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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가짜 황제 (2)
조비는 휴식기가 되면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한가로운 모습을 보였다.
바쁠 때는 바쁘게,
쉴 때는 한가롭게.
다 늘어진 옷소매.
부스스하게 번진 머리칼.
오랜 업무로 인해 생긴 눈 밑의 짙은 음영까지.
며칠 동안 야근만 반복하다보니 어린 소년이었음에도 삶의 고단함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보통 귀족가의 도련님이라면 훌륭한 스승을 모시며 유교 학당에서 학문에 전념하겠지만, 조비는 워낙에 엄한 아버지를 만난 탓에 첫 훈련부터 실전에 투입되어야 했다.
……그 결과 조앙이 죽었다.
자꾸만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이 몸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었을 터.
그럼에도 조비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형제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조조의 아들이라고 하기에는 어리숙할 정도로 착했다. 그 착한 아들은 위기에 몰린 아버지에게 자신의 말을 기꺼이 주면서까지 살렸지만, 정작 그 아비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
알고 있다.
장수의 반란으로 인해 조조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면 위대하신 위무제(魏武帝)의 일대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을 것이라고.
아들 하나가 죽어서 중원사(中原史)에 길이 남을 역사를 창조하였다면 분명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얼굴 좀 씻고 오거라.”
한가롭게 지내던 와중에 어머니 변씨에게서 꾸중을 들어버렸다.
하긴 장남이 꾀죄죄한 몰골에 백수처럼 생겨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 평소에 일거리에 치여서 살다 보니, 휴식기가 되면 길게 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또 잘 건데, 그럴 필요 있습니까?”
“하여간 아주 꽉 잡아줄 여인을 며느리로 들여야 하는데.”
이건 다 혼인이 늦어져서 그렇다!
변씨는 요즘 들어 매번 나오는 이야기를 또 다시 꺼냈다.
그놈의 혼담.
승상 조조의 장남에게 연줄을 두기 위해서 혼담을 넣는 사대부는 차고 넘쳤다.
조조가 아무리 두려운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와 외척을 맺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끝도 없다.
그렇기에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혼담들을 보며 하나씩 차곡차곡 살피기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변씨에게 있어선 매우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
사예주의 정숙한 여식부터 시작해서, 연주의 싹싹한 아가씨와 예주의 기품 있는 숙녀들까지. 물론 조비가 원한다면 괄괄하고 사나운 성격을 가진 변방 출신의 당찬 미녀도 환영이었지만 말이다.
“언젠가 맞이할 겁니다.”
“그 언제가 언제인지가 이 어미는 궁금하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조비가 대답했다.
그로서는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 여의치 않다면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무 여자나 만날 수도 있었다.
이성에 대해서는 절망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호색한이 아닌 점에 대해선 어머니 변씨도 만족하고 있었지만, 금욕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네 아비가 아주 그 육욕(肉慾)을 다 가져가버린 모양이구나! 뭐가 귀하다고 아들에게 하나도 물려주지 않았다니!”
변씨가 크게 소리쳤다.
안주인의 사자후가 울려 퍼지자, 담장 너머에서 흥미롭게 듣고 있을 노복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노복들은 특히 조비와 변씨가 나누는 대화를 큰 흥밋거리로 삼고 있었으니, 분명 하던 손을 멈추고 벽에 귀를 대면서 엿듣고 있을 것이다.
조씨 가문의 장자가 누구와 혼인을 할지는 당연히 모두의 관심사였고, 승상 가문의 혼담을 다른 가문에 비싸게 판다면 거금을 만질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조조 아들 아닙니까. 머리 더 굵어지면 여인들에게 눈이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잖습니까.”
우스갯소리로 어머니 변씨에게 말했다.
* * *
“원술이 동맹, 아니 휴전(休戰)을 요청했단 말입니까?”
웃기는 소리를.
조비가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당하게 건넬 수 있는 제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은밀하게 위장한 사자를 통해서 서한을 건네받았다.
자칭 황제라 불리는 원술이 쓴 친필서한.
하지만 그 서한은 조조에게 도착하자마자 갈기갈기 찢어발겨졌다.
또한 서한을 건넨 원술군의 사자는 관문을 건너기도 전에 위병들에 의해 사로잡혀선 그대로 지하 감옥으로 보내졌다.
조조가 말하기로는 다음날 아침에 처형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 역적 놈의 똥줄이 어지간히 타는 모양이군!”
하후돈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소리에 조조군 무장들도 원술이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과묵한 조인조차도 오만한 원술이 궁지에 몰렸음을 알고는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조조가 물었다.
“왜 공로가 내게 서한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원술 주변의 영토에는 진왕(陳王) 유총이 있습니다. 제후국을 빼앗고 그가 가진 모든 병력과 물자들을 차지할 생각입니다.”
아국과의 전쟁.
그리고 여포군과의 전쟁.
잇따른 패전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으니, 분명 자신감을 회복하고 재기를 도모하기 위한 발판으로 진왕 유총을 토벌하려 들겠지.
원술군의 움직임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사람은 다급하고 위험해질수록 그 움직임이 단순하게 변한다.
가진 게 많아진 원술은 보다 더 어리석고 무능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의 발버둥은 매우 추잡스럽게 보였다.
“이제 수춘성을 도모할 때입니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조조군 무장들은 당연히 황제를 사칭한 역적을 이번 기회에 토벌해야 한다며 조비의 의견에 동참하고 나섰고, 순욱과 곽가 또한 입을 모으며 원술군 타도에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수춘성이다.
수춘성과 그 주변의 구강군은 원술의 오랜 거점으로 있었던 곳이다.
자신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원술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내어 수춘성의 성벽을 두텁게 쌓은 것은 물론, 그 주변에 성들을 여러 개 쌓아 적습을 대비하였다.
지금의 조조군으로 이길 수나 있을까.
물론 조비는 이번 시기에 조조군이 원술군을 멸망시키고 패전에서 겪은 손실을 모두 만회하고 남을 정도의 병력과 물자들을 손에 넣게 됨을 알고 있었지만, 수춘성의 방위가 매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조조군으로서도 모든 군단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하기 위해 역경성으로 군세를 돌린 지금이야말로 원술을 토벌할 수 있는 적기였다.
“하지만 장수와 유표가 허도를 노리고 공격해 들어올 수 있다만.”
“황제의 칙령을 이용합니다.”
조홍의 말에 조비가 즉각 대답했다.
황제를 옹립하고 있는 조정군으로서 가진 장점.
조정의 이름을 빌려서 원술을 대역적으로 규정한 지금, 조조군은 황제의 칙령을 완수한다는 명분을 가지고서 원술군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그 전쟁에 훼방을 놓고, 역적 원술을 토벌하려는 조조군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한나라 황실을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는 말과 같았다.
서주의 여포는 조조군과 전쟁 중이었음에도 조정으로부터 각종 벼슬을 받아 얌전해진 상태였고, 장수와 유표는 표면적으로는 한 황실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감히 조조군을 공격할 수 없었다.
같은 여남원씨인 원술을 살리기 위해 원소가 나설 위험성이 있었지만, 그는 역경성에서 공손찬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제외해도 좋았다.
이제 막을 것은 없다.
다시 말해서 조조군은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서 원술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조조가 말했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조정군이며, 황제의 명령을 받드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황제의 깃발을 동원하여 역적 원술을 친다.
조정의 이름을 등에 업고서 역적을 죽이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분명 어마어마한 명성이 조조군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를 알기에 조조군 무장들이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으로 원술군을 멸망시켜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원술군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히 무너트려야 했다. 원술은 남방의 대군벌이었기 때문에, 자칫 다시 재기하게 된다면 조조군은 또 다시 사방이 포위된 상태로 적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너도 참전하거라.”
조조가 조비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조조군 무장들의 얼굴이 굳었다.
당장이라도 만세를 부를 것처럼 들뜬 분위기였건만, 갑작스럽게 돌변하면서 정적이 찾아왔다.
조조가 아들을 전쟁에 참전시키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완성 전투.
장남 조앙과 조카 조안민, 그리고 차남 조비.
이 세 명의 예비 후계자들이 모두 완성 전투에 동원되었지만, 결국 살아 돌아온 사람은 조비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조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후계자를 다시 전쟁터로 내몰려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군벌 원술과의 전쟁에.
그 말에 조비가 대답했다.
“승상의 명을 받듭니다.”
적어도 그 당시의 꼬맹이는 아닙니다.
조비는 무장들의 근심거리를 덜고자 조조를 향해 자신감 있는 대답을 보냈다.
“맹덕 형님, 굳이 조카를 데려갈 필요는…….”
“원양. 지금은 공적인 자리다.”
조조가 쏘아붙이며 하후돈의 입을 막았다.
완성 전투로부터 1년이 지났다.
조조는 후계자인 조비를 위해서라도 실전으로 더욱 단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위험하다는 것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전쟁에 나서야 한다.
목숨을 언제 잃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큰 단련이 될 것이며, 후계자가 직접 피 튀기는 전쟁에 나섰다는 일화는 병사들에게 있어 무한한 용기를 주게 될 것이다.
위에 선 자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바로 조조가 조비에게 주려는 가르침이었다.
조비는 휴식기가 되면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한가로운 모습을 보였다.
바쁠 때는 바쁘게,
쉴 때는 한가롭게.
다 늘어진 옷소매.
부스스하게 번진 머리칼.
오랜 업무로 인해 생긴 눈 밑의 짙은 음영까지.
며칠 동안 야근만 반복하다보니 어린 소년이었음에도 삶의 고단함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보통 귀족가의 도련님이라면 훌륭한 스승을 모시며 유교 학당에서 학문에 전념하겠지만, 조비는 워낙에 엄한 아버지를 만난 탓에 첫 훈련부터 실전에 투입되어야 했다.
……그 결과 조앙이 죽었다.
자꾸만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이 몸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었을 터.
그럼에도 조비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형제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조조의 아들이라고 하기에는 어리숙할 정도로 착했다. 그 착한 아들은 위기에 몰린 아버지에게 자신의 말을 기꺼이 주면서까지 살렸지만, 정작 그 아비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
알고 있다.
장수의 반란으로 인해 조조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면 위대하신 위무제(魏武帝)의 일대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을 것이라고.
아들 하나가 죽어서 중원사(中原史)에 길이 남을 역사를 창조하였다면 분명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얼굴 좀 씻고 오거라.”
한가롭게 지내던 와중에 어머니 변씨에게서 꾸중을 들어버렸다.
하긴 장남이 꾀죄죄한 몰골에 백수처럼 생겨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 평소에 일거리에 치여서 살다 보니, 휴식기가 되면 길게 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또 잘 건데, 그럴 필요 있습니까?”
“하여간 아주 꽉 잡아줄 여인을 며느리로 들여야 하는데.”
이건 다 혼인이 늦어져서 그렇다!
변씨는 요즘 들어 매번 나오는 이야기를 또 다시 꺼냈다.
그놈의 혼담.
승상 조조의 장남에게 연줄을 두기 위해서 혼담을 넣는 사대부는 차고 넘쳤다.
조조가 아무리 두려운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와 외척을 맺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끝도 없다.
그렇기에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혼담들을 보며 하나씩 차곡차곡 살피기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변씨에게 있어선 매우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
사예주의 정숙한 여식부터 시작해서, 연주의 싹싹한 아가씨와 예주의 기품 있는 숙녀들까지. 물론 조비가 원한다면 괄괄하고 사나운 성격을 가진 변방 출신의 당찬 미녀도 환영이었지만 말이다.
“언젠가 맞이할 겁니다.”
“그 언제가 언제인지가 이 어미는 궁금하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조비가 대답했다.
그로서는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 여의치 않다면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무 여자나 만날 수도 있었다.
이성에 대해서는 절망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호색한이 아닌 점에 대해선 어머니 변씨도 만족하고 있었지만, 금욕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네 아비가 아주 그 육욕(肉慾)을 다 가져가버린 모양이구나! 뭐가 귀하다고 아들에게 하나도 물려주지 않았다니!”
변씨가 크게 소리쳤다.
안주인의 사자후가 울려 퍼지자, 담장 너머에서 흥미롭게 듣고 있을 노복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노복들은 특히 조비와 변씨가 나누는 대화를 큰 흥밋거리로 삼고 있었으니, 분명 하던 손을 멈추고 벽에 귀를 대면서 엿듣고 있을 것이다.
조씨 가문의 장자가 누구와 혼인을 할지는 당연히 모두의 관심사였고, 승상 가문의 혼담을 다른 가문에 비싸게 판다면 거금을 만질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조조 아들 아닙니까. 머리 더 굵어지면 여인들에게 눈이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잖습니까.”
우스갯소리로 어머니 변씨에게 말했다.
* * *
“원술이 동맹, 아니 휴전(休戰)을 요청했단 말입니까?”
웃기는 소리를.
조비가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당하게 건넬 수 있는 제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은밀하게 위장한 사자를 통해서 서한을 건네받았다.
자칭 황제라 불리는 원술이 쓴 친필서한.
하지만 그 서한은 조조에게 도착하자마자 갈기갈기 찢어발겨졌다.
또한 서한을 건넨 원술군의 사자는 관문을 건너기도 전에 위병들에 의해 사로잡혀선 그대로 지하 감옥으로 보내졌다.
조조가 말하기로는 다음날 아침에 처형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 역적 놈의 똥줄이 어지간히 타는 모양이군!”
하후돈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소리에 조조군 무장들도 원술이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과묵한 조인조차도 오만한 원술이 궁지에 몰렸음을 알고는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조조가 물었다.
“왜 공로가 내게 서한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원술 주변의 영토에는 진왕(陳王) 유총이 있습니다. 제후국을 빼앗고 그가 가진 모든 병력과 물자들을 차지할 생각입니다.”
아국과의 전쟁.
그리고 여포군과의 전쟁.
잇따른 패전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으니, 분명 자신감을 회복하고 재기를 도모하기 위한 발판으로 진왕 유총을 토벌하려 들겠지.
원술군의 움직임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사람은 다급하고 위험해질수록 그 움직임이 단순하게 변한다.
가진 게 많아진 원술은 보다 더 어리석고 무능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의 발버둥은 매우 추잡스럽게 보였다.
“이제 수춘성을 도모할 때입니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조조군 무장들은 당연히 황제를 사칭한 역적을 이번 기회에 토벌해야 한다며 조비의 의견에 동참하고 나섰고, 순욱과 곽가 또한 입을 모으며 원술군 타도에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수춘성이다.
수춘성과 그 주변의 구강군은 원술의 오랜 거점으로 있었던 곳이다.
자신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원술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내어 수춘성의 성벽을 두텁게 쌓은 것은 물론, 그 주변에 성들을 여러 개 쌓아 적습을 대비하였다.
지금의 조조군으로 이길 수나 있을까.
물론 조비는 이번 시기에 조조군이 원술군을 멸망시키고 패전에서 겪은 손실을 모두 만회하고 남을 정도의 병력과 물자들을 손에 넣게 됨을 알고 있었지만, 수춘성의 방위가 매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조조군으로서도 모든 군단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하기 위해 역경성으로 군세를 돌린 지금이야말로 원술을 토벌할 수 있는 적기였다.
“하지만 장수와 유표가 허도를 노리고 공격해 들어올 수 있다만.”
“황제의 칙령을 이용합니다.”
조홍의 말에 조비가 즉각 대답했다.
황제를 옹립하고 있는 조정군으로서 가진 장점.
조정의 이름을 빌려서 원술을 대역적으로 규정한 지금, 조조군은 황제의 칙령을 완수한다는 명분을 가지고서 원술군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그 전쟁에 훼방을 놓고, 역적 원술을 토벌하려는 조조군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한나라 황실을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는 말과 같았다.
서주의 여포는 조조군과 전쟁 중이었음에도 조정으로부터 각종 벼슬을 받아 얌전해진 상태였고, 장수와 유표는 표면적으로는 한 황실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감히 조조군을 공격할 수 없었다.
같은 여남원씨인 원술을 살리기 위해 원소가 나설 위험성이 있었지만, 그는 역경성에서 공손찬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제외해도 좋았다.
이제 막을 것은 없다.
다시 말해서 조조군은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서 원술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조조가 말했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조정군이며, 황제의 명령을 받드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황제의 깃발을 동원하여 역적 원술을 친다.
조정의 이름을 등에 업고서 역적을 죽이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분명 어마어마한 명성이 조조군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를 알기에 조조군 무장들이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으로 원술군을 멸망시켜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원술군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히 무너트려야 했다. 원술은 남방의 대군벌이었기 때문에, 자칫 다시 재기하게 된다면 조조군은 또 다시 사방이 포위된 상태로 적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너도 참전하거라.”
조조가 조비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조조군 무장들의 얼굴이 굳었다.
당장이라도 만세를 부를 것처럼 들뜬 분위기였건만, 갑작스럽게 돌변하면서 정적이 찾아왔다.
조조가 아들을 전쟁에 참전시키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완성 전투.
장남 조앙과 조카 조안민, 그리고 차남 조비.
이 세 명의 예비 후계자들이 모두 완성 전투에 동원되었지만, 결국 살아 돌아온 사람은 조비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조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후계자를 다시 전쟁터로 내몰려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군벌 원술과의 전쟁에.
그 말에 조비가 대답했다.
“승상의 명을 받듭니다.”
적어도 그 당시의 꼬맹이는 아닙니다.
조비는 무장들의 근심거리를 덜고자 조조를 향해 자신감 있는 대답을 보냈다.
“맹덕 형님, 굳이 조카를 데려갈 필요는…….”
“원양. 지금은 공적인 자리다.”
조조가 쏘아붙이며 하후돈의 입을 막았다.
완성 전투로부터 1년이 지났다.
조조는 후계자인 조비를 위해서라도 실전으로 더욱 단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위험하다는 것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전쟁에 나서야 한다.
목숨을 언제 잃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큰 단련이 될 것이며, 후계자가 직접 피 튀기는 전쟁에 나섰다는 일화는 병사들에게 있어 무한한 용기를 주게 될 것이다.
위에 선 자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바로 조조가 조비에게 주려는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