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3화] 가짜 황제 (3)
“형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후돈에 거세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소중한 후계자를 또 다시 전쟁터로 보내겠다니!
그것도 대군벌 원술과의 전쟁에!
완성의 장수와 싸울 적만 하더라도 대패를 겪지 않았는가?
세력 면에서 놓고 본다면 장수 따위보다도 높은 권력과 강성한 전력을 자랑하는 원술이다.
원술의 본거지인 수춘성을 침공하는 전쟁에 아들 조비를 투입시키겠다는 조조의 결단은 하후돈에게 있어선 이해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만큼 조카를 애지중지하게 여긴다는 것 아닙니까.”
동생 하후연이 말했다.
조비를 미워하였다면 애초에 전쟁에 동원하지 않았을 문제였다.
항상 전쟁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조조는 병사들의 치중은 물론 장수들의 세세한 면에 있어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성격이었다.
분명 완벽주의자인 조조가 그러한 결단을 내렸다면 분명 그런 이유가 있을 터.
하후연은 조조에게 흔들림 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긴 했지만, 그 표정은 곱지 않았다.
만약 이번 전쟁에서 조비를 잃는다면 조조군은 후계자 분열로 인해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차남 조창은 어렸고, 삼남 조식은 말할 것도 없다. 장남 조비가 그나마 관례에 가까워지면서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었는데, 그런 조비를 잃는다는 결과는 절대로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끔찍한 경우였다.
“제가 도련님의 곁에 반드시 붙어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어떤 난전 속에서도 지켜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서공명이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서황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조조군의 후계자를 잃는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참극이다.
이미 한 번 겪은 비극이다.
두 번 다시 겪을 순 없다.
하후돈은 서황의 무예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기에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서황이라면 분명 그 어떤 아수라장 속에서도 조비를 지켜낼 수 있겠지. 그렇게 믿었다.
조조의 성격으로 볼 때, 자신이 내린 명령을 절대로 돌이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비가 원술군 침공전에 동원되리라는 것은 필정된 사안이다.
그렇다면 조조군 무장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조비를 지켜내는 한편, 최대한 속전속결로 원술군의 거점인 수춘성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 * *
조조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원술군에서 보낸 사자를 처형한 것이었다.
그 후 황실의 이름을 기만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자칭한 원술의 역적 행위를 규탄했다.
더 이상 원술의 폭정(暴政)을 용인할 수 없으며, 원술이 강제적으로 억류하고 있는 예주(豫州), 형주(荊州), 양주(揚州)를 탈환한다. 그를 명분으로 삼은 조조군이 5만 대군을 일으키면서 남쪽 정벌을 개시하였다.
“조자환을 부도독(副都督)으로 임명한다.”
승상 조조가 직접 원술 정벌전을 친정(親征)하면서 스스로를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칭하였다. 더욱이 그 아들인 조비가 부도독에 임명되었으니, 황제의 군단들은 모두 조조군 소속이며, 병사들의 지휘관 역시 조조군 소속임을 확연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승상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조비는 겨우 열다섯 살의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년식도 거치지 않은 아이를 부도독이라는 거창한 직명에 임명한 것에 대해선 황실관료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지만, 이미 황제를 옹립한 조씨 일가의 세상이 되었으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조조가 자신을 정남장군에 봉해줄 것을 요구하는 안건을 보낸 지 불과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유협이 직접 옥새를 찍었을 정도였으니 그 위명이 실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출정한다.”
부도독 조비가 이끄는 3천의 군세들이 본군을 이탈하여 동쪽으로 진출.
마치 이번 수춘 전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듯, 그의 군세는 회남 지역을 넘어 북쪽으로 나아가면서 안전지대에서만 머물렀다.
전쟁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병사들은 여포가 다스리는 서주(徐州)에 가까워질수록 설마 천하무쌍의 장수와 싸우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서주 전투가 끝난 이래로 조조군과 여포군은 황제의 중재를 시작으로 동맹을 결성하고 있었으니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
실제로 조비는 수춘 전투에 동원될 군량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들른 것일 뿐, 전투를 펼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세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곡량들을 모두 사들여라.”
절대로 약탈을 해선 안 된다.
서주에 병사들을 보낸 조비는 여포군과 정당한 교섭을 통해서 군량을 확보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 말에 부장 서황은 수춘 전투에서 조조군 본대를 먹일 식량들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조비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여포군 무장인 학맹과 조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조군 병사들이 서주 전역에서 곡량들을 대거 사들였다.
모사 진궁은 서주의 식량 사정을 들어 크게 반대하였지만, 스스로 서주목이 된 여포는 평동장군에 봉하겠다는 황제의 칙명에 눈이 멀어 조조군이 서주에서 식량을 대거 사들이는 것을 윤허하였다.
“그런데 군자금은 어디서 난 것인지…….”
서황이 물었다.
본대의 별동대에 불과한 수준의 이 군세에 서주 전역에서 식량을 대거 사들일 수 있을만한 군자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설령 조조가 이를 윤허하여 군자금의 대부분을 내어주었다고는 해도, 시세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사들일 정도의 자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서황의 물음에 조비는 숙부인 조홍에게서 빌린 자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 짠돌이가 스스로 돈을 내어줬다고?’
서황이 짐짓 생각했다.
물론 조조의 혈족인 조홍에게 이러한 생각을 품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지만, 자신의 재물에 한해서는 한없이 인색하다고 불리는 조홍이 선뜻 조카인 조비에게 무상으로 빌려줬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원금의 두 배에 달하는 빚으로 갚기로 했다.”
빌어먹을 숙부 같으니.
조비는 수전노인 조홍의 인색함에 치가 떨렸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서황의 생각이 정확하다.
조홍은 절대로 자신에게 손해가 될 법한 일을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이오, 연주 최고의 부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를 함부로 쓰려드는 사치조차도 부리지 않았다.
그런 인간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조비는 어렵사리 조홍을 설득하여 그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일시적으로나마 빌릴 수 있었다. 물론 이를 기한 내에 갚지 못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기로 합의를 보았다.
승상 조조가 직접 개입하여 합의점을 이루어냈으니, 합의를 어기는 순간 조홍이 아닌 조조로부터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소장, 장료라 합니다.”
여포군에서 또 다른 장수가 내려왔다.
서주 전역에서 군량을 사들이는 것은 여포군으로서도 제법 민감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학맹과 조성 뿐만이 아니라, 여포의 오랜 심복이었던 장료까지 내려와서 조조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경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장료 장군의 위명을 많이 들었소. 물론 아군에 희망적인 쪽은 아니었다만.”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무안해졌는지 장료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장료는 복양 전투는 물론, 연주에서 벌어진 조조군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무장이다.
적장이었던 조조의 목을 노릴 정도의 상황도 있었고, 반대로 여포가 조조군의 포위망에 걸렸을 땐 그를 수호하면서 끝까지 전황을 지켜내었으니 장료야말로 고순과 함께 버금가는 여포군의 비장(飛將)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장료가 직접 경계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분명 여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여포는 황실로부터 평동장군과 함께 평도후에 봉해지면서 크게 기뻐하고 있었으니 제외였다.
지금의 여포는 조조군에 의심을 전혀 품지 않고 있었다. 이미 본대가 수춘성에 근접하여 원술군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어, 감히 자신의 서주 땅을 넘보진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료를 내보낼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다.
“진궁이 보냈군.”
“예,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조를 가장 불신하고 있을 상대는 누굴까?
여포군의 제일가는 모사이자, 조조를 파멸시킬 정도의 천재성을 가진 책략가밖에 없었다.
진궁, 자는 공대.
조조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자, 조조의 목숨을 노린 모사꾼.
좋건 싫건 간에, 조조라는 인간의 운명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기도 했다.
“승상을 죽일 수 있었던 인물이 보냈다라. 그 아들인 나도 죽일 수 있겠군.”
“그럴 일은 없습니다.”
물론 장료와 그가 이끄는 병력이 돌연 전투태세를 갖춘다면 서황을 격파하고 조비의 목을 노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지만 조비는 싸울 기색이 전혀 없었고, 또한 장료 또한 비겁한 방식으로 어린 소년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비록 진궁이 명령을 내린다 할지라도, 아군으로 여기고서 서주에 온 조비를 죽인다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었다.
장료가 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주까지 오신 것입니까? 그것도 공자께서 직접.”
군량을 마련하고 이를 보급하는 일은 다른 장수도 가능할 터인데.
그 일을 직접 승상의 아들이 맡았다는 것에서부터 장료의 의문을 자극하고 있었다.
무언가 낌새가 수상쩍다.
진궁이 경계를 하고 있었던 탓일까. 장료는 조비가 무언가 꿍꿍이를 품고서 서주에 개입하였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과장된 생각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조비는 겨우 열다섯 살이다. 그런 어린 소년이 흉계를 품고 계략을 펼치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희대의 간웅 조조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아직 어리다. 관례조차 치르지 않았다.
그런 아이에게 경계를 품는다는 것 자체가 대장부스럽지 못한 일이다.
“보급은 원정군의 젖줄이다. 가벼이 여길 이유는 되지 않는다.”
곡창지대로 유명한 서주에서만큼 군량 공급이 원활한 지역은 없다.
그를 알기에 장료 또한 조비의 행동에 대해선 의심을 접기로 하였다.
이미 조조군 본대가 수춘성 공략을 시작하였으니, 그 군세가 갑자기 말머리를 꺾어서 서주를 공격할 이유는 없다. 또한 서주의 여포군은 직접 조비를 맞이하면서 인질과 비슷한 수준으로 잡아두고 있는 상태였으니, 의심할 것 없는 동맹 관계였다.
조비가 조조의 후계자라는 것을 장료는 알고 있다.
그 후계자를 직접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여포군에 의리를 보내주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장료는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 조조군의 군량 공급에 대해서 협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장료 장군, 전쟁이 왜 벌어지는지 알고 있는가?”
“예?”
이건 또 뜬금없는 물음이다.
아직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 설마 전쟁에 대해서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장료는 전혀 불쾌하다는 기색 없이, 조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건 바로 능력 없는 무지렁뱅이가 백성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가 백성들을 이끄는 건 죄다. 힘도, 지모도, 지도력도, 계산도 능하지 못한 범인(凡人) 따위가 백성들을 이끌고 스스로를 천재(天才)라 과신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전쟁을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
완벽한 군주가 나타나 스스로를 천재라 과신한 범인들을 모두 추살(追殺)하여 난세를 끝내는 것.
탐욕스런 벌레들을 죽이고 백성들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장료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소년은 무언가 다르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무엇인지를 장료가 깨닫게 된 것은 수춘 전투가 완전히 끝난 뒤의 일이었다.
“형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후돈에 거세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소중한 후계자를 또 다시 전쟁터로 보내겠다니!
그것도 대군벌 원술과의 전쟁에!
완성의 장수와 싸울 적만 하더라도 대패를 겪지 않았는가?
세력 면에서 놓고 본다면 장수 따위보다도 높은 권력과 강성한 전력을 자랑하는 원술이다.
원술의 본거지인 수춘성을 침공하는 전쟁에 아들 조비를 투입시키겠다는 조조의 결단은 하후돈에게 있어선 이해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만큼 조카를 애지중지하게 여긴다는 것 아닙니까.”
동생 하후연이 말했다.
조비를 미워하였다면 애초에 전쟁에 동원하지 않았을 문제였다.
항상 전쟁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조조는 병사들의 치중은 물론 장수들의 세세한 면에 있어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성격이었다.
분명 완벽주의자인 조조가 그러한 결단을 내렸다면 분명 그런 이유가 있을 터.
하후연은 조조에게 흔들림 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긴 했지만, 그 표정은 곱지 않았다.
만약 이번 전쟁에서 조비를 잃는다면 조조군은 후계자 분열로 인해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차남 조창은 어렸고, 삼남 조식은 말할 것도 없다. 장남 조비가 그나마 관례에 가까워지면서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었는데, 그런 조비를 잃는다는 결과는 절대로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끔찍한 경우였다.
“제가 도련님의 곁에 반드시 붙어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어떤 난전 속에서도 지켜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서공명이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서황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조조군의 후계자를 잃는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참극이다.
이미 한 번 겪은 비극이다.
두 번 다시 겪을 순 없다.
하후돈은 서황의 무예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기에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서황이라면 분명 그 어떤 아수라장 속에서도 조비를 지켜낼 수 있겠지. 그렇게 믿었다.
조조의 성격으로 볼 때, 자신이 내린 명령을 절대로 돌이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비가 원술군 침공전에 동원되리라는 것은 필정된 사안이다.
그렇다면 조조군 무장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조비를 지켜내는 한편, 최대한 속전속결로 원술군의 거점인 수춘성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 * *
조조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원술군에서 보낸 사자를 처형한 것이었다.
그 후 황실의 이름을 기만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자칭한 원술의 역적 행위를 규탄했다.
더 이상 원술의 폭정(暴政)을 용인할 수 없으며, 원술이 강제적으로 억류하고 있는 예주(豫州), 형주(荊州), 양주(揚州)를 탈환한다. 그를 명분으로 삼은 조조군이 5만 대군을 일으키면서 남쪽 정벌을 개시하였다.
“조자환을 부도독(副都督)으로 임명한다.”
승상 조조가 직접 원술 정벌전을 친정(親征)하면서 스스로를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칭하였다. 더욱이 그 아들인 조비가 부도독에 임명되었으니, 황제의 군단들은 모두 조조군 소속이며, 병사들의 지휘관 역시 조조군 소속임을 확연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승상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조비는 겨우 열다섯 살의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년식도 거치지 않은 아이를 부도독이라는 거창한 직명에 임명한 것에 대해선 황실관료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지만, 이미 황제를 옹립한 조씨 일가의 세상이 되었으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조조가 자신을 정남장군에 봉해줄 것을 요구하는 안건을 보낸 지 불과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유협이 직접 옥새를 찍었을 정도였으니 그 위명이 실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출정한다.”
부도독 조비가 이끄는 3천의 군세들이 본군을 이탈하여 동쪽으로 진출.
마치 이번 수춘 전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듯, 그의 군세는 회남 지역을 넘어 북쪽으로 나아가면서 안전지대에서만 머물렀다.
전쟁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병사들은 여포가 다스리는 서주(徐州)에 가까워질수록 설마 천하무쌍의 장수와 싸우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서주 전투가 끝난 이래로 조조군과 여포군은 황제의 중재를 시작으로 동맹을 결성하고 있었으니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
실제로 조비는 수춘 전투에 동원될 군량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들른 것일 뿐, 전투를 펼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세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곡량들을 모두 사들여라.”
절대로 약탈을 해선 안 된다.
서주에 병사들을 보낸 조비는 여포군과 정당한 교섭을 통해서 군량을 확보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 말에 부장 서황은 수춘 전투에서 조조군 본대를 먹일 식량들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조비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여포군 무장인 학맹과 조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조군 병사들이 서주 전역에서 곡량들을 대거 사들였다.
모사 진궁은 서주의 식량 사정을 들어 크게 반대하였지만, 스스로 서주목이 된 여포는 평동장군에 봉하겠다는 황제의 칙명에 눈이 멀어 조조군이 서주에서 식량을 대거 사들이는 것을 윤허하였다.
“그런데 군자금은 어디서 난 것인지…….”
서황이 물었다.
본대의 별동대에 불과한 수준의 이 군세에 서주 전역에서 식량을 대거 사들일 수 있을만한 군자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설령 조조가 이를 윤허하여 군자금의 대부분을 내어주었다고는 해도, 시세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사들일 정도의 자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서황의 물음에 조비는 숙부인 조홍에게서 빌린 자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 짠돌이가 스스로 돈을 내어줬다고?’
서황이 짐짓 생각했다.
물론 조조의 혈족인 조홍에게 이러한 생각을 품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지만, 자신의 재물에 한해서는 한없이 인색하다고 불리는 조홍이 선뜻 조카인 조비에게 무상으로 빌려줬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원금의 두 배에 달하는 빚으로 갚기로 했다.”
빌어먹을 숙부 같으니.
조비는 수전노인 조홍의 인색함에 치가 떨렸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서황의 생각이 정확하다.
조홍은 절대로 자신에게 손해가 될 법한 일을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이오, 연주 최고의 부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를 함부로 쓰려드는 사치조차도 부리지 않았다.
그런 인간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조비는 어렵사리 조홍을 설득하여 그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일시적으로나마 빌릴 수 있었다. 물론 이를 기한 내에 갚지 못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기로 합의를 보았다.
승상 조조가 직접 개입하여 합의점을 이루어냈으니, 합의를 어기는 순간 조홍이 아닌 조조로부터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소장, 장료라 합니다.”
여포군에서 또 다른 장수가 내려왔다.
서주 전역에서 군량을 사들이는 것은 여포군으로서도 제법 민감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학맹과 조성 뿐만이 아니라, 여포의 오랜 심복이었던 장료까지 내려와서 조조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경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장료 장군의 위명을 많이 들었소. 물론 아군에 희망적인 쪽은 아니었다만.”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무안해졌는지 장료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장료는 복양 전투는 물론, 연주에서 벌어진 조조군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무장이다.
적장이었던 조조의 목을 노릴 정도의 상황도 있었고, 반대로 여포가 조조군의 포위망에 걸렸을 땐 그를 수호하면서 끝까지 전황을 지켜내었으니 장료야말로 고순과 함께 버금가는 여포군의 비장(飛將)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장료가 직접 경계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분명 여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여포는 황실로부터 평동장군과 함께 평도후에 봉해지면서 크게 기뻐하고 있었으니 제외였다.
지금의 여포는 조조군에 의심을 전혀 품지 않고 있었다. 이미 본대가 수춘성에 근접하여 원술군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어, 감히 자신의 서주 땅을 넘보진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료를 내보낼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다.
“진궁이 보냈군.”
“예,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조를 가장 불신하고 있을 상대는 누굴까?
여포군의 제일가는 모사이자, 조조를 파멸시킬 정도의 천재성을 가진 책략가밖에 없었다.
진궁, 자는 공대.
조조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자, 조조의 목숨을 노린 모사꾼.
좋건 싫건 간에, 조조라는 인간의 운명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기도 했다.
“승상을 죽일 수 있었던 인물이 보냈다라. 그 아들인 나도 죽일 수 있겠군.”
“그럴 일은 없습니다.”
물론 장료와 그가 이끄는 병력이 돌연 전투태세를 갖춘다면 서황을 격파하고 조비의 목을 노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지만 조비는 싸울 기색이 전혀 없었고, 또한 장료 또한 비겁한 방식으로 어린 소년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비록 진궁이 명령을 내린다 할지라도, 아군으로 여기고서 서주에 온 조비를 죽인다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었다.
장료가 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주까지 오신 것입니까? 그것도 공자께서 직접.”
군량을 마련하고 이를 보급하는 일은 다른 장수도 가능할 터인데.
그 일을 직접 승상의 아들이 맡았다는 것에서부터 장료의 의문을 자극하고 있었다.
무언가 낌새가 수상쩍다.
진궁이 경계를 하고 있었던 탓일까. 장료는 조비가 무언가 꿍꿍이를 품고서 서주에 개입하였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과장된 생각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조비는 겨우 열다섯 살이다. 그런 어린 소년이 흉계를 품고 계략을 펼치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희대의 간웅 조조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아직 어리다. 관례조차 치르지 않았다.
그런 아이에게 경계를 품는다는 것 자체가 대장부스럽지 못한 일이다.
“보급은 원정군의 젖줄이다. 가벼이 여길 이유는 되지 않는다.”
곡창지대로 유명한 서주에서만큼 군량 공급이 원활한 지역은 없다.
그를 알기에 장료 또한 조비의 행동에 대해선 의심을 접기로 하였다.
이미 조조군 본대가 수춘성 공략을 시작하였으니, 그 군세가 갑자기 말머리를 꺾어서 서주를 공격할 이유는 없다. 또한 서주의 여포군은 직접 조비를 맞이하면서 인질과 비슷한 수준으로 잡아두고 있는 상태였으니, 의심할 것 없는 동맹 관계였다.
조비가 조조의 후계자라는 것을 장료는 알고 있다.
그 후계자를 직접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여포군에 의리를 보내주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장료는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 조조군의 군량 공급에 대해서 협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장료 장군, 전쟁이 왜 벌어지는지 알고 있는가?”
“예?”
이건 또 뜬금없는 물음이다.
아직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 설마 전쟁에 대해서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장료는 전혀 불쾌하다는 기색 없이, 조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건 바로 능력 없는 무지렁뱅이가 백성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가 백성들을 이끄는 건 죄다. 힘도, 지모도, 지도력도, 계산도 능하지 못한 범인(凡人) 따위가 백성들을 이끌고 스스로를 천재(天才)라 과신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전쟁을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
완벽한 군주가 나타나 스스로를 천재라 과신한 범인들을 모두 추살(追殺)하여 난세를 끝내는 것.
탐욕스런 벌레들을 죽이고 백성들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장료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소년은 무언가 다르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무엇인지를 장료가 깨닫게 된 것은 수춘 전투가 완전히 끝난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