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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들개몰이 (1)



수춘성이 함락되고 원술이 합비성으로 패주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여포는 오히려 조조군의 승리를 축하하는 서한을 보내며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승리에 우리의 조력이 있다는 것을 조맹덕이 잊진 않았겠지?”
평동장군을 넘어서 위장군 정도의 벼슬을 내려줬으면 좋겠군.
여포는 승전을 거둔 조조에게서 무언가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본인의 세력은 조조와 동맹 비슷한 관계에 있었으므로, 조조군의 승리에 아무런 경각심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봉선 님, 조조군이 쳐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우선 장료와 장패로 하여금 영벽현(靈壁縣)의 길목을 막으라 명령하시고, 급히 소집령을 내려 서주성에 병력들을 집결시켜 두겠습니다.”
“또 그 소리인가? 이미 조조에게서 많은 벼슬과 재물까지 모두 받았거늘, 뭐가 또 문제란 말인가?”
평동장군의 관직은 물론, 서주목의 벼슬과 함께 조조가 다스리는 조정으로부터 수많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린 여포로선 전혀 조조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 점에선 진궁의 가슴만 답답할 노릇이다.
연주 공방전에서만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싸운 악연이건만, 그 과거를 모두 잊어버리고 조조를 마치 동맹자 대하듯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낙양에서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다가 실패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비장 여포가 조조를 죽이려 했다.
즉, 조조를 두 번이나 죽일 뻔한 인물이 바로 여포였다.
그런데도 여포는 조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를 죽이겠다는 살의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그를 살려둔 게 화근이었다.’
조조가 동탁군의 추격을 받던 시절, 중모현에 잡힌 그를 살려준 일.
그리고 여백사 일가를 죽이면서 그에게 협력한 일.
연주를 통일하는데 있어 조조군의 제1모사로서 힘을 거든 일.
진궁은 조조와 함께 했던 모든 나날들을 떠올리며, 그의 지척에 있었음에도 죽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한탄을 토해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결국 자신이 미련하고 무능하여 조조의 그 시커먼 속내를 뒤늦게 깨달은 탓인데.

“아버님!”
여포의 딸인 여령기가 달려왔다.
그 모습에 여포는 자신의 사랑스런 딸이 어떤 일로 다급함을 보이는지 의문을 느꼈다.
“무슨 일이냐. 이렇게 소란을 떨고.”
“조조는 분명 서주로 올 거예요! 그가 아들을 보내어 서주 전역에서 군량을 사들인 것도 그렇고, 광릉군(廣陵郡)의 진규에게 서한을 보내고 있다고 하니 의심스러워요.”
그 말에 여포는 걱정할 것 없다고 딸을 다독이면서도, 딸에게 심려를 끼친 진궁을 노려보며 질타의 말을 던졌다.
대체 뭐라고 떠들었기에 딸이 두려움을 품게 만들었는지.
여포는 정실부인 엄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령기를 특히나 총애했다.
그래서인지 매번 딸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었는데, 이번 일에 한해서는 괜스레 딸이 걱정을 품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달래주었다.
“진규는 오래전부터 조조와 친한 지우였다. 사신으로 가서 광릉태수에 임명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그를 질타한다면 오히려 부하를 의심하는 소인배라 욕을 들어먹을 거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매번 똑같은 일상이 이어질 것이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원의 사정과는 다르게 이 서주만큼은 언제나 평화로움이 반복되리라.
“주군, 우선 책사의 말대로 병력들을 소집시켜 두겠습니다.”
고순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함진영(陷陣營)을 이끄는 용감한 장수.
장료보다도 여포가 더 총애하는 용장으로, 특히 연주에서 조조를 크게 격파한 적이 있었기에 조조군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여포는 고순이 고집을 절대로 꺾지 않는 외골수 같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없이 손을 내저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신호였다.
그저 고순과 진궁이 괜한 두려움에 내린 결정이라고만 여겼다.
서주를 침공한 원술을 격파한 이후에는 여포군 병사들은 그 어떤 훈련도 없이 태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훈련을 하는 의미에서 소집령을 내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고순 장군.”
서주목 처소를 나서려는 고순을 진궁이 불렀다.
“예, 책사님.”
“조조는 반드시 서주로 올 것일세. 그 간교한 인간이라면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어.”
여포군 병사들은 평화에 취해있다.
여포만큼이나 치열하게 전쟁터를 종군하고 다닌 병사들은 서주에 안식처를 마련하고는 혼인을 하고 자식을 두는 등, 평화로움에 흠뻑 빠져 있었으므로 나태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군주 여포부터가 이미 전쟁을 멀리하게 된 탓에 생긴 일이다.
인중여포 마중적토(人中呂布 馬中赤兔)라 불리었던 시절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호로관에서 싸우던 여포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부하의 아내들을 술자리에 부르며 가무를 즐기기도 하였으며, 부인 엄씨를 멀리하고 첩으로 둔 초선을 가까이 하였으니 집안에 불화가 일어났다.
“자네는 당장 함진영 부대를 데리고 영벽현으로 가게! 서주 전역에서 병력들이 모이기 전까지 반드시 길목을 사수하도록.”
“목숨을 다해서 지키겠습니다.”
고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료보다도 높은 직급의 장수.
진궁은 장료를 여포 곁에 두어 지키게 하고, 고순은 함진영 부대와 함께 영벽현으로 가서 서주성으로 쳐들어올 조조를 막도록 명령하였다.

고순이라면 안심할 수 있다.
그가 이끄는 함진영 부대는 용감하고 군율에 엄격하니, 절대로 적에게 쉽게 뚫리진 않으리라.


* * *


“선수를 뺏겼습니다.”
선두에서 말을 몰며 팽성국(彭城國) 영벽현에 도착한 조비가 말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영벽현에 세워진 성채였다.
성채들마다 그 첨탑 위에 여포군을 상징하는 깃발은 물론, 함진영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깃발이 그 옆에서 나란히 휘날리고 있었다.

함진영이다!

그 부대의 이름은 조조군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난전 중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조조를 죽일 뻔하지 않았던가. 고순의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귀신이 된다는 소문으로 가득했다.
공포와 두려움을 모르는 함진영.
그들이 서주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성채를 지킨다는 것은 곧, 아군이 서주를 도모하려는 것을 미리 간파하였음을 의미했다.
여포의 심복인 고순이 직접 정예병을 이끌고 성채를 지키고 있었기에, 조조군은 함부로 영벽현을 넘어서지 못했다.
“겨우 작은 마을에 있는 성채가 아닌가? 내게 군사를 주면 단숨에 함락시키고 오겠소!”
하후돈이 직접 3천의 군세를 몰고 영벽현의 성채로 진격하였지만, 함진영이 지키고 있는 성채는 이틀 동안이나 공격을 받았음에도 멀쩡했다.
분명 수백 명 규모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성채였다.
흙으로 급조해서 쌓아올린 성벽과 조잡스러운 첨탑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수춘성을 무너뜨린 조조군의 맹공을 계속해서 견뎌내고 있었다.
그를 보며 조비는 과연 잘 훈련된 군세는 그 방비부터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함진영은 조조조차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고함을 토해내며 강렬한 저항을 펼치는 모습에 조조군 병사들이 공포에 떠는 것이다.
이래선 다수의 병력을 가졌다는 이점이 없다.
훨씬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군이 적의 저항에 겁을 집어먹고 꽁무니를 빼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휘관에게 책임이 있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저따위 시골 성채가 아닙니다.”
“이리를 사냥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이리가 있는 굴로 뛰어들어야 할 겁니다.”
여포가 방비를 취하기 전에 미리 끝장을 내야한다.
장수들이 입을 모아 발언했다.
분명 여포는 우둔하고 용렬하여 아무런 방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함진영 부대를 지휘하는 고순이 직접 길목을 막고 있는 것은 매우 뜻밖의 일이었지만, 분명 진궁의 꾀가 작용한 방비였겠지.
진궁을 멀리하고 귀를 막을 정도로 책략에 어두운 여포는 분명 서주성에 박혀서 허송세월이나 보내고 있을 게 뻔했다.
지레짐작에 가까운 말들이었지만, 그 예측은 마치 서주성의 현황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수준으로 모두 사실이었다.
연주 공방전에서 여포군과 치열하게 싸웠고, 수많은 희생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그 쓰라린 경험은 여포라는 인물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되어주었고, 지금 당장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조조가 물었다.
“그럼 저 고순은 어찌해야 되겠는가?”
그 말에 조비가 대답했다.
“성채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진흙으로 막아버리고, 그 위에 궁병들을 배치하여 나오는 적을 사살합니다.”
함진영으로 유명하다고는 하나, 결국에는 인간.
계속해서 굶으면 쓰러지길 마련이고, 쓰러진 상태에서는 싸울 기력조차 없게 된다.
이쪽은 다수의 이점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제 곧 소패성으로 유비가 도착할 것이니 서주 백성들의 민심 또한 등에 업게 된다.
반면 여포는 서주목이 된 이래부터 갖은 폭정과 세금 징수로 민심을 등지고 있었으니, 이 작은 시골이라고 해서 여포군을 반길 턱이 없었다.
고순이 지키는 성채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막는다.
백성들은 여포군을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길목을 막는 작업에 곧바로 응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저따위 장수 하나에게 시간을 빼앗길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포의 곁에 고순이 없다.
서주성을 지키는 병력에서 함진영이 제외되어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오히려 조조군에는 큰 호재로 작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