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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조씨 가문의 망나니 (4)
농담으로라도 조조군이 호황(好況)을 맞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황제 유협을 허창(許昌)에 옹립하면서 조정군을 자칭하고는 있었지만, 1년 전에 완성에서 대패를 겪은 이래로 남쪽을 향한 공세가 중단. 하북(河北)에서 공손찬을 격파하며 성장하고 있는 원소를 견제하기 위해서 서주 정벌을 시작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주 정벌조차도 여포군에 가로막혀 중단.
현재 조조군이 서주성의 함락에 실패하여 퇴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조군은 결국 사방(四方)의 정벌이 모두 실패한 격이 되어버렸다.
“장수가 이끄는 병력이 여남(汝南)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분명 과거의 일에 대한 보복을 할 게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유표와 동맹을 맺고 북쪽의 영향권을 확보하려는 장수군에 있었다.
서주 정벌에 실패하였다는 정보를 분명 들었을 테지.
조비는 현 조조군이 가장 노려지기 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하였음을 알고 있었다.
교활한 산짐승들은 직접 사냥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전력을 다해서 사냥감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냥감이 약해질 때를 노려서 가장 손쉽고 효율적으로 죽인다.
그게 바로 난세의 군벌들이 벌이는 ‘사냥 방식’이었다.
산짐승들의 눈에 조조군은 힘이 다 빠진 토끼와 같다.
완성 전투의 대패를 온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원소군 견제를 목적으로 서주를 공격하였지만 실패. 남쪽의 원술군을 물리치면서 여남을 빼앗고 다수의 물자를 노획하였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약소화된 전력을 모두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원술군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남원씨들에게 있어 여남은 가장 중요한 성역(聖域)입니다. 분명 다시 빼앗으려 들 겁니다.”
신하들의 말에 조비는 손톱을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군의 모사들은 위험 경고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서쪽에는 강족(姜族)과 저족(低族)이 날뛰며 장안성(長安城)을 빼앗으려 들고 있었다.
남쪽의 장수와 원술.
동쪽에서는 서주의 여포.
북쪽에서는 흑산적이 날뛰면서 연주를 호시탐탐 노렸다.
황제를 옹립한 세력.
만약 조조가 수도를 허도가 아닌, 낙양을 고집하였다면 이미 유협은 적의 손아귀에 놓였을 것이다. 연주와 예주 일대에서 최상의 방어를 자랑하는 허도에 궁궐을 짓고 유협을 옹립한 것은 조비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조조의 올바른 결단 중 하나였다.
“숙부, 양성(陽城)으로 가서 장수를 막으십시오.”
그 말에 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조순의 휘하에는 최정예 기병대인 호표기가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황성을 경호하고 있는 기병대를 따로 빼내면 장수를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장수로부터 남쪽 지역을 수비해야 하였으므로 황실의 병력을 빼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병대로 하여금 다수의 보병대들을 막는다.
장수군은 대부분 보병에 치중을 두고 있었으므로, 육수를 건너면 펼쳐지는 평야에서 기병대에게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의 책사 가후라면 분명 평야에서 호표기와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우둔한 선택인지를 알겠지.’
물론 호표기는 숫자가 매우 적기에 보병으로 밀어붙이면 승리를 거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피해가 크다.
조순은 조인의 동생으로, 조씨 가문에서도 용맹으로 이름이 높았으므로 설령 죽더라도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그렇기에 조순은 어린 망나니의 제멋대로인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에 순종하면서 기병대를 이끌었다.
죽더라도 조씨 가문을 위해 싸운다.
그 필사의 각오가 장수군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장수군은 평야에 위치한 양성을 뚫어내는데 크나큰 손실을 겪게 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함부로 공격해 들어오진 못하겠지.
‘죽는 역할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으라는 게 아닌가?’
조조군의 모사들이 수군거렸다.
물론 조비의 결단에 대해서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숙부뻘에 해당되는 조순에게 ‘결사의 싸움’을 명령하는 그 교활함이 심히 잔인하다.
잔인하고 무정하다. 만약 이 모습을 여포군의 모사 진궁이 보았다면, 여백사를 죽이던 당시의 조조를 떠올리리라.
“그럼 장안성은 어떻게……. 당장 수비군을 돌릴까요?”
“그냥 둬라.”
“예?”
장안성은 천혜의 요새.
진나라가 수도로 삼았으니만큼 그 수비가 견고하고 산세가 험하여 감히 오랑캐가 쳐들어오기에 용이하지 않다.
장안성 인근의 고을들을 모두 초토화가 되겠지만, 지금의 조조군으로선 그를 막기 위해서 따로 보낼 수 있는 병력이 없다.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인의, 도덕을 이유로 병력을 보낸다면 오히려 다른 세력으로부터 노려질 확률이 높았다.
백성 수천 명을 구한답시고 세력 자체를 말아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킨다.
조비는 아버지 조조를 개인적으로 크게 미워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에게서 받은 가르침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어차피 백성들 따위는 언젠가 천하의 패자가 되면 알아서 모여들기 마련이다.
끝까지 난세를 헤쳐 나가고 성장하다보면 사방에서 복종하며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일 터. 지금 당장 수천 명의 백성들이 아까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백성들은 언젠가 다시 모인다. 지금 당장에는 잃겠지만, 언젠가 다시 불어나기 마련이지.”
장안성만 잃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현재 장안성으로서는 조조군을 배신할 입장이 되지 않는다.
장안성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떤 세력도 없다.
익주(益州)에서는 한중의 장로와 성도의 유언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으므로, 장안성을 공격할 여유가 없었다.
‘무슨 어린 소년이…….’
‘정말로 애가 맞기는 한 건가?’
황실의 관료들이 조비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궁궐에서 이루어지는 조조군의 회의.
승상 조조가 없는 지금, 우습게도 이 회의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아들인 조비였다.
고작 열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결단과 행동에 조금의 막힘도 없었을 뿐더러 사소한 실수조차 없었으므로 모든 신하들이 그를 따랐다.
조씨 일가의 대리자.
조조가 없는 지금, 가장 높은 상석에 앉는 사람은 삼공(三公)도 아니고 삼사(三師)도 아니었다.
조조군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식으로 신의가 없는 관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의 사람들로만 채운 인원들로 하여금 회의를 열게 하였으므로 조씨 일가의 대리자인 조비가 이끄는 것은 당연했다.
가장 높은 상석에 앉은 조비.
그리고 관료와 장수들은 고개를 숙이며 열다섯 살 소년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비를 대리자로 삼은 조조의 결단을 의심하고 불신했지만, 조비가 조조의 빈자리를 확실히 채우고 다스리고 있었으므로 모두가 인정했다.
조조의 아들.
아버지를 증오하되, 그를 가장 많이 닮아버린 장자.
조씨 가문의 망나니는 인품과 성격에 한해서는 답이 없을 정도로 악성(惡性)적이었지만, 적어도 그 실력과 결단력에 대해서는 모사들도 고개를 숙이며 찬동할 정도로 뛰어났다.
“원술이 멋대로 황제를 참칭하고 국호를 정해버린 지금, 천하의 이목은 원술군에 모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조비의 말에 장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술.
국호를 중(仲)으로, 자신이 다스리는 구강군을 회남윤(淮南尹)으로 이름을 고치는 것은 물론, 황제의 의복과 깃발 그리고 수레를 따라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그의 행위는 모두 반역죄로 간주할 수 있었다.
원술로서는 조조군에 의지하고 있는 황제 유협이 어리고 무능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한나라 황실이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어버린 옥좌를 자신이 차지함으로서 천하가 자신을 인정하고 받들어주길 원하고 있을 것이다.
여남원씨 가문이 순임금 후예였기에, 한나라가 멸망하고 다시 순임금의 기운이 몰려올 것이라는 미신을 과신한 원술의 크나큰 실수였다.
그를 두고 조비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지금부터 황제에게 상주하여, 원술을 조정의 적으로 간주하고 중원의 제일적(第一敵)이 되었음을 선포해야 한다. 황제를 참칭한 것은 물론, 멋대로 수도를 정하고 한나라를 업신여겼으니 토벌의 정당성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그 말에 서황이 되물었다.
“원술을… 말씀입니까? 하지만 아군으로선 원술을 공격할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서황으로서는 과도하게 많은 적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여 올린 물음이었다.
조조군의 부족한 전력으로는 수많은 적을 감당할 수가 없다.
완성의 장수를 막는 것도 부족한 병력만으로 해결해야 할 정도인데, 예주와 형주, 그리고 양주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대군벌을 상대로는 장기간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왜 조비가 황제를 이용해서 원술을 도발하려고 하는지를 짐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말에 대해서는 곽가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조비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하는 장수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공격하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그 주변 세력들은 다르겠지. 모두가 원술을 노릴 것이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물어뜯으려 할 것일세.”
황제 유협이 직접 원술의 토벌령을 내린다.
아직까지도 한나라 황실의 이름에 걸린 힘은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지방의 군벌들로서는 원술군을 적대 관계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남군을 노리는 장수가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고, 원술과 동맹관계였던 유표는 그 관계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조정이 원술을 적으로 돌렸다.
황제가 그를 제일적으로 선포해버렸다.
원술이 직접 황제를 참칭하고 수도를 정하면서 나라를 선언하였으니, 당연히 그는 역적이며 가장 먼저 해치워야 하는 원수가 되었다.
황제 원술을 두고 조조군을 공격한다?
그것은 천하에 자신이 역적임을 선포하는 격이다.
설령 서주를 공격당한 여포라 할지라도 조조군에 복수하려들지 못하고 원술군을 공격해야 한다. 원술과 친분을 가지고 있던 여포였으니 그 관계를 청산하여 자신은 역적과 관계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군요! 미운 놈을 만들어 가장 많이 뺨을 때리고 싶게 만든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지방 군벌이 원술 토벌에 매진한다면, 그 동안 아군은 전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곽가의 설명에 장수들도 그제야 이해했는지, 조비의 선택이 지극히 타당하다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시간을 번다.
지금의 조조군으로선 황제의 칙령을 이용해서라도 전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농담으로라도 조조군이 호황(好況)을 맞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황제 유협을 허창(許昌)에 옹립하면서 조정군을 자칭하고는 있었지만, 1년 전에 완성에서 대패를 겪은 이래로 남쪽을 향한 공세가 중단. 하북(河北)에서 공손찬을 격파하며 성장하고 있는 원소를 견제하기 위해서 서주 정벌을 시작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주 정벌조차도 여포군에 가로막혀 중단.
현재 조조군이 서주성의 함락에 실패하여 퇴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조군은 결국 사방(四方)의 정벌이 모두 실패한 격이 되어버렸다.
“장수가 이끄는 병력이 여남(汝南)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분명 과거의 일에 대한 보복을 할 게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유표와 동맹을 맺고 북쪽의 영향권을 확보하려는 장수군에 있었다.
서주 정벌에 실패하였다는 정보를 분명 들었을 테지.
조비는 현 조조군이 가장 노려지기 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하였음을 알고 있었다.
교활한 산짐승들은 직접 사냥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전력을 다해서 사냥감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냥감이 약해질 때를 노려서 가장 손쉽고 효율적으로 죽인다.
그게 바로 난세의 군벌들이 벌이는 ‘사냥 방식’이었다.
산짐승들의 눈에 조조군은 힘이 다 빠진 토끼와 같다.
완성 전투의 대패를 온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원소군 견제를 목적으로 서주를 공격하였지만 실패. 남쪽의 원술군을 물리치면서 여남을 빼앗고 다수의 물자를 노획하였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약소화된 전력을 모두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원술군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남원씨들에게 있어 여남은 가장 중요한 성역(聖域)입니다. 분명 다시 빼앗으려 들 겁니다.”
신하들의 말에 조비는 손톱을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군의 모사들은 위험 경고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서쪽에는 강족(姜族)과 저족(低族)이 날뛰며 장안성(長安城)을 빼앗으려 들고 있었다.
남쪽의 장수와 원술.
동쪽에서는 서주의 여포.
북쪽에서는 흑산적이 날뛰면서 연주를 호시탐탐 노렸다.
황제를 옹립한 세력.
만약 조조가 수도를 허도가 아닌, 낙양을 고집하였다면 이미 유협은 적의 손아귀에 놓였을 것이다. 연주와 예주 일대에서 최상의 방어를 자랑하는 허도에 궁궐을 짓고 유협을 옹립한 것은 조비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조조의 올바른 결단 중 하나였다.
“숙부, 양성(陽城)으로 가서 장수를 막으십시오.”
그 말에 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조순의 휘하에는 최정예 기병대인 호표기가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황성을 경호하고 있는 기병대를 따로 빼내면 장수를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장수로부터 남쪽 지역을 수비해야 하였으므로 황실의 병력을 빼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병대로 하여금 다수의 보병대들을 막는다.
장수군은 대부분 보병에 치중을 두고 있었으므로, 육수를 건너면 펼쳐지는 평야에서 기병대에게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의 책사 가후라면 분명 평야에서 호표기와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우둔한 선택인지를 알겠지.’
물론 호표기는 숫자가 매우 적기에 보병으로 밀어붙이면 승리를 거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피해가 크다.
조순은 조인의 동생으로, 조씨 가문에서도 용맹으로 이름이 높았으므로 설령 죽더라도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그렇기에 조순은 어린 망나니의 제멋대로인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에 순종하면서 기병대를 이끌었다.
죽더라도 조씨 가문을 위해 싸운다.
그 필사의 각오가 장수군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장수군은 평야에 위치한 양성을 뚫어내는데 크나큰 손실을 겪게 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함부로 공격해 들어오진 못하겠지.
‘죽는 역할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으라는 게 아닌가?’
조조군의 모사들이 수군거렸다.
물론 조비의 결단에 대해서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숙부뻘에 해당되는 조순에게 ‘결사의 싸움’을 명령하는 그 교활함이 심히 잔인하다.
잔인하고 무정하다. 만약 이 모습을 여포군의 모사 진궁이 보았다면, 여백사를 죽이던 당시의 조조를 떠올리리라.
“그럼 장안성은 어떻게……. 당장 수비군을 돌릴까요?”
“그냥 둬라.”
“예?”
장안성은 천혜의 요새.
진나라가 수도로 삼았으니만큼 그 수비가 견고하고 산세가 험하여 감히 오랑캐가 쳐들어오기에 용이하지 않다.
장안성 인근의 고을들을 모두 초토화가 되겠지만, 지금의 조조군으로선 그를 막기 위해서 따로 보낼 수 있는 병력이 없다.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인의, 도덕을 이유로 병력을 보낸다면 오히려 다른 세력으로부터 노려질 확률이 높았다.
백성 수천 명을 구한답시고 세력 자체를 말아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킨다.
조비는 아버지 조조를 개인적으로 크게 미워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에게서 받은 가르침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어차피 백성들 따위는 언젠가 천하의 패자가 되면 알아서 모여들기 마련이다.
끝까지 난세를 헤쳐 나가고 성장하다보면 사방에서 복종하며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일 터. 지금 당장 수천 명의 백성들이 아까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백성들은 언젠가 다시 모인다. 지금 당장에는 잃겠지만, 언젠가 다시 불어나기 마련이지.”
장안성만 잃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현재 장안성으로서는 조조군을 배신할 입장이 되지 않는다.
장안성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떤 세력도 없다.
익주(益州)에서는 한중의 장로와 성도의 유언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으므로, 장안성을 공격할 여유가 없었다.
‘무슨 어린 소년이…….’
‘정말로 애가 맞기는 한 건가?’
황실의 관료들이 조비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궁궐에서 이루어지는 조조군의 회의.
승상 조조가 없는 지금, 우습게도 이 회의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아들인 조비였다.
고작 열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결단과 행동에 조금의 막힘도 없었을 뿐더러 사소한 실수조차 없었으므로 모든 신하들이 그를 따랐다.
조씨 일가의 대리자.
조조가 없는 지금, 가장 높은 상석에 앉는 사람은 삼공(三公)도 아니고 삼사(三師)도 아니었다.
조조군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식으로 신의가 없는 관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의 사람들로만 채운 인원들로 하여금 회의를 열게 하였으므로 조씨 일가의 대리자인 조비가 이끄는 것은 당연했다.
가장 높은 상석에 앉은 조비.
그리고 관료와 장수들은 고개를 숙이며 열다섯 살 소년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비를 대리자로 삼은 조조의 결단을 의심하고 불신했지만, 조비가 조조의 빈자리를 확실히 채우고 다스리고 있었으므로 모두가 인정했다.
조조의 아들.
아버지를 증오하되, 그를 가장 많이 닮아버린 장자.
조씨 가문의 망나니는 인품과 성격에 한해서는 답이 없을 정도로 악성(惡性)적이었지만, 적어도 그 실력과 결단력에 대해서는 모사들도 고개를 숙이며 찬동할 정도로 뛰어났다.
“원술이 멋대로 황제를 참칭하고 국호를 정해버린 지금, 천하의 이목은 원술군에 모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조비의 말에 장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술.
국호를 중(仲)으로, 자신이 다스리는 구강군을 회남윤(淮南尹)으로 이름을 고치는 것은 물론, 황제의 의복과 깃발 그리고 수레를 따라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그의 행위는 모두 반역죄로 간주할 수 있었다.
원술로서는 조조군에 의지하고 있는 황제 유협이 어리고 무능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한나라 황실이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어버린 옥좌를 자신이 차지함으로서 천하가 자신을 인정하고 받들어주길 원하고 있을 것이다.
여남원씨 가문이 순임금 후예였기에, 한나라가 멸망하고 다시 순임금의 기운이 몰려올 것이라는 미신을 과신한 원술의 크나큰 실수였다.
그를 두고 조비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지금부터 황제에게 상주하여, 원술을 조정의 적으로 간주하고 중원의 제일적(第一敵)이 되었음을 선포해야 한다. 황제를 참칭한 것은 물론, 멋대로 수도를 정하고 한나라를 업신여겼으니 토벌의 정당성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그 말에 서황이 되물었다.
“원술을… 말씀입니까? 하지만 아군으로선 원술을 공격할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서황으로서는 과도하게 많은 적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여 올린 물음이었다.
조조군의 부족한 전력으로는 수많은 적을 감당할 수가 없다.
완성의 장수를 막는 것도 부족한 병력만으로 해결해야 할 정도인데, 예주와 형주, 그리고 양주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대군벌을 상대로는 장기간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왜 조비가 황제를 이용해서 원술을 도발하려고 하는지를 짐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말에 대해서는 곽가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조비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하는 장수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공격하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그 주변 세력들은 다르겠지. 모두가 원술을 노릴 것이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물어뜯으려 할 것일세.”
황제 유협이 직접 원술의 토벌령을 내린다.
아직까지도 한나라 황실의 이름에 걸린 힘은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지방의 군벌들로서는 원술군을 적대 관계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남군을 노리는 장수가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고, 원술과 동맹관계였던 유표는 그 관계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조정이 원술을 적으로 돌렸다.
황제가 그를 제일적으로 선포해버렸다.
원술이 직접 황제를 참칭하고 수도를 정하면서 나라를 선언하였으니, 당연히 그는 역적이며 가장 먼저 해치워야 하는 원수가 되었다.
황제 원술을 두고 조조군을 공격한다?
그것은 천하에 자신이 역적임을 선포하는 격이다.
설령 서주를 공격당한 여포라 할지라도 조조군에 복수하려들지 못하고 원술군을 공격해야 한다. 원술과 친분을 가지고 있던 여포였으니 그 관계를 청산하여 자신은 역적과 관계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군요! 미운 놈을 만들어 가장 많이 뺨을 때리고 싶게 만든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지방 군벌이 원술 토벌에 매진한다면, 그 동안 아군은 전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곽가의 설명에 장수들도 그제야 이해했는지, 조비의 선택이 지극히 타당하다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시간을 번다.
지금의 조조군으로선 황제의 칙령을 이용해서라도 전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