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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하비성의 짐승 (2)
“이제 여포가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정욱이 단언했다.
하후돈이 동해군(東海郡)을, 하후연이 노국(魯國)을 동시에 제압하면서 하비성에 있는 여포군이 도망칠 퇴각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서주성에서는 원술군의 개입으로 포위망을 풀었다고는 하나, 이제는 더 이상 변수가 될 요인이 없었다.
잇따른 패전을 겪은 원술은 다시 회남 지역으로 달아나버렸고, 유일하게 여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원소는 하북의 숙적이었던 공손찬을 역경성에서 말려 죽이는 데만 전념하고 있었다.
이제 방도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여포군의 모사 진궁 또한 익히 알고 있으리라.
원술군이 지원을 보냈을 때야말로 여포군에게 있어선 최후의 구원이었다.
하지만 여포는 스스로의 안위만을 위해서 원술군에 내응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비성으로 달아나는 데만 시간을 써버렸으니, 결국 스스로 구명줄을 잘라버린 격이 되었다.
“갈대밭을 모조리 불태워라.”
조조의 명령 한 번에 하비성 인근의 모든 갈대밭에 불이 놓아졌다.
기수와 사수에서 뻗어 나온 강줄기가 하비성 인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 강변에 갈대밭이 무성하게 있었기 때문에 시야가 방해된다고 하여 모조리 불태운 것이다.
적이 만약 기병대로 하여금 기습을 걸어오면 갈대밭으로 인해 가려져 알아차리지 못할 위험이 있었으므로 내린 결정이었다.
‘눈에 보이는 협박이군.’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비성 인근을 모두 불태우는 화염.
갈대밭은 물론 그 인근의 모든 밭과 논까지 태워버리는 방식은 조조가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적에게 화염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한편, 주저 없이 모조리 태워버리는 조조군의 무서움에 깊이 공포를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비성을 정공으로 쳤다간, 오히려 피해만 볼 겁니다.”
말을 타고 하비성 성벽을 살핀 조인이 조조에게 간언했다.
그는 하후돈과는 달리 전략과 전술에 능통하였으므로, 정공법으로는 하비성을 공격하다가 오히려 애꿎은 아군만 희생되리라 여겼다.
병사는 무릇 주군을 위해 죽는 것이 도리라고는 하나,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좋다. 게다가 조조군은 여포만이 아니라 사방의 모든 적들과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말에 조비가 말했다.
“하비성은 고도가 낮고, 지형 또한 낮은 지대에 속합니다. 강에 제방을 쌓아 수공(水攻)을 택하십시오.”
모조리 물귀신으로 만들어버립시다.
갈대밭을 불로 태워서 길을 만들었으니, 그 길을 이용해서 하비성을 공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조조군에게는 5만 대군이 있다.
그 일부만 동원하더라도 하비성 인근의 강물이 흐르는 방향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한 곳으로 향하는 강물에 샛길을 만들어서 하비성으로 쏟아지게 만든다. 그렇게만 된다면 여포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리라.
“과연 그 혜안이 지당하십니다.”
“과연 그 전략이 옳습니다!”
곽가와 순욱 또한 수공으로 하비성을 공략한다는 의견에 찬성했다.
물을 이용한 수공은 사용되는 경우가 드문 전략이었지만, 성공한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파초대원수 한신 또한 물길을 이용한 수공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던가. 물길을 틀어서 성을 점령한다는 전략 또한 한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을 이용해서 용장을 잡는다.
과거 한신이 항우군의 맹장 용저를 잡을 때도 그러하였다.
곽가는 그러한 고사(古事)를 들면서 조비의 전략이 매우 우수함을 증명하였다.
“공자께서는 그런 방법을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죽이는 게 바로 전쟁 아닌가.”
곽가의 말에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조비는 하비 전투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꺼낸 말이었지만, 가장 먼저 그를 발언함으로서 하비 전투의 발언권을 차지했다.
곽가를 비롯한 순욱과 정욱 등이 조비를 극찬하였으며, 조조 또한 조비가 꺼낸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비성은 감히 무너뜨리기 힘든 곳이었으므로, 조비의 말처럼 효율적으로 적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를 택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적도 대충은 예상할 거다.”
그를 대비해야 한다.
조비가 말했다.
여포는 몰라도, 진궁은 조조군이 공성전이 아닌 토목공사에 동원된다면 분명 하비성 인근의 강물을 이용한 수공에 대한 준비임을 눈치 챌 것이다. 하비성은 지대가 낮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수공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저희가 철통 같이 지키겠습니다.”
우금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길을 바꾸는 토목공사에 동원된 병사들.
그들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조조군 장수들의 역할이었다. 분명 자신의 위기를 느낀 여포가 성난 멧돼지마냥 달려들 게 뻔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장수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여포의 목을 취하겠다며 호승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포를 막지 못한다면 어디서 무명을 떨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이를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까.”
악진과 이전도 자신 있다면서 호기롭게 나섰다.
악귀나찰보다도 무서운 여포를 상대해야 할 판국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 * *
“여포가 온다아아아아!!”
조조군 병사가 귀가 찢어질 것처럼 크게 비명을 토해냈다.
그 순간, 하비성을 출격한 여포군이 진격해오며 조조군 진지를 급습했다.
갈대밭이 모두 불타면서 하비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모두 노출된 상황이었고, 여포군의 공격은 기습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강하다.
책략도, 전술도 갖추어지지 않은 정공법(正攻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군 본진을 강타한 그 물리적인 힘만큼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조조군의 모든 장수들이 싸움에 참전해야 했다.
“승상, 자리를 벗어나셔선 안 됩니다.”
곽가가 말했다.
그 말에 전쟁터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한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아군이 모두 지켜볼 수 있도록 한다.
한나라의 승상이 여포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아군 병사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을 확연히 보여줌으로서 사명감을 키웠다.
“지독한 짐승이구나.”
맨손으로 병사의 멱살을 잡아서 멀리 내던지는 여포를 보며 조조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저런 괴물과 싸워왔던 것인가.
인간을 초월한 짐승을 보는 듯하였다. 방천화극을 크게 휘두르자 병사는 물론 타고 있던 군마까지도 으스러져 죽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고깃덩이를 지나 또 다른 병사들을 도륙내기 시작하면서 여포가 위용을 뽐냈다.
적토마가 크게 움직이며 적 군마를 들이박았다.
보통 준마보다도 훨씬 큰 체격의 적토마는 마치 전차처럼 전쟁터를 누비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병사와 군마들을 짓밟으며 앞을 향해 진격하였고, 그 길을 팔건장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넌 여기서 죽는다.”
조조의 말을 응수하듯,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병 부대들이 일제히 노를 쏘아냈다.
수천 발의 노들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여포가 자랑하는 기병대들이 잇따라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제 2진 이동! 여포를 막아라!”
“방패부대, 장창부대! 전군 전진!”
조조군의 진형이 점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꺼운 방패를 든 병사들이 점점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갔으며, 장창 부대들이 한 몸처럼 따르며 기병대의 진격을 막았다. 노병부대들이 일제히 탄막을 펼쳐내고 있는 사이에 보병대들이 적 기병대를 향해 반격을 펼쳤다.
“크악!”
“으아아아!”
앞을 향해 돌격하는 것밖에 모르는 기병대는 보병부대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맹한 속력이 오히려 독이 되어 기병대를 덮쳤다.
날카로운 장창에 찔려서 쓰러진 기병들이 다수였으며, 바닥에 쓰러진 병사들은 육중한 방패에 머리가 으스러져 죽었다.
핏물이 메마른 바닥을 질척질척하게 만들었다.
어느 샌가 장창과 방패가 피와 살점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여포군이 그만큼 보병부대에게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였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당할 줄만 알았나!”
조인이 소리쳤다.
매번 기병대를 이용한 일자무식의 공격을 퍼붓는 여포.
물론 그 공격이 매섭고 위험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보병부대를 중심으로 단련한 조조군에게는 더 이상 위협거리가 되지 못했다.
“미치게도 싸우는군.”
조비가 서있는 바로 앞까지 화살이 떨어졌다.
조금만 더 화살에 힘이 실려 있었으면 조비의 얼굴에 직격하였으리라.
그를 호위하고 있는 서황으로선 간담이 서늘한 일이었지만, 정작 피해를 입을 뻔한 조비는 그 얼굴에 변화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짐승이구나.”
“그렇습니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서, 상처투성이의 짐승처럼 날뛰는 맹장의 모습은 아수라장 같은 전쟁터 속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대단했다.
어째서 인중여포(人中呂布)라 하는지 알겠다.
날고 긴다는 수많은 장수들을 봤으나, 여포만큼이나 저돌적인 맹장은 본 적이 없다.
전략도 없는 마구잡이식으로 싸우는 멧돼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멧돼지의 송곳니에 이미 수십 명의 장수들이 쓰러지고 수십 개의 대장기들이 꺾였다.
“궁병부대에게 전해라.”
조비가 여포를 가리켰다.
“오로지 여포만 노려서 쏴라. 저 짐승을 죽이지 않으면 이 전쟁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수백 명에 달하는 궁수들이 여포를 조준했다.
짐승을 상대로 한 사냥에선 비겁이고 뭐고, 사냥에 성공하면 그만이다.
저 멧돼지의 목에 걸린 무명을 앗는 것은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궁병부대, 여포를 쏴라!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자가 여포다!”
“쏴라! 저 짐승을 죽여라!”
수백 발의 화살들이 오로지 여포만을 향해서 쏘아졌다.
하늘이 한순간에 검게 물들었다.
그를 올려다본 여포는 조조군 궁병들이 오로지 자신만을 표적으로 하여 화살을 쏘았음을 알아차렸다.
“큭!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여포가 적토마의 말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미 적토마는 그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미친 듯이 네 발을 움직이며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온다.
여포가 온다.
방패와 장창을 든 병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고작 한 명이다. 단 한 명의 장수가 적진을 향해 난입하려는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은 진짜였다.
여포는 전쟁터의 귀신이며,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은 불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여포도 인간이다. 팔이 잘리고 목이 뜯겨져 나가면 죽는다. 저 짐승을 죽여야만 우리들이 이긴다.”
본진으로 쳐들어오는 여포를 향해 하후돈과 하후연, 그리고 조인 등 수십 명에 달하는 조조군 장수들이 뛰쳐나갔다.
“이제 여포가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정욱이 단언했다.
하후돈이 동해군(東海郡)을, 하후연이 노국(魯國)을 동시에 제압하면서 하비성에 있는 여포군이 도망칠 퇴각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서주성에서는 원술군의 개입으로 포위망을 풀었다고는 하나, 이제는 더 이상 변수가 될 요인이 없었다.
잇따른 패전을 겪은 원술은 다시 회남 지역으로 달아나버렸고, 유일하게 여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원소는 하북의 숙적이었던 공손찬을 역경성에서 말려 죽이는 데만 전념하고 있었다.
이제 방도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여포군의 모사 진궁 또한 익히 알고 있으리라.
원술군이 지원을 보냈을 때야말로 여포군에게 있어선 최후의 구원이었다.
하지만 여포는 스스로의 안위만을 위해서 원술군에 내응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비성으로 달아나는 데만 시간을 써버렸으니, 결국 스스로 구명줄을 잘라버린 격이 되었다.
“갈대밭을 모조리 불태워라.”
조조의 명령 한 번에 하비성 인근의 모든 갈대밭에 불이 놓아졌다.
기수와 사수에서 뻗어 나온 강줄기가 하비성 인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 강변에 갈대밭이 무성하게 있었기 때문에 시야가 방해된다고 하여 모조리 불태운 것이다.
적이 만약 기병대로 하여금 기습을 걸어오면 갈대밭으로 인해 가려져 알아차리지 못할 위험이 있었으므로 내린 결정이었다.
‘눈에 보이는 협박이군.’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비성 인근을 모두 불태우는 화염.
갈대밭은 물론 그 인근의 모든 밭과 논까지 태워버리는 방식은 조조가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적에게 화염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한편, 주저 없이 모조리 태워버리는 조조군의 무서움에 깊이 공포를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비성을 정공으로 쳤다간, 오히려 피해만 볼 겁니다.”
말을 타고 하비성 성벽을 살핀 조인이 조조에게 간언했다.
그는 하후돈과는 달리 전략과 전술에 능통하였으므로, 정공법으로는 하비성을 공격하다가 오히려 애꿎은 아군만 희생되리라 여겼다.
병사는 무릇 주군을 위해 죽는 것이 도리라고는 하나,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좋다. 게다가 조조군은 여포만이 아니라 사방의 모든 적들과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말에 조비가 말했다.
“하비성은 고도가 낮고, 지형 또한 낮은 지대에 속합니다. 강에 제방을 쌓아 수공(水攻)을 택하십시오.”
모조리 물귀신으로 만들어버립시다.
갈대밭을 불로 태워서 길을 만들었으니, 그 길을 이용해서 하비성을 공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조조군에게는 5만 대군이 있다.
그 일부만 동원하더라도 하비성 인근의 강물이 흐르는 방향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한 곳으로 향하는 강물에 샛길을 만들어서 하비성으로 쏟아지게 만든다. 그렇게만 된다면 여포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리라.
“과연 그 혜안이 지당하십니다.”
“과연 그 전략이 옳습니다!”
곽가와 순욱 또한 수공으로 하비성을 공략한다는 의견에 찬성했다.
물을 이용한 수공은 사용되는 경우가 드문 전략이었지만, 성공한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파초대원수 한신 또한 물길을 이용한 수공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던가. 물길을 틀어서 성을 점령한다는 전략 또한 한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을 이용해서 용장을 잡는다.
과거 한신이 항우군의 맹장 용저를 잡을 때도 그러하였다.
곽가는 그러한 고사(古事)를 들면서 조비의 전략이 매우 우수함을 증명하였다.
“공자께서는 그런 방법을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죽이는 게 바로 전쟁 아닌가.”
곽가의 말에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조비는 하비 전투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꺼낸 말이었지만, 가장 먼저 그를 발언함으로서 하비 전투의 발언권을 차지했다.
곽가를 비롯한 순욱과 정욱 등이 조비를 극찬하였으며, 조조 또한 조비가 꺼낸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비성은 감히 무너뜨리기 힘든 곳이었으므로, 조비의 말처럼 효율적으로 적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를 택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적도 대충은 예상할 거다.”
그를 대비해야 한다.
조비가 말했다.
여포는 몰라도, 진궁은 조조군이 공성전이 아닌 토목공사에 동원된다면 분명 하비성 인근의 강물을 이용한 수공에 대한 준비임을 눈치 챌 것이다. 하비성은 지대가 낮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수공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저희가 철통 같이 지키겠습니다.”
우금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길을 바꾸는 토목공사에 동원된 병사들.
그들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조조군 장수들의 역할이었다. 분명 자신의 위기를 느낀 여포가 성난 멧돼지마냥 달려들 게 뻔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장수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여포의 목을 취하겠다며 호승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포를 막지 못한다면 어디서 무명을 떨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이를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까.”
악진과 이전도 자신 있다면서 호기롭게 나섰다.
악귀나찰보다도 무서운 여포를 상대해야 할 판국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 * *
“여포가 온다아아아아!!”
조조군 병사가 귀가 찢어질 것처럼 크게 비명을 토해냈다.
그 순간, 하비성을 출격한 여포군이 진격해오며 조조군 진지를 급습했다.
갈대밭이 모두 불타면서 하비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모두 노출된 상황이었고, 여포군의 공격은 기습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강하다.
책략도, 전술도 갖추어지지 않은 정공법(正攻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군 본진을 강타한 그 물리적인 힘만큼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조조군의 모든 장수들이 싸움에 참전해야 했다.
“승상, 자리를 벗어나셔선 안 됩니다.”
곽가가 말했다.
그 말에 전쟁터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한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아군이 모두 지켜볼 수 있도록 한다.
한나라의 승상이 여포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아군 병사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을 확연히 보여줌으로서 사명감을 키웠다.
“지독한 짐승이구나.”
맨손으로 병사의 멱살을 잡아서 멀리 내던지는 여포를 보며 조조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저런 괴물과 싸워왔던 것인가.
인간을 초월한 짐승을 보는 듯하였다. 방천화극을 크게 휘두르자 병사는 물론 타고 있던 군마까지도 으스러져 죽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고깃덩이를 지나 또 다른 병사들을 도륙내기 시작하면서 여포가 위용을 뽐냈다.
적토마가 크게 움직이며 적 군마를 들이박았다.
보통 준마보다도 훨씬 큰 체격의 적토마는 마치 전차처럼 전쟁터를 누비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병사와 군마들을 짓밟으며 앞을 향해 진격하였고, 그 길을 팔건장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넌 여기서 죽는다.”
조조의 말을 응수하듯,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병 부대들이 일제히 노를 쏘아냈다.
수천 발의 노들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여포가 자랑하는 기병대들이 잇따라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제 2진 이동! 여포를 막아라!”
“방패부대, 장창부대! 전군 전진!”
조조군의 진형이 점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꺼운 방패를 든 병사들이 점점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갔으며, 장창 부대들이 한 몸처럼 따르며 기병대의 진격을 막았다. 노병부대들이 일제히 탄막을 펼쳐내고 있는 사이에 보병대들이 적 기병대를 향해 반격을 펼쳤다.
“크악!”
“으아아아!”
앞을 향해 돌격하는 것밖에 모르는 기병대는 보병부대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맹한 속력이 오히려 독이 되어 기병대를 덮쳤다.
날카로운 장창에 찔려서 쓰러진 기병들이 다수였으며, 바닥에 쓰러진 병사들은 육중한 방패에 머리가 으스러져 죽었다.
핏물이 메마른 바닥을 질척질척하게 만들었다.
어느 샌가 장창과 방패가 피와 살점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여포군이 그만큼 보병부대에게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였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당할 줄만 알았나!”
조인이 소리쳤다.
매번 기병대를 이용한 일자무식의 공격을 퍼붓는 여포.
물론 그 공격이 매섭고 위험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보병부대를 중심으로 단련한 조조군에게는 더 이상 위협거리가 되지 못했다.
“미치게도 싸우는군.”
조비가 서있는 바로 앞까지 화살이 떨어졌다.
조금만 더 화살에 힘이 실려 있었으면 조비의 얼굴에 직격하였으리라.
그를 호위하고 있는 서황으로선 간담이 서늘한 일이었지만, 정작 피해를 입을 뻔한 조비는 그 얼굴에 변화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짐승이구나.”
“그렇습니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서, 상처투성이의 짐승처럼 날뛰는 맹장의 모습은 아수라장 같은 전쟁터 속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대단했다.
어째서 인중여포(人中呂布)라 하는지 알겠다.
날고 긴다는 수많은 장수들을 봤으나, 여포만큼이나 저돌적인 맹장은 본 적이 없다.
전략도 없는 마구잡이식으로 싸우는 멧돼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멧돼지의 송곳니에 이미 수십 명의 장수들이 쓰러지고 수십 개의 대장기들이 꺾였다.
“궁병부대에게 전해라.”
조비가 여포를 가리켰다.
“오로지 여포만 노려서 쏴라. 저 짐승을 죽이지 않으면 이 전쟁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수백 명에 달하는 궁수들이 여포를 조준했다.
짐승을 상대로 한 사냥에선 비겁이고 뭐고, 사냥에 성공하면 그만이다.
저 멧돼지의 목에 걸린 무명을 앗는 것은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궁병부대, 여포를 쏴라!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자가 여포다!”
“쏴라! 저 짐승을 죽여라!”
수백 발의 화살들이 오로지 여포만을 향해서 쏘아졌다.
하늘이 한순간에 검게 물들었다.
그를 올려다본 여포는 조조군 궁병들이 오로지 자신만을 표적으로 하여 화살을 쏘았음을 알아차렸다.
“큭!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여포가 적토마의 말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미 적토마는 그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미친 듯이 네 발을 움직이며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온다.
여포가 온다.
방패와 장창을 든 병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고작 한 명이다. 단 한 명의 장수가 적진을 향해 난입하려는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은 진짜였다.
여포는 전쟁터의 귀신이며,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은 불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여포도 인간이다. 팔이 잘리고 목이 뜯겨져 나가면 죽는다. 저 짐승을 죽여야만 우리들이 이긴다.”
본진으로 쳐들어오는 여포를 향해 하후돈과 하후연, 그리고 조인 등 수십 명에 달하는 조조군 장수들이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