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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죽여야 할 자들 (1)
조비가 싫어하는 인간이 세 명 존재했다.
유독 미워한다고 할까, 혐오한다고 할까.
여남원씨 수준으로 중원에 명문가로 이름을 날리는 조씨 가문의 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조비의 성격상 미워하는 인간이 있으면 반드시 해코지를 하거나 죽여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가 표적으로 삼은 대상들은 하나같이 죽이기 힘든 인간들뿐이었다.
훗날 위나라에 재앙의 근원으로 작용할 유비.
망국의 황제 유협.
그리고 아버지 조조.
언젠가 죽이고 싶은 자들이다.
아버지 조조는 언젠가 앙갚음을 해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유협은 한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황족의 후예였으므로 그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유비는 말할 것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두 형제들밖에 없는 주제에 매번 미꾸라지처럼 살아남아 대기만성(大器晩成)하게 되는 그 얄팍한 재주가 역겹게 느껴졌다.
“도련님, 굳이 황제를 견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아무것도 못하는 유약한 꼬맹이일 뿐인데요.”
서황이 말했다.
도적떼를 이끈 양봉의 수하였던 서황.
그는 조조군과의 싸움에서 양봉이 크게 밀리자 병사를 이끌고 항복함으로서 양봉이 모시던 황제 유협을 조조에게 바치게 되었다.
서황은 항장(降將)이었음에도 조조군 장수들 중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궁궐을 책임지는 숙장(宿將)을 역임하고 있음은 물론, 무예와 통솔 또한 출중하였으므로 주로 조비가 부리는 장수들 중 하나였다.
“나도 그 꼬맹이다. 황제가 나보다 다섯 살은 더 많지.”
조비가 말했다.
유협은 스무 살의 장정이 되었지만 다른 남성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하고 성격도 유약하였으므로, 조조군 장수들에게 매번 ‘꼬맹이’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동탁에게 장기간 꼭두각시로 살았던 것이 정신적 충격으로 작용하였는지, 조조가 승상의 자리에 스스로 올랐을 때부터 온갖 정치를 주도하였을 때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황제인 자신이 재가(裁可)를 내리지도 않았음에도 조조는 스스로 정치를 주도하며 자신의 사람으로만 조정을 가득 채웠다.
누가 보더라도 황제 유협은 승상 조조를 위한 최적의 꼭두각시라 할 수 있었다.
승상이 주도하는 괴뢰정치(傀儡政治).
승상 동탁이 죽자마자 조조가 그 자리를 이어받으며 유협을 압박했다. 유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수의 추종자들과 한탄을 속삭이는 것뿐. 그저 아낙네가 할 법한 일밖에 없는 셈이었다.
‘황제라고 해도 권력을 빼앗기면 그저 아낙네와 같군.’
궁궐을 자기 주인마냥 돌아다니는 조비를 막을 수 있는 관료는 없었다.
모두 조조의 사람일뿐더러, 그에 속하지 않는 관료들조차도 조조의 위광이 두려워 감히 그 아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혹 조조를 욕하는 말이라도 했다간 그 다음날에 조용히 자신의 관짝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조비는 조씨 가문의 개망나니로 유명하였으므로, 설령 황제를 욕한다고 할지라도 뭐라 할 인간이 없었다. 그는 결국 승상 조조의 아들이자, 조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후계자였다.
“폐하, 기침하셨습니까.”
조비는 몸가짐을 정돈하고는 직접 황제의 처소로 가서 인사를 올렸다.
문안 인사.
조조가 자리를 비운 지금은 조비가 그를 대신하여 황제 유협에게 매번 인사를 올리며 충성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사 따위로 충성심 같은 애매모호한 감정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승상 조조가 한나라 조정의 충신임을 보여줘야 했다.
역적 동탁보다도 우수하고 뛰어난 승상 조조.
조비는 아버지 조조를 매우 싫어했지만, 적어도 황제의 충신이 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아침마다 황제의 처소로 와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자환, 매우 좋은 아침이오.”
“폐하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으니, 이렇게 화창한 날씨의 아침을 맞이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지금의 치세(治世)에 유협이 직접적으로 공헌한 것은 없다.
그저 조조가 시키는 것에만 따를 뿐, 매번 도장 찍는 역할이나 담당했다. 그럼에도 조비가 황제를 치켜세우는 것은 그저 꼭두각시 역할에나 충실히 하라는 협박 비슷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사냥이나 즐기고 가무(歌舞)의 흥에 빠져서 술잔이나 기울여라.
그게 바로 망국의 황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다.
조비는 따로 명령하여 황제의 사냥을 도와주었고, 기녀들로 하여금 연회를 베풀도록 해주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유협, 한나라의 황제인 그가 망가지고 피폐해지는 망군이 될수록 그를 옹립하고 있는 조조군의 위세가 오르기 때문이다. 황제가 정무를 돌보지 않는다면 승상 조조가 모든 업무를 대리하여 수행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황제를 대신하여 훌륭한 치세를 이어간다면 모든 영광이 조조군에게 향할 것이다.
“사냥은 괜찮소. 오늘은 황자들과 함께 보낼 예정이오.”
유협은 복황후와의 슬하에 두 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오늘은 그 아이들과 보낼 예정이라 하였다.
처소에 복황후가 모습을 드러내자 조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 처소에 함께 머문 것으로 보아 동침을 한 모양이었다. 후궁인 동귀인도 있었지만 유협은 대부분 정처인 복황후와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자환은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이오? 보아하니 이제 곧 성년식이 가까운 것 같소만?”
“아직 인연이 없는 모양입니다.”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조비는 성인 남성만큼이나 체격이 크고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매번 보여주는 터라, 스무 살이 되었음에도 자기 주관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 유협과는 매우 대조적인 입장에 서있었다.
흔히 조정 관료들이 곧잘 유협과 조비를 비교했다.
파격적이다 못해 광적인 수준의 결정을 내리는 조비, 소심하고 유약하여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유협. 둘의 성격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비는 승상 조조의 아들이었으니, 조조에 의해 꼭두각시가 된 유협에게 있어 조비는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다. 유비는 그런 조비 앞에서도 하하 웃으면서 대할 정도로 담대한 모습을 보였지만, 유협은 조비가 언제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며 두려움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협 따위보다는 유비 쪽이 오히려 황제의 자리에 훨씬 어울린다.
조비는 유비에게 제법 후한 평가를 내렸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상대 앞에서도 웃음을 보이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재주, 그 재주가 바로 정치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의향이 있다면 짐이 알아봐줄 수도 있소만.”
“우선 지금은 승상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혼담은 그 이후에 나누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유협이 명령을 내린다면 황실 여인들을 처첩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 해도 조비는 승상 조조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황실에 적대하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권력을 추구하는 황실 여인의 성격상 조씨 가문의 후계자에게 시집오려고 하는 사람은 차고도 넘치겠지.
그런데도 조비가 아직 혼인을 올리지 않은 이유는 그 자신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가정을 이루고 그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다. 지금으로선 이 정국을 헤쳐 나가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싶을 뿐이다. 조조군의 멸망은 곧 가족들의 파멸이나 다름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승상은 언제쯤이 되어야 돌아오겠소?”
“아마 보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서주에서 진탕 깨졌으니까요.
조비는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그 말을 다시 집어넣었다.
패잔병들을 이끌면서 돌아올 아비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언제나 오만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그 인간이 철저히 박살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여포를 욕할까. 아니면 자신을 배신한 진궁을 저주할까.
어느 쪽이든 간에 간웅(奸雄) 조조의 명성만 떨어질 뿐이다. 아마 그 인간 성격이라면 다음 전쟁을 논하면서 그 대책을 준비하고 있겠지. 조비는 아버지 조조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집아이마냥 누구를 탓하는 모습을 보일 리는 없다고 여겼다.
“그럼 이만 이 자환은 물러나겠습니다.”
“아침부터 좋은 덕담을 해줘서 고맙소.”
조비가 황제의 처소를 나오자, 서황이 황급히 달려오면서 그를 경호했다.
매번 서황은 조비가 황제의 처소로 올 때마다 그를 경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꼭 조조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도, 혹시라도 이 괄괄한 망나니가 황제에게 실례되는 짓을 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아무 일 없었군.’
오히려 유협이 웃는 소리가 가끔 들리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조비의 성격상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른다던지 고함을 내지르는 등, 황제에게 해선 안 될 모욕을 할 것 같아 두려웠다.
그 속내를 눈치 챘는지, 조비가 걸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는 뒤를 따라 걷던 서황에게 말했다.
“나도 생각이라는 게 있다.”
“무,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승상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지라.”
“본인이 해를 당할까의 문제겠지.”
“아닙니다! 승상께서는 언제나 도련님을 항상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런 인간이 미망인 계집 엉덩이를 쫓느라 자기 아들을 죽이나?”
조비가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내뱉었다.
그 말에 서황은 감히 말하기엔 황송스럽다는 듯이 침음을 삼킬 뿐이었다.
결과가 그를 증명한다.
실제로 조조는 장수의 숙모였던 추씨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였다가 장수에게 반란을 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죽었다. 그리고 전쟁에 첫 출진했던 조비 또한 봉변을 당해버렸으니 조조로서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조도 그 일을 꼬집는 조비의 이런 발언에 대해선 어떤 문책도 하지 않았다.
‘미망인 하나 얻자고 전쟁을 말아먹었으니 부끄러워서라도 변명조차 못하겠지.’
조조군 내부에서는 금기(禁忌)로 치부하는 일이었지만, 조비만큼은 아버지의 완벽주의와는 상반되는 모습을 꼬집었다.
“공명은 매번 나와 아버지 사이를 걱정하는군.”
그 말에 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언젠가 승상과 도련님이 다시금 돈독한 부자관계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쎄. 그럴 날이 오긴 하겠나?”
물론 아버지를 위정자(爲政者)로서는 존경하고 있다.
조금의 치우침도 없는 완벽한 인간. 오랜 전란으로 초토화된 중원을 다시 일으켜 세운 정치가.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며 영토를 늘려나가는 위대한 군주.
그런 의미에서는 조조를 경외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로서의 조조는 매우 혐오하고 있었다.
조비가 싫어하는 인간이 세 명 존재했다.
유독 미워한다고 할까, 혐오한다고 할까.
여남원씨 수준으로 중원에 명문가로 이름을 날리는 조씨 가문의 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조비의 성격상 미워하는 인간이 있으면 반드시 해코지를 하거나 죽여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가 표적으로 삼은 대상들은 하나같이 죽이기 힘든 인간들뿐이었다.
훗날 위나라에 재앙의 근원으로 작용할 유비.
망국의 황제 유협.
그리고 아버지 조조.
언젠가 죽이고 싶은 자들이다.
아버지 조조는 언젠가 앙갚음을 해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유협은 한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황족의 후예였으므로 그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유비는 말할 것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두 형제들밖에 없는 주제에 매번 미꾸라지처럼 살아남아 대기만성(大器晩成)하게 되는 그 얄팍한 재주가 역겹게 느껴졌다.
“도련님, 굳이 황제를 견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아무것도 못하는 유약한 꼬맹이일 뿐인데요.”
서황이 말했다.
도적떼를 이끈 양봉의 수하였던 서황.
그는 조조군과의 싸움에서 양봉이 크게 밀리자 병사를 이끌고 항복함으로서 양봉이 모시던 황제 유협을 조조에게 바치게 되었다.
서황은 항장(降將)이었음에도 조조군 장수들 중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궁궐을 책임지는 숙장(宿將)을 역임하고 있음은 물론, 무예와 통솔 또한 출중하였으므로 주로 조비가 부리는 장수들 중 하나였다.
“나도 그 꼬맹이다. 황제가 나보다 다섯 살은 더 많지.”
조비가 말했다.
유협은 스무 살의 장정이 되었지만 다른 남성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하고 성격도 유약하였으므로, 조조군 장수들에게 매번 ‘꼬맹이’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동탁에게 장기간 꼭두각시로 살았던 것이 정신적 충격으로 작용하였는지, 조조가 승상의 자리에 스스로 올랐을 때부터 온갖 정치를 주도하였을 때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황제인 자신이 재가(裁可)를 내리지도 않았음에도 조조는 스스로 정치를 주도하며 자신의 사람으로만 조정을 가득 채웠다.
누가 보더라도 황제 유협은 승상 조조를 위한 최적의 꼭두각시라 할 수 있었다.
승상이 주도하는 괴뢰정치(傀儡政治).
승상 동탁이 죽자마자 조조가 그 자리를 이어받으며 유협을 압박했다. 유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수의 추종자들과 한탄을 속삭이는 것뿐. 그저 아낙네가 할 법한 일밖에 없는 셈이었다.
‘황제라고 해도 권력을 빼앗기면 그저 아낙네와 같군.’
궁궐을 자기 주인마냥 돌아다니는 조비를 막을 수 있는 관료는 없었다.
모두 조조의 사람일뿐더러, 그에 속하지 않는 관료들조차도 조조의 위광이 두려워 감히 그 아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혹 조조를 욕하는 말이라도 했다간 그 다음날에 조용히 자신의 관짝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조비는 조씨 가문의 개망나니로 유명하였으므로, 설령 황제를 욕한다고 할지라도 뭐라 할 인간이 없었다. 그는 결국 승상 조조의 아들이자, 조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후계자였다.
“폐하, 기침하셨습니까.”
조비는 몸가짐을 정돈하고는 직접 황제의 처소로 가서 인사를 올렸다.
문안 인사.
조조가 자리를 비운 지금은 조비가 그를 대신하여 황제 유협에게 매번 인사를 올리며 충성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사 따위로 충성심 같은 애매모호한 감정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승상 조조가 한나라 조정의 충신임을 보여줘야 했다.
역적 동탁보다도 우수하고 뛰어난 승상 조조.
조비는 아버지 조조를 매우 싫어했지만, 적어도 황제의 충신이 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아침마다 황제의 처소로 와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자환, 매우 좋은 아침이오.”
“폐하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으니, 이렇게 화창한 날씨의 아침을 맞이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지금의 치세(治世)에 유협이 직접적으로 공헌한 것은 없다.
그저 조조가 시키는 것에만 따를 뿐, 매번 도장 찍는 역할이나 담당했다. 그럼에도 조비가 황제를 치켜세우는 것은 그저 꼭두각시 역할에나 충실히 하라는 협박 비슷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사냥이나 즐기고 가무(歌舞)의 흥에 빠져서 술잔이나 기울여라.
그게 바로 망국의 황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다.
조비는 따로 명령하여 황제의 사냥을 도와주었고, 기녀들로 하여금 연회를 베풀도록 해주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유협, 한나라의 황제인 그가 망가지고 피폐해지는 망군이 될수록 그를 옹립하고 있는 조조군의 위세가 오르기 때문이다. 황제가 정무를 돌보지 않는다면 승상 조조가 모든 업무를 대리하여 수행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황제를 대신하여 훌륭한 치세를 이어간다면 모든 영광이 조조군에게 향할 것이다.
“사냥은 괜찮소. 오늘은 황자들과 함께 보낼 예정이오.”
유협은 복황후와의 슬하에 두 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오늘은 그 아이들과 보낼 예정이라 하였다.
처소에 복황후가 모습을 드러내자 조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 처소에 함께 머문 것으로 보아 동침을 한 모양이었다. 후궁인 동귀인도 있었지만 유협은 대부분 정처인 복황후와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자환은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이오? 보아하니 이제 곧 성년식이 가까운 것 같소만?”
“아직 인연이 없는 모양입니다.”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조비는 성인 남성만큼이나 체격이 크고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매번 보여주는 터라, 스무 살이 되었음에도 자기 주관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 유협과는 매우 대조적인 입장에 서있었다.
흔히 조정 관료들이 곧잘 유협과 조비를 비교했다.
파격적이다 못해 광적인 수준의 결정을 내리는 조비, 소심하고 유약하여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유협. 둘의 성격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비는 승상 조조의 아들이었으니, 조조에 의해 꼭두각시가 된 유협에게 있어 조비는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다. 유비는 그런 조비 앞에서도 하하 웃으면서 대할 정도로 담대한 모습을 보였지만, 유협은 조비가 언제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며 두려움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협 따위보다는 유비 쪽이 오히려 황제의 자리에 훨씬 어울린다.
조비는 유비에게 제법 후한 평가를 내렸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상대 앞에서도 웃음을 보이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재주, 그 재주가 바로 정치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의향이 있다면 짐이 알아봐줄 수도 있소만.”
“우선 지금은 승상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혼담은 그 이후에 나누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유협이 명령을 내린다면 황실 여인들을 처첩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 해도 조비는 승상 조조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황실에 적대하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권력을 추구하는 황실 여인의 성격상 조씨 가문의 후계자에게 시집오려고 하는 사람은 차고도 넘치겠지.
그런데도 조비가 아직 혼인을 올리지 않은 이유는 그 자신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가정을 이루고 그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다. 지금으로선 이 정국을 헤쳐 나가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싶을 뿐이다. 조조군의 멸망은 곧 가족들의 파멸이나 다름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승상은 언제쯤이 되어야 돌아오겠소?”
“아마 보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서주에서 진탕 깨졌으니까요.
조비는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그 말을 다시 집어넣었다.
패잔병들을 이끌면서 돌아올 아비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언제나 오만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그 인간이 철저히 박살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여포를 욕할까. 아니면 자신을 배신한 진궁을 저주할까.
어느 쪽이든 간에 간웅(奸雄) 조조의 명성만 떨어질 뿐이다. 아마 그 인간 성격이라면 다음 전쟁을 논하면서 그 대책을 준비하고 있겠지. 조비는 아버지 조조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집아이마냥 누구를 탓하는 모습을 보일 리는 없다고 여겼다.
“그럼 이만 이 자환은 물러나겠습니다.”
“아침부터 좋은 덕담을 해줘서 고맙소.”
조비가 황제의 처소를 나오자, 서황이 황급히 달려오면서 그를 경호했다.
매번 서황은 조비가 황제의 처소로 올 때마다 그를 경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꼭 조조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도, 혹시라도 이 괄괄한 망나니가 황제에게 실례되는 짓을 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아무 일 없었군.’
오히려 유협이 웃는 소리가 가끔 들리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조비의 성격상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른다던지 고함을 내지르는 등, 황제에게 해선 안 될 모욕을 할 것 같아 두려웠다.
그 속내를 눈치 챘는지, 조비가 걸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는 뒤를 따라 걷던 서황에게 말했다.
“나도 생각이라는 게 있다.”
“무,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승상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지라.”
“본인이 해를 당할까의 문제겠지.”
“아닙니다! 승상께서는 언제나 도련님을 항상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런 인간이 미망인 계집 엉덩이를 쫓느라 자기 아들을 죽이나?”
조비가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내뱉었다.
그 말에 서황은 감히 말하기엔 황송스럽다는 듯이 침음을 삼킬 뿐이었다.
결과가 그를 증명한다.
실제로 조조는 장수의 숙모였던 추씨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였다가 장수에게 반란을 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죽었다. 그리고 전쟁에 첫 출진했던 조비 또한 봉변을 당해버렸으니 조조로서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조도 그 일을 꼬집는 조비의 이런 발언에 대해선 어떤 문책도 하지 않았다.
‘미망인 하나 얻자고 전쟁을 말아먹었으니 부끄러워서라도 변명조차 못하겠지.’
조조군 내부에서는 금기(禁忌)로 치부하는 일이었지만, 조비만큼은 아버지의 완벽주의와는 상반되는 모습을 꼬집었다.
“공명은 매번 나와 아버지 사이를 걱정하는군.”
그 말에 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언젠가 승상과 도련님이 다시금 돈독한 부자관계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쎄. 그럴 날이 오긴 하겠나?”
물론 아버지를 위정자(爲政者)로서는 존경하고 있다.
조금의 치우침도 없는 완벽한 인간. 오랜 전란으로 초토화된 중원을 다시 일으켜 세운 정치가.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며 영토를 늘려나가는 위대한 군주.
그런 의미에서는 조조를 경외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로서의 조조는 매우 혐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