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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하비성의 짐승 (3)



여포가 소리쳤다.
“젠장할!”
하비성으로 다시 돌아온 여포의 모습은 싸움에서 진 개와 별다르지 않았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그 견고한 육체 위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많았다.
눈먼 화살에 갑옷에 흠집이 꽤나 많이 생겼다.
화살 몇 대는 직접 여포의 몸에 직격하면서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다. 수백 명의 궁수들이 오로지 여포만을 노렸기에 생긴 결과였다. 제아무리 신속한 적토마라도 여포에게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피할 순 없었다.
“이 쓸모없는 것들!”
여포의 일갈에 팔건장들이 고개를 숙였다.

조조군의 수공을 차단해내지 못하고 패주.
하비성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한 제방과 물길이 점점 형성되고 있었지만, 하비성의 여포군에서는 정작 그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조성, 위속, 성렴 등은 매번 여포군이 패주하는 것에서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비성 인근을 지나는 강줄기를 이용한 수공. 물바다가 펼쳐지는 순간, 하비성이 침몰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맹장이라도 물바다 같은 자연재해를 상대로는 이기지 못한다.
게다가 여포는 번번이 조조군의 방어를 뚫어내지 못하고 패주할 때마다 부장들을 불러 심한 호통과 모욕을 주었으므로, 점차 장수들의 충성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진궁에게 폭언을 하거나, 심지어 연회 같은 경우에는 장수들의 아내를 불러 술을 따르게 하는 등의 모욕조차도 스스럼없이 저질렀다.
“아무리 주군께서 여인을 좋아하신다지만 이건 너무하는 게 아닌가!”
“초선처럼 절세미녀와 어여쁜 딸도 있으면서 이러면 안 되지!”
장수들도 자존심이 있고, 무명을 우선시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천하무쌍 여포를 따르고 있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아내를 주군에게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을 무골호인은 절대로 아니었다.
몇 번이나 발끈해서 나서려고 했지만, 여포를 이길 순 없었으니 꾹 참았다.

학맹이 이를 견디다 못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진압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진궁이 그 배후에 개입되어 있었음을 모르는 장수들은 없었지만, 다들 쉬쉬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사라지면 여포군은 머리 없는 무식한 놈팽이들의 소굴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매번 지는 게 어째서 우리 잘못이오?”
“적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대군에, 수많은 정예 보병대를 갖춘 부대가 아닙니까.”
애초에 방패병과 장창병으로 보병대형을 갖추고 있는 병력을 기병대로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기병이 보병에 강하다고는 하지만, 진형을 잘 갖춘 보병대를 상대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포는 기병대를 이용해서 보병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조조가 아직 황제 유협을 차지하기 전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조조는 중원의 패자가 되었으며, 중원 4개 주의 왕의 되어버렸으니 과거 연주만 다스릴 때와는 격이 달랐다. 당장 조조의 명령을 받들 장수들만 수백 명이 넘었고, 지평선 너머까지 확산된 그의 병력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가 뭣 때문에 동탁군에 있을 때부터 따랐는데……!”
“저는 병주(并州)에 있을 때부터 따랐습니다.”
그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따랐다.

척박한 병주 땅에 있었을 때도.
동탁군의 장수가 되어 반동탁 연합군과 싸웠을 때도.
이각과 곽사에게 쫓겨나 전국을 방랑하는 처지에 놓였을 때도.
방랑군의 몸으로 연주를 공격하여 조조군과 치열한 사투를 벌였을 때도.
팔건장들이 여포에게 무상(無償)의 충성을 다한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다.
서주목 유비를 내쫓았을 때와 지금 조조군과 싸우고 있는 전황까지. 옆을 지키면서 함께 싸운 전우였건만, 여포는 패주의 모든 원인을 부하의 무능에서 찾고 있었다.
결국 비겁하게 싸움에 적극 임하지 않았다고 하여 장수 한 명이 처형되었다.
그 목이 성문 밖에 걸린 것을 본 팔건장들은 점차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럴 뜻은 아니었을 텐데…….”
여포가 매번 욕설을 담은 모욕을 토해낼 때마다, 그 뒤에 매번 여포의 딸인 여령기가 와서 직접 고개를 숙이며 모든 장수들에게 일일이 사과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직접 고개를 숙이시다니요!”
여포에게 심한 괄시와 학대를 당하고 있었음에도 팔건장들이 쉽게 배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령기가 그들에게 있어선 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장안성에서 여령기가 태어났을 때, 그 자리를 팔건장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도중에 합류한 장수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모습을 모두 지켜본 장수들에게 있어선 그녀가 곧 딸이었고 지켜야 할 아가씨였다.
어머니 엄씨를 닮아 점차 자랄수록 빼어난 미색을 가지기 시작한 여령기는 모두가 아끼는 아가씨였다. 매번 남장을 하고 사내처럼 말을 타고 활을 쏘며 거친 훈련을 뛰지만, 그럼에도 점점 묘령의 여성으로 발전해나가는 모습은 장수들에게 부친의 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변함없는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딸이기 때문에.
난세를 겪으며 아내를 잃고, 아들과 딸을 잃은 장수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여령기를 크게 아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 *


“그것 참 이상하단 말이지.”
여포가 무관으로 보이는 사내의 목을 하비성 성문에 내걸 때만 하더라도 조비는 당장 내부에서 무언가 호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잠잠해도 너무 잠잠하다.
하비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굳건하였고, 성문과 성벽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조조군의 모사들도 그 점이 매우 수상하다고 여겼다.
여포의 그 불같은 성정으로 보아하건대, 매번 패전을 겪고도 그것을 마음에 쌓아둘 정도로 그릇이 담대한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 부하들을 윽박지르고 병사들을 학대하는 등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수공 준비는 완벽합니다.”
순욱이 말했다.
인근 백성들까지 모으며 물길을 잇고 있었고,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제방에는 수많은 양의 강물들이 가득 담겨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득 담긴 물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패주하지 않을 것이며, 퇴각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물은 그 자체가 흐름이며, 흐름대로 나아갈 뿐일 테니까요.
순욱 같은 샌님이 제법 말장난을 할 줄 알았다.
물론 모두가 껄껄 웃음을 터트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시답잖은 말장난은 모든 장수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이제 곧 때가 온다.
여포를 무너뜨리고 하비성을 장악하게 해줄 수공.
모든 장수들에게 간접적으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수공의 위력은 크지 않다.”
“예. 그렇다 하더라도 수공을 당하는 적의 입장에서는 매우 심각한 공포로 작용할 게 틀림없습니다.”
흔히 수공이라고 하면 고구려의 살수대첩처럼 적을 모두 쓸어 갈길 정도의 스케일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공은 물살을 이용해서 적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동원될 뿐, 정확한 의미로는 적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인 속임수 전술에 가까웠다.
“그럼 뭐야, 선생? 저 제방에 쌓인 물로도 하비성의 성문을 때려 부술 수는 없다는 것 아니오?”
하후돈이 놀라 곽가에게 물었다.
그는 하비성 인근에 물을 퍼부으면, 하비성 성문들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매우 단순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수공을 펼치면 알아서 하비성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어리석었고, 설령 여포군은 수공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저항할 게 분명했다.

병주에서부터 여포를 쫓아 서주까지 왔다.
그들 중에는 여포를 진정한 우두머리로 칭송하는 자도 있을 것이며, 단순무식하게 폭정을 펼친 폭군으로 기억하는 자도 존재할 것이다.
지금의 수공은 후자에 속하는 자들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도화선에 불과했다.
너희들은 패배하였고, 더 이상은 가망이 없으니 항복하라. 그를 간접적으로 표시하면서 적의 배반을 일으키도록 유도하였다.

“전쟁을 오래 끌어선 좋을 게 없다. 서둘러서 끝내야, 아니 적어도 이번 달까지 결판을 지어야 해.”
하비성을 보며 조비가 중얼거렸다.
지금은 여포만을 신경 쓸 단계가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적.
한나라 황실의 승상 조조의 진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선, 지금 이따위의 전쟁은 서둘러 끝내야 했다.

원소가 온다.
공손찬을 격파하고 하북의 군주가 된 원소는 사실상 군웅할거 시대를 종결시킬 힘을 가진 대군벌이었다.

“이번 달에 끝내라는 말은 곧 사흘 안으로 전쟁을 끝내라는 뜻이로군!”
하후돈이 흥미로운 듯 대답했다.
시일을 촉구하는 전투.
불과 사흘 안에 여포의 목을 취해야 한다는 조비의 말은 하후돈에게 있어 ‘무리한 말’이라기보다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임무’라고 받아들여졌다.

반드시 여포를 죽여라.

하비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물론, 서주 전역을 조조군 영토로 귀속시키지 못한다면 천하의 패권을 건 전쟁에서 승산이 더욱 희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