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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조씨 가문의 망나니 (1)



허도를 주름잡는 가문을 꼽는다면, 당연히 조씨 일가를 뽑을 수 있었다.

불세출의 영웅이며 황제 유협을 옹립하는데 성공한 승상 조조.
그의 가문은 언제나 번창하고 있었으며, 연주(兗州)를 근거지로 하여 예주(豫州)와 사예주(司隸州)까지 연이어 석권하면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조의 가문도 언제나 두려움을 떠안아야 했다.
천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하남(河南)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 그리고 황제 유협을 허도(許都)에 옹립하고 있다는 점은 언제나 적의 침입을 대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서주에서 또 다시 대학살이 벌어졌다고 하오.”
“피와 살육을 보았을 터이니······. 미쳐버려도 이상할 것 없는 일입니다.”
조조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예주에까지 영향력을 넓히는 데 크게 도운 호족들이 서로 입을 모아 말했다.
시국이 뒤숭숭하고, 불패무적과도 같았던 조조군이 기울기 시작했다.
서주의 소패성에서 맹장 하후돈이 고순에게 패배.
서주성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놓인 작은 성조차도 막아내지 못했다는 점에 있어선 뼈아픈 패배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조조가 과거에 벌였던 서주 대학살로 인해 서주인들의 민심이 흉흉하여 매번 민란이 그치질 않았으니 서주 정벌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가 서주성에 박혀서 농성을 취하는 한은 함락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러다 우리들까지 피해를 보는 건 아닐지…….”
“물자를 지원하는 것만 하더라도 허리가 휠 지경이오.”
연주의 호족들은 조조에게 오랫동안 귀의를 한 상태였기에 순종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조조에게 귀의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예주 호족들은 지금이라도 원술에게 다시 항복하여 그쪽에 붙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원술은 여남원씨(汝南袁氏)의 적장자다.
물론 여남원씨의 수장은 하북(河北)의 원소였지만, 예주를 비롯하여 형주(荊州)와 양주(揚州) 방면에서 대군벌에 가까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니 호족들이 보기엔 서주 하나에 목을 매고 있는 조조보다는 호탕하게 남쪽을 먹어치운 원술이 더 유리하게 보일 법도 했다.

“이렇게 다급하게 불렀건만, 모두 참석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허도를 장악한 조씨 일가.
그 일가를 대표하는 조조는 정벌군을 따라 서주에 친정(親征)을 떠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를 대신하여 조조의 아들이 자리를 대리하고 있었다.
호족들이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조조의 장남이었던 조앙(曹昻)이 완 전투에서 사망. 그리고 둘째 아들이었던 조삭(曹鑠)이 일찍 병이 들어 죽었으므로, 조조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아들은 셋째 아들이었던 조비였다.
조비는 좌우에 앉은 호족과 조씨 일가들을 보며 조금의 떨림도 없이 좌중의 이목을 끌어 모았다.
“본 조정군은 동해군(東海郡)과 낭야국(琅邪國)을 제압하였으며, 더욱이 천하의 패륜아 여포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입장이다.”
조비는 호족들을 보며 아군이 곧 황제의 칙령(勅令)을 받드는 조정군이며, 나아가 양아버지를 두 번이나 죽인 여포를 토벌하려 한다는 대의가 있음을 알렸다.
두 명의 형들이 모두 죽는 바람에 조조의 후계자에 덜컥 내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떨리는 기색 없이 수십 명의 호족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서주에서 벌어진 패전으로 인해 발생한 공포와 불안감.
지금 이 불리한 상황에서 호족들이 잇달아 배신하게 된다면 조조군에 큰 피해가 가해질 것이다. 최대한 그들을 결속시키고 유대감을 이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조비는 ‘서주에서의 포상’과 ‘조정군의 명분’을 강조하고 나섰다.
“하, 하지만 상대는 여포입니다! 그 야차 같았던 동탁군 무장들 중에서도 가히 최강이라 할 수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느 호족이 식은땀을 닦아내며 물었다.
그는 자신의 가문에서 조조군에게 투자한 모든 물자들이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여 최대한 허도로 빠르게 달려온 인원들 중 한 명이었다.
조조군의 패망은 곧 연주와 예주 호족들의 멸망에 직결되는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조조가 언젠가 천하의 패자가 될 것을 믿고서 지금까지 무상의 지원을 해준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만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자금과 물자들을 제공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 와서 조조군에 패색이 짙어지게 된다면 투자한 호족 가문들은 쫄딱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시오. 오히려 서주를 점령하게 된다면 비옥하고 기름진 서주 땅을 얻게 될 것이니.”
조비가 말했다.
올해로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조조를 닮아 언변에 능했다.

사람을 속이고 이용해먹는 재주.
본인은 그저 협잡꾼의 잔재주라고 폄하하였지만, 세 치의 혀를 나불거리면서 호족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있었다.
아버지를 죽도록 싫어한다.
하지만 돕는 수밖에 없다.
그가 멸망한다면 지금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이 허도는 물론 당연하게 누려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아버지 조조와는 공생관계가 되어버렸다고 할까.
애초에 부자관계라는 점에서 볼 때, 서로의 존재를 도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 아닐까.
“믿지 못하겠다는 자가, 당장이라도 우리 가문을 배신할 자가 있으면 떠나도 좋다.”
조비가 단언했다.

그 말에 그의 뒷자리에 앉아 조카가 뭘 말하나 지켜보고 있던 조홍(曹洪)이 빙그레 웃음을 터트렸다.
‘간교한 놈.’
조홍은 이 작은 공자가 사촌인 조조와 너무도 닮았음을 알아채고 있었다.
민중들을 휘어잡아버리는 언변.
속임수, 잔재주, 뭐라고 부르건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다.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리고 그를 이용해먹는 언변은 지도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재주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조조와 조비는 오로지 타인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위인이라 할 수 있었다.
‘일부러 협박하고 있다.’
조홍이 중얼거렸다.
실제로 조비의 가차 없는 단언에 호족들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서주에서 패전이 들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여포로 인해 서주 점령의 시한이 질질 끌리는 것도 사실.
따라서 조조군이 서주에서 애를 먹으면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결과 또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조비는 당당하게 조조군을 불신하려는 자가 있거든, 당장 여기서 떠나라며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뭘 믿고 저러는 걸까.
조홍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렇기에 일부러 조비에게 조씨 일가의 모든 지배권을 넘겨줬고, 교활함으로 똘똘 뭉친 공자가 뭘 할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잘 알아둬라.”
조비가 말했다.
그는 오만불손하고 예의를 모른다는 세간의 평가처럼, 자신의 아버지뻘에 해당되는 호족들 앞에서도 대놓고 반말을 지껄였다.
“서주를 점령하게 된다면 기름진 서주의 땅은 너희들의 차지가 된다. 도겸을 따르던 자, 그리고 유비와 여포를 따르던 자. 서주 호족들이 모두 땅을 잃고 쫓겨나게 될 것이니, 서주는 그야말로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영토가 되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그것을 차지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서주목 도겸이 일군 비옥한 영토.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평야 중에서도 서주의 곡창지대는 금싸라기 땅이 아닐 수 없었다.
호족들의 욕심을, 욕망을 끌어내자.
조씨 가문에 충성한다고 혓바닥을 매번 놀리는 자들이지만, 결국에는 자기 가문의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는 들개들일 뿐이다.
들개들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그들을 충성스럽게 길들일 수 있는 먹이였다. 채찍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우선 배불리 먹여서 충분히 길들인 다음에 채찍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떠나겠다면 서주의 땅은 물론, 황제를 옹립하고 있는 우리 가문과 척을 지게 됨을 의미하지.”
어디로든 떠나라.
하북의 원소. 예주의 원술. 서주의 여포. 형주의 유표.
하지만 기억해둬라.
우리 조조군에 척을 지겠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강압적이고 요령을 모른다.
그저 순수한 적의를 담아서 꺼낸 협박이었다. 거래도, 제안도 아니다. 조조군을 따른다면 충분한 보상이 함께하는 대신, 조조군을 배신하는 순간 철전지원수가 되어 평생 쫓기게 되는 삶을 경험하게 되리라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조홍이 중얼거렸다.
이 작은 조카는 수십 명의 호족들을 모두 통솔하기 위해선 자애(慈愛)와 도리(道理) 따위가 아닌,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공포가 존재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인간은 결국 강자를 따르기 마련.
약자가 아닌 강자로서 조조군이 존재하는 한, 이해타산에 능한 호족들은 결코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귀공자.
싸늘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은 수십 명의 호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협박을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