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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조씨 가문의 망나니 (2)
조씨 가문의 사람들은 조비를 두고 ‘매우 운이 좋은 후계자’라고 평가하였다.
조비 또한 아버지 조조를 따라서 완 전투에 종군하였지만, 장수가 배신하여 군대가 패주하는 순간에서도 살아남았다. 완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맏형 조앙이 죽고, 뒤이어 둘째형 조삭까지 병이 들어 죽어버리면서 셋째 아들이었던 조비는 두 번의 행운을 통해서 조조의 후계자로 낙점되게 되었다.
두 형을 잃고, 후계자 자리를 얻었다.
물론 조조가 장수의 숙모였던 추씨와 통정하느라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을 잃었다는 것은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었기에 함부로 말을 꺼낼 순 없었지만, 조조가 부재중일 경우에 한해서 조씨 일가를 이끌고 있는 후계자 조비를 볼 때마다 수군거리는 목소리들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형을 죽이고 후계자 자리를 빼앗은 거나 다름없다.’
‘조삭의 밥에 독을 타고, 난전 중에 조앙을 죽도록 내버려뒀다.’
오만불순한 조비의 성격을 매우 혐오하는 자들이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 주장에는 신빙성은 없었다.
첫째 아들인 조앙은 조조가 말을 타고 떠나버렸기에 전위와 함께 완에서 죽은 것이었으며, 둘째 아들인 조삭은 태어날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으니 요절해버린 것도 당연했다.
“야, 자환아!”
도도도도.
치맛폭을 양손으로 들고는 마룻바닥을 뛰어오던 소녀가 황급하게 조비에게 달려왔다.
그것을 본 조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치맛폭이 휘날릴 정도로 나돌아 다니는 모습은 보기 흉했던 탓이다. 분명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났을 터인데도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태생부터가 경박스러운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누이.”
“회의 끝났어? 그럼 이제 시간 비었지?”
조비의 누이가 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당찬 물음에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이의 말괄량이 같은 장난을 받아줄 시간 정도는 있었다.
“아버지가 서주성에서 깨지고 나서 도망치는 개처럼 연주성에 올 걸 생각하면 그리 태평스럽진 않지.”
조비가 어김없이 아버지에 대해서 독설을 날렸다.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
특히 미망인 추씨를 탐내느라 형 조앙을 잃었을 적부터 조조와 조비는 서로 부자관계를 단절하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여자를 탐하다가 자식을 죽였다.
심지어 적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아들의 말을 빼앗아 도망쳤다.
첫 출진이었던 아들을 죽였고, 조카를 버렸다.
아버지로서 최악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대죄를 범하였으니, 또 다른 아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조비의 누이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하였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아버지 좀 용서해주면 안 돼?”
“안 돼. 적어도 누이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조비의 이복누이.
조조와 유부인(劉夫人)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식.
완성 전투에서 죽은 조앙의 동복동생.
조우양(曹雨洋)은 무엇보다 남동생 조비와 아버지 조조가 다시 평범한 부자관계로 돌아오길 원했다. 그래서 조조가 연주성에 머물 때마다 조비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무단히도 노력하였지만, 결국 두 부자 관계에 깊은 골을 메울 순 없었다.
“그 자식 때문에 누이의 오라비가, 내 형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배알도 없어?
어떻게 그런 애비 같지도 않은 인간을 편들어?
조비가 쏘아붙이자 조우양이 입을 다물었다.
“누이에게 따지려던 말은 아냐.”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한 조우양을 보며 조비가 한마디 이어 붙였다.
요즘 따라서 너무 정무가 많아진 탓에, 결국 누이에게 화풀이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점에 있어선 매우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조우양의 친모였던 유부인은 오래 전에 요절하였고, 대신 키워줬던 양모(養母)인 정부인(丁夫人)은 아들처럼 애지중지 키웠던 조앙을 잃고 돌아온 조조를 경멸하여 외가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조우양은 오래 전에 어머니를 잃은 것은 물론 조앙과 조삭, 두 오라비를 모두 잃었기에 조비의 친모였던 변씨(卞氏)의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다.
결국 조비와 조우양은 한 어머니에게 보살핌을 받는 남매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조씨 가문 사이에서도 성격 나쁘고 오만한 조비에게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조우양이었고, 언제나 조조와의 사이가 원만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람도 조우양이었다.
“어머니는 뭐래?”
“제발 좀 집에 들어오래.”
“아버지가 돌아와야 집에 가든지 하지. 또 어머니한테 잔소리 듣게 생겼네.”
조비가 한탄하듯 말했다.
매번 정무를 돌보느라 허도의 궁궐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뜸해졌다.
조조의 휘하에는 곽가와 순욱 등 뛰어난 왕좌지재(王佐至才)들이 많았지만, 결국 조씨 가문의 대표를 대리하는 사람이 조비였으므로 언제나 궁궐을 지키면서 조씨 가문이 한나라 황실의 수호자라는 것을 천하에 증명해내야 했다.
절대로 황제의 곁을 벗어나선 안 된다.
어렵사리 옹립한 황제다. 조조군의 정통성과 모든 대의가 황제 유협에게서 비롯되는 만큼, 절대로 그를 잃어선 안 될 것이다.
조비는 황제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를 철저히 꼭두각시로 만들면서도, 아무런 선택조차 못하도록 바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한테 잘 좀 해드려. 그래야 연주에 수군거리는 소문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내가 뭣하러?”
조우양의 말에 조비가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그 인간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 그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도 순전히 조씨 가문을 위해서였지, 절대로 아비를 돕기 위해서 나선 선행은 아니었다.
조조군의 후계자? 조씨 가문의 대를 이을 승상?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조조의 수많은 자식들 중 누군가가 후계자가 되어도 좋을 것이고, 그도 안 된다면 곽가나 순욱이 대신하여 자리를 이어받아도 좋았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아비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행복하고 부유하게 사는 것이다.
아비 조조는 한 번도 가족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머릿속에 구상된 가족 명단에서도 제외해버렸다.
“혹시 오누이 간의 대화를 방해하였는지요?”
궁궐의 정원을 거닐던 와중, 순욱이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 말에 조우양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하였고, 조비 또한 조조군의 제1모사를 환영하는 눈치였다. 순욱은 백면서생처럼 생겼으면서 온화하고 심도에 깊이가 있었으므로 모두가 좋아하는 서생이었다.
“누이는 돌아가. 어차피 들어봤자 이해도 못할 텐데.”
“날 천치 취급하는 거지!”
말귀는 빠르네.
조비의 말에 조우양이 씩씩 소리를 내면서도, 순욱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남동생의 말처럼 자신이 들을 만한 대화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리라.
분명 정무에 관한 문제겠지.
그것이 아니고서야 조비가 애써 순욱을 불렀을 리가 없었다.
“서주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나?”
조비가 물었다.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에게 반말을 듣는 것은 매우 고까운 일이었지만,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한 조비였던 터라 순욱은 오히려 빙그레 웃으면서 괘념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회군중이시라 합니다. 비록 서주성을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서주의 비옥한 평야들 다수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말에 조비는 ‘적어도 호족을 구슬릴 정도는 되는군.’이라며 이번 서주 정벌군이 아주 헛된 출병은 아니었음을 말했다.
서주의 비옥한 평야.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이용해서 다수의 호족들로부터 충성심을 얻어내야 했다. 그를 위해서 조조는 서주에서 퇴각하면서도 비옥한 평야를 석권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였고, 원소는 하북의 패자가 되었다. 위아래에서 원씨들이 득세하고 있으니, 아군으로선 반드시 서주를 손에 넣어야 하는 입장이다.”
여남원씨와 싸우기 위한 준비.
조비는 지금의 상황에선 절대로 원소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영토와 물자 면에서도 절망적인 차이가 존재할뿐더러, 병력면에서도 압도적인 열세였다.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서 서주 합병이 무엇보다 필요하였지만, 그것조차 이번에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과거의 대학살로 인해 조조군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서주에선 저항이 심각하게 이어졌다.
오죽하면 학살자 조조보다는 차라리 개망나니 여포가 낫다면서 여포를 지지하는 서주인이 많았다.
그 결과 서주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여포는 진궁과 함께 조조군을 크게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하후돈을 앞세운 조조군은 변변찮은 승리만을 거둔 채로 연주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실망이 크시겠군요.”
“어디 조가(曹家)만 할까?”
조비가 말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조가’란 아버지 조조를 일컫는 말이었다.
과거 지우(知友)였던 진궁에게 배신당하여 연주를 잃을 뻔하고, 서주에서는 번번이 격퇴당하고 있었으니 그 속이 새카맣게 타들었을 것이다.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진궁이 여포에게 붙어있는 한은 절대로 서주를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였다.
“유가(劉家)는 뭐하고 있답니까?”
조비가 물었다.
그 물음에 순욱은 ‘유가?’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머리를 굴렸다.
유씨라 하면 누구를 말하는 걸까.
머리를 굴리던 순욱은 어렵지 않게 조비가 말하는 유가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유비 공은 지금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돗자리를 짜고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답니다.”
순욱은 서주를 여포에게 강탈당하고 서주목을 빼앗긴 채로 조조군에 투항한 유비를 떠올렸다.
지금은 그다지 신경 쓸 것 없다.
조조의 호의를 바탕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는 유비를 떠올린 순욱은 아직 유비에게서 그 어떤 반역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적어도 조씨 가문의 후계자인 조비가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조비는 유비를 크게 견제하고 있었는지, 그가 머무는 고을 주변으로 병사들을 파견할 것을 명령했다.
조씨 가문의 사람들은 조비를 두고 ‘매우 운이 좋은 후계자’라고 평가하였다.
조비 또한 아버지 조조를 따라서 완 전투에 종군하였지만, 장수가 배신하여 군대가 패주하는 순간에서도 살아남았다. 완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맏형 조앙이 죽고, 뒤이어 둘째형 조삭까지 병이 들어 죽어버리면서 셋째 아들이었던 조비는 두 번의 행운을 통해서 조조의 후계자로 낙점되게 되었다.
두 형을 잃고, 후계자 자리를 얻었다.
물론 조조가 장수의 숙모였던 추씨와 통정하느라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을 잃었다는 것은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었기에 함부로 말을 꺼낼 순 없었지만, 조조가 부재중일 경우에 한해서 조씨 일가를 이끌고 있는 후계자 조비를 볼 때마다 수군거리는 목소리들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형을 죽이고 후계자 자리를 빼앗은 거나 다름없다.’
‘조삭의 밥에 독을 타고, 난전 중에 조앙을 죽도록 내버려뒀다.’
오만불순한 조비의 성격을 매우 혐오하는 자들이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 주장에는 신빙성은 없었다.
첫째 아들인 조앙은 조조가 말을 타고 떠나버렸기에 전위와 함께 완에서 죽은 것이었으며, 둘째 아들인 조삭은 태어날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으니 요절해버린 것도 당연했다.
“야, 자환아!”
도도도도.
치맛폭을 양손으로 들고는 마룻바닥을 뛰어오던 소녀가 황급하게 조비에게 달려왔다.
그것을 본 조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치맛폭이 휘날릴 정도로 나돌아 다니는 모습은 보기 흉했던 탓이다. 분명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났을 터인데도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태생부터가 경박스러운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누이.”
“회의 끝났어? 그럼 이제 시간 비었지?”
조비의 누이가 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당찬 물음에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이의 말괄량이 같은 장난을 받아줄 시간 정도는 있었다.
“아버지가 서주성에서 깨지고 나서 도망치는 개처럼 연주성에 올 걸 생각하면 그리 태평스럽진 않지.”
조비가 어김없이 아버지에 대해서 독설을 날렸다.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
특히 미망인 추씨를 탐내느라 형 조앙을 잃었을 적부터 조조와 조비는 서로 부자관계를 단절하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여자를 탐하다가 자식을 죽였다.
심지어 적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아들의 말을 빼앗아 도망쳤다.
첫 출진이었던 아들을 죽였고, 조카를 버렸다.
아버지로서 최악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대죄를 범하였으니, 또 다른 아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조비의 누이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하였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아버지 좀 용서해주면 안 돼?”
“안 돼. 적어도 누이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조비의 이복누이.
조조와 유부인(劉夫人)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식.
완성 전투에서 죽은 조앙의 동복동생.
조우양(曹雨洋)은 무엇보다 남동생 조비와 아버지 조조가 다시 평범한 부자관계로 돌아오길 원했다. 그래서 조조가 연주성에 머물 때마다 조비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무단히도 노력하였지만, 결국 두 부자 관계에 깊은 골을 메울 순 없었다.
“그 자식 때문에 누이의 오라비가, 내 형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배알도 없어?
어떻게 그런 애비 같지도 않은 인간을 편들어?
조비가 쏘아붙이자 조우양이 입을 다물었다.
“누이에게 따지려던 말은 아냐.”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한 조우양을 보며 조비가 한마디 이어 붙였다.
요즘 따라서 너무 정무가 많아진 탓에, 결국 누이에게 화풀이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점에 있어선 매우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조우양의 친모였던 유부인은 오래 전에 요절하였고, 대신 키워줬던 양모(養母)인 정부인(丁夫人)은 아들처럼 애지중지 키웠던 조앙을 잃고 돌아온 조조를 경멸하여 외가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조우양은 오래 전에 어머니를 잃은 것은 물론 조앙과 조삭, 두 오라비를 모두 잃었기에 조비의 친모였던 변씨(卞氏)의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다.
결국 조비와 조우양은 한 어머니에게 보살핌을 받는 남매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조씨 가문 사이에서도 성격 나쁘고 오만한 조비에게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조우양이었고, 언제나 조조와의 사이가 원만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람도 조우양이었다.
“어머니는 뭐래?”
“제발 좀 집에 들어오래.”
“아버지가 돌아와야 집에 가든지 하지. 또 어머니한테 잔소리 듣게 생겼네.”
조비가 한탄하듯 말했다.
매번 정무를 돌보느라 허도의 궁궐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뜸해졌다.
조조의 휘하에는 곽가와 순욱 등 뛰어난 왕좌지재(王佐至才)들이 많았지만, 결국 조씨 가문의 대표를 대리하는 사람이 조비였으므로 언제나 궁궐을 지키면서 조씨 가문이 한나라 황실의 수호자라는 것을 천하에 증명해내야 했다.
절대로 황제의 곁을 벗어나선 안 된다.
어렵사리 옹립한 황제다. 조조군의 정통성과 모든 대의가 황제 유협에게서 비롯되는 만큼, 절대로 그를 잃어선 안 될 것이다.
조비는 황제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를 철저히 꼭두각시로 만들면서도, 아무런 선택조차 못하도록 바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한테 잘 좀 해드려. 그래야 연주에 수군거리는 소문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내가 뭣하러?”
조우양의 말에 조비가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그 인간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 그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도 순전히 조씨 가문을 위해서였지, 절대로 아비를 돕기 위해서 나선 선행은 아니었다.
조조군의 후계자? 조씨 가문의 대를 이을 승상?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조조의 수많은 자식들 중 누군가가 후계자가 되어도 좋을 것이고, 그도 안 된다면 곽가나 순욱이 대신하여 자리를 이어받아도 좋았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아비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행복하고 부유하게 사는 것이다.
아비 조조는 한 번도 가족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머릿속에 구상된 가족 명단에서도 제외해버렸다.
“혹시 오누이 간의 대화를 방해하였는지요?”
궁궐의 정원을 거닐던 와중, 순욱이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 말에 조우양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하였고, 조비 또한 조조군의 제1모사를 환영하는 눈치였다. 순욱은 백면서생처럼 생겼으면서 온화하고 심도에 깊이가 있었으므로 모두가 좋아하는 서생이었다.
“누이는 돌아가. 어차피 들어봤자 이해도 못할 텐데.”
“날 천치 취급하는 거지!”
말귀는 빠르네.
조비의 말에 조우양이 씩씩 소리를 내면서도, 순욱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남동생의 말처럼 자신이 들을 만한 대화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리라.
분명 정무에 관한 문제겠지.
그것이 아니고서야 조비가 애써 순욱을 불렀을 리가 없었다.
“서주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나?”
조비가 물었다.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에게 반말을 듣는 것은 매우 고까운 일이었지만,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한 조비였던 터라 순욱은 오히려 빙그레 웃으면서 괘념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회군중이시라 합니다. 비록 서주성을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서주의 비옥한 평야들 다수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말에 조비는 ‘적어도 호족을 구슬릴 정도는 되는군.’이라며 이번 서주 정벌군이 아주 헛된 출병은 아니었음을 말했다.
서주의 비옥한 평야.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이용해서 다수의 호족들로부터 충성심을 얻어내야 했다. 그를 위해서 조조는 서주에서 퇴각하면서도 비옥한 평야를 석권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였고, 원소는 하북의 패자가 되었다. 위아래에서 원씨들이 득세하고 있으니, 아군으로선 반드시 서주를 손에 넣어야 하는 입장이다.”
여남원씨와 싸우기 위한 준비.
조비는 지금의 상황에선 절대로 원소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영토와 물자 면에서도 절망적인 차이가 존재할뿐더러, 병력면에서도 압도적인 열세였다.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서 서주 합병이 무엇보다 필요하였지만, 그것조차 이번에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과거의 대학살로 인해 조조군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서주에선 저항이 심각하게 이어졌다.
오죽하면 학살자 조조보다는 차라리 개망나니 여포가 낫다면서 여포를 지지하는 서주인이 많았다.
그 결과 서주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여포는 진궁과 함께 조조군을 크게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하후돈을 앞세운 조조군은 변변찮은 승리만을 거둔 채로 연주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실망이 크시겠군요.”
“어디 조가(曹家)만 할까?”
조비가 말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조가’란 아버지 조조를 일컫는 말이었다.
과거 지우(知友)였던 진궁에게 배신당하여 연주를 잃을 뻔하고, 서주에서는 번번이 격퇴당하고 있었으니 그 속이 새카맣게 타들었을 것이다.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진궁이 여포에게 붙어있는 한은 절대로 서주를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였다.
“유가(劉家)는 뭐하고 있답니까?”
조비가 물었다.
그 물음에 순욱은 ‘유가?’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머리를 굴렸다.
유씨라 하면 누구를 말하는 걸까.
머리를 굴리던 순욱은 어렵지 않게 조비가 말하는 유가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유비 공은 지금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돗자리를 짜고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답니다.”
순욱은 서주를 여포에게 강탈당하고 서주목을 빼앗긴 채로 조조군에 투항한 유비를 떠올렸다.
지금은 그다지 신경 쓸 것 없다.
조조의 호의를 바탕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는 유비를 떠올린 순욱은 아직 유비에게서 그 어떤 반역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적어도 조씨 가문의 후계자인 조비가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조비는 유비를 크게 견제하고 있었는지, 그가 머무는 고을 주변으로 병사들을 파견할 것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