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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끼이이익!
수호가 소리치자 김삼환도 보고 반응을 했다.
그가 얼른 핸들을 꺾었다.
쾅!
하지만 충돌을 피할 수는 없었다.
SUV가 측면을 들이받았고 두 사람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잠깐 암전이 찾아왔다.
“으윽.”
수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앞을 보니 김삼환은 기절한 상태.
승용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보닛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멍한 정신으로 뒤를 돌아봤다.
검은 재킷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수호는 지퍼백을 움켜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피 묻은 카람빗을 꺼내는 찰나, 검은 재킷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슈욱!
그가 든 카람빗이 살광을 발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호도 무기가 있다.
두 사람은 한데 어우러져 미친 듯이 칼춤을 춰댔다.
충돌 사고가 일어난 도로 한복판.
안 그래도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데, 초인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두 남자가 검합을 주고받고 있으니 이목이 장난 아니게 집중됐다.
몇몇은 아예 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꺼내 촬영까지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112에 신고를 넣기도 했다.
“……!”
웅성거리는 소리에 검은 재킷의 얼굴이 굳었다.
뒤로 물러나던 그가 카람빗을 고쳐 쥐고 스킬을 사용했다.
다시 근접전에 돌입.
두 사람 다 피투성이였다.
수호는 아까 봉합했던 상처가 벌어져 땀보다 피에 흠뻑 젖었고, 검은 재킷 또한 검상을 꽤나 입어 재킷 군데군데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제법 하는데?”
아까보다 더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수호는 점점 여유를 찾아갔다.
놈이 까다로운 건 역시 경공으로도 못 쫓아갈 기동성 있는 스킬을 보유했다는 것.
그가 이를 이용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면 에너지를 다 쓴 수호는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수호의 편이다.
검은 재킷은 마음이 급한 듯했다.
공격, 또 공격.
수호가 빈틈을 보이기만을 바라면서 칼을 휘둘러 왔지만, 검술 대 검술로 붙으면 이쪽도 전혀 밀릴 게 없었다.
입가에 살짝 띤 수호의 미소가 득의한 웃음으로 바뀔 즈음, 놈이 몸을 돌렸다.
스읏!
검은 재킷이 스킬을 써서 확 멀어졌다.
“이런 치사한!”
어느새 놈은 자기 차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따라갈까 말까 고민하는 중, 그가 이쪽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척!
그러면서 가운뎃손가락을 든다.
“장난하냐? 갑자기?”
어이없어하며 검은 재킷을 보는데…….
탕! 탕탕!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놈의 머리에서 찐득한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가 픽 쓰러졌다.
“이건 뭔……?”
수호는 얼른 검은 재킷에게로 다가갔다.
“이봐! 죽지 마!”
뺨을 탁탁 두드려 봤지만 머리에 구멍 뚫린 사람이 그런다고 정신을 차릴 리는 없다.
“아, 젠장.”
인상을 쓰면서 차로 돌아갔다.
김삼환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는 아니고.
수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냥 나와요, 숨어서 뭐 하는 거예요?”
“아, 들켰나?”
할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겸연쩍은 듯 물었다.
“나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알긴 했지만, 몰랐어도 이렇게 되면 알 수밖에 없죠.”
“그런가? 이번엔 진짜 확실하게 숨죽이고 있었거든? 대체 어떻게 안 거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지금? 그리고 도망 못 가게 한 건 좋은데, 아예 죽여 버리면 어떡해요.”
“죽… 었어? 사살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반사적으로.”
수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배후가 궁금하진 않지만 그래도 놈의 입으로 직접 들어봐야 하는 게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영영 입을 못 열게 됐으니 가장 안 좋게 됐다.

* * *

일요일.
점심시간, 윤상현 일가의 식사 풍경은 일반 가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드라마 세트에나 나올 법한 커다란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있고, 가정부가 분주히 움직이며 시중을 든다.
상석에 앉은 사람은 부친인 윤지환.
아내인 정유선과 윤상호가 왼쪽에 차례로 앉아 있고, 맞은편에 앉은 건 정진우였다.
윤상현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말없이 수저만 뜨는 중이고 분위기도 사뭇 가라앉아 있었다.
정적을 깬 사람은 정진우였다.
“그런데 대표님.”
“음?”
윤지환이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왜 절 보자고 하신 건지…….”
“아니, 처남. 가족끼리 만나서 식사 한 끼 하는 건데, 여기에 뭔 이유가 필요한가?”
“그건 그렇지만요…….”
“이거 섭섭한데? 처남한테 우리는 가족이 아닌가?”
윤지환이 웃으며 가족들을 둘러봤다. 윤상호가 맞장구를 쳐줬다.
“맞아요, 삼촌. 섭섭하게 왜 그러세요?”
“아, 미안, 미안. 내가 실언을 했네.”
그도 같이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표정이 살짝 굳어져 있어서 어째 좀 억지웃음 같았다.
네 사람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정진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꾸역꾸역 밥을 퍼먹었다.
그때.
지이이잉하고 진동음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본 정진우의 안색이 변했다.
“내가 밥상머리에서 그거 확인하는 거… 싫어한다는 거 알지 않던가?”
윤지환이 불편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연락이라서. 받아도 될까요?”
“뭘 그런 걸 눈치 보고 그래. 그냥 받아.”
정유선이 숟가락을 탁 내려놨다.
“아, 알았어…….”
정진우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2층으로 올라간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알아봤는데, 타깃에게 조력자가 있던데요? 그래서 실패한 거 같습니다.]
“실패? 무슨 개소리야? 존나 센 놈 붙였다면서?”
[그랬죠. 근데 도와주는 쪽도 만만치가 않던데요? 대체 그 애, 정체가 뭡니까?]
“뭔 정체? 그냥 고등학생 아냐? 됐고, 언제쯤 해결할 수 있는데.”
[이봐요, 우리 할 일은 끝났어요. 그쪽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의뢰하는 바람에 우리 선수만 나가리됐거든요? 지금까지 생사 확인도 안 되고. 이쪽만 똥 밟은 상황이라는 건 알죠?]
“장난해? 너희가 100% 보장한다고 해서 그 거액을 지불한 거잖아! 근데 너네들이 능력 딸려서 일을 망쳐놓고 AS도 안 한다고?”
[당신, 이 바닥 선수 몸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아요? 그쪽에 책임 안 묻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할 텐데, 뭘 믿고 이러시나?]
상대방의 말투가 은근 위협조로 바뀌자 정진우는 말이 없어졌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계속하려면… 얼마면 되는데?”
저쪽에서 뭐라고 말하자 정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쳤어? 내가 그만한 돈이 어딨어?”
[싫으면 말고요. 그럼 우리는 여기서 끝인 겁니다?]
“아니, 잠깐! 알았어. 다시 작업 들어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까.”
한숨을 쉬며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는데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작업을 한다는 거지?”
“예… 옛?”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윤지환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정진우는 얼른 거짓말을 했다.
“그게… 부하 직원에게 시켜놓은 일이 있어서요.”
“아, 그래? 어떤 일인데?”
“신경 쓰실 만한 건 아닙니다. 사소한 거고.”
“별거 아닌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처남이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그냥 일상적인 업무 지시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뭐 숨기는 게 있는 건 아니지?”
“그, 그럴 리가요.”
윤지환은 정진우를 지나쳐 창가 쪽으로 갔다.
거기에는 진열대가 하나 배치되어 있었다.
그 위에 놓인 것은 고풍스러운 백자.
윤지환이 뜬금없는 행동을 했다.
백자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하는 거였다.
“……?”
정진우는 느닷없이 도예품을 감상하는 매형을 보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윤지환이 혼잣말을 했다.
“좀 아까운데…….”
“뭐가 말입니까?”
“이렇게 쓰기가 좀 그렇긴 한데, 또 사지 뭐.”
“네?”
윤지환이 백자를 휘둘렀다.
퍼석!
뚝배기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정진우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쨍그랑!
윤지환은 백자를 내동댕이치고는 쓰러진 정진우의 멱살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왜, 왜 이러세요?”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지. 처남,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니고 그러나?”
“죄, 죄송합니다. 전 조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돕긴 뭘 도와? 자네 판단력 없나? 진심으로, 암살 길드에 청부하는 게 우리 애들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한 거야?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지?”
“그때는 그게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퍽!
윤지환이 정진우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다.
정진우는 억 소리도 못 내고 주저앉았다.
“내가 자네한테 화가 나는 건.”
그가 말끝을 흐렸다.
고개를 돌리자 겁먹은 얼굴의 가정부가 보였다.
“죄, 죄송해요.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요…….”
“나중에 치워요. 처남하고 얘기 중이니까.”
“네, 네.”
그녀가 내려가자 윤지환이 말을 마저 이었다.
“어떻게 일을 그렇게 최악으로 처리하냐 이거야. 처음에 판단을 잘못했어도 거기서 얼마든지 최선을 찾아낼 수가 있거든?”
“죄송합니다…….”
정진우는 제대로 변명도 못 하고 쩔쩔매기만 했다.
윤지환은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까 그놈한테 다시 연락해. 해서 이 일에서 손 떼라고 해.”
“그, 그럼 이대로 넘어가자는 겁니까? 상현이가 그렇게 됐는데요?”
“아니, 미쳤나? 그런 무식한 수단 안 써도 얼마든지 방법은 많아. 자네 머리로는 다른 수가 안 떠오르겠지만. 내가 보여주지.”
그의 입가에 냉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소독제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입원실.
수호는 병상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현재 그는 환자복 차림.
흰 바탕에 병원 이름이 줄무늬 패턴으로 들어간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였다.
이걸 걸치고 있으니 열일곱 파릇파릇한 청춘도 무기력한 환자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무료하군.’
수호는 몹시 지루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며칠째 병원에만 갇혀 있었다.
치료가 덜 끝나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참았겠지만, 벌써 그는 다 회복된 상태였다.
각성자의 초인적인 회복력은 칼 맞은 지 하루도 안 돼서 그를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그런데도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물러야 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지?’
수호는 김삼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틀 전.
김삼환이 문병을 왔다.
그는 목과 왼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이때 수호는 다 나아서 붕대도 풀어버린 상태였다.
해서 누가 병문안을 온 건지 구별이 안 됐다.
그런데 침대에 앉아 있는 건 수호고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은 게 김삼환이었다.
“몸은 좀 어때요?”
“저야 뭐, 안 물어보셔도. 과장님은요?”
“저도 괜찮습니다. 거동이 좀 불편하긴 한데 일하는 데에는 별로 지장 없고. 책상머리 요원이라 다행이죠.”
“아, 네.”
수호가 본론을 꺼냈다.
“놈들은요. 뭔가 움직임이 있나요?”
“글쎄요. 24시간 내내 감시중인데 수상한 행동을 보인 사람은 없었고…….”
“가족들은 눈치 못 챘죠?”
“그럼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저희 요원들이 또 은근히 유능해서요.”
“아, 감사합니다.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저희 가족을 위해서 선뜻 나서주시고.”
“하하, 인력난이라. 그건 각성자 요원에 한해서만 그렇고 비각성자 요원은 남아돕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되구요. 마음 놓일 때까지 비밀리에 경호해드릴 수 있습니다.”
“네…….”
수호가 머리를 숙였다.
SSIS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거였다.
윤상현? 윤상호? 아니면 그들과 가까운 누군가?
배후가 누군지는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정신 나간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놀이공원으로 암살자를 보낼 정도니.
상황이 종료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음번엔 가족들이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별일 없는 거 보면 완전 막 나갈 생각은 아닌 거 같죠?”
김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지금까지 한 일도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족까지 건드리는 건 아니죠.”
수호는 그에게 가족들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면서 윤상현과의 악연에 대해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윤상현 쪽에서 암살자를 고용했으리라는 추측.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김삼환도 던전에서의 에피소드를 듣고는 생각이 바뀐 듯했다.
“그 윤상현이라는 친구 말인데요.”
“네.”
“대강 알아봤습니다만 확실히 집안이 좋긴 합니다. 아버지가 현성건설 대표라던가? 혹시 알아요, 이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