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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수춘 전투 (4)



수춘성을 빼앗긴 원술은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산하의 군벌들은 원술의 남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으며, 당장 옆에 있는 장수들도 믿을 수 없었다.
대장군 장훈은 조조군의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합류했지만, 대장군 교유를 비롯하여 이풍과 양강 등의 장수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원술의 심복들이 차례대로 목숨을 잃었으니, 당장 원술의 지지기반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해졌다. 만약 장훈이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부하 장수들은 패전의 원인으로 원술울 지목하며 보복을 감행하였을지도 모른다.
“조조! 이 환관 놈이 짐이 없는 틈을 노리다니!”
명문가의 자손이라는 자가 어찌 이리도 비열을 짓을 저지르는 거냐!
원술이 비명을 토해냈다.
원술의 외침은 그저 패배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수도를 빼앗기고 합비현이라는 시골벽지로 쫓겨나버린 가짜황제.
이미 형주의 남은 영토는 유표에게 모두 빼앗겼으므로, 갈 곳이라고는 양주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양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하 군벌이었던 손책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대부분의 영토들을 조조와 기타 군벌들에게 모두 빼앗긴 원술은 당장에 머물 곳도 없는 처지가 되었고, 그 서글픔에 스스로가 망가지는 결과를 낳았다.

‘친구가 어딨어? 이미 망가졌는데.’
‘대군벌이었을 때나 동맹이지.’
여남원씨 가문은 이번 일을 계기로 원술과 단절을 선언했다.
황제를 참칭하였을 때도 원술을 지지했던 가문이었지만, 가문이 투자한 모든 자금을 말아먹은 원술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군벌로서 황제로 성장해나가고 있었을 때에는 원씨가 황족이 되는 망상을 품었지만, 원술은 황제의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원술을 지지하던 여남원씨 세력들은 모두 원소를 추종하기 시작했고, 원술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작고 볼품없는 합비성이 전부였다.
“우선 원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장군 장훈이 물었다.
그 말에 원술이 격노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웃기는 소리! 내가 그 얼자 놈에게 왜!”
원술을 항상 원소를 노비 자식이라 비웃었으므로, 그의 자비에 기대어 망명을 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치욕이었다.

항상 원소를 시기하고 원망해왔다.
노비 자식 주제에 6년상을 치르며 제 친모도 아닌 원술 자신의 어미가 죽은 것을 슬퍼하질 않나, 그로 인해 정작 자신은 원소만도 못한 후레자식이 되어 버렸다.
남의 어미를 이용해서 출세한 놈.
원소가 직접적으로 출세하게 된 이유는 6년상을 거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소는 원술의 친모가 죽은 것을 이용해서 조정의 명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당연히 원술은 어미의 죽음을 이용한 원소가 뻔뻔스럽게 느껴졌고, 그때부터 원소를 향한 강한 적의를 느끼게 되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하북으로 가서 목숨이라도 보존하는 수밖에는.”
“오랜 악연을 청산하고 원소 님과 화해하시지요.”
원술군 장수들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과거의 악연을 빌미삼아 원소에게 귀의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원술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진왕 유총을 공격하자는 의견을 꺼낸 것은 장수들이었지만, 결국 패인은 원술의 사치와 향락으로 수춘성에 군량을 비축하지 못한 탓이었다.
수춘성이 불과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었다. 수춘성에 군량이 부족하다는 약점은 원술운 무장들이 모두 알고 있는 요소였고, 그 요소가 언제 수춘성을 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결국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조조군은 보름만에 수춘성을 점령하였으며, 반면 원술군은 수도를 잃고 주변 군벌들에게까지 노려지는 나약한 짐승이 되어버렸다.
“뇌박과 진란을 부르거라.”
원술이 직접 친서를 작성하여 전령에게 양도하였다.
전령들은 하루를 앞 다투며 뇌박과 진란에게 갔지만, 그들로부터 당장에 도와줄 수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들어야 했다.
이미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가짜황제를 누가 도우려 하겠는가?
오히려 뇌박과 진란은 원술을 가까이 하였다가 본인들이 역적으로 몰리는 건 아닌지 우려되어, 원술과의 모든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지금의 원술은 받아들이자니 심각할 정도로 큰 위험요소였다.
이미 조정으로부터 대역적의 혐의를 받고 있었으며, 승상 조조는 언제든지 원술을 죽이려고 했다.
원술을 가까이하면 조조에게 노려지게 된다.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원술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이 시골잡놈들이……! 지금까지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뇌박과 진란만이 아니다.
원술과 평소 교분을 트고 지내던 군벌들이 모두 원술의 귀의 요청에 거절.
오히려 과거에 베푼 은혜를 망각하고는 원술에게 남은 재물들을 노리기도 했다.
당장에 조조군이 아닌, 아군이었던 군벌들에게 노려지게 되었다. 보물을 약탈하고 원술에게 남은 처첩들을 빼앗으려는 이리들로 가득했다.
원술에게 남은 마지막 재산.
특히 원술이 가지고 있는 전국옥새를 빼앗으려는 자들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최악으로 몰리자, 결국 원술은 원소에게 손을 뻗어야 했다.
“그래, 짐이 졌다! 우선 청주자사 원담에게 사신을 보내거라. 원담과는 교분이 있으니 짐을 받아들여주겠지!”
원술이 소리쳤다.
그 말에 장수들은 ‘아직도 자기가 황제인 줄 안다.’라고 생각하며, 아직도 스스로를 ‘짐’이라 표현하는 원술의 말투를 우스꽝스럽다고 여겼다.
재산도, 영토도, 백성도 모두 잃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패잔병 수준의 병력과 다 부서진 수레밖에 없었음에도 원술은 아직도 자신이 황제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 * *


“다음은 여포다.”
조조가 칼끝을 서주로 돌렸다.
원술군이 사실상 멸망의 단계를 걷게 된 이때, 서주의 여포를 지지해주는 세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병주자사 정원을 죽였으며, 동탁 또한 죽였다.
자신의 양아버지를 두 명씩이나 죽이면서 천하의 패륜아가 된 천하무쌍의 무장.
그를 옹호해주는 세력은 전무하였으며, 결국 여포는 서주의 틀어박혀서 죽을 운명에 처했다.
조조가 토벌군을 모두 서주로 집중시켰다.
어째서 조조가 수춘성을 점령하는데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고 생각하는가? 원술의 본거지였다는 점도 있겠지만, 수춘성은 서주를 공략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서 매우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주에서 구한 군량들을 수춘성에 가득 쌓아둔 조조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전쟁을 속개할 수 있었다.
“드디어 그 후레자식을 죽일 수 있게 되었어!”
하후돈이 썩 기분이 좋았는지 창을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여포군에 다시 복수를 한다.
연주 공방전에서 지독하게 당했던 조조군으로서는 여포 토벌을 오랫동안 고대해왔다. 원술을 물리치고 이제 여포만을 남겨두고 있었으니, 모든 계획들이 순리대로 처리되는 것 같아 쾌재를 불렀다.
“원술을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건지…….”
하후연은 아직 원술이 합비현에 있으니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를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조조는 원술은 이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그릇이 못 된다면서 우환거리로 여기지 않았다.
고작해야 시골에서 쓸쓸하게 죽어갈 운명.
조조는 그게 바로 원술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원술은 이제 끝났다. 그깟 가짜황제가 뭐라 지껄이건, 그를 받아들여줄 사람은 없겠지.”
원술은 원래부터 군벌의 자리도 아까운 소인배에 지나지 않았다.
조조가 원술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 허영심이 젖은 인간을 비웃었다.
‘반면에 그릇을 따지고 본다면…….’
조조의 시선이 조비를 향하고 있었다.
조비는 마치 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부하 장수들을 모두 관리하면서 서주에 전진 배치시키고 있었다.
부도독의 자리에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소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들은 그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여포 토벌전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포는 분명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죽게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
조비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는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죽는다.
그 미래를 아는 조비는, ‘내가 그 기한을 빠르게 앞당겨주겠다.’ 라고 다짐하며 여포의 명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원술과 여포는 우후죽순처럼 늘어진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에서는 나름 활약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점차 군벌들이 사라지며 세력 고착화를 이루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그저 폭군(暴君)에 지나지 않는 과거의 잔재가 될 것이다.

“수춘에서 서주성까지는 거리가 매우 가깝습니다.”
“단숨에 밀고 올라가면 서주성도 수춘성과 같은 꼴이 될 겁니다.”
“지원군을 부르기도 전에 끝내버린다면 여포는 순식간입니다.”
조조군의 책사들이 모두 ‘속전속결’을 입에 담았다.
여포와의 전쟁에서 시간을 크게 소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렇기에 원술이 합비성으로 도망쳐서 목숨을 보존하고 있음에도, 그쪽으로 군사를 보내지 않은 것이다.
이미 원술은 스스로 패망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며, 원술 따위에게 투자할 시간이 아깝다.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도래하였다.”
여포를 멸망시키기 위한 전쟁.
지금까지는 조정의 이름을 빌려서 여포와 친선관계를 맺었다고는 하나, 오늘부로 그 가증스러운 관계도 끝이다. 원술이 멸망한 시점에서 여포 또한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반동탁 연합군에서부터 이어진 악연이다.
조조는 여포와의 악연을, 그리고 진궁과의 악연을 청산해야할 때가 도래하였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