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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조씨 가문의 망나니 (3)
조씨 가문의 망나니.
흔히 연주(兗州)에서 망나니라 하면, 조조의 후계자로 내정된 조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망나니가 ‘교활한 망나니’로 변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의 일이다.
조조가 직접 완성을 공략하여 장수의 항복을 받아내었는데, 장수가 항복을 선언한 완성에 직접 아들인 조앙과 조비를 대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추씨의 미모에 반해 그녀와 통정하였고, 자신의 숙모를 건든 조조의 만행에 장수가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키면서 완성 전투가 벌어졌다. 조조군은 다수가 괴멸되고 패주, 아들인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사망하고 조조군 장수 전위가 전사하는 등의 뼈아픈 손실을 겪었다.
심지어 셋째 아들이었던 조비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며칠 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야 했다. 직접적인 상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검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니 혼절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 눈을 뜬 조비는 달라졌다.
장남 조앙이 사망하고 차남 조삭이 병사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게 된 조비는 ‘평소의 무계획적인 망나니짓’을 철회하고는, 자신의 망나니라는 상징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교활함을 보여주었다.
무자비하고 용서 없는 방식.
원래부터 개망나니라 불렸던 조비였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개망나니 짓을 저지르며 조씨 가문에 이득이 되는 행위들을 벌일 수 있었다.
“역시 잘생겼단 말이지.”
거울을 보며 조비가 중얼거렸다.
본인의 얼굴을 질리도록 보았을 법한 데도, 1년 전에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조비’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매우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삼국지 세계로 떨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절망적이었는데……. 금수저에 성공이 확정된 미래, 거기다가 후계자 자리까지 차지해버린 상태라니. 물론 조비라는 이 사이코패스 같은 녀석의 몸에 들어온 것을 처음 눈치 챘을 때는 미칠 노릇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지.
조비는 지금의 상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 *
“공자께서 직접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한 남성이 포권을 취하며 조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귀가 큰 남성은 평민들이나 입을 법한 삼베옷을 걸치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때 입는 작업복이었는지 특히 소매가 닳은 것이 눈에 보였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풍겨오는 악취에 눈가가 찌푸려질 정도였으며, 그의 자글자글한 주름과 투박한 손은 과거에 고생을 많이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씀을. 황건적을 토벌하고 반동탁 연합군에서 싸워주신 영웅이시거늘.”
조비 또한 포권을 하며 남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비. 자는 현덕.
객장으로 맞이한 여포에게 도리어 서주를 빼앗기고 쫓겨난 패장(敗將).
서주목 도겸에게 주목의 벼슬을 물려받으며 조조군에 크게 적대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의지할 영토를 잃고 조조군에 귀의하게 된 객장의 신분이었다.
그는 허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농촌을 다스리며 스스로 똥지게를 메고 농사를 짓는 등, 매우 태평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시국이 뒤숭숭하고 도적떼가 들끓고 있으니 병사들을 배치시켜 두겠습니다.”
“과연. 공자께서는 혜안이 넓으십니다.”
유비는 자신의 아들뻘처럼 어린 조비에게도 존대를 다하였다.
조비가 조조의 아들이자 조씨 가문의 후계자라는 점도 있겠지만,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음 놓고 그를 대할 수 없었던 탓이다.
불과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
하지만 조조를 쏙 빼닮았는지 교활한 뱀처럼 기분 나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붙잡을 셈이군.’
유비는 하하 웃으면서도 내심 주변을 둘러보며 조조군 병사들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눈치 챘다.
고을을 수비하기 위한 치안병력?
웃기는 소리.
황제가 머무는 이 허도 인근을 약탈할 정도로 간 큰 도적은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황건적은 물론 치안을 어지럽히는 도적이 있다면 그 어디에 있더라도 무조건 참살해버리는 무자비한 조조군의 성격상, 조조군이 다스리는 영토에 도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조비가 굳이 자신이 있는 고을에 병력들을 배치시킨 이유.
도망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유비는 내심 황제를 업신여기고 스스로를 승상으로 임명한 조조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도를 벗어나 다시 서주로 귀환하여 조조에게 대항하고 싶은 유비로선, 자신의 도주로를 막아서려 하는 조비가 매우 성가시게 느껴졌다.
“언젠가 여포도 정벌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의 악적(惡賊) 따위,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지 않습니까?”
조비는 양아버지를 두 번이나 죽인 파락호가 드디어 죽을 때가 왔다면서 서주에 대한 운을 떼었다.
서주로 돌아가고 싶은가?
마치 조비가 그리 말하는 듯 했다.
“승상께서 모두 알아서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 현덕은 그저 조용한 고을에서 조용히 농사나 지으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면 되는 것이지요. 땅을 잃고 쫓겨난 이 현덕을 감싸 안아준 승상의 은혜에 또 다시 감사를 느끼는 바입니다.”
“현덕 공의 인자함은 천하가 알고 있습니다. 그를 내친다면 오히려 천하 만민들이 흉을 보겠지요.”
“그리 봐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하하하하.
조비와 유비가 서로를 보며 유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속으로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정도로 서로를 노려보며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차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럼에도 찻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자칫 자신의 속내가 드러나기라도 할까, 작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비로서는 유비가 언젠가 조조군과 단절하고 최악의 적으로 돌변할 것을 ‘미래의 지식’으로 미리 알고 있었고, 유비는 조씨 가문의 망나니가 자신을 크게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빠진 착한 가면으로는 서로를 속일 수가 없었다.
서로에게 인자한 모습을 보이되, 절대로 속내를 비치지 않는다.
웃음을 짓지만, 그것은 진실된 웃음이 아니다.
가식적이고 위선으로 가득한 위정자들의 웃음.
유비는 지금까지 노련하게 적을 속이면서 마음의 안도를 유발시켰고, 그 마음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면으로 바꿔왔다.
서주목 도겸. 북해상 공융. 유주자사 유우.
지금까지 거쳐간 인물들이 모두 유비를 극찬하면서 천하의 영웅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그것은 유비가 용맹하고 뛰어난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보인 점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비에게는 자신에게 이롭게 만드는 처세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승상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지요? 이 현덕은 먼발치에서나마 승상의 개선식을 보고 싶습니다.”
“싸움에 진 개를 보고 싶다 하시니, 참으로 우스운 말입니다.”
“크흠.”
어지간한 유비도 그 말에 있어선 도저히 웃고 넘길 수 없었는지, 자신의 아비를 욕하는 조비의 언변에 무심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이 작은 망나니의 말에 동조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반박할 수도 없었다.
조조군이 다스리는 영토에서 조조를 욕하는 것은 패망을 부르는 지름길이었고, 그렇다고 조비의 의견에 반대하여 망나니의 미움을 받는 것도 지금으로선 이로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서주 정벌은 실패했습니다. 다소 영토를 얻어내는 데는 성공하였습니다만……. 무식한 패륜아의 목을 떨어트리는 데는 실패하였으니까요.”
“여포는 무예와 군략에 능하고 그 휘하의 장수들도 모두 날쌔기 그지없습니다. 절대로 얕볼 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유비는 여포는 물론 그 휘하의 팔건장(八健將)의 실력을 직접 전쟁터에서 경험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결코 여포군을 우습게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동탁군에서부터 여포를 따른 장수들도 있는 반면, 서주의 군벌이었다가 여포에게 합류한 장수도 있었다.
그런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모두 여포의 무력을 경외하여 따르고 있는 것이었는데, 매번 진궁의 계책으로 조조군을 압박하면서 전쟁을 주도하고 있었으니 가히 여포군의 팔건장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현덕 공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맞는 말이겠지요. 누가 뭐래도 현덕 공은 황건적의 난에서부터 싸워 오신 영웅이 아니십니까?”
조비가 유비를 높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죽여 버리고 싶다만.’
저 교활한 선의(善意) 때문에 죽여 버릴 수도 없군.
조비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위선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유비를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고을을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조비의 심복. 설령 조조의 명령에 반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용감하게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최대한 동원한다면 3백 명 정도일까.
유비를 호위하고 있는 그들 형제들조차도 모두 죽여 버릴 수 있는 병력이다. 그럼에도 조비가 대뜸 유비를 죽이려 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과 ‘상징성’에 있었다.
유비는 서주목 도겸으로부터 후계자로 내정되기를 몇 번이나 거절한 인물이다.
소탈하고 욕심이 없으며, 인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편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떠벌리길 좋아하는 천하의 호사가들은 유비의 이름을 높여 부르며 칭송하였으며, 촌수로 보면 황제의 삼촌뻘이 되기에 유황숙이라 불릴 정도로 황실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 인물을 대뜸 죽인다?
조씨 가문의 개망나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비라 할지라도 매우 두려운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유비를 죽일 수는 없다.
우습게도 조조군은 유비를 인질 겸 객장으로 잡아두고 있었음에도 천하의 여론이 두려워 유비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모두 의도했군. 이 교활한 늙은이가.’
스스로의 명성. 스스로의 명예.
그것을 무기로 삼아서 스스로의 목숨을 보호했다.
조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이 인물은 희대의 교활함을 가진 자다.
조씨 가문의 망나니.
흔히 연주(兗州)에서 망나니라 하면, 조조의 후계자로 내정된 조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망나니가 ‘교활한 망나니’로 변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의 일이다.
조조가 직접 완성을 공략하여 장수의 항복을 받아내었는데, 장수가 항복을 선언한 완성에 직접 아들인 조앙과 조비를 대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추씨의 미모에 반해 그녀와 통정하였고, 자신의 숙모를 건든 조조의 만행에 장수가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키면서 완성 전투가 벌어졌다. 조조군은 다수가 괴멸되고 패주, 아들인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사망하고 조조군 장수 전위가 전사하는 등의 뼈아픈 손실을 겪었다.
심지어 셋째 아들이었던 조비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며칠 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야 했다. 직접적인 상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검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니 혼절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 눈을 뜬 조비는 달라졌다.
장남 조앙이 사망하고 차남 조삭이 병사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게 된 조비는 ‘평소의 무계획적인 망나니짓’을 철회하고는, 자신의 망나니라는 상징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교활함을 보여주었다.
무자비하고 용서 없는 방식.
원래부터 개망나니라 불렸던 조비였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개망나니 짓을 저지르며 조씨 가문에 이득이 되는 행위들을 벌일 수 있었다.
“역시 잘생겼단 말이지.”
거울을 보며 조비가 중얼거렸다.
본인의 얼굴을 질리도록 보았을 법한 데도, 1년 전에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조비’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매우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삼국지 세계로 떨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절망적이었는데……. 금수저에 성공이 확정된 미래, 거기다가 후계자 자리까지 차지해버린 상태라니. 물론 조비라는 이 사이코패스 같은 녀석의 몸에 들어온 것을 처음 눈치 챘을 때는 미칠 노릇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지.
조비는 지금의 상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 *
“공자께서 직접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한 남성이 포권을 취하며 조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귀가 큰 남성은 평민들이나 입을 법한 삼베옷을 걸치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때 입는 작업복이었는지 특히 소매가 닳은 것이 눈에 보였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풍겨오는 악취에 눈가가 찌푸려질 정도였으며, 그의 자글자글한 주름과 투박한 손은 과거에 고생을 많이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씀을. 황건적을 토벌하고 반동탁 연합군에서 싸워주신 영웅이시거늘.”
조비 또한 포권을 하며 남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비. 자는 현덕.
객장으로 맞이한 여포에게 도리어 서주를 빼앗기고 쫓겨난 패장(敗將).
서주목 도겸에게 주목의 벼슬을 물려받으며 조조군에 크게 적대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의지할 영토를 잃고 조조군에 귀의하게 된 객장의 신분이었다.
그는 허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농촌을 다스리며 스스로 똥지게를 메고 농사를 짓는 등, 매우 태평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시국이 뒤숭숭하고 도적떼가 들끓고 있으니 병사들을 배치시켜 두겠습니다.”
“과연. 공자께서는 혜안이 넓으십니다.”
유비는 자신의 아들뻘처럼 어린 조비에게도 존대를 다하였다.
조비가 조조의 아들이자 조씨 가문의 후계자라는 점도 있겠지만,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음 놓고 그를 대할 수 없었던 탓이다.
불과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
하지만 조조를 쏙 빼닮았는지 교활한 뱀처럼 기분 나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붙잡을 셈이군.’
유비는 하하 웃으면서도 내심 주변을 둘러보며 조조군 병사들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눈치 챘다.
고을을 수비하기 위한 치안병력?
웃기는 소리.
황제가 머무는 이 허도 인근을 약탈할 정도로 간 큰 도적은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황건적은 물론 치안을 어지럽히는 도적이 있다면 그 어디에 있더라도 무조건 참살해버리는 무자비한 조조군의 성격상, 조조군이 다스리는 영토에 도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조비가 굳이 자신이 있는 고을에 병력들을 배치시킨 이유.
도망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유비는 내심 황제를 업신여기고 스스로를 승상으로 임명한 조조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도를 벗어나 다시 서주로 귀환하여 조조에게 대항하고 싶은 유비로선, 자신의 도주로를 막아서려 하는 조비가 매우 성가시게 느껴졌다.
“언젠가 여포도 정벌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의 악적(惡賊) 따위,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지 않습니까?”
조비는 양아버지를 두 번이나 죽인 파락호가 드디어 죽을 때가 왔다면서 서주에 대한 운을 떼었다.
서주로 돌아가고 싶은가?
마치 조비가 그리 말하는 듯 했다.
“승상께서 모두 알아서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 현덕은 그저 조용한 고을에서 조용히 농사나 지으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면 되는 것이지요. 땅을 잃고 쫓겨난 이 현덕을 감싸 안아준 승상의 은혜에 또 다시 감사를 느끼는 바입니다.”
“현덕 공의 인자함은 천하가 알고 있습니다. 그를 내친다면 오히려 천하 만민들이 흉을 보겠지요.”
“그리 봐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하하하하.
조비와 유비가 서로를 보며 유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속으로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정도로 서로를 노려보며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차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럼에도 찻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자칫 자신의 속내가 드러나기라도 할까, 작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비로서는 유비가 언젠가 조조군과 단절하고 최악의 적으로 돌변할 것을 ‘미래의 지식’으로 미리 알고 있었고, 유비는 조씨 가문의 망나니가 자신을 크게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빠진 착한 가면으로는 서로를 속일 수가 없었다.
서로에게 인자한 모습을 보이되, 절대로 속내를 비치지 않는다.
웃음을 짓지만, 그것은 진실된 웃음이 아니다.
가식적이고 위선으로 가득한 위정자들의 웃음.
유비는 지금까지 노련하게 적을 속이면서 마음의 안도를 유발시켰고, 그 마음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면으로 바꿔왔다.
서주목 도겸. 북해상 공융. 유주자사 유우.
지금까지 거쳐간 인물들이 모두 유비를 극찬하면서 천하의 영웅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그것은 유비가 용맹하고 뛰어난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보인 점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비에게는 자신에게 이롭게 만드는 처세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승상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지요? 이 현덕은 먼발치에서나마 승상의 개선식을 보고 싶습니다.”
“싸움에 진 개를 보고 싶다 하시니, 참으로 우스운 말입니다.”
“크흠.”
어지간한 유비도 그 말에 있어선 도저히 웃고 넘길 수 없었는지, 자신의 아비를 욕하는 조비의 언변에 무심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이 작은 망나니의 말에 동조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반박할 수도 없었다.
조조군이 다스리는 영토에서 조조를 욕하는 것은 패망을 부르는 지름길이었고, 그렇다고 조비의 의견에 반대하여 망나니의 미움을 받는 것도 지금으로선 이로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서주 정벌은 실패했습니다. 다소 영토를 얻어내는 데는 성공하였습니다만……. 무식한 패륜아의 목을 떨어트리는 데는 실패하였으니까요.”
“여포는 무예와 군략에 능하고 그 휘하의 장수들도 모두 날쌔기 그지없습니다. 절대로 얕볼 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유비는 여포는 물론 그 휘하의 팔건장(八健將)의 실력을 직접 전쟁터에서 경험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결코 여포군을 우습게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동탁군에서부터 여포를 따른 장수들도 있는 반면, 서주의 군벌이었다가 여포에게 합류한 장수도 있었다.
그런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모두 여포의 무력을 경외하여 따르고 있는 것이었는데, 매번 진궁의 계책으로 조조군을 압박하면서 전쟁을 주도하고 있었으니 가히 여포군의 팔건장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현덕 공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맞는 말이겠지요. 누가 뭐래도 현덕 공은 황건적의 난에서부터 싸워 오신 영웅이 아니십니까?”
조비가 유비를 높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죽여 버리고 싶다만.’
저 교활한 선의(善意) 때문에 죽여 버릴 수도 없군.
조비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위선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유비를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고을을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조비의 심복. 설령 조조의 명령에 반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용감하게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최대한 동원한다면 3백 명 정도일까.
유비를 호위하고 있는 그들 형제들조차도 모두 죽여 버릴 수 있는 병력이다. 그럼에도 조비가 대뜸 유비를 죽이려 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과 ‘상징성’에 있었다.
유비는 서주목 도겸으로부터 후계자로 내정되기를 몇 번이나 거절한 인물이다.
소탈하고 욕심이 없으며, 인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편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떠벌리길 좋아하는 천하의 호사가들은 유비의 이름을 높여 부르며 칭송하였으며, 촌수로 보면 황제의 삼촌뻘이 되기에 유황숙이라 불릴 정도로 황실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 인물을 대뜸 죽인다?
조씨 가문의 개망나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비라 할지라도 매우 두려운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유비를 죽일 수는 없다.
우습게도 조조군은 유비를 인질 겸 객장으로 잡아두고 있었음에도 천하의 여론이 두려워 유비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모두 의도했군. 이 교활한 늙은이가.’
스스로의 명성. 스스로의 명예.
그것을 무기로 삼아서 스스로의 목숨을 보호했다.
조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이 인물은 희대의 교활함을 가진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