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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죽여야 할 자들 (4)
정욱이 말했다.
“유비는 본디 누구를 따르지 않는 군웅(群雄)입니다. 속히 처결하셔야 합니다.”
반대로 곽가가 발언했다.
“유황숙(劉皇叔)을 어느 누가 죽일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를 품는다면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조에게 참언을 하는 자들을 보며 조비는 “유비를 죽여야 한다.” 쪽의 정욱에게 편을 들어주었다.
유비를 죽여야 한다는 점에선 동의한다.
하지만 죽이긴 죽이되, 결코 천하의 백성들이 의심을 품지 못하는 암습으로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독을 사용하든, 사고로 위장을 한 방법이든. 병사들을 산적으로 위장시켜서 처리해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유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관우와 장비, 두 형제뿐이다.
여포에 의해 서주를 강탈당하고 처자식들과도 이별을 해야 했으니, 그에게 남은 재산이라고는 관우와 장비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관우와 장비가 만인지적(萬人之敵)의 영웅이라 불리는 장수들이라고는 하나, 백 명의 병사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법이다. 분명 크게 화근이 될 것이므로, 속히 제거를 해야 옳았다.
하지만 조조에게는 또 다른 속셈이 있었는지, 유비를 죽이길 꺼려했다.
“이 조조에게 돗자리 짜는 유비를 죽이라고 하는군.”
물론 조조는 유비의 알 수 없는 가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일부러 똥지게나 지는 촌부로 위장하여 스스로의 신분을 감추고 있지만, 황제를 만나서 황숙(皇叔)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유협이 그를 살갑게 맞이하고 있으니 그를 죽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 모든 행위들이 적진이나 다름없는 조조군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조조는 알고 있었다.
그를 헤아리지 못할 리가 없다.
덕치와 선행을 가장한 위선을 두루 부리는 교활함.
조조는 매번 다른 가면을 쓰고서 타인을 속이는 유비의 처세술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유비는 누구를 따를 자가 아닙니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조조는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입을 다물었다.
이 못된 아들 녀석은 아비가 전쟁에서 돌아왔건만, 몸 건강에 대한 발언은 일체 없고 오로지 정무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조비를 개인적으로 미워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어느 아비가 자신의 아들을 미워하겠는가?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대소신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주장을 첨예하게 대립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 보아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공자님, 황숙은 곧 황제의 숙부이며 곧 황실의 피가 흐르는 자입니다. 그를 죽이겠다고 하시다니요.”
순욱은 유비가 황실의 종친인 것을 들어 반대했지만, 오히려 조비는 황족이라고 목에 칼이 안 들어가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황족이라고 목이 잘리지 않는다고 하는가?”
조비는 순욱과는 달리 한 황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무능하고 나약한 황실이라면 황족이라는 의미 역시 퇴색되기 마련.
유비 같은 방계 중의 방계 따위가 황족이랍시고 보호를 받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는 황제 유협도 언젠가 쓸모가 다하면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순욱의 주장은 조비에게 있어 그저 한 황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꼰대의 같잖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좌중이 시끄러워졌다.
황실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조비의 언행이 매우 파격적이었던 탓이다. 조조를 따르던 측근들조차도 제법 놀란 모습을 보였다.
조조가 물었다.
“어째서 유비를 죽이려 드느냐?”
“승상과는 절대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 위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한답니까.
조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태양이라, 아들에게서 들으니 나쁘지 않은 말처럼 들렸다.
물론 승상인 조조였기에 아들의 과격한 발언에 대해선 제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젊은 아들의 주장과 그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황실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저 조씨 가문의 개망나니가 멋대로 지껄이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순욱은 그저 치기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편 조조의 오른팔이었던 하후돈은 어린 조카가 아주 대범하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사내대장부란 역시 야망을 크게 가져야 하는 법이지.”
하후돈으로서는 지금의 이 주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조비가 수많은 문무신료들 앞에서도 조금도 굳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토로하는 것을 보며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도련님께서 이리 말하시는데 귀 큰 놈을 죽이지 못할 이유는 또 뭡니까?”
“그렇습니다. 이 중강도 그 속내 모를 놈을 살려둔다는 게 찝찝합니다!”
하후연과 허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장수들은 유비를 죽여야 한다고 외쳤다.
조조군 무장들 중에서 숙장(宿將)들은 대부분 서주 정벌전에 참전한 전적이 있었다. 그들은 악적(惡敵) 도겸을 도왔던 유비는 철천지원수라 언급했다.
조조의 아버지이며, 동시에 조씨 가문에 있어선 최고 어르신이었던 조숭이 도겸의 부하인 장개에게 죽었다. 그 배후에는 도겸이 사주하였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그 도겸을 도운 유비를 미워하는 무장들이 많았다.
이건 원수를 갚기 위한 일이다.
비록 황제의 친척이라 하더라도 조조군의 심기를 어지럽힌다면 당연히 죽이는 것이 옳았다.
황제를 옹립하고 천하를 차지하였는데, 천하 백성들의 여론이 두려워 죽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죽이는 것에서는 반대합니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이 곧 전환점이 되었다.
가장 강력하게 유비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 조비였지만, 문득 무언가 생각이 들었는지 주장을 바꾼 것이다.
유비를 죽여야 한다는 정욱과 그를 살려야 한다는 곽가, 그리고 모든 조조군으이 무장들까지.
모든 이들의 시선이 조비를 향하고 있었다.
조조가 물었다.
“어찌하여 말을 바꾼 것이냐?”
“서주를 점령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를 앞잡이로 내세워 서주의 길을 열게 만든다면 여포 같은 멧돼지를 손쉽게 사냥할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조조가 아니다.
과연 옳은 묘책이라며 유비를 이용해서 서주를 공략하자는 조비의 주장을 단번에 받아들였다.
서주목 유비.
도겸의 뒤를 이어서 주목의 인장을 받은 유비는 서주인들에게 있어선 영웅이나 다름이 없었다. 서주목이 된 유비는 서주에서 각종 선정(善政)을 펼치고 자애를 베풀었으므로 그를 잊지 못한 서주인들이 많았다.
반면 여포는 세금을 강하게 거두고, 도적들과도 어울려 지내며 술자리를 연이어 베푼 탓에 매번 어지러웠으니 유비의 치세를 그리워하는 서주인들이 있었다.
더욱이 여포를 따르는 관료들 중에는 유비와 내통하는 자들도 있었기에 서주 점령에 큰 도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포의 첨병 역할을 하는 진규, 진등 부자를 비롯하여 미축과 손건도 서주에서 호응할 것이므로 굳게 닫힌 성문을 열게 하는 데는 제격이었다.
“서주를 점령하고서 유비를 바로 해치우면 됩니다.”
조비가 간언을 올렸다.
* * *
“이 아비에게 몸 걱정 한 번도 해주지 않는 거냐?”
신하들이 모두 물러나가자, 조조가 조비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
서주 정벌전에서 돌아왔건만, 정작 아들에게선 그 어떤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이 심히 얄궂기만 하다. 황제는 물론 문무백관으로부터 모두 전승(戰勝)에 대한 찬사를 들어보았지만, 정작 조비로부터는 안부를 묻는 말조차도 들은 적이 없었다.
“패배한 전쟁에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기만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승상.”
조비는 아버지와의 독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아마 완성 전투에서 형 조앙을 잃고 돌아온 뒤부터였을 것이다.
아들은 더 이상 조조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으며, 거리를 두기 위함이었는지 승상이라 호칭하였다. 분명 형을 죽이고 돌아온 것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조 또한 조비에게 따로 제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승전이라 하는데, 너만은 패전이라 하는구나.”
“여포의 목도, 진궁의 목도 가져오지 못했으니 패전이 확실합니다.”
다른 이들은 아부를 하기 위해서라도, 승상의 심기를 헤아리기 위해서라도 승전보를 가져왔다고 떠들었지만 조비는 패전이라 부르며 서주 정벌전에 실패하였음을 언급했다.
만약 조비가 조조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뻔뻔스러운 성격과 오만한 언변, 그리고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인상까지.
모두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한다.
조조는 설마 자신이 이 정도로 무정하진 않다고 변명했지만, 십상시 건석의 숙부를 때려죽일 당시의 조조와 비교해서 매우 흡사했다. 조조가 함께 소년 시절을 보낸 하후돈과 하후연 형제까지도 이보다 더 닮을 순 없다면서 떠들었다.
“유비가 이 아비를 따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가 굴종(屈從)을 보내온다면 그것은 속임수이고, 그가 항복(降伏)을 선언한다면 그것은 간계입니다.”
“흐음.”
너는 유비를 크게 경계하고 있구나.
어느 문부백관보다도 유비를 더 두려워하고 있어.
과연 조비는 마치 저승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유비에 대해선 학을 뗄 정도로 미워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조조가 조비에게 제의를 건넸다.
“그럼 이 아비와 사냥을 가겠느냐?”
“그런 한가한 짓을 왜 합니까.”
삼국지의 조비는 사냥에 푹 빠져서 정무를 게을리 하였지만, 그의 몸속에 들어온 조비는 사냥을 매우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치중을 두는 성격이 강했다. 적어도 사냥 같은 오락에 빠져 의무를 져버리는 성격은 절대로 아니었다.
“황제와 유비도 불러야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조조의 말에 조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욱이 말했다.
“유비는 본디 누구를 따르지 않는 군웅(群雄)입니다. 속히 처결하셔야 합니다.”
반대로 곽가가 발언했다.
“유황숙(劉皇叔)을 어느 누가 죽일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를 품는다면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조에게 참언을 하는 자들을 보며 조비는 “유비를 죽여야 한다.” 쪽의 정욱에게 편을 들어주었다.
유비를 죽여야 한다는 점에선 동의한다.
하지만 죽이긴 죽이되, 결코 천하의 백성들이 의심을 품지 못하는 암습으로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독을 사용하든, 사고로 위장을 한 방법이든. 병사들을 산적으로 위장시켜서 처리해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유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관우와 장비, 두 형제뿐이다.
여포에 의해 서주를 강탈당하고 처자식들과도 이별을 해야 했으니, 그에게 남은 재산이라고는 관우와 장비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관우와 장비가 만인지적(萬人之敵)의 영웅이라 불리는 장수들이라고는 하나, 백 명의 병사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법이다. 분명 크게 화근이 될 것이므로, 속히 제거를 해야 옳았다.
하지만 조조에게는 또 다른 속셈이 있었는지, 유비를 죽이길 꺼려했다.
“이 조조에게 돗자리 짜는 유비를 죽이라고 하는군.”
물론 조조는 유비의 알 수 없는 가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일부러 똥지게나 지는 촌부로 위장하여 스스로의 신분을 감추고 있지만, 황제를 만나서 황숙(皇叔)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유협이 그를 살갑게 맞이하고 있으니 그를 죽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 모든 행위들이 적진이나 다름없는 조조군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조조는 알고 있었다.
그를 헤아리지 못할 리가 없다.
덕치와 선행을 가장한 위선을 두루 부리는 교활함.
조조는 매번 다른 가면을 쓰고서 타인을 속이는 유비의 처세술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유비는 누구를 따를 자가 아닙니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에 조조는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입을 다물었다.
이 못된 아들 녀석은 아비가 전쟁에서 돌아왔건만, 몸 건강에 대한 발언은 일체 없고 오로지 정무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조비를 개인적으로 미워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어느 아비가 자신의 아들을 미워하겠는가?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대소신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주장을 첨예하게 대립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 보아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공자님, 황숙은 곧 황제의 숙부이며 곧 황실의 피가 흐르는 자입니다. 그를 죽이겠다고 하시다니요.”
순욱은 유비가 황실의 종친인 것을 들어 반대했지만, 오히려 조비는 황족이라고 목에 칼이 안 들어가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황족이라고 목이 잘리지 않는다고 하는가?”
조비는 순욱과는 달리 한 황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무능하고 나약한 황실이라면 황족이라는 의미 역시 퇴색되기 마련.
유비 같은 방계 중의 방계 따위가 황족이랍시고 보호를 받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는 황제 유협도 언젠가 쓸모가 다하면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순욱의 주장은 조비에게 있어 그저 한 황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꼰대의 같잖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좌중이 시끄러워졌다.
황실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조비의 언행이 매우 파격적이었던 탓이다. 조조를 따르던 측근들조차도 제법 놀란 모습을 보였다.
조조가 물었다.
“어째서 유비를 죽이려 드느냐?”
“승상과는 절대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 위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한답니까.
조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태양이라, 아들에게서 들으니 나쁘지 않은 말처럼 들렸다.
물론 승상인 조조였기에 아들의 과격한 발언에 대해선 제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젊은 아들의 주장과 그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황실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저 조씨 가문의 개망나니가 멋대로 지껄이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순욱은 그저 치기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편 조조의 오른팔이었던 하후돈은 어린 조카가 아주 대범하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사내대장부란 역시 야망을 크게 가져야 하는 법이지.”
하후돈으로서는 지금의 이 주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조비가 수많은 문무신료들 앞에서도 조금도 굳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토로하는 것을 보며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도련님께서 이리 말하시는데 귀 큰 놈을 죽이지 못할 이유는 또 뭡니까?”
“그렇습니다. 이 중강도 그 속내 모를 놈을 살려둔다는 게 찝찝합니다!”
하후연과 허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장수들은 유비를 죽여야 한다고 외쳤다.
조조군 무장들 중에서 숙장(宿將)들은 대부분 서주 정벌전에 참전한 전적이 있었다. 그들은 악적(惡敵) 도겸을 도왔던 유비는 철천지원수라 언급했다.
조조의 아버지이며, 동시에 조씨 가문에 있어선 최고 어르신이었던 조숭이 도겸의 부하인 장개에게 죽었다. 그 배후에는 도겸이 사주하였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그 도겸을 도운 유비를 미워하는 무장들이 많았다.
이건 원수를 갚기 위한 일이다.
비록 황제의 친척이라 하더라도 조조군의 심기를 어지럽힌다면 당연히 죽이는 것이 옳았다.
황제를 옹립하고 천하를 차지하였는데, 천하 백성들의 여론이 두려워 죽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죽이는 것에서는 반대합니다.”
조비가 말했다.
그 말이 곧 전환점이 되었다.
가장 강력하게 유비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 조비였지만, 문득 무언가 생각이 들었는지 주장을 바꾼 것이다.
유비를 죽여야 한다는 정욱과 그를 살려야 한다는 곽가, 그리고 모든 조조군으이 무장들까지.
모든 이들의 시선이 조비를 향하고 있었다.
조조가 물었다.
“어찌하여 말을 바꾼 것이냐?”
“서주를 점령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를 앞잡이로 내세워 서주의 길을 열게 만든다면 여포 같은 멧돼지를 손쉽게 사냥할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조조가 아니다.
과연 옳은 묘책이라며 유비를 이용해서 서주를 공략하자는 조비의 주장을 단번에 받아들였다.
서주목 유비.
도겸의 뒤를 이어서 주목의 인장을 받은 유비는 서주인들에게 있어선 영웅이나 다름이 없었다. 서주목이 된 유비는 서주에서 각종 선정(善政)을 펼치고 자애를 베풀었으므로 그를 잊지 못한 서주인들이 많았다.
반면 여포는 세금을 강하게 거두고, 도적들과도 어울려 지내며 술자리를 연이어 베푼 탓에 매번 어지러웠으니 유비의 치세를 그리워하는 서주인들이 있었다.
더욱이 여포를 따르는 관료들 중에는 유비와 내통하는 자들도 있었기에 서주 점령에 큰 도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포의 첨병 역할을 하는 진규, 진등 부자를 비롯하여 미축과 손건도 서주에서 호응할 것이므로 굳게 닫힌 성문을 열게 하는 데는 제격이었다.
“서주를 점령하고서 유비를 바로 해치우면 됩니다.”
조비가 간언을 올렸다.
* * *
“이 아비에게 몸 걱정 한 번도 해주지 않는 거냐?”
신하들이 모두 물러나가자, 조조가 조비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
서주 정벌전에서 돌아왔건만, 정작 아들에게선 그 어떤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이 심히 얄궂기만 하다. 황제는 물론 문무백관으로부터 모두 전승(戰勝)에 대한 찬사를 들어보았지만, 정작 조비로부터는 안부를 묻는 말조차도 들은 적이 없었다.
“패배한 전쟁에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기만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승상.”
조비는 아버지와의 독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아마 완성 전투에서 형 조앙을 잃고 돌아온 뒤부터였을 것이다.
아들은 더 이상 조조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으며, 거리를 두기 위함이었는지 승상이라 호칭하였다. 분명 형을 죽이고 돌아온 것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조 또한 조비에게 따로 제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승전이라 하는데, 너만은 패전이라 하는구나.”
“여포의 목도, 진궁의 목도 가져오지 못했으니 패전이 확실합니다.”
다른 이들은 아부를 하기 위해서라도, 승상의 심기를 헤아리기 위해서라도 승전보를 가져왔다고 떠들었지만 조비는 패전이라 부르며 서주 정벌전에 실패하였음을 언급했다.
만약 조비가 조조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뻔뻔스러운 성격과 오만한 언변, 그리고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인상까지.
모두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한다.
조조는 설마 자신이 이 정도로 무정하진 않다고 변명했지만, 십상시 건석의 숙부를 때려죽일 당시의 조조와 비교해서 매우 흡사했다. 조조가 함께 소년 시절을 보낸 하후돈과 하후연 형제까지도 이보다 더 닮을 순 없다면서 떠들었다.
“유비가 이 아비를 따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가 굴종(屈從)을 보내온다면 그것은 속임수이고, 그가 항복(降伏)을 선언한다면 그것은 간계입니다.”
“흐음.”
너는 유비를 크게 경계하고 있구나.
어느 문부백관보다도 유비를 더 두려워하고 있어.
과연 조비는 마치 저승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유비에 대해선 학을 뗄 정도로 미워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조조가 조비에게 제의를 건넸다.
“그럼 이 아비와 사냥을 가겠느냐?”
“그런 한가한 짓을 왜 합니까.”
삼국지의 조비는 사냥에 푹 빠져서 정무를 게을리 하였지만, 그의 몸속에 들어온 조비는 사냥을 매우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치중을 두는 성격이 강했다. 적어도 사냥 같은 오락에 빠져 의무를 져버리는 성격은 절대로 아니었다.
“황제와 유비도 불러야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조조의 말에 조비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