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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하비성의 짐승 (1)
여포와 여령기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에 엄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바깥으로 나선 기마병의 다수가 전사.
장료를 비롯한 팔건장(八健將)이 모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조조의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경악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주성을 포위한 수많은 대군.
당장이라도 성벽을 밟아버리고 성내로 난입해 약탈을 저지를 것 같은 적군의 위용은 감히 아녀자가 견딜 수 있는 중압감이 아니었다.
엄씨는 당장 항복하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한편 여포는 딸아이조차 바깥으로 빼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조조군이 뒤로 물러서고 있습니다!”
부장 성렴이 뛰어오며 보고했다.
첨탑 위에서 조조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부장의 보고에, 여포는 그를 확인하기 위해서 서둘러 성벽 위로 올라가보았다.
성벽 밑에 보이는 조조군의 움직임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성문을 가로막던 부대들이 앞 다투어 철수하기 시작하였으며, 깃발을 옮기고 포위망을 스스로 푸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를 본 여포군 장수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조조군이 회군을 한단 말인가? 성문과 성벽을 빼곡하게 막고 있던 부대들이 철수하는 모습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조조가 갑자기 여포군에 애정이 들지 않는 이상에야, 다 잡은 물고기를 놓아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를 본 진궁이 재빠르게 현 상황을 간파해냈다.
“원술군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공대?”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듯 진궁이 소리치자, 그 말을 들은 여포가 되물었다.
원술군?
지난번 혼인 동맹이 일방적으로 무너진 이후, 서주에서 전쟁까지 벌인 원수지간이 아니던가?
비록 진궁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령을 파견하였다고는 해도, 여포는 사실상 원술군의 도움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봉선 님! 지금 조조군을 공격하시어 진형을 무너뜨리십시오! 당장 공격해야 할 때입니다!”
진궁은 지금이 공격하기 좋은 적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포의 반응은 곱지 않았다.
원술군이 직접 구원을 와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합지졸의 대명사인 원술군이 갑자기 강해진 것은 아니다. 스스로 10만 대군을 이끌고 서주에 쳐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포에게 패전을 하기 일쑤였으니 숫자만 많은 잡병에 불과했다.
그런 원술군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여포였다.
직접 그들과 싸우면서 무지렁뱅이들이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여포는 진궁의 말을 듣긴커녕, 오히려 그 반대의 수단을 선택했다.
“서주성은 방비가 어렵고 군량도 이제 바닥이 났으니, 하비국(下邳國)으로 거처를 옮겨야겠소.”
이미 팽성국(彭城國)은 적의 영토가 되었으며, 서주성은 함락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서주성 안의 민심도 여포를 등한시하고 있었으므로, 자칫 시가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수많은 호족과 백성들이 배신하게 될 것이다.
서주 전역의 호족들이 여포군을 배신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하비국만이 여포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 있었는데, 여포는 자신이 의지할 곳은 서주성이 아닌 하비성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이 틈에 하비성으로 가야겠소! 원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이 시점을 기회로 삼아야겠다!”
팔건장들에게 명령하여 군대를 인솔.
서주성의 강 건너에 있는 하비성으로 퇴각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조군이 배후에서 출현한 원술의 대군과 교전하기 위해서 철수.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간 조조군은 서주성의 포위망을 풀게 되었고, 덕분에 여포는 서주성을 버리고 하비성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 * *
원술군은 친히 여포군을 구원하기 위해서 서주까지 진격하였지만, 조조군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적어도 수춘성이 점령되기 이전이었다면 비등한 승부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이미 사기가 다 꺾인 패잔병들의 무리가 정예 군단으로 이름이 높은 조조군을 이길 순 없었다.
선봉장 기령이 전사.
또한 원술군 무장들이 다수 전사하고 생포되면서 빠르게 결판이 났다. 원술군은 아직 회남(淮南) 지역에 다수의 군세를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군을 상대로 대부분의 병력을 상실하면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후돈이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여포는 결국 하비성으로 도망가버렸군!”
조조군으로서는 서주성을 곧바로 차지하게 된 셈이었지만, 여포를 다시 놓쳐버렸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설마 원술이 여포를 구원하기 위해서 병력을 파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원술에게도 나름 의리가 있었다는 걸까.
아니, 여포가 멸망하면 자신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여포를 구원하였으되, 병력이 모두 전멸하였으니 결국 원술만 손해를 본 꼴이 되었다.
“하지만 불리한 건 없습니다. 여포가 하비성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도망칠 순 없을 테니까요.”
조인이 말했다.
여포는 신망이 어둡고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으니, 어느 지역으로 가던 간에 지금의 불리한 상황은 어쩌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또한 이미 원소에게 의지하려 하였다가 배반당한 적이 있었으므로, 설령 북쪽으로 달아난다고 해도 곧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일이 조금 늘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승상.”
“이제 멧돼지의 사냥도 끝이 날 겁니다.”
곽가와 순욱의 보고에 조조는 내심 불안했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여포는 조조에게 있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실제로 죽을 뻔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맹하게 달려드는 여포는 재앙과 같았으며, 수많은 군대들조차도 여포를 막진 못했다.
천하무쌍.
그의 무명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각과 곽사에게 패배하고 쫓겨난 방랑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궁과 손을 잡고는 연주를 모두 먹어치울 뻔하지 않았던가.
연주의 호족들이 대부분 배신하였다는 것도 있겠지만, 여포의 무명이 병사들에게 있어 믿음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에 번번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여포를 죽여야 한다.”
조조군이 서주성을 점령했다.
여포군이 두고 간 호족들, 다시 말해 조조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여포를 지지한 호족들에 한해서는 모두 참형으로 다스렸다.
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필요 없다.
필요 없는 자들에 한해서는 거둬줄 생각도 없으며, 다시 여포에게 충성을 보낼지도 모르니 후환은 잘라두는 편이 좋다.
“사, 살려주십시오! 승상!”
“저희는 여포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받아주신다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호족들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목숨을 구걸했지만, 그들에게 베풀어 줄 자비는 없었다.
이미 버스 지나갔거든.
그들을 보며 조비가 중얼거렸다.
자신이 살 기회를, 어느 쪽을 편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모르는 무지렁뱅이들 같으니라고. 결국 이 난세에선 줄을 잘못 타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여포군이 인솔하여 떠난 백성은 모두 무관의 가족들이다.
그를 제외한 아주 소수의 백성들만이 따랐을 뿐, 나머지 호족들은 모두 서주성에 버려졌다. 신속한 퇴각을 위해선 그들을 버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군량까지 싹싹 긁어갔지만, 자신을 추종하던 호족들은 그대로 두고 빠져나왔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있나? 어차피 여포에게 버림받은 것들인데.”
조홍이 말했다.
그 말에 조비는 ‘뭘 모르는 놈팽이’란 시선을 보냈다.
“하비성에도 아직 여포를 따르는 호족들이 있겠지. 이건 그들에게 보내는 경고야, 숙부. 여포를 따르면 언젠가 너희들도 이 꼴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위해서 수백 명을 죽인다는 거냐?”
“어차피 수백 명 따위야 다시 낳을 텐데, 뭘.”
결국 인간도 재산의 일종이다.
재물처럼 다시 불려나갈 수 있으며, 당장 잃었다고 해서 낭패를 볼 것은 아니다.
땅을 주고 경작을 시키며, 가을에 생산 수확량이 대폭 늘어나면 자식들을 많이 낳기 마련이다. 분명 이번 가을에는 죽은 이들보다 몇 배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리라.
하지만 지금의 이 경고는 어떠한가.
여포를 따른 수백 명의 호족과 그 식솔들을 죽임으로서, 절대로 조조군에 배신해선 안 된다는 교훈과 경고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포와 두려움은 수십 년에 걸쳐서 조조의 악명으로 남게 되겠지.
배신자는 반드시 죽인다는 공포.
그것은 곧 조조의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이어주는 초석이 되리라.
“숙부, 빚이 있었지.”
“그렇지!”
나는 돈 얘기가 좋더라!
조홍이 콧노래를 부르며 답했다.
“이미 승상과는 이야기가 끝났다. 숙부에게 꾼 돈을 몇 배로 갚아드린다고 약속했으니.”
조비가 조홍에게 갚기로 한 돈.
그 재물은 지금 이 서주성에 보관되어 있었다.
바로 서주 호족들이 가지고 있던 재물들.
호족들이 대거 처형당하고 난 뒤, 그들 가문에 있는 재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는데 조비는 바로 그것으로 조홍에게 갚아야 할 빚을 탕감했다.
호족들은 조비에게 대량의 곡식을 팔면서 수많은 이득을 취하였는데, 아까워서 그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집안에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들이 죽을 것이라곤 예상하지도 못하고.
저승 가는 길에 이승의 재물을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몰락한 가문들마다 누런 황금과 재물들이 가득 쏟아져 나왔다.
그를 본 조홍이 두려운 듯 물었다.
“호, 혹시……. 이를 모두 알고 있었느냐?”
“당연하지.”
못 갚을 돈은 빌리는 게 아니라고 했다.
비록 조조군이 과거처럼 서주를 급습하여 대학살을 저지르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여포를 따랐던 호족들의 물갈이는 저지를 테니까.
주로 여포를 따르는 호족들에게 돈을 주고 곡식을 산다.
그러면 호족들은 풍족해질 것이고, 본인이 거둔 재물들을 흡족하게 여기면서 창고에 보관해두겠지. 본디 벼락부자가 되면 아까워서라도 재물을 쓰는 법이 없을 테니까. 게다가 재물은 돌고 도는 것이라, 곡식처럼 먹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뒤에 복원하기도 좋았다.
“모두 숙부에게서 나온 돈이다.”
이자까지 쳐서 갚아드리지.
본디 서주 호족들이 가지고 있던 재물들까지 고려해서 내린 대금이다.
그를 본 조홍은 입가를 뒤틀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좋은 거래였다. 조카님.”
여포와 여령기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에 엄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바깥으로 나선 기마병의 다수가 전사.
장료를 비롯한 팔건장(八健將)이 모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조조의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경악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주성을 포위한 수많은 대군.
당장이라도 성벽을 밟아버리고 성내로 난입해 약탈을 저지를 것 같은 적군의 위용은 감히 아녀자가 견딜 수 있는 중압감이 아니었다.
엄씨는 당장 항복하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한편 여포는 딸아이조차 바깥으로 빼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조조군이 뒤로 물러서고 있습니다!”
부장 성렴이 뛰어오며 보고했다.
첨탑 위에서 조조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부장의 보고에, 여포는 그를 확인하기 위해서 서둘러 성벽 위로 올라가보았다.
성벽 밑에 보이는 조조군의 움직임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성문을 가로막던 부대들이 앞 다투어 철수하기 시작하였으며, 깃발을 옮기고 포위망을 스스로 푸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를 본 여포군 장수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조조군이 회군을 한단 말인가? 성문과 성벽을 빼곡하게 막고 있던 부대들이 철수하는 모습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조조가 갑자기 여포군에 애정이 들지 않는 이상에야, 다 잡은 물고기를 놓아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를 본 진궁이 재빠르게 현 상황을 간파해냈다.
“원술군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공대?”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듯 진궁이 소리치자, 그 말을 들은 여포가 되물었다.
원술군?
지난번 혼인 동맹이 일방적으로 무너진 이후, 서주에서 전쟁까지 벌인 원수지간이 아니던가?
비록 진궁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령을 파견하였다고는 해도, 여포는 사실상 원술군의 도움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봉선 님! 지금 조조군을 공격하시어 진형을 무너뜨리십시오! 당장 공격해야 할 때입니다!”
진궁은 지금이 공격하기 좋은 적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포의 반응은 곱지 않았다.
원술군이 직접 구원을 와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합지졸의 대명사인 원술군이 갑자기 강해진 것은 아니다. 스스로 10만 대군을 이끌고 서주에 쳐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포에게 패전을 하기 일쑤였으니 숫자만 많은 잡병에 불과했다.
그런 원술군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여포였다.
직접 그들과 싸우면서 무지렁뱅이들이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여포는 진궁의 말을 듣긴커녕, 오히려 그 반대의 수단을 선택했다.
“서주성은 방비가 어렵고 군량도 이제 바닥이 났으니, 하비국(下邳國)으로 거처를 옮겨야겠소.”
이미 팽성국(彭城國)은 적의 영토가 되었으며, 서주성은 함락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서주성 안의 민심도 여포를 등한시하고 있었으므로, 자칫 시가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수많은 호족과 백성들이 배신하게 될 것이다.
서주 전역의 호족들이 여포군을 배신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하비국만이 여포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 있었는데, 여포는 자신이 의지할 곳은 서주성이 아닌 하비성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이 틈에 하비성으로 가야겠소! 원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이 시점을 기회로 삼아야겠다!”
팔건장들에게 명령하여 군대를 인솔.
서주성의 강 건너에 있는 하비성으로 퇴각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조군이 배후에서 출현한 원술의 대군과 교전하기 위해서 철수.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간 조조군은 서주성의 포위망을 풀게 되었고, 덕분에 여포는 서주성을 버리고 하비성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 * *
원술군은 친히 여포군을 구원하기 위해서 서주까지 진격하였지만, 조조군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적어도 수춘성이 점령되기 이전이었다면 비등한 승부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이미 사기가 다 꺾인 패잔병들의 무리가 정예 군단으로 이름이 높은 조조군을 이길 순 없었다.
선봉장 기령이 전사.
또한 원술군 무장들이 다수 전사하고 생포되면서 빠르게 결판이 났다. 원술군은 아직 회남(淮南) 지역에 다수의 군세를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군을 상대로 대부분의 병력을 상실하면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후돈이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여포는 결국 하비성으로 도망가버렸군!”
조조군으로서는 서주성을 곧바로 차지하게 된 셈이었지만, 여포를 다시 놓쳐버렸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설마 원술이 여포를 구원하기 위해서 병력을 파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원술에게도 나름 의리가 있었다는 걸까.
아니, 여포가 멸망하면 자신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여포를 구원하였으되, 병력이 모두 전멸하였으니 결국 원술만 손해를 본 꼴이 되었다.
“하지만 불리한 건 없습니다. 여포가 하비성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도망칠 순 없을 테니까요.”
조인이 말했다.
여포는 신망이 어둡고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으니, 어느 지역으로 가던 간에 지금의 불리한 상황은 어쩌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또한 이미 원소에게 의지하려 하였다가 배반당한 적이 있었으므로, 설령 북쪽으로 달아난다고 해도 곧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일이 조금 늘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승상.”
“이제 멧돼지의 사냥도 끝이 날 겁니다.”
곽가와 순욱의 보고에 조조는 내심 불안했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여포는 조조에게 있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실제로 죽을 뻔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맹하게 달려드는 여포는 재앙과 같았으며, 수많은 군대들조차도 여포를 막진 못했다.
천하무쌍.
그의 무명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각과 곽사에게 패배하고 쫓겨난 방랑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궁과 손을 잡고는 연주를 모두 먹어치울 뻔하지 않았던가.
연주의 호족들이 대부분 배신하였다는 것도 있겠지만, 여포의 무명이 병사들에게 있어 믿음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에 번번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여포를 죽여야 한다.”
조조군이 서주성을 점령했다.
여포군이 두고 간 호족들, 다시 말해 조조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여포를 지지한 호족들에 한해서는 모두 참형으로 다스렸다.
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필요 없다.
필요 없는 자들에 한해서는 거둬줄 생각도 없으며, 다시 여포에게 충성을 보낼지도 모르니 후환은 잘라두는 편이 좋다.
“사, 살려주십시오! 승상!”
“저희는 여포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받아주신다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호족들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목숨을 구걸했지만, 그들에게 베풀어 줄 자비는 없었다.
이미 버스 지나갔거든.
그들을 보며 조비가 중얼거렸다.
자신이 살 기회를, 어느 쪽을 편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모르는 무지렁뱅이들 같으니라고. 결국 이 난세에선 줄을 잘못 타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여포군이 인솔하여 떠난 백성은 모두 무관의 가족들이다.
그를 제외한 아주 소수의 백성들만이 따랐을 뿐, 나머지 호족들은 모두 서주성에 버려졌다. 신속한 퇴각을 위해선 그들을 버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군량까지 싹싹 긁어갔지만, 자신을 추종하던 호족들은 그대로 두고 빠져나왔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있나? 어차피 여포에게 버림받은 것들인데.”
조홍이 말했다.
그 말에 조비는 ‘뭘 모르는 놈팽이’란 시선을 보냈다.
“하비성에도 아직 여포를 따르는 호족들이 있겠지. 이건 그들에게 보내는 경고야, 숙부. 여포를 따르면 언젠가 너희들도 이 꼴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위해서 수백 명을 죽인다는 거냐?”
“어차피 수백 명 따위야 다시 낳을 텐데, 뭘.”
결국 인간도 재산의 일종이다.
재물처럼 다시 불려나갈 수 있으며, 당장 잃었다고 해서 낭패를 볼 것은 아니다.
땅을 주고 경작을 시키며, 가을에 생산 수확량이 대폭 늘어나면 자식들을 많이 낳기 마련이다. 분명 이번 가을에는 죽은 이들보다 몇 배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리라.
하지만 지금의 이 경고는 어떠한가.
여포를 따른 수백 명의 호족과 그 식솔들을 죽임으로서, 절대로 조조군에 배신해선 안 된다는 교훈과 경고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포와 두려움은 수십 년에 걸쳐서 조조의 악명으로 남게 되겠지.
배신자는 반드시 죽인다는 공포.
그것은 곧 조조의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이어주는 초석이 되리라.
“숙부, 빚이 있었지.”
“그렇지!”
나는 돈 얘기가 좋더라!
조홍이 콧노래를 부르며 답했다.
“이미 승상과는 이야기가 끝났다. 숙부에게 꾼 돈을 몇 배로 갚아드린다고 약속했으니.”
조비가 조홍에게 갚기로 한 돈.
그 재물은 지금 이 서주성에 보관되어 있었다.
바로 서주 호족들이 가지고 있던 재물들.
호족들이 대거 처형당하고 난 뒤, 그들 가문에 있는 재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는데 조비는 바로 그것으로 조홍에게 갚아야 할 빚을 탕감했다.
호족들은 조비에게 대량의 곡식을 팔면서 수많은 이득을 취하였는데, 아까워서 그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집안에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들이 죽을 것이라곤 예상하지도 못하고.
저승 가는 길에 이승의 재물을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몰락한 가문들마다 누런 황금과 재물들이 가득 쏟아져 나왔다.
그를 본 조홍이 두려운 듯 물었다.
“호, 혹시……. 이를 모두 알고 있었느냐?”
“당연하지.”
못 갚을 돈은 빌리는 게 아니라고 했다.
비록 조조군이 과거처럼 서주를 급습하여 대학살을 저지르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여포를 따랐던 호족들의 물갈이는 저지를 테니까.
주로 여포를 따르는 호족들에게 돈을 주고 곡식을 산다.
그러면 호족들은 풍족해질 것이고, 본인이 거둔 재물들을 흡족하게 여기면서 창고에 보관해두겠지. 본디 벼락부자가 되면 아까워서라도 재물을 쓰는 법이 없을 테니까. 게다가 재물은 돌고 도는 것이라, 곡식처럼 먹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뒤에 복원하기도 좋았다.
“모두 숙부에게서 나온 돈이다.”
이자까지 쳐서 갚아드리지.
본디 서주 호족들이 가지고 있던 재물들까지 고려해서 내린 대금이다.
그를 본 조홍은 입가를 뒤틀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좋은 거래였다. 조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