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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수호가 말을 마치자 두 사람 다 놀라는 표정.
특히 조인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짝!
수호의 얼굴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가 일어서더니 시원하게 따귀를 후려갈긴 것이다.
“이러면 랭크가 올라간다는 거지?”
조인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녀는 다시 랭크 측정기를 내밀어 수호의 말이 맞나 확인하려고 했다.
“이게 그렇게 간단히 되는 게 아닌데요. 전투 상황, 그것도 위기감을 느낄 정도가 돼야 발동하는 패시브인데, 뺨 맞았다고 그게 되면…….”
“그래? 그럼.”
쉬이익!
이번에는 그녀의 발, 그것도 날카로운 하이힐 굽이 날아왔다.
자리에 앉는가 싶더니 책상을 짚고 넘어와 킥을 꽂은 것이다.
바퀴 달린 의자라 다행이었다.
수호는 발로 책상을 걷어차면서 뒤로 쭉 물러났다.
어찌어찌 피해냈지만 조인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연이어 미들킥을 날려댔다.
이건 막아내는 입장에서는 하이킥이나 마찬가지였다.
타이트한 오피스룩 차림인데도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수호는 팔을 들어 얼굴을 보호하면서 소리쳤다.
“뭐하는 거예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지.”
조인아는 진심인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내력을 끌어올려 그녀와 합을 나눴다.
위기 상황에서 랭크가 두 단계나 올라가는 패시브 스킬이 있다고 거짓 고백을 한 게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B-처럼 보이면 된다 이건데.’
문제는 현재의 무위가 랭크로 치면 어느 급에 해당하는지를 모른다는 거였다.
전력을 다해야 B-급이 되는지, 그래도 거기에 못 미치는지, 아니면 이를 웃도는 수준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수호는 내력을 아끼지 않고 쏟아 부었다.
그렇게 몇 합을 이어가자 조인아가 손을 거뒀다.
“그만하면 된 것 같은데?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아셨으니 다행이지만, 좀 당황스럽네요.”
두 사람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인아가 물었다.
“그 패시브는 2차 각성이 되면서 생긴 거지?”
“그렇죠, 그 전엔 없었으니까.”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항상 서푼의 힘은 감춘다는 말도 있고.”
전대환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말이 있었던가?”
“인터넷에서 봤어요.”
“자!”
조인아가 양손으로 책상을 쳤다.
“이쯤이면 수호 얘기는 다 들어본 것 같고. 잠깐 나가 있을래?”
수호가 밖으로 나가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뭘 말씀입니까?”
“뭐에 대해서 묻는 거겠어요? 어떤 처분을 내리는 게 맞을지 하는 거죠.”
“글쎄요, 전…….”
“딱히 의견이 없나요? 난 3일 정학 정도로 끝내고 싶거든요. 이견 없으면 그렇게 가요?”
“예? 그건 너무 가벼운 거 아닙니까? 그리고 아까는 퇴학도 고려하신다고…….”
“그건 수호가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인 줄 알았을 때 얘기였죠. 선생님이라면 B-를 그렇게 간단히 내쫓겠어요?”
“그러진 않겠지만…….”
“그리고 그 패시브. 그건 대단한 재능이에요. 지금이야 C를 B-로 올려주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만약 A급으로 성장한다면?”
“두 단계 위니까 S-.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요.”
“그리고 그 이상도 생각해볼 수 있죠. 그런 학생을 이 정도 일로 내치는 건 직무유기 아닌가요?”
전대환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하지만 협회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해요.”
조인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평소의 차가운 얼굴로 돌아왔다.
“수호의 능력에 관해서는,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걸로 하죠.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네, 물론.”
“아, 그리고 한 가지 해주실 게 있어요.”

* * *

어두운 지하 주차장 안.
양철호는 차에 기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화면에 떠 있는 건 조상혁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야, 큰일 났다. 그 어린 쉐리가 길드를 끌어들인 모양이던데.]
[뭔 소리야?]
[우리 지금 수배됐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만나서 대책을 논의하자.]

양철호는 문자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렇게 10여 분이 흘렀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조상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 참.”
양철호는 어이없어하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이잉, 지이이잉.
아무도 없는 조용한 주차장.
입구 쪽에서 진동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양철호는 왜 이제 오냐며 짜증을 냈다.
“불러낸 놈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맞는 거 아니냐? 넌 대체 언제 개념이라는 게 생길 예정이냐?”
그러면서 뒤를 돌아봤는데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재킷에 선글라스.
손에는 가죽 장갑을 끼고 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냄새가 나는 놈이었다.
그리고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엿 됐다.’
생각과 동시에.
양철호는 몸을 날렸다.
검은 재킷은 보닛을 뛰어넘어 바로 따라붙어 왔다.
주차된 차들 사이로 들어간 양철호는 범퍼 뒤로 몸을 숨겼다.
“거기서 뭐 하나?”
검은 재킷은 양철호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그가 숨은 차 앞으로 왔다.
척!
팔을 내리자 양 소매에서 카람빗이 튀어나왔다.
날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특이한 형태의 단검.
그걸 양손에 쥐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죽어!”
양철호가 갑자기 튀어나오면서 양팔을 뻗었다.
피융!
두 가닥의 푸른 광선이 검은 재킷에게로 날아갔다.
반응하고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됐어!’
일단 맞추기만 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게 이 스킬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만족한 웃음은 오래지 않아 일그러진 표정으로 변했다.
시야에서 검은 재킷이 사라진 것이다.
더 안 좋은 건 바닥에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는 거였다.
‘설마……. 놈은 어디 있지?’
양철호는 차체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혹시나 싶어 좌우 사방을 살폈는데도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고개를 쳐드는 순간.
“……!”
검은 잔상이 차를 뛰어넘어 공중에서 그를 덮쳐왔다.
스걱!
카람빗이 양철호의 경동맥을 끊고 지나갔다.
“어, 어……?”
목을 만져보니 피가 묻어나온다.
보통 사람 같으면 패닉에 빠져 허둥대다 죽었겠지만 그는 각성자이고 또 프로였다.
양철호는 침착하게 상처를 압박하면서 협상을 시도하려 했다.
“사, 살려줘. 구, 궁금한 거 다 알려줄 테니까.”
“안타깝게도 이미 알 건 다 알아서.”
검은 재킷은 별 관심 없다는 듯 재차 카람빗을 휘둘렀다.
“죽었군.”
그는 양철호의 몸을 뒤져 자동차 키를 꺼냈다.
트렁크에 시체를 집어넣고 주변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그도 프로인 건 확실해 보였다.
양철호의 차가 현장을 떠나자 지하 주차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요 속에 잠겼다.

* * *

주택가 골목길.
동네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외제차 한 대가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에 정차해 있었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전대환.
그가 여기서 대기하고 있는 이유는…….
“안녕하세요.”
수호가 조수석으로 들어왔다.
전대환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맞았다.
“어, 어서 와. 이틀만인가?”
“그렇죠? 내일까지 정학이니까.”
“일단 출발부터 하자. 계속 있다간 신고 당할라.”
“그러세요.”
전대환이 운전대를 잡았다.
골목을 빠져나가 도로에 들어서자 그가 말을 걸어왔다.
“학교 안 나오니까 어때? 간만에 자유를 만끽하니까 좋지?”
“지루하던데요, 할 게 없어서. 그리고 정학 풀렸던 게 겨우 며칠 전이니까 간만도 아니죠.”
“아, 그렇지. 부모님께선 뭐라 하시니? 화 많이 내시던?”
“아들이 연속으로 정학당하고 들어오는 걸 좋아하실 리는 없죠. 그래도 다른 좋은 소식이 있어서 어느 정도 상쇄가 되더라구요.”
“좋은 소식? 아, 랭크업?”
두 사람은 이동하면서 계속 대화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평범 그 자체였다.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얘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에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흘렀다.
양철호가 말했던 내부자의 존재.
수호는 그가 전대환일 거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당시 던전에서 그의 반응은 부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추가로, 새로 알아낸 사실도 있었다.
영석의 말에 의하면 전대환은 작년에도 1-C반을 맡았다는 것이었다.
‘윤상호 랭크가 딱 그 정도지.’
그러한 이유로 수호는 확신을 하지만 전대환은 이쪽에서 그를 의심하는지, 아니면 전혀 모르고 있는지 긴가민가할 터였다.
해서 이 대화 전부가 탐색전 같고, 던지는 말마다 뼈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차는 어느새 서울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빌딩 숲이 펼쳐졌다.
벌써 몇 번째 보는 거지만 볼 때마다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협회가 여기 있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돈도 많네.”
전대환이 피식 웃었다.
“많은 정도가 아니지.”
그가 왜 웃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차가 멈춰선 곳은 도심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 앞이었다.
“여기에요? 설마 이 전체가 다?”
“그래.”
사방이 유리벽으로 덮인 초대형 빌딩.
멀리서도 눈에 확 띄어서 뭐 하는 곳일까 했는데 그게 협회 소유였던 것이다.
아직 세상 물정에 밝지는 않지만 서울 중심가에 이런 건물을 세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안다.
수호가 감상을 말했다.
“엄청나네요.”
“어지간한 대기업 본사도 부럽지 않을 규모지. 보안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삼엄하고.”
그런데 전대환은 그 삼엄한 보안에서 자유로운 듯했다.
그가 방문증을 받아 와서 수호에게 건넸다.
“자, 목에 걸고 있어.”
두 사람은 문제없이 출입구를 통과했다.
안으로 들어오자 전대환이 물었다.
“어때? 각성자 협회에 온 소감이.”
진수호였다면 흥분해서 정신을 못 차렸을 테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그 정도 대사건은 아니었다.
“그냥 일반 회사처럼 보이는데요.”
“야, 여기까진 다 똑같지. 그럼 뭐 마물이라도 있을 줄 알았어?”
“그건… 그러네요.”
“아무튼 여긴 특별한 곳이야. 발에 차이는 게 각성자인, 국내에 몇 없는 장소니까. 그만큼 각성자들을 위한 시설도 잘 돼 있고. 어때, 구경 좀 해볼래?”
“그래도 돼요?”
“글쎄, 시간이…….”
전대환이 시계를 봤다.
“좀 있긴 하다.”
“그럼 뭐,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요.”
수호는 전대환을 따라 협회 투어를 했다.
30분쯤 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얼추 봐야 할 건 다 본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거 있었어?”
“각성자 전용 훈련장이요. 그리고 휴식 시설. 아, 메디컬 센터도. 학교하고는 급이 다르던데요. 물론 학교 시설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급이 다를 수밖에 없지. 여기가 프로팀이면 학교는 유스 시스템에 불과한 건데. 뭐, 좋은 건 맞아. 그래서 다들 라이선스를 따려고 하는 거고. 각성자라도 라이선스가 없으면 이용을 못 하거든.”
“흐음.”
“아, 시간 됐네. 슬슬 가보자.”
약속 장소는 3층의 미팅룸이었다.
안에서는 뿔테 안경을 낀 남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