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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들개몰이 (2)



조조군이 서주에 진입하여 팽성국(彭城國)에 도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진규와 진등 부자가 곧바로 광릉군(廣陵郡)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조비가 군량을 사지 않은 지역으로, 군량이 매우 풍부하여 여포가 군량 수송지로 안심하고 있던 곳이었지만 조조군 침공 소식에 가장 먼저 배신을 하게 된 것이다.
평소 여포의 폭정으로 광릉군 호족들이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부추겨서 반란을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진규, 진등 부자가 무사히 반란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이걸로 여포는 서주 남부 지역을 모두 상실했다. 그 녀석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팽성과 하비성이 전부일 것이다.”
우금의 보고를 받은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사전준비가 모두 끝났다.
사실상 여포군의 군량을 담당하고 있던 광릉군이 가장 먼저 배반을 일으켰다.
광릉군에서 전해진 반란 소식은 서주 전역을 휩쓸 것이며, 여포로부터 폭정을 받은 호족과 백성들을 움직이는 신호탄이 되겠지.
내부에서부터 적을 무너뜨린다.
여포 같은 용장을 상대하는 데는 스스로 무너지게 유도하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직접 병력을 이끌고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미 조조군은 연주 공방전에서 여포의 무서움을 지독하게 겪지 않았던가? 무턱대고 정공법을 택하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최대한 여포를 낭떠러지에 밀어 넣으며 스스로 파멸로 향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목책을 높여라! 여포가 당장이라도 쳐들어 올 거다!”
“그 무식한 놈이라면 당장 군사를 몰고 오겠지!”
일전의 경험으로 여포를 상대하는 방법을 익히 알게 되었다.
조조군 장수들은 여포가 무작정 기병대를 몰고 올 것을 두려워하여 목책을 건설하고 대기병용 진형을 구성하는 등, 여포의 공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그러기를 수 시간.
여포는 마치 조조군과 내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예상 그대로 기병대만을 이끌고서 조조군 본진으로 급습을 시도하였다.

여포군의 깃발을 든 수백 기의 기병대가 조조군 본진을 급습하였다.
선두에는 여포와 장료가 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리고 있었다.
곧 조조군 본진은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넘치는 전쟁터가 되었으며, 조조군이 설치한 목책을 가로지르지 못한 기병대는 화살 밥이 되어 그대로 쓰러졌다.
“이놈 여포야, 드디어 네가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하후돈이 검을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하후연을 비롯하여 우금과 악진, 조인 등 여러 장수들이 모두 여포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서 달려들었으나, 여포는 천하무쌍이라는 무명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여러 장수들을 동시에 상대했다.
“이놈 조조! 내 당장 그 환관 놈부터 죽여주마!”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두르자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었다.
평화에 취하여 훈련을 게을리 하였다고는 해도, 여포가 사나운 맹수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직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건재하였으며, 무엇보다 동탁군의 비장이라 불리었던 그 용맹함과 피 끓는 투지가 아직 가슴속에서 솟아 넘치고 있었다.
“우악!”
여포의 공세를 버티지 못한 우금이 그만 낙마해버리고 말았다.
다른 장수들도 힘겨워 보이긴 매한가지였다.
고작 한 명의 적장에게 이토록 굴욕을 당하다니. 조조군의 장수들은 모두 뛰어난 맹장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여포에게만큼은 그 무명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중원 최강의 무장.
적토마에 올라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적을 도륙 낸다. 피와 살점으로 얼룩진 그의 병장기와 갑옷은 조조군 병사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여포가 목책을 부수고 방어진을 찢었다.
여포군 기병대를 막아내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포는 그것이 마치 우습다는 것처럼 모두 파쇄해 버렸다.
“저게 인간이냐?”
조비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도 서황은 그저 조비를 지키고만 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상상 이상이잖아.’
조비는 자신이 여포를 얕보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가 여포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주 공방전 당시에는 아직 젖먹이라서 그 전황을 두 눈으로 담은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여포가 가진 무서움도, 그리고 흉포함도 보지 못했다.
그저 여포가 우둔하고 용렬한 군주일 뿐이라며 업신여긴 것을 철회했고, 여포를 죽이기 위해선 정공법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의 장수가 전황을 바꾼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 줄이야.”
일반적으로 전투는 병사들의 몫이다.
장수의 우수한 지휘와 책략, 그리고 병사들의 용맹과 사기.
그것이 전쟁의 기본 요소였다. 군략의 기본 가르침이기도 하였으며, 군략의 대가였던 여러 명장들이 남긴 교훈이었다.
하지만 그 말도 여포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마치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위용이 아닌가! 오로지 한 명의 장수가 전황을 좌지우지하며 뒤흔들질 않나, 역병처럼 아군에 공포로 퍼지면서 점점 패색을 짙게 만들고 있었다.

“도련님, 우선 뒤로 물러서 계십시오. 여기는 위험합니다.”
“아니다. 여포조차도 결국 대군의 이점 앞에서는 무너질 거다.”
조비가 말했다.
여포가 제아무리 용장이고, 천하무쌍의 무장이라고 한들 결국에는 소규모의 병력. 대군의 진형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쇠뇌를 비롯하여 활들이 모두 쏘아지며 여포군 기병대들을 사살했다.
하늘을 수놓는 수천 발의 화살 세례.
새카맣게 쏘아지는 화살에 맞은 기병대들이 자신의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말이 머리부터 땅에 처박으며 쓰러졌고, 그 위를 타고 있던 병사들은 목이 부러지고 팔다리가 뒤틀어지면서 숨이 끊어졌다.
“저기 여포가 있다! 여포를 잡아라!”
“여포의 목이 곧 금덩어리다!”
장창병들이 일제히 창을 치켜들면서 적토마를 짐승 사냥하듯이 밀어붙였다.
제아무리 여포라고 해도 고슴도치처럼 잘 짜인 장창병 부대 앞에서는 돌격을 감행할 수가 없었다.
적토마는 다른 군마들에 비해 날래고 용감하지만, 장창병에게 돌격하는 순간 온몸이 꿰뚫리게 될 것이다. 속도가 빠른 만큼, 장창이 더욱 깊게 파고들 테니까.
조조군 장수들을 연이어 상대한 여포는 곧이어 장창병 부대의 포위를 받아야 했고, 점차 돌격한 기병대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불리한 전황을 감지했다.
초반에는 여포를 비롯한 기병대의 용맹으로 기선제압을 했을지는 몰라도, 패주를 하지 않고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하기 시작한 조조군 병사들의 진형을 무너뜨릴 순 없었다.
목책으로 인해 기마병의 돌진속도가 줄어들었고, 장창병과 궁병 부대의 활약으로 다수의 기병대가 목숨을 잃었다.
소규모의 기병대로 보병대형을 형성한 대군을 공격한다는 것부터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정예군단으로 이름이 높은 조조군이다. 지금까지는 오합지졸 같은 원술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을지는 몰라도, 조조군에게는 그 당연하다고 여긴 기병대 전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문원, 이제 퇴각한다! 다시 팽성으로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봉선 님.”
여포가 드디어 말머리를 돌렸다.
희생당한 아군 기병대보다 많은 숫자의 병력들을 죽이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그 결과는 조조군보다도 여포군에게 더욱 치명적인 일이었다.
조조군은 연주를 비롯하여 예주와 사예주 등의 지역에서 병사의 충원이 가능하지만, 여포는 고작 팽성과 하비성만을 세력권에 두고 있었으므로 병력을 다시 모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싸움으로 인한 병력의 소거법.
병력의 격차를 놓고 본다면 여포군은 일인당 최소한 5명 이상의 조조군 병사들을 죽여야만 전투에서 승리하였다고 볼 수 있었는데, 이번 초전에서는 기병 하나가 고작 보병 둘을 죽였을 뿐이었으니 여포에게 있어선 오히려 뼈아픈 손실이나 다름없었다.

여포가 다급히 말머리를 돌려 팽성으로 돌아갔다.
천하무쌍의 무장은 스스로 기병대를 이끌고 조조군을 패주시키려 한 모양이겠지만, 조조군이 팽성 인근에 형성한 포위망은 건재했다.
무너진 목책은 다시 건설되었으며, 여포군이 휩쓸고 지나간 빈자리는 다시 조조군 병사들로 채워졌다.
조조군은 수춘성 전투에 동원한 5만 대군을 모두 이끌고 서주성으로 오게 되었는데, 서주로 오는 도중에만 해도 여러 호족들이 사병을 보내왔으므로 병력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광척현(廣戚縣) 태수, 병력을 이끌고 집결했습니다.”
“부양현(傅陽縣) 태수가 시급히 물자를 수송하여 왔습니다.”
서주의 호족은 물론, 여포에게 녹봉을 받던 태수들까지도 모두 조조군의 편에 섰다.
특히 광척현과 부양현은 여포의 직할지였던 팽성국의 지역이었으므로, 그 태수들은 여포의 심복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자들이 배신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여포가 군주로서 가진 자질이 부족했음을 의미하였다.

군주의 직할지를 다스리던 지방관과 호족들이 배반했다.
그것은 곧 여포군의 패망을 의미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고맙소. 그대들의 응전에 힘입어, 이 조맹덕이 기필코 여포를 쓰러트리겠소.”
서주 호족들의 지원에 조조가 화답하며 그들에게 조정의 이름으로 벼슬을 내리고, 각종 보물을 하사하는 등의 유화책을 펼쳤다.
지금까지 여러 지역에서 호족들의 귀의를 받아왔던 조조였지만 특히 서주에서는 귀의한 자들에 대해서 인심이 두터웠다.
서주 백성들로부터 강한 적의를 받는 조조로선 특히 호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였으므로 벼슬을 남발하고 진귀한 보물을 아낌없이 내리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전쟁이 가장 큰 투자라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군.”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조카?”
조비의 알 수 없는 말에 하후돈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 말에 조비가 대답했다.
“숙부, 저 호족들이 과연 승상에게 마음이 있어서만 충성을 다짐했겠나?”
“그건 아니지.”
우리 형님은 서주에서는 완전 때려죽일 놈이니.
하후돈이 제법 신랄하게 조조의 악명을 거론했다.
“아군에게 투자를 하면 그 충성심을 인정받아서 몇 배에 달하는 보상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응당 그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가문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아군으로 넘어와야 할 테니까.”
오로지 권익에만 입을 다시는 호족들.
그들이 승자인 조조의 편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조비는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날쌘 판단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승자에 편에 서는 것은 당연하고. 패자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것 또한 당연하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곁에는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장료와 고순 같은 무장들은 절대로 여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이름은 만대에 걸쳐 충장(忠將)이라 불리겠지만 결국 배신하지 않으면 개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 명확했다.
“하후 숙부. 영벽현에 있는 고순은 죽이지 말라고 전해.”
“함진영을? 뭐, 여포만 쓰러진다면야 알아서 고분고분해지겠지만.”

그러나 과연 그게 쉬울까?
하후돈이 우려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