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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들개몰이 (4)



여포군의 기병대가 패주한 이후부터 조조군의 포위망은 더욱 촘촘하게 좁혀왔다.
서주성은 바깥과의 연락이 모두 끊어졌다. 지방군이 소집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디까지 당도하였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전황 속에서 두려움이 떨던 병사들은 하나둘씩 의욕이 꺾기기 시작하였다.
지원군의 존재도, 그리고 규모도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희망을 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디서 지원군이 오리라 명확하게 정해진 것도 아닌 터라, 성벽 너머에 있는 조조군의 병력을 보고는 경악에 젖을 뿐이다.

“여포가 온다!”
“어서 알려라! 고각을 부르고 북을 쳐라!”
성문이 열리면서 여포가 쳐들어왔다.
이미 목책을 건설해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음에도 여포의 등장은 조조군 병사들에게 있어 하나의 재앙과 다름없었다. 일인군단이라 칭하여도 손색이 없을 여포의 무예.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단숨에 조조군 무관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천하무쌍의 모습을 보이는 여포의 옆에는 두꺼운 방어구를 걸친 장수가 함께하고 있었다.
성인 남성이라고 하기에는 그 체격이 매우 왜소하고 호리호리하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조조군 병사들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용맹스럽게 보였다.
“령기야,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아버님.”
여포는 딸 여령기를 원술군에 시집보내는 대신, 지원군을 요청할 생각으로 성문 바깥으로 나선 것이다.
조조군 병사들의 포위망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만히 서주성에 박혀서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허망하다고 여긴 여포가 최후의 발악으로 뛰쳐나왔다.
여령기는 무예가 출중하고 기마술에 능하였으므로, 사내처럼 투구와 갑옷을 걸치고는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일반 장수와 싸워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으며, 쏟아지는 화살 비를 향해서 진격하며 두려움을 품지 않았다.
“저기 여포다!”
“여포가 있다! 절대로 놓치지 마라!”
여포만 잡으면 전쟁은 끝난다.
항상 여포는 전쟁에 직접 나아가 싸웠으므로, 그 모습이 조조군 병사에게 모두 알려져 있었다.

피칠갑을 한 방천화극과 붉은 털을 가진 적토마.
짐승처럼 전쟁터를 휘저으며 다니는 그의 모습은 조조군의 전 부대에 움직임이 알려지고 있었다.

기수들이 깃발을 흔들며 여포가 있는 곳을 안내했다.
여포는 조조군 진영을 누빌수록 매번 조조군 장수들과 힘겨운 교전을 치러야 했는데, 그 장수들 각각이 여포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만한 무위는 아니었으나 그 수가 워낙 많다보니 오히려 여포 쪽에서 힘이 빠질 정도였다.
여포도 무적은 아니다.
무적에 가깝지만 그 또한 체력에 한계가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쏟아지는 화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전황이 계속 진행될수록 줄어드는 아군 병력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조조군의 보병대가 좌측과 우측에서 계속 밀어닥쳤다.
사정없이 말의 옆구리를 찌르며 여포군 기병대를 쓰러트렸고, 낙마한 여포군 병사는 그대로 장창병들에게 벌집이 되어 죽었다.
“이놈, 여포야! 내 눈깔의 복수를 하러 왔다!”
하후돈이 검을 붕붕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척안의 장수 하후돈.
그는 함진영 고순의 부장이었던 조성의 활에 맞아 눈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는지, 하후돈은 용감하게 여포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체력이 빠진 여포는 단숨에 하후돈을 베어내지 못하고 어렵사리 그 검을 막아내며 거리를 벌려야 했다.

만전의 준비를 기한 상태였다면 저따위 애꾸눈에게 지지 않았으리라.
여포가 이를 바득 갈았다.
비겁하고 졸렬한 놈들 같으니라고. 정정당당하게 일기토를 신청할 것이지, 개떼처럼 달려들어서 수적인 우위만으로 찍어 누르려는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조조로서는 성난 멧돼지 같은 여포를 ‘정정당당’이라는 방법으로 이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멧돼지는 올가미를 치고 덫을 놓으며, 미끼를 둬서 잡아야 하는 맹수다.
그 머리에 받치면 단숨에 죽을 수도 있고, 팔다리가 병신이 되어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멧돼지를 사냥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체력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단숨에 낚아챈다.
기회를 엿보고 있는 조조군 장수들만 하더라도 수십 명이 넘어섰다. 천하무쌍이라 무명이 높은 여포를 죽인다면 분명 그 명성이 알려질 것이므로, 명예욕을 위해서라도 여포의 목을 취해야 했다.
천하의 역적 여포를 죽인다.
병주자사 정원을 죽였고, 역적 동탁을 죽였다. 동탁을 죽였다는 점에서는 충국지사(忠國志士)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겨우 계집 하나를 차지하겠다고 동탁을 죽인 것이었으니 의인 대접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끝까지 자신의 이익만을 쫓다가 두 명의 아버지들을 죽인 패륜아.
여포는 아무리 잘 쳐줘도 결국에는 개망나니 취급이어야 했다.

“내가 상대하마!”
여령기가 검을 휘두르며 하후돈에 맞섰다.
하후돈은 여포의 부장으로 보이는 자가 나서는 것을 보며 검을 휘두르며 대응했다. 두꺼운 투구와 갑옷을 쓰고 있어 눈앞의 장수가 여인인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계집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여포의 부장으로 보이는 장수가 사실 여포의 딸인 여령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령기는 서주에서 무예에 능한 여걸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하후돈은 단숨에 여령기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하하하! 네 이놈, 여포야! 얼마나 불리했으면 전쟁터에 네 딸년을 데려오느냐!”
“이 애꾸 놈이!”
여포가 금세 발끈해서는 방천화극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하후돈이 뒤로 물러섰다.
분노에 찬 여포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하후돈은 이미 연주에서 여포를 여러 번이나 경험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여포와 일기토를 치르려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제아무리 하후돈이 다혈질이라고 한들, 여포에게 무작정 달려들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장군, 퇴각하시지요. 전황이 많이 불리합니다. 이대로는 포위망을 뚫기는커녕, 오히려 협공을 당해 전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료의 말에 여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숨이 차고 체력에 한계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전쟁을 멀리하였기 때문인지 몸이 쉽게 무거워졌다.
이번의 출진은 원술에게 여령기를 보내고, 지원군을 받아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조조군의 저항이 워낙 거세고 공격적인 터라, 여령기를 보호하면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령기를 잃는다면 포위망을 뚫어봤자 얻을 것이 없었으므로, 여포는 장료의 말에 따라서 퇴각을 결정했다.
“길을 뚫어라! 다시 서주성으로 간다!”
여포가 말머리를 돌렸다.
뒤에서는 자신을 조롱하는 조조군 장수들의 외침이 들리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지금은 물러나야 한다.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굴욕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 * *


“여포가 전쟁터에 딸을 데려와?”
조조는 하후돈의 보고를 기이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전황이 불리해도 그렇지, 여인을 전쟁터에 대동하는 법은 없었다.
심지어 그 장수가 여포의 딸인 여령기였기 때문에 더욱 수상쩍게 여겼다.
여포가 하나뿐인 딸을 애지중지 여긴다는 것은 조조도 아는 사실이다. 짐승도 자기 자식은 귀여워한다는 말이 사실인지, 짐승이나 다름없는 여포도 자신의 딸만큼은 소중하게 여겼다.
“무예에 능하다고는 하지만, 승상의 말씀대로 수상쩍은 것이 사실입니다.”
순욱이 말했다.
모사들이 각종 추측을 하고 있던 와중, 곽가가 가장 먼저 정답을 말했다.
“일전에 여포가 원술과 동맹을 맺을 당시, 여식인 여령기를 원술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동맹 건은 진규의 설득으로 흐지부지 끝이 나버렸습니다만.”
곽가는 여포가 원술과의 재동맹을 위해서 포위망을 뚫고 딸을 보내려고 했다고 추측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일부러 여포가 딸을 대동하고 성문 밖을 나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서주성을 버리고 도망치려고 했다고 생각하려고 해도, 서주성에는 여포가 아끼는 정실부인 엄씨와 첩 초선이 있었으므로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조비가 말했다.
“아마 그 추측이 맞을 겁니다. 서주성에 지원군을 기대할 수 없으니, 패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원술을 지푸라기처럼 잡아보려고 발악이나 했겠지요.”
“그 딸을 보내려고 했다.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군.”
조비의 말에 조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무식한 여포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목숨이 노려졌던 조조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썩 나쁘지 않았다. 특히 딸을 대동하고 나올 정도로 다급함을 느꼈을 여포를 상상하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 딸년의 무예가 굉장했수다. 어지간한 장수는 내 칼에 단숨에 죽을 텐데, 오히려 내게 달려들고도 무사히 빠져나갔으니.”
하후돈이 넌지시 말했다.
물론 조조군 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는 아직 어린 계집아이가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한 하후돈만 우습게 되었다.
“흥미라도 있느냐?”
조비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반응이었지만, 조조의 눈썰미에 발각되고 말았다.
“여인이 사내처럼 전쟁터를 누비면서 활약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적어도 군주의 딸로서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 싸웠으니, 스스로의 의무를 다한 격이 아닙니까.”
전쟁이 두려워 백성들에만 전쟁의 의무를 부과하는 늙은이들보단 낫습니다.
조비가 평가했다.
“그 쪽의 일이더냐.”
재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조조가 중얼거렸다.
분명 자신의 아들이 여인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며 나름 기대를 해보았지만, 결국 조비는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여령기라는 여인이 사내처럼 투구와 갑옷을 걸치고 창검을 휘두르며 전쟁터에서 활약을 하였다. 다른 여식들이었다면 두려움에 떨며 처소에만 콕 박혀 있었겠지만, 여령기는 아비의 옆에 서서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으니 그 용맹함과 결단력에 대해선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서주성을 함락시키는 날, 여포의 딸을 너에게 주도록 하마.”
조조가 멋대로 약속했다.
그 말을 들은 하후돈은 전쟁의 전리품 중 으뜸은 바로 여인이라며 어린 조카에게 잘 해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포와 함께 죽이는 편이 오히려 명예를 지켜주는 길이 아닙니까?”
여령기를 그저 여인으로 취급하는 조조의 말에 조비가 항변하듯 말했다.
그녀를 일개 여인이 아닌, 무장으로 평가한다면 군주와 함께 보내주는 것이 예의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