. 아들의 말을 듣게 된 조조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결론을 내렸다.
“저 이리는 사람이 품을 것이 못 된다. 조금이라도 배신할 기미가 있는 자를 아군으로 삼았다간 분명 파멸을 부르게 될 것이다.”
조조가 단언했다.
배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 그 배신으로 조조군이라는 세력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

군주는 항상 배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모두 헤아릴 수가 없어 배신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힘을 가진 자에 한해서는 용인(用人)하지 않고, 반드시 죽인다.
여포는 제멋대로에 용렬하고 단순무식하지만, 무장으로서의 용맹과 담대함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수많은 군웅들을 이끄는 재주가 있었다.
군주의 자질을 가진 자가 한 세력에 두 명이나 될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죽여야 한다.

조조의 결단에 조비가 입가를 올렸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승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