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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먼저 와 계셨네요.”
“오랜만입니다, 전 요원님.”
두 사람은 이전부터 면식이 있는 듯했다.
“이게 얼마 만이죠? 2년? 3년?”
“3년 다 돼갑니다. 학교로 옮긴 다음부터는 통 못 뵈었으니.”
둘은 악수를 나눴다.
“인사드려. 던전 관리부 김 팀장님이셔.”
수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김 팀장은 수호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아주 패기 넘치는 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1학년이 협회까지 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아,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아, 네.”
세 사람은 회의용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전대환이 김 팀장에게 물었다.
“한 분이 안 계신데, 그분은 늦으십니까?”
“그게…….”
김 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자리는 수호 학생에게 책임을 묻자는 게 아니라, 좋게 풀려고 만들어진 겁니다만… 조금 전에 신원혁 씨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사과를 못 받겠다고 하네요.”
신원혁은 수호에게 자르쿰 보스를 뺏긴 각성자였다.
보스의 리스폰 시간은 일반 마물의 몇 배, 많게는 수십 배다.
잡을 능력이 된다 해도 아무 때나 사냥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운이 나쁘면 던전에 몇 번을 들어가도 보스는 구경도 못 해보고 나오는 수가 있었다.
해서 이를 조정해 주는 게 던전 관리부의 역할 중 하나.
그런데 수호가 여기 끼어들어 한 명을 붕 뜨게 만든 거였다.
“사실 한 번 건너뛴 걸로 하고, 다음 차례를 신원혁 씨에게 주면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러면 협회 측에서는 학교에 책임을 물을 테고, 다른 방면으로 일이 복잡해졌겠지만. 아무튼 신원혁 씨가 사과만 받으면 보스는 자기가 잡은 걸로 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모인 건데, 좀 난감하네요.”
“이유가 뭐랍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분명 얘기가 잘 되고 있었는데 벌컥 화를 내면서 끊던데요.”
김 팀장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괜히 헛걸음만 하시게 됐네요. 이를 어쩌나…….”
“흐음.”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불참해 버려서 정말 의미 없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먼저 일어난 사람은 김 팀장이었다.
“제가 업무가 밀려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거든요.”
“아, 그러시죠.”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수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김 팀장이 수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 또 봐요. 아, 이건 악담인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보지 않는 걸로 합시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저기, 잠시만요.”
수호가 김 팀장을 불렀다.
“네?”
“어쨌든 사과를 하고 그쪽에서 받아주면 된다는 거잖아요. 찾아가서 만나볼 순 없을까요?”
“싫다고 안 나온 사람한테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요. 성의를 보고 기분을 풀 수도 있는 거구요.”
“흐흠, 일리는 있군요. 아까 통화했을 땐 자택이라고 하던데, 한 번 방문해 보는 것도? 집 주소 정도는 알려드리죠.”
수호가 전대환을 바라봤다.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뭐, 팀장님도 괜찮다고 하시니 시도해볼 만은 하지.”

* * *

신원혁이 사는 곳은 서울 외곽의 원룸촌이었다.
복도로 들어가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기숙사 같군.’
402호 앞.
전대환이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신원혁 씨 계십니까?”
삐걱하고 문이 열렸다.
“전데요.”
신원혁은 장발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20대 남자였다.
“제가 신원혁인데 누구시죠?”
그가 두 사람을 훑어봤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자와 새파랗게 어린 학생.
좀체 짐작이 안 되는 조합이다.
전대환이 명함을 내밀었다.
“김 팀장님께 얘기는 들으셨죠? 오늘 만나기로 했던…….”
그 말에, 신원혁의 표정이 싹 변했다.
“근데 뭐? 왜 집까지 찾아오고 지랄이지? 사과 받을 생각 없으니까 돌아가.”
“아니, 그러지 마시고.”
쾅!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신원혁이 문을 닫아버렸다.
전대환이 수호를 바라봤다.
“성의를 봐주질 않는데?”
“왠지 느낌이… 화가 난 거 같던데요, 뭔가에.”
“그게 뭔지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 당연히 누구라도 화나겠지. 이제 가자. 더 두드린다고 나올 거 같지도 않고.”
“아뇨, 전 여기 있을래요.”
“왜?”
“제대로 얘기도 안 해봤잖아요. 시간도 많은데 화 풀릴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게 낫지 않아요?”
“뻗치기를 하자고? 네가 뭔 탐사보도 기자야? 아니면 부모님 원수를 갚아야 하는 무술인이라도 되냐? 아예 무릎 꿇고 빌어보지 그래? 그러면 진짜 마음이 움직일지도 모르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수호의 결심이 굳은 것을 보고 전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네 마음대로 해라.”
그는 혼자 가 버렸다.
그런 줄 알았는데, 곧 다시 돌아왔다.
“가신 거 아니었어요?”
“널 놔두고 가긴 어딜 가. 또 다시 사고라도 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면서 전대환이 노란 박스를 내밀었다.
“깔고 앉아.”
왜 나갔나 했더니 이걸 주우러 간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박스 위에 앉아 농성을 시작했다.
세 시간 뒤.
편의점에 가려고 나온 신원혁은 밖에 앉은 둘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거기서 뭐 하는 겁니까?”
수호가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대화 좀 했으면 해서요.”
“글쎄, 난 생각 없다니까.”
그는 두 사람을 거지 보듯 흘겨보며 지나쳐 갔다.
그런데 다시 원룸으로 돌아왔을 때는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그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대화가 하고 싶어? 그럼 들어와.”
신원혁이 문 안쪽을 가리켰다.
그의 집은 집이라기보다는 방에 더 가까웠다.
침대와 책상을 빼면 여유 공간이 거의 없는 좁은 방과 딸린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그런 공간.
거기에 남자 셋이 둘러앉으니 극도로 비좁았다.
어쩔 수 없이 신원혁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밖에서 그러고 있는 게 딱해서 전향적으로 생각해 줬으니까 용건만 말하고 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일단 사과드려도 될까요?”
“아니, 그딴 거 하지 마. 그러라고 방에 들인 거 아니니까.”
“으음, 그럼 이거요. 갑자기 약속을 취소한 이유가 뭐죠? 원래는 만날 용의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뭐가 달라졌길래 입장이 바뀐 거예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제 조인아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는,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려서 당사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 정도만 하면 다른 조치 없이 끝날 거라고 들었다.
그런데 대체 그 사이에 바뀐 게 뭐길래?
그걸 알고 싶었다.
“뭐가 달라졌냐고? 말해줘?”
신원혁은 책상 위로 손을 뻗었다.
가져와서 수호의 면전에다 내미는 건 그의 각성자 라이선스였다.
“봐. 뭐라고 적혀 있지?”
“회원증, 신원혁, 한국각성자협회. 이게 왜요?”
“그 위에 쓰여 있는 거, 2급 라이선스. 이건 안 보여?”
“2급이 뭐가 어때서요?”
“이봐, 하나도 모르잖아. 하긴 알 리가 없지. 내가 이래서 너 같은 애들을 싫어하는 거야!”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신원혁이 갑자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엘리트 코스 밟는 놈이 2급의 서러움을 알기나 하겠어? 내주는 던전은 남들이 먹다 버린 거밖에 없지, 그럴 거면 고용 보장이라도 해주든가. 근데 좋은 자리는 1급한테만 돌아가잖아! 그러면서 꼴에 각성자랍시고 온갖 관리, 간섭은 다 받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2급이면 좋은 거 아니에요? 그것도 못 따는 각성자들이 수두룩한데. 그리고, 내가 왜 엘리트 코스인데요?”
그 말에, 신원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지금 나 놀려?”
“놀리기는요.”
수호가 의아해하자 전대환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2급은 좋은 게 아니야. 애매하게 졸업한 각성자들이 주로 따는 급이라서.”
이 말을 또 신원혁이 들었다.
“그래, 나 1급 못 땄다! 못 따서 인생 조졌다! 평생 2급 딱지 붙었고 그래서 고딩한테도 보스 뺏기고 다닌다. 어쩔래?”
결국 폭발.
신원혁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야, 자극하지 마!’
‘선생님이 한 거잖아요.’
‘어떻게 좀 해봐.’
하는 수 없이 수호가 입을 열었다.
“저기, 라이선스에 대해선 죄송해요. 진짜 몰랐던 거라. 졸업은 아직 먼 얘기거든요.”
“흥, 이미 1급은 따놨다 이거지? 이래서 엘리트들이 싫다니까!”
“아까부터 자꾸 엘리트, 엘리트 하는데 저 C반이고 랭크 C-였는데요? 지금은 C지만… 진학은 안정권이긴 해도 졸업부터가 확실한 게 아닌데, 그게 왜 엘리트에요?”
“뭐?”
신원혁은 혼란스러워했다.
“그, 그럼 말이 안 되잖아. 김 팀장 말로는 보스 잡은 거, 너 혼자서 한 일이라던데. 그 랭크에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잠깐, 혹시 그래서 사과 안 받기로 한 거에요?”
“그래!”
신원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처음에 나 같은 처지, 졸업만 겨우 하고 나처럼 될 게 뻔한 애들, 그런 친구들이 실수한 거라고 생각해서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니까 그게 아니네? 1학년이 혼자 자르쿰 던전을 박살 낼 정도면 어지간히 못 크지 않고선 다 1급은 따지. 근데 내가 왜 그런 애를 신경 써 줘야 하지? 졸업하면 나 따위는 개무시하고 다닐 놈인데?”
“그러니까 전 그런 애들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이제 괜찮은 거죠?”
“아니!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랭크 측정기라도 가지고 와서 제대로 확인시켜 주면 또 모를까.”
“그렇게 할까요?”
“어… 아니! 랭크 C가 맞다 쳐도 너 혼자 그 던전을 깬 건 사실 아니냐?”
“그렇긴 하죠.”
“랭크가 딸리는데도 그게 되면 능력이 얼마나 사기라는 거야? 너도 똑같아.”
“사기까지는 아닌데.”
“됐고. 더 듣기 싫으니까 돌아가. 난 또 상큼한 여고생이라도 만나나 했는데, 뭐 이런 시커먼 놈이나 오고. 기분만 잡쳤네.”
신원혁이 나가라는 듯 문을 가리켰다.
표정은 무척 단호했다.
그가 생각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았다.
“가자, 수호야.”
전대환은 포기하고 먼저 일어났다.
하지만 수호는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뭐해? 가자니까?”
억지로 세우자 겨우 일어나는 수호였다.
원룸 앞.
전대환이 수호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어떡하냐, 잘 안 돼서?”
“…….”
“그래도 뭐, 퇴학이야 당하겠어? 이미 정학 처분도 받았고 학년부장님도 최대한 커버해 주시려는 거 같으니까, 잘 풀릴 거야.”
위로의 말을 건네 보지만 수호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네가 그러니까 나까지 기분이 좀 그러네.”
“걱정하는 게 아닌데요.”
“뭐? 그럼…….”
“한 가지 수가 있긴 한데 이게 맞는 건가 싶어서요.”
“방법이 있으면 써봐야지. 대체 뭐길래?”
수호가 말을 해주자 전대환도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그,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넌 뭐 그런 이상한 발상을 다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