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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수춘 전투 (2)



원술이라고 해서, 아무런 뒷배도 없이 황제 참칭이라는 어마어마한 반역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사세삼공(四世三公)으로 이름이 높은 여남원씨(汝南袁氏) 가문.
한나라 황제가 조조의 꼭두각시가 되면서 황실이 더없이 추락했다고 여긴 원술은, 이제 한 황실이 쇠퇴하였으니 그 자리를 자신이 대신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동맹 관계였던 공손찬, 장수, 유표가 강력하게 지지해주고, 거기다가 강동을 평정한 손책도 다시 병력을 이끌고 귀환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황제를 참칭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백마장군 공손찬은 역경성에 포위되어 원소에게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장수와 유표는 가짜황제 원술을 더 이상 지원해주지 않았으며, 손책은 강동을 평정하자마자 원술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는 자립해버렸다.
그 어디에도 가짜황제를 반겨줄 사람은 없었다.
그저 밑으로 추락하기만 할 뿐인 인생.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였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파멸을 상징하게 되었다.

“아직도 지지부진한 전황이군.”
조비가 조조군 진영에 합류하였다.
수춘성에 가득 쌓인 시체들을 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수천 명의 인간들이 뒤엉켜서 고깃덩이를 이루는 광경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인상을 찌푸릴 만하다.
모두 각자의 깃발 아래에서 싸웠을 병사들이었건만,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로지 핏덩이가 되어 있을 뿐이다.

수춘성을 반드시 함락시켜야 하는 조조군.
수춘성을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원술군.
서로의 입장이 엇갈린 가운데 치러지는 전쟁은 그 치열한 양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구강군은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흉작을 계속 거둬왔습니다. 공성전을 치르는 아군보다도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을 겁니다.”
조비가 발언했다.
그가 서주 전역에서 대규모의 군량을 공급하였기에 조조군은 공성전을 치르는 입장에서도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조홍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두 쏟아 부은 덕분이다.
만약 황실의 국고 따위를 이용했더라면 오히려 재산이 모자라서 적정량의 군량을 모두 확보하지 못했겠지.
조인이 입을 열었다.
“우선 동문은 언제든지 진격이 가능합니다. 제아무리 저항해봤자 정해진 병력에 한도가 있으니 결국 공격을 계속 버티진 못합니다.”
수춘성에 남은 곡식이 많을 리가 없다.
원술의 사치는 중원의 누구나가 아는 내용이었고, 그를 백성들의 세금으로 감당해야 했을 것이니 장기간 버틸 수 있는 곡식을 저장할 여유조차 없었겠지.
으리으리한 황궁과 두꺼운 성벽.
그런 것을 보자면 나름 타국의 침공에 대해서 대비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병사들을 먹일 군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신분이 낮고 비천한 일반 졸병들에 한해서는 그 마음을 두지 않는 원술이나 저지를 법한 가장 어리석은 실수였다.
“문제는 진란과 뇌박입니다. 그들이 군사를 몰고 오게 되면 아군은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되게 됩니다.”
곽가가 발언했다.
진란과 뇌박은 원술군의 무장이며, 또한 비천한 도적떼 출신의 두령이다.
그들에게 원술에 대한 충성심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진 군세가 상당하였으므로 조조군의 후미를 공격하게 되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럼 서둘러 수춘성을 넘어뜨립시다! 수춘성만 떨어지면 그깟 도적들이 뭘 할 수 있겠소?”
당장이라도 공격합시다!
하후돈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지긋지긋한 수춘성도 이제 작별이다.
조비가 서주에서 군량을 모두 공수해왔으므로 조조군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반면 수춘성의 사기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지원군의 당도가 늦어지고 있다.
수춘성의 모든 길목들마다 조조군이 배치되어 깃발들을 나부끼고 있었기 때문에 소규모 부대들은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누구도 조조군의 맹장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며, 원술이 그토록 믿은 손책은 원술군의 위기에도 불구하도 나서려는 기색이 없었다.
만약 손책이 나선다면 그 순간 전황이 역전될지도 모르나, 이미 원술에게 볼일이 없어진 손책으로선 남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이 옳다. 전군은 수춘성을 넘어라! 역적 원술이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도록 수춘성은 물론 모든 성들을 무너뜨리겠다!”
조조가 명령하는 순간, 전군이 움직이면서 수춘성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비록 난공불락의 요새라고는 해도, 그 안의 병사들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성벽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벽력거가 연신 바윗덩이를 성벽 너머로 던지면서 피해가 가중되었고, 충차는 이미 수춘성의 모든 성문들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렸다.
“흐하하하!! 나를 따르거라!”
하후돈이 외치며 성문 너머의 적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척안(隻眼)의 무장은 어느 때보다도 피가 들끓고 있었다.
원술은 오래 전부터 조조는 물론 조씨 일가를 무시해오지 않았던가. 십상시와 같은 환관 출신이라고 하여 업신여기고 모욕을 주었다.
그 원한을 하후돈은 잊지 않았다.
수춘성을 함락시키고 원술의 그 오만한 얼굴에 침을 뱉을 생각을 하니, 절로 의욕이 솟구쳤다.
가짜황제의 수도를 함락시키자!
조조군 병사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치면서 성문과 성벽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으악!”
원술군 무장 이풍이 적병의 창에 찔려 비명을 토해냈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원술군 병사들은 열린 성문을 통해서 도망치기에 바빴고, 황궁에 불이 붙으면서 요란스러운 불길을 토해냈다.
원술의 장대한 야망이 덧없이 사라졌다.
전각들이 무너지며 화염을 확산시켰고, 광기에 물든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울릴 때마다 피가 얼룩졌다.
황제 원술은 자신의 수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회군을 해오고 있을 테지만, 이미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분명 원술군은 장기전으로 몰고 가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 노림수는 틀렸다.
본인들이 조조군을 상대로 장기전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그 가정 자체가 오만한 허점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적들과 싸워왔던 조조군을 이긴다?
천하무쌍 여포를 상대로 연주 공방전에서 승리하였으며, 황건적들을 흡수하면서 탄생한 청주병(淸州兵)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유린하고 있었다.

“적의 공세가 아직 매섭습니다.”
“괜찮다. 이 정도면 양호하지.”
수춘성 내부로 들어선 조비는 피투성이가 된 광경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편 서황은 아직도 남은 잔당들이 조비를 노릴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아직도 수춘성 내부에서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소강기를 맞이하면서 차츰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금 장군. 포로로 잡은 장수들을 모두 처형하라.”
“예, 알겠습니다.”
대장군 교유.
장수 양강과 악취.
우금의 병사들이 사로잡은 원술군 무장들이 모두 참수되어 그 목이 성문에 내걸렸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처형된 순간, 최후까지 저항을 벌이던 원술군 병사들이 병장기를 내던지며 항복을 선언하였다.
그를 본 조비가 손을 올렸다.
“항복하는 병사에 한해서는 투항을 허락한다.”
어차피 싸움에 진 개들이다.
끝까지 저항한다면 당연히 죽여야 하겠지만, 폭군 원술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패잔병들은 많지 않았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조조군이 비교적 쉽게 수춘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백성들은 원술에게 매번 가혹한 수준의 세금을 내야 했다.
그렇게 억압을 받아온 백성들이 곧 병사였으니, 원술이 이제 패망할 것이라 생각하고는 조조군에 쉽사리 투항한 것이다.
항전의 의사가 전혀 없다.
원술군 무장들은 투항을 해오면서 원술이 아껴두었던 후궁 수백 명을 바치기에 이르렀다. 무장들이 앞다투어 투항하고자 주군의 여자들을 바칠 정도였으니, 그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들.
하후연은 매우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항장(降將)들을 바라보았지만, 조비로서는 패자에게 충성을 바칠 장수는 그 어디에도 없다면서 당연한 생존본능이라고 말했다.
“우리 조카께서도 저 계집들 중에 하나 골라잡아보지?”
하후돈이 껄껄 웃으며 조비에게 물었다.
외눈의 무장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적진에 달려들어 활약하였으니 당연했다.
수춘성에서의 그 치열했던 전투와 살육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를 무슨 승상으로 보십니까.”
“하긴 승상이라면 사족을 못 쓰겠지.”
원술이 황제로 군림하면서 모은 절세의 미녀들.
백성들로부터 강탈한 돈을 빼앗은 원술은 자신의 후궁들을 위해서 각종 노리개와 비단옷을 사길 주저하지 않았는데, 금붙이와 화려한 옷들로 치장한 원술의 후궁들은 병사들이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를 본 조비는 용감하게 싸운 무장과 병사들에게 상으로 주려고 할 뿐, 그녀들을 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직 어리지만 분명 이성에 대한 욕망이 강할 법한데도, 조비는 침착하고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려고 할 뿐이다.
그를 본 하후돈은 재미없는 조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내라면 응당 미녀들을 전리품으로 취하는 배포가 중요하건만, 조비는 그것에 관심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수춘성이 떨어졌다.”
조조보다도 먼저 수춘성에 들어온 조비는 폐허가 된 성벽에 조조군의 깃발을 내걸도록 지시하였다.
깃발을 바꾼다는 것은 곧 수춘성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참형당한 죄인들의 수급을 전공으로 자랑하는 한편, 조조군의 깃발을 더욱 높게 펄럭이면서 사방에서 이 소식을 들을 원술군에게 공포를 심어주어야 했다.
“의외로 쉽게 떨어졌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리던 수춘성이라 하나, 결국에는 모래로 된 성이다.”
모래로 되어있으니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지.

두터운 성벽과 수많은 대군.
그로 무장하였더라도 백성들의 지지와 병사들의 투쟁심, 그리고 무장들의 충성심을 얻어내지 못했으니 결국 모래로 된 성과 다를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