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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특별재난관리부라면 정부 기관? 거기서 왜 날?”
혼란스러움의 연속이다.
웬 꼬맹이가 집에 숨어 있는 것도 평범한 일이 아닌데 정부 요원이라니,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특별재난관리부는 던전 등장 이후 마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설된 행정조직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던전을 관할하며 마물 처리, 각성자 관리 등을 담당한다.
여러모로 각성자 협회와 하는 일이 겹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조직이었다.
“이제 수상한 사람 아니라는 거 알겠지?”
“아니. 말로는 뭐든 다 될 수 있지. 신분증이야 어디서 사거나 만들면 되는 거고.”
“알았어. 증명해 줄게.”
할로우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 와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네, 진수호 건이요. 지금 본인하고 대면 중인데요, 제 말을 믿으려고 하질 않아서요.”
저쪽에서 뭐라 말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어쩌다 보니까 걸렸어요, 에헤헤.”
통화를 마치고, 그녀가 수호를 바라봤다.
“어때? 이래도 안 믿을래?”
“뭘? 휴대폰에 아는 사람 번호 있다는 거? 방금 같은 건 나도 할 수 있거든?”
“넌 어린 게 뭐 그렇게 의심이 많니?”
“……?”
수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네가 할 말이냐고 되물으려는 순간.
띠리릭!
도어락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 있니? 집에 온 거야?”
어머니였다.
할로우가 수호의 뒤로 숨으며 속삭였다.
“밖으로 나가자.”
돌아보니 그녀는 벌써 몸을 숨긴 뒤였다.
수호는 어머니에게 가서 장바구니를 받아들며 말했다.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려고?”
“그냥 바람 좀 쐬러요.”
“저녁 먹기 전에는 들어올 거지?”
“아마도요?”
집 밖으로 나오자 할로우가 스킬을 풀었다.
그녀가 수호 옆에 섰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온다고 했으니까.”
“진짜 정보국 직원?”
“그럼 진짜지. 내가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널 해치러 왔다면 이런 복잡한 짓 안 하고 진작 손을 썼을 거야.”
“흐흠.”
그녀의 말이 맞는다 치자.
그렇다면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너 같은 애가 어떻게 정보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건데?”
“뭐? 말조심해. 누가 애야?”
“애가 아니면 뭐, 어른인가? 고등학교도 못 들어갈 나이에 어떻게 공무원이 됐을까? 알았다. 이거 무슨 장난 같은 거지?”
“야!”
그녀가 또 소리를 쳤다.
“으으, 짜증 나! 왜 맨날 해명해야 하는 거야? 자, 봐!”
그녀는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수호의 코앞에다 들이밀었다.
손가락으로 이름과 주민번호 뒷자리를 가렸지만 다른 중요한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으음?”
수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녀의 얼굴 사진이 좌상단에 인쇄되어 있고 아래에는 생년월일이 표시되어 있는데,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건 물론이고 스무 살이 넘은 지도 한참이나 됐다.
“성, 성인?”
“그래, 누나라고 불러! 이 어린 노무 자슥아!”
“어…….”
뜻밖의 사실에, 수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다정… 하진 않은 오빠 동생 사이로만 보였다.
거리의 행인들을 다 붙잡고 물어봐도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였다.
‘혹시 변조한 신분증인가? 아니면 현대에도 반로환동이 있나?’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보다 보니 정말 할로우와 통화했던 사람이 등장했다.
검은 승용차가 두 사람 앞으로 미끄러지듯 접근해 왔다.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수호에게 말을 걸었다.
“진수호 군?”
“그런데요?”
“반가워요, 김삼환 과장입니다.”
다행히 이 사람은 40대 초반 정도?
할로우와는 달리 상식적인 나이대로 보였다.
다만 푸근한 아저씨 같은 외모라 정보기관과 어울리는 인상은 아니었는데, 과장이라는 건 좀 의외였다.
그 또한 배지를 슬쩍 꺼내 보여줬다.
“일단 타죠?”
할로우는 이미 조수석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
“흐음.”
이걸 타? 말어?
고민하던 수호는 결국 뒷좌석 문을 열었다.
자리에 앉자 김삼환이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룸미러로 뒤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막 나가는 캐릭터로 알고 있는데, 의외로 신중하네요?”
“막 나가요? 내가?”
“전해들은 것도 있고 내 생각에도 그렇긴 한 것 같고. 좀 무모한 스타일은 맞지 않아요?”
“사람들은 무모함과 대담성을 혼동하곤 하죠.”
“호오.”
김삼환이 눈을 빛냈다.
“어떤 차이가 있는데요?”
“통찰력의 차이죠.”
“이야, 심오하네요. 각성자들은 역시 뭔가 남다른 게 있단 말이죠? 나 고등학생 때 생각해 보면… 하여간 달라요.”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는 각성자가 아닌 듯했다.
김삼환이 또 물었다.
“할로우가 숨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저래 봬도 우리 팀 정예 요원인데.”
“그냥 감으로…….”
“허어, 이거 참. 난 할로우가 맘먹고 숨으면 절대 못 찾을걸요.”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봐요.”
“저 사람 진짜 성인 맞아요?”
이 질문에 할로우가 몸을 돌려 수호를 째려봤다.
김삼환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물론. 아무리 우리가 급하다고 해도 설마 미성년자를 요원으로 쓸까. 그냥 남들에 비해 성장기를 좀 빨리 건너뛰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게 뭐가 잘못됐어? 내가 그러고 싶어서 이렇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런 뜻은 아닌데… 음,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니, 미안해요.”
“그렇지.”
할 말이 없어진 수호는 입을 다물고 창밖을 내다봤다.
김삼환의 차가 멈춘 곳은 외딴곳에 위치한 어느 연구소 건물이었다.
정문의 녹색 명판에는 <한국해양연구소>라고 적혀 있었다.
차에서 내린 수호가 물었다.
“웬 연구소에요?”
김삼환이 대답했다.
“명색이 비밀정보국 아닙니까? 드러내 놓고 활동할 수는 없잖아요. 자, 들어가죠.”
수호가 머뭇거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독방에 가둬놓고 고문하려고 데려온 거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할로우가 끼어들었다.
“그럴 거면 진작 보쌈해 갔지.”
“음, 그런가…….”
연구소 내부는 하나도 연구소 같지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보이는 건 상황실이었다.
대형 LCD 모니터가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고, 그 앞으로는 콘솔 데스크가 줄지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자, 이쪽으로.”
김삼환은 수호를 취조실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수호와 마주 앉았다.
어째 좀 심문당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어때요? 와보니까 확실히 정보국 같죠?”
“네, 그러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죠?”
“우리를 못 믿는 거 같아서, 일단 신뢰를 주려는 게 있고. 아, 잠시만요.”
김삼환은 브리프 케이스에서 파일을 꺼냈다.
<1-C 진수호>라고 적혀 있는 파일.
김삼환이 페이지를 넘기자 빼곡히 적힌 진수호의 인적사항이 나왔다.
“이건 뭔데요?”
“우리가 하는 일이죠. 여기 이 스킬란. 이거 맞아요?”
수호는 파일을 읽어 봤다.
김삼환이 가리킨 부분에는 이런 게 적혀 있었다.

<패시브 스킬
-전투에 돌입하면 랭크가 두 단계 올라간다. 현재 C등급이나 실질적으로는 B-의 전투력을 보유했다.>

“이건 대체 어디서 알아낸 거죠?”
“말했잖아요? 이런 걸 알아내는 게 우리 일이라고. 아주 흥미로운 스킬 아닙니까?”
“네, 뭐…….”
“이 패시브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진수호 군은 알고 있어요?”
“가치라면,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꽤 있겠죠.”
“꽤 있다라. 아뇨, 그 이상입니다. 지금이야 C와 B-의 차이만 해도 엄청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1급 이상의 라이선스를 딴 현역 각성자들이 보기엔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하거든요.”
“그건 올챙이 적을 기억 못 하는 개구리 같은 거 아닌가요? 학교에선 한 등급 차이로 진학이냐 아니냐가 갈리고, 그거 때문에 꿈이 좌절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 난 뭘 폄하하려는 게 아닙니다. 진수호 군의 생각보다 훨씬 좋은 스킬이라는 거지. 자, 봐요. 각성자의 랭크는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올리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는 볼펜을 꺼내 빈 공간에다 타원형 곡선을 그렸다.
뭔지 모를 수치와 공식을 열거하던 그가 수호의 표정을 보고 볼펜을 내려놨다.
“이거 나 혼자만 신났네요. 아무튼 한 가지만 알면 됩니다. 진수호 군의 스킬은 앞으로 더 성장하면 할수록 빛을 발한다는 것이죠. 랭크만 놓고 보면 같은 두 단계 차이지만 C와 B-, B와 A-는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랭크업에 드는 노력, 능력 차이. 둘 다 말이죠.”
“뭐… 좋은 말씀 감사한데, 제가 덕담이나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죠?”
“아, 예. 그만큼 우리는 진수호 군을 높이 평가한다는 거고,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저희와 함께 해보는 건?”
“네?”
이건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 제안이었다.
수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요?”
“어떤?”
“함께 해보자는 말. 진짜 그러자는 건 아니죠?”
“아니, 맞습니다. 영입 제의라고 보시면 됩니다.”
“으음, 제가 지금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둘이나 있거든요.”
“말씀해 보세요.”
“일단 전 학생이고. 아직 1학년이니까 졸업도 한참 남았고요.”
“그리고요?”
“그리고 제 패시브 스킬. 좋게 봐주시는 거 같은데, 물론 좋죠. 좋지만 국가기관에서 관심을 보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보다 랭크 높고 스킬 좋은 애들은 쌔고 쌔지 않았나요?”
수호는 사실 의아한 정도를 넘어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삼환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것 같았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진수호 군이 하나 알아야 하는 게 있는데. 사실, 저희 기관은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어요.”
“그게 무슨……?”
“다들 공무원 못 돼서 안달인데 웬 인력난이냐,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러진 않는데요.”
“나쁘지 않은 근무여건에 정년 보장. 거기다 연금까지. 좋은 직장이긴 합니다. 나름 보람도 있고. 하지만 그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더군요. 각성자들은 고용 안정성, 노후대비, 이런 것들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연한 거겠지만.”
“으음.”
각성자 요원을 충원하기가 어렵다는 말인 건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더 말씀드리죠. 왜 하필 진수호 군이냐? 이거 보이세요?”
김삼환은 파일을 닫고 다시 한 장을 넘겨 첫 페이지를 펼쳤다.
맨 위에 큼지막하게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글자 크기는 한 20포인트 정도? 볼드체라 더 잘 보였다.
“프로젝트명, 될성부른 떡잎?”
“그 떡잎이 여기 있네요.”
그가 진수호를 흘끗 바라봤다.
“졸업시즌이 되면 여기저기서 라이선스를 딴 학생들을 채가기 시작합니다. 우선권이 있는 건 협회 쪽이죠. 차순위가 메이저 길드들. 그 다음은 어디일 것 같습니까?”
“여기요?”
“아뇨, 그보다 규모가 약간 작은 길드들이죠. 그래도 마이너한 길드보단 정부 기관이 낫겠다 싶었는지 저희가 4지망 정도는 되지만, 요즘은 각성자들이 또 대기업이나 다른 업계로도 진출을 많이 해서요. 우린 점점 우선순위가 밀리는 상황입니다.”
“그런 걸 말해주셔도 되나요?”
“뭐 어때요, 비밀도 아닌데. 거짓말로 구슬릴 생각은 없습니다. 나중 되면 다 알게 되는 거니까요.”
“흐음, 아무튼 그래서 2년 전부터 밑작업을 해둔다는 거군요? 저 같은 애들한테.”
“뭐, 남들보다 두 발짝 빠르게 움직이는 거죠. 그렇게라도 해야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얘기를 좀 듣다 보니 이들이 왜 자기한테 접근한 건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