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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아니.”
조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뭐가 아니라는……? 일 안 할 거야?”
“이렇게 되면 못하지. 의뢰 조건은 이게 아니잖아. 양철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
두 사람은 모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윤상현은 어이없어하며 소리를 쳤다.
“조건이 이게 아니긴! 처음부터 진수호 족쳐 달라는 거였잖아! 쟤가 진수호라니까?”
“진수혼지 김수혼지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받은 의뢰는 C-급, 그것도 갓 C-가 된 애송이를 손봐주는 일이거든? 근데 저게 어딜 봐서 C-지?”
양철호도 이에 동조했다.
“여기가 고레벨 던전은 아니지만, 단독으로 와서 보스까지 잡았다? 그건 C-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사실 내가 도전해도 이게 될지 확신을 못 하겠는데. 너도 그렇지 않나?”
“난 당연히 되지.”
이에 윤상현이 분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우리가 수도 더 많아. 그리고 쟤는 보스 잡느라 에너지도 다 썼을 거라고. 솔직히 쉬운 일 아냐?”
“그렇게 쉬우면 직접 하든가.”
“이, 이익!”
조상혁이 윤상현에게서 등을 돌렸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거에는 철저하거든. 앞뒤가 다른 의뢰는 하지 않는다는 철칙. 어때, 프로페셔널 하지?”
“멋있다, 짝짝.”
양철호가 손뼉을 쳤다.
아까는 앙숙처럼 으르렁대더니 공동의 이익 앞에선 십년지기 친구처럼 죽이 맞았다.
윤상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돈 더 줄게. 오백씩.”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조상혁이 다가와 수호의 앞을 막았다.
“이봐, 후배님. 너한테 별다른 악감정은 없어. 근데 일은 일이니까. 내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겠지?”
그는 상박까지 다 드러나는 탱크 탑 하나만 덜렁 걸친 차림이었다.
“하압!”
힘을 주자 양팔이 눈에 띄게 굵어졌다.
또한 어깨 부근까지 묵빛으로 물들어 누가 봐도 스킬을 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흐아아압!”
쉬리리릭!
철퇴처럼 부풀어 오른 주먹이 코앞으로 날아왔다.
수호 또한 주먹을 뻗었다.
깡!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은 것이었다.
“크아아악!”
주먹을 감싸 쥐고 주저앉은 사람.
그는 다름 아닌 조상혁이었다.
“이런 미친!”
양철호가 도우러 왔다.
그가 오른손을 뻗자 장심에서 레이저 빔 같은 게 튀어나왔다.
푸른빛이 수호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왔다.
“헛!”
수호는 다리를 땅에 붙인 채, 황급히 상체를 뒤로 팍 눕혔다.
웬 림보 게임?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엄연히 철판교라는 명칭이 있는 근본 있는 수법이었다.
파사삭!
뒤로 지나간 청광이 동굴 벽에 닿자 흙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뭐야, 살인 광선인가?’
“치잇.”
양철호는 아쉬워하며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두 줄기의 광선이 쏘아져 나갔다.
챙! 챙!
‘챙?’
양철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곧, 눈도 의심해야 했다.
‘미친!’
쉬이이익!
수호가 검을 휘둘러 광선을 쳐내자 두 줄기 청광이 양철호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으아아아!”
자기 스킬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저기에 격중 되면 구멍이 두 개나 생긴다.
광선이 들어가는 구멍과 나오면서 생기는 구멍.
양철호는 납작 몸을 엎드렸다.
다행히 광선이 비껴갔는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씨이.’
잘 피했음에도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마빡이 근질거려 오고 간은 콩알만 해졌다.
‘음?’
잠시 아무 일도 없기에 슬며시 고개를 들었더니 신발 밑창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역시나.’
퍽!
양철호의 고개가 다시 떨구어졌다.
수호는 수혈을 짚어 그를 무력화시켰다.
‘이걸로 끝인가?’
그건 아니었다.
“으아아아!”
조상혁이 탈골된 오른팔을 덜렁거리며 달려들어 왔다.
그의 왼 주먹이 수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텅.
“어, 어?”
머리통이 깨지는 경쾌한 소리가 날 줄로 기대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던 참이었다.
그런데 무슨 드럼통을 친 듯 손맛이 찝찝했다.
“미, 미친…….”
조상혁은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수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뒤돌아본 것이다.
“좀 띵한데?”
“이, 이건 사기야!”
“아까 그랬지? 나한테 악감정 없다고. 그런데 어쩌나, 난 그게 생겨버렸는데.”
휘익!
수호는 내력을 끌어올리고 조상혁의 앞으로 파고 들어갔다.
“커, 커억!”
조상혁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수호는 그를 몇 번 더 밟다가 윤상현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
동굴을 둘러봤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수호는 경공을 사용해 빠르게 통로를 빠져나왔다.
벼랑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끙끙거리며 돌벽을 내려가는 윤상현의 모습이 보였다.
“게 섯거라.”
실실 웃으면서 따라 내려가는데 윤상현과는 달리 수호는 너무 쉽게, 막힘없이 척척 돌벽을 탄다.
위쪽 돌출부에서 아래쪽 돌출부로, 건너뛸 때마다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윤상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씨발, 이게 말이 돼?”
이대로 가다간 곧 잡힐 판이다.
윤상현은 밑을 봤다.
“……!”
까마득한 높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윤상현은 이를 꽉 깨물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보니 수호가 바로 머리 위까지 따라와 있었다.
“쓰으으읍!”
윤상현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돌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어?”
수호는 동작을 멈추고 그가 추락하는 걸 지켜봤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이 높이는 좀 위험한데?”
하지만 윤상현도 나름 계산을 하고 몸을 던졌던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 그가 아래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윤상현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염동력으로 땅을 밀어내 어떻게든 충격량을 줄이려는 것.
결과는?
철퍼덕!
스킬을 써도 중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윤상현은 볼썽사나운 자세로 바닥에 처박혔다.
“으으…….”
수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다리부터 떨어진 걸로 봐선 털고 일어나기는 어려울 듯했다.
‘느긋하게 내려가도 되겠군.’
발밑을 살피며 안전하게 암벽을 타던 중,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크르르룸.”
“크움! 크우우움!”
윤상현을 발견한 늪 자르쿰들이 돌벽 아래로 모여들고 있었다.
“미친 마물 새끼들! 저리 꺼져!”
윤상현은 염동력으로 놈들을 밀어내려 했지만, 여기는 D+급 스킬로 감당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었다.
퍽!
접근해온 늪 자르쿰이 윤상현의 다리를 내리쳤다.
“크아아악!”
“이런!”
수호의 동작이 다시 빨라졌다.
* * *
“으, 으음…….”
양철호는 문득 의식이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직 동굴 안이었다.
“그래도 살아는 있군.”
그리고 팔다리도 다 멀쩡히 붙어 있다.
기절한 동안 큰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긴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가. 그런데 아까 그놈은 어디 있지?’
일어나서 상황을 살피려는데 뭔가가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악!”
“날 찾나?”
놈의 목소리다.
양철호는 기겁하며 수호를 뿌리치려 했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양팔이 굳어버린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있어, 나만 할 수 있는 거.”
“무, 무슨 스킬이지?”
“이게 스킬?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점혈이라는 건데 기, 아니 에너지로 혈도를 막는 기술이지.”
“……?”
“원리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고. 이거 하나만 알면 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 양팔을 영영 못 쓰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
“뭐, 뭣?”
수호는 양철호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평생 불구로 살고 싶지 않으면 성실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야, 아… 진수호랬나? 일단 좀 진정하고. 괜히 직업윤리 발동해서 일에 목숨 걸고 그러는 캐릭터 아냐, 나. 이게 그럴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니고. 이런 일에 새끼손가락도 걸 생각이 없다고.”
“그럼 사실대로 말해. 당신들 둘, 윤상현하고는 어떤 관계지?”
“아무,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나도 오늘 처음 봤고.”
“정말인가?”
“아, 아무 사이도 아닌 것까지는 아니구나. 그냥 일적인 관계. 의뢰인과 솔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 그게 더 맞겠다.”
“솔저?”
수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저 몰라? 하긴 그 나이 대에는 수호자에만 관심이 있나? 뭐냐면… 직업 용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난 돈을 받았고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주러 여기 온 거지.”
“그 돈은 누가 지불했지?”
“아까 걔 형이. 사이트에서 우릴 찾아낸 것도 형이고. 사실 형제인지 아닌지는 긴가민가한데, 둘 다 싸가지 밥 말아 먹은 게 집안 내력 같거든. 아마 맞을 거야.”
“흐흠.”
수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철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오늘이 실습날이라는 건 알고 온 건가?”
“당연히 알고 왔지. 영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페이가 워낙 세서 말이야.”
“얼마나 받았길래?”
“두당 천씩.”
“그건 지나치게 많은데?”
수호의 금전 감각은 아직 현대인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상식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는 액수였다.
“의뢰 난이도에 비해 많은 건 맞아. 아니, 그런 줄 알았지.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근데 리스크가 너무 커서 이 금액 아니면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을 거다. 협회를 건드렸다가 잘못된다? 그 순간 이 바닥에서 매장이니까.”
“실습 장소가 여기라는 건 어떻게 알아냈지? 던전 위치는 또 어떻게 알았고.”
“아, 그거? 내부자가 있는 모양이던데? 그 친구, 오는 내내 누군가하고 연락을 주고받더라고. 던전에 들어와서는 무전기로 또 통화하고. 덕분에 여기까지 쉽게 따라왔지.”
“그렇군.”
“이제 스킬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 아는 건 다 말한 거 같거든? 팔은, 아직 살릴 수 있는 거 맞지?”
“충분히. 그러니까 입 다물고 있어 줄래? 생각 좀 하게.”
“아, 알았어.”
잠시 침묵.
수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얼추 들어맞는 거 같긴 한데,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게 있다. 관계자를 매수하고 용병을 고용한다라. 일개 고등학생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해?”
“금수저면 가능하지. 우린 돈만 받으면 뭔 일이든 하는 그런 놈들이라서. 또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각성자는 각성자니까. 일개 고등학생이라 하기엔 좀.”
“그런가?”
이 정도면 대답은 충분히 들은 것 같았다.
수호는 양철호와 마주 보고 섰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양철호는 연신 자기 입술을 핥았다.
“이, 이제 어쩔 거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일이 생각대로 풀렸다면 난 죽은 목숨이었나?”
중요한 질문이었다.
대답이 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어…….”
양철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죽, 죽일 생각까지는 없는 거 같았어. 그냥 몇 군데 부러뜨리는 정도?”
“흐음,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군. 그래, 뭐 발가락으로 수저 뜨면서 살든가.”
거짓말도 통할 수준으로 쳐야지, 고작 그 정도 복수를 하려고 이런 판을 짤 리가 없다.
수호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자 양철호가 펄쩍 뛰어올랐다.
“잠깐, 잠깐만! 사실대로 말할게! 근데 죽이려고 한 게 아닌 건 진짜 맞다고!”
“아니.”
조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뭐가 아니라는……? 일 안 할 거야?”
“이렇게 되면 못하지. 의뢰 조건은 이게 아니잖아. 양철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
두 사람은 모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윤상현은 어이없어하며 소리를 쳤다.
“조건이 이게 아니긴! 처음부터 진수호 족쳐 달라는 거였잖아! 쟤가 진수호라니까?”
“진수혼지 김수혼지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받은 의뢰는 C-급, 그것도 갓 C-가 된 애송이를 손봐주는 일이거든? 근데 저게 어딜 봐서 C-지?”
양철호도 이에 동조했다.
“여기가 고레벨 던전은 아니지만, 단독으로 와서 보스까지 잡았다? 그건 C-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사실 내가 도전해도 이게 될지 확신을 못 하겠는데. 너도 그렇지 않나?”
“난 당연히 되지.”
이에 윤상현이 분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우리가 수도 더 많아. 그리고 쟤는 보스 잡느라 에너지도 다 썼을 거라고. 솔직히 쉬운 일 아냐?”
“그렇게 쉬우면 직접 하든가.”
“이, 이익!”
조상혁이 윤상현에게서 등을 돌렸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거에는 철저하거든. 앞뒤가 다른 의뢰는 하지 않는다는 철칙. 어때, 프로페셔널 하지?”
“멋있다, 짝짝.”
양철호가 손뼉을 쳤다.
아까는 앙숙처럼 으르렁대더니 공동의 이익 앞에선 십년지기 친구처럼 죽이 맞았다.
윤상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돈 더 줄게. 오백씩.”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조상혁이 다가와 수호의 앞을 막았다.
“이봐, 후배님. 너한테 별다른 악감정은 없어. 근데 일은 일이니까. 내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겠지?”
그는 상박까지 다 드러나는 탱크 탑 하나만 덜렁 걸친 차림이었다.
“하압!”
힘을 주자 양팔이 눈에 띄게 굵어졌다.
또한 어깨 부근까지 묵빛으로 물들어 누가 봐도 스킬을 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흐아아압!”
쉬리리릭!
철퇴처럼 부풀어 오른 주먹이 코앞으로 날아왔다.
수호 또한 주먹을 뻗었다.
깡!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은 것이었다.
“크아아악!”
주먹을 감싸 쥐고 주저앉은 사람.
그는 다름 아닌 조상혁이었다.
“이런 미친!”
양철호가 도우러 왔다.
그가 오른손을 뻗자 장심에서 레이저 빔 같은 게 튀어나왔다.
푸른빛이 수호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왔다.
“헛!”
수호는 다리를 땅에 붙인 채, 황급히 상체를 뒤로 팍 눕혔다.
웬 림보 게임?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엄연히 철판교라는 명칭이 있는 근본 있는 수법이었다.
파사삭!
뒤로 지나간 청광이 동굴 벽에 닿자 흙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뭐야, 살인 광선인가?’
“치잇.”
양철호는 아쉬워하며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두 줄기의 광선이 쏘아져 나갔다.
챙! 챙!
‘챙?’
양철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곧, 눈도 의심해야 했다.
‘미친!’
쉬이이익!
수호가 검을 휘둘러 광선을 쳐내자 두 줄기 청광이 양철호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으아아아!”
자기 스킬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저기에 격중 되면 구멍이 두 개나 생긴다.
광선이 들어가는 구멍과 나오면서 생기는 구멍.
양철호는 납작 몸을 엎드렸다.
다행히 광선이 비껴갔는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씨이.’
잘 피했음에도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마빡이 근질거려 오고 간은 콩알만 해졌다.
‘음?’
잠시 아무 일도 없기에 슬며시 고개를 들었더니 신발 밑창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역시나.’
퍽!
양철호의 고개가 다시 떨구어졌다.
수호는 수혈을 짚어 그를 무력화시켰다.
‘이걸로 끝인가?’
그건 아니었다.
“으아아아!”
조상혁이 탈골된 오른팔을 덜렁거리며 달려들어 왔다.
그의 왼 주먹이 수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텅.
“어, 어?”
머리통이 깨지는 경쾌한 소리가 날 줄로 기대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던 참이었다.
그런데 무슨 드럼통을 친 듯 손맛이 찝찝했다.
“미, 미친…….”
조상혁은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수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뒤돌아본 것이다.
“좀 띵한데?”
“이, 이건 사기야!”
“아까 그랬지? 나한테 악감정 없다고. 그런데 어쩌나, 난 그게 생겨버렸는데.”
휘익!
수호는 내력을 끌어올리고 조상혁의 앞으로 파고 들어갔다.
“커, 커억!”
조상혁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수호는 그를 몇 번 더 밟다가 윤상현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
동굴을 둘러봤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수호는 경공을 사용해 빠르게 통로를 빠져나왔다.
벼랑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끙끙거리며 돌벽을 내려가는 윤상현의 모습이 보였다.
“게 섯거라.”
실실 웃으면서 따라 내려가는데 윤상현과는 달리 수호는 너무 쉽게, 막힘없이 척척 돌벽을 탄다.
위쪽 돌출부에서 아래쪽 돌출부로, 건너뛸 때마다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윤상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씨발, 이게 말이 돼?”
이대로 가다간 곧 잡힐 판이다.
윤상현은 밑을 봤다.
“……!”
까마득한 높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윤상현은 이를 꽉 깨물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보니 수호가 바로 머리 위까지 따라와 있었다.
“쓰으으읍!”
윤상현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돌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어?”
수호는 동작을 멈추고 그가 추락하는 걸 지켜봤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이 높이는 좀 위험한데?”
하지만 윤상현도 나름 계산을 하고 몸을 던졌던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 그가 아래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윤상현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염동력으로 땅을 밀어내 어떻게든 충격량을 줄이려는 것.
결과는?
철퍼덕!
스킬을 써도 중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윤상현은 볼썽사나운 자세로 바닥에 처박혔다.
“으으…….”
수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다리부터 떨어진 걸로 봐선 털고 일어나기는 어려울 듯했다.
‘느긋하게 내려가도 되겠군.’
발밑을 살피며 안전하게 암벽을 타던 중,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크르르룸.”
“크움! 크우우움!”
윤상현을 발견한 늪 자르쿰들이 돌벽 아래로 모여들고 있었다.
“미친 마물 새끼들! 저리 꺼져!”
윤상현은 염동력으로 놈들을 밀어내려 했지만, 여기는 D+급 스킬로 감당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었다.
퍽!
접근해온 늪 자르쿰이 윤상현의 다리를 내리쳤다.
“크아아악!”
“이런!”
수호의 동작이 다시 빨라졌다.
* * *
“으, 으음…….”
양철호는 문득 의식이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직 동굴 안이었다.
“그래도 살아는 있군.”
그리고 팔다리도 다 멀쩡히 붙어 있다.
기절한 동안 큰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긴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가. 그런데 아까 그놈은 어디 있지?’
일어나서 상황을 살피려는데 뭔가가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악!”
“날 찾나?”
놈의 목소리다.
양철호는 기겁하며 수호를 뿌리치려 했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양팔이 굳어버린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있어, 나만 할 수 있는 거.”
“무, 무슨 스킬이지?”
“이게 스킬?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점혈이라는 건데 기, 아니 에너지로 혈도를 막는 기술이지.”
“……?”
“원리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고. 이거 하나만 알면 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 양팔을 영영 못 쓰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
“뭐, 뭣?”
수호는 양철호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평생 불구로 살고 싶지 않으면 성실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야, 아… 진수호랬나? 일단 좀 진정하고. 괜히 직업윤리 발동해서 일에 목숨 걸고 그러는 캐릭터 아냐, 나. 이게 그럴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니고. 이런 일에 새끼손가락도 걸 생각이 없다고.”
“그럼 사실대로 말해. 당신들 둘, 윤상현하고는 어떤 관계지?”
“아무,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나도 오늘 처음 봤고.”
“정말인가?”
“아, 아무 사이도 아닌 것까지는 아니구나. 그냥 일적인 관계. 의뢰인과 솔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 그게 더 맞겠다.”
“솔저?”
수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저 몰라? 하긴 그 나이 대에는 수호자에만 관심이 있나? 뭐냐면… 직업 용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난 돈을 받았고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주러 여기 온 거지.”
“그 돈은 누가 지불했지?”
“아까 걔 형이. 사이트에서 우릴 찾아낸 것도 형이고. 사실 형제인지 아닌지는 긴가민가한데, 둘 다 싸가지 밥 말아 먹은 게 집안 내력 같거든. 아마 맞을 거야.”
“흐흠.”
수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철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오늘이 실습날이라는 건 알고 온 건가?”
“당연히 알고 왔지. 영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페이가 워낙 세서 말이야.”
“얼마나 받았길래?”
“두당 천씩.”
“그건 지나치게 많은데?”
수호의 금전 감각은 아직 현대인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상식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는 액수였다.
“의뢰 난이도에 비해 많은 건 맞아. 아니, 그런 줄 알았지.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근데 리스크가 너무 커서 이 금액 아니면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을 거다. 협회를 건드렸다가 잘못된다? 그 순간 이 바닥에서 매장이니까.”
“실습 장소가 여기라는 건 어떻게 알아냈지? 던전 위치는 또 어떻게 알았고.”
“아, 그거? 내부자가 있는 모양이던데? 그 친구, 오는 내내 누군가하고 연락을 주고받더라고. 던전에 들어와서는 무전기로 또 통화하고. 덕분에 여기까지 쉽게 따라왔지.”
“그렇군.”
“이제 스킬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 아는 건 다 말한 거 같거든? 팔은, 아직 살릴 수 있는 거 맞지?”
“충분히. 그러니까 입 다물고 있어 줄래? 생각 좀 하게.”
“아, 알았어.”
잠시 침묵.
수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얼추 들어맞는 거 같긴 한데,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게 있다. 관계자를 매수하고 용병을 고용한다라. 일개 고등학생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해?”
“금수저면 가능하지. 우린 돈만 받으면 뭔 일이든 하는 그런 놈들이라서. 또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각성자는 각성자니까. 일개 고등학생이라 하기엔 좀.”
“그런가?”
이 정도면 대답은 충분히 들은 것 같았다.
수호는 양철호와 마주 보고 섰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양철호는 연신 자기 입술을 핥았다.
“이, 이제 어쩔 거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일이 생각대로 풀렸다면 난 죽은 목숨이었나?”
중요한 질문이었다.
대답이 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어…….”
양철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죽, 죽일 생각까지는 없는 거 같았어. 그냥 몇 군데 부러뜨리는 정도?”
“흐음,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군. 그래, 뭐 발가락으로 수저 뜨면서 살든가.”
거짓말도 통할 수준으로 쳐야지, 고작 그 정도 복수를 하려고 이런 판을 짤 리가 없다.
수호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자 양철호가 펄쩍 뛰어올랐다.
“잠깐, 잠깐만! 사실대로 말할게! 근데 죽이려고 한 게 아닌 건 진짜 맞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