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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스테이지 2의 숲 자르쿰은 덩치가 무척 컸다.
초원에서 봤던 자르쿰은 아직 덜 자란 청소년 키 정도.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이놈은 건장한 성인 남자, 거기서 벌크업까지 추가로 한?
그런 느낌이다.
숲 자르쿰이 노리는 사람은 끝에 선 기훈이었다.
후우웅!
놈의 도끼가 기훈의 팔을 잘라내려 하고 있었다.
챙!
하지만 들린 건 비명이 아니라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어느새 수호가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제때 왔군.”
도끼질을 막아낸 그가 역공을 시작했다.
“자르쿠우움!”
자르쿰의 관심은 완전히 수호에게로 옮겨갔다.
놈도 도끼를 높이 들고 반격을 해왔다.
“야, 빨리 홀딩해!”
경태가 멍해져 있는 기훈을 흔들었다.
“어? 어.”
기훈은 정신을 차리고 숲 자르쿰에게 뭔가를 휙 던졌다.
빛나는 끈 같은 게 자르쿰에게로 날아갔다.
수호는 몸을 틀어 피해줬다.
끈은 하체 쪽으로 향했고, 곧 자르쿰의 양 발목을 휘감았다.
“됐어!”
“그르르르.”
이상함을 느낀 놈은 발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르르르?”
흡사 땅에 박히기라도 한 듯 발은 들리지 않았다.
“수호야, 비켜!”
경태가 숲 자르쿰의 뒤로 접근해 왔다.
그가 주먹을 뻗자 허공에서 칠흑색 창이 생성되었다.
“이거나 먹어라!”
쉬익!
발사된 창은 자르쿰의 등을 관통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끄어어어!”
놈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경태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으앗!”
경태는 방패를 들어 올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자르쿰이 묶인 건 발이지 손이 아니었다.
놈이 허리를 돌려 도끼를 휘두르자 방패에 도끼 자국이 났다.
“조심해!”
물론 그러면 이쪽에 또 빈틈이 생긴다.
수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칼날바람!’
회오리가 자르쿰의 상처를 헤집자 피 분수가 치솟았다.
“야, 잡으면 안 돼!”
경태가 양팔로 엑스 자를 그리며 소리쳤다.
수호는 일단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경태를 쳐다보자 그가 이유를 설명했다.
“막타는 기훈이한테 주자. 물론 너한테도 기회를 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막타?”
“파티 플레이 안 해봤냐? 경험치는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니까 돌아가면서 먹는 거야. 우리야 언제든지 막타가 가능하지만, 기훈이나 경빈이 같은 포지션은 그게 어려우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둬야지.”
“흐음, 그렇다면야.”
경태가 턱짓으로 놈을 가리키자 기훈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숲 자르쿰을 처리하고 나서 수호에게로 다가왔다.
“고, 고맙다.”
“뭐가?”
“덕분에 내 팔 멀쩡히 붙어 있잖아. 나는 너 별로인 거 같다고 했는데, 같이 안 왔으면 어떻게 됐을지…….”
“뭘 그렇게까지. 당연한 일을 한 건데.”
수호는 덤덤히 대답했다.
여기에 감동을 먹었는지 기훈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수호야! 너 진짜… 좋은 녀석인 거 같은데?”
“기훈아, 나한테도 좀 고마워해라.”
경태가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너한테는 왜?”
“나 아니었으면 수호가 우리 조로 왔겠어? 내가 은근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 * *
사냥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수호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경태의 자화자찬은 어느 정도는 맞는 걸로 해줘도 될 듯했다.
넷이 뭉쳐서 발생하는 시너지가 말도 안 되게 좋았고, 그만큼 성과도 나오고 있었다.
“경빈아, 뒤쪽 다 막아!”
경태가 오더를 내리자 경빈이 스킬을 마구 사용했다.
구구궁.
구구구궁!
거대한 나무 벽들이 죽순처럼 자라나 자르쿰들의 앞을 장벽처럼 가로막았다.
“자르쿠움?”
혼자 남겨진 자르쿰이 갸우뚱거리는 사이.
두 사람이 놈에게 달려들었다.
수호와 경태다.
기훈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수호의 커버가 워낙 좋아 숲 자르쿰 한 마리 정도는 둘만 나서도 됐다.
“야, 벽 무너진다! 빨리 끝내!”
난데없이 벽이 나타나서 앞을 가로막으니 자르쿰들은 흥분해서 미친 듯이 도끼질을 해댔다.
쿠웅!
자르쿰이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이 무너졌다.
동료를 잃었기 때문일까?
숲 자르쿰 두 마리가 분노하며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쿠우우움!”
수호는 경태와 눈빛을 교환했다.
약속한 작전대로 가자는 것.
이럴 때는, 수호가 한 놈을 전담하고 경태와 기훈이 다른 놈을 잡으면 된다.
이미 저 두 사람의 조합은 검증된 것이었기에 숲 자르쿰 하나쯤이야 잡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수호는 그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능력이 된다.
수호는 숲 자르쿰과 수차례 부딪치면서 곁눈질로 옆을 바라봤다.
피이이잉!
경태의 스킬, 섀도우 스피어가 발동되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특성상, 물리력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적을 관통해 큰 피해를 입힌다.
스스로 극딜러라고 자부할 만한 스킬이었다.
칠흑색 창이 숲 자르쿰의 몸을 뚫고 가슴 쪽으로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혼자 남은 숲 자르쿰을 처치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다음 경험치는 수호의 차지였다.
“혹시 레벨업 했어?”
경태의 질문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마어마하게 올랐네.”
“몇인데?”
“아까 18이었으니까… 이 스테이지에서만 7 올렸다.”
“오, 이제 거의 C- 평균 급인데? 빠르다 빨라.”
조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네 사람은 각자 잡은 숲 자르쿰의 수를 합산해 봤다.
“열셋? 인당 셋도 넘겨버렸네? 이거 신기록 아니냐?”
“그렇지. 보통 셋이 하면 두당 두 마리 정도? 다 해서 일곱 마리 넘어간 적이 있긴 했었나?”
기훈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 수호가 캐리한 덕분이지. 우리가 숲 자르쿰 세 마리를 어떻게 한 큐에 다 잡아? 3인 체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야.”
“나는?”
경태가 얼굴을 들이대자 기훈이 그를 밀어냈다.
“그래, 너 잘났다. 그 적성을 살려서 수호자 말고 스카우터 같은 거나 하는 건 어때?”
“말이 심하네.”
“심하긴 뭐가 심해?”
“그만하고.”
경빈이 말씨름을 끊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지나 정하자. 더 가볼 거야?”
한 명씩 입을 열었다.
“아직 사냥 더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으면 가는 게 맞지.”
“그래, 끝까지 해보자. 계속해서 신기록 경신해 보자고!”
이런 의견들이 모이자 조원들은 의기양양, 자신감에 넘쳐 진격을 시작했다.
수호는 앞으로 나서서 줄기며 나뭇가지 등을 끊어내줬다.
“어?”
그러던 그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경빈이 물었다.
“왜 그래?”
“밀림이 끝났어.”
계속 펼쳐져 있을 것만 같던 녹색 풍경도 끝이 있었던 것이다.
뒤쪽으로는 우거진 풀숲과 까마득한 나무들이 좁은 틈을 비집고 자라나 있지만, 한발 더 나아가면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수호가 조원들에게 물었다.
“여기 어딘지 알아?”
“아니, 우리도 정글 끝까지 와본 건 처음이라.”
“일단 가볼래?”
조원들은 정글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꽤 넓고 하늘이 보인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앗! 저건?”
기훈이 손가락질을 했다.
그 끝에 있는 건…….
“왜 여기 포탈이?”
조원들은 포탈 근처로 가서 안을 기웃거렸다.
그 안쪽은 칠흑같이 어두워 내부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흘러나오는 암녹색 빛만이 무언가를 암시할 뿐이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경태가 입을 열었다.
“이 던전에 3번 스테이지가 있었던가?”
기훈이 고개를 저었다.
“없지.”
“그럼 혹시 첫 스테이지로 돌아가는 포탈 아닐까?”
경태가 포탈에 들어가려 했다.
“안 돼!”
말없이 있던 경빈이 나서서 그를 뒤로 잡아당겼다.
“왜? 우리 에너지도 얼마 안 남았잖아. 자르쿰도 충분할 만큼 잡았고. 너희들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아? 돌아가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어, 그건 좋지. 근데 내 생각에 거긴.”
경빈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보스 스테이지야.”
“뭐?”
그 말에, 경태는 무슨 더러운 걸 밟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발을 뺐다.
“와씨, 큰일 날 뻔했네. 진짜야?”
“물론 추측이지만, 딱 봐도 수상하잖아. 포탈 색부터가 영.”
“썩은 미역 색깔이 뭐가 어때서? 그리고 보스 스테이지가 있으면 선생님이 미리 말을 해줬겠지. 난 있단 말 못 들었는데? 넌 들었냐?”
기훈이 대답했다.
“아니 전혀.”
“그래서 오히려 더 말을 안 한 걸 수도 있지. 정글 끝까지 가면 보스 스테이지 있으니까 거긴 절대로 가지 마라~ 라고 하면 C급 애들이 아 진짜 가지 말아야겠다~ 이럴까? 맨날 낮은 등급 애들 때문에 낮은 레벨 던전에만 간다고 투덜거리는 놈들이.”
여기에는 다 동의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클리어하려고 하겠지.”
경태가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가지 말자.”
세 사람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수호였다.
경태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뭐해, 안 가고?”
“난 들어갈래.”
“그래, 가야지. 잠깐, 뭐라고?”
“난 보스를 공략해 보고 싶은데? 보스니까 당연히 보상도 훨씬 후하지 않겠어?”
경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제정신 박힌 놈이 맞나 싶은지, 할 말을 잃고 눈만 끔벅거렸다.
“공략이야 나도 하고는 싶지. 보상 좋은 거 누가 몰라? 근데 보스 스테이지는 장난이 아니라니까? 지금보다 강력한 마물들, 그놈들을 거느리는 더 강력한 보스까지. 우리 능력으로는 턱도 없다고.”
경태는 수호가 아직 뭘 몰라서 이러는 줄로 생각하고 다양한 근거를 들어 설득하려 했다.
“그렇단 말이지? 흐음, 그래도 역시 도전해 보고 싶은데?”
수호는 포탈 안쪽으로 발을 내밀었다.
“아, 안 돼!”
다들 경악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휙!
어떻게 말릴 새도 없이 포탈 안쪽으로 몸을 던져버리는 그였다.
“갔네…….”
“이, 이거 실제 일어난 일이 맞는 거지?”
“어, 맞아.”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은 경빈이었다.
“처음 오자마자 엄청 활약하고 그러니까 자신감이 과해졌나? 무리수도 무슨 이런 무리수를……. 가서 데리고 나올까?”
“아니.”
경태가 고개를 저었다.
“맥주병이 물에 빠진 사람 구하러 간다? 구조할 사람만 늘어날 뿐이야. 우린 빠지고 선생님들한테 맡기자.”
그가 무전기를 들었다.
* * *
스테이지가 바뀌면서 배경도 바뀌었다.
이번엔 늪지대였다.
한층 칙칙해진 풍경.
정글도 꽤나 어두운 편이었는데 여긴 더 어둡고 심지어 안개까지 덮여있다.
‘음산하고 축축한 곳이군.’
수호는 미소를 지었다.
불쾌지수 만땅인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를 유리함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크르르룸.”
근처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르쿰이다.
놈을 발견한 수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더 강력해 보이긴 하는군.’
늪 자르쿰은 숲 자르쿰보다 더 컸고 무장도 훨씬 좋았다.
투구에 방패와 갑옷, 다리에는 철로 된 각반까지.
무슨 근위병 같았다.
‘보스를 지키는 호위라 이거지?’
중얼거리며 발을 내딛자, 물컹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철퍽!
“크으우움?”
인기척을 느낀 늪 자르쿰이 포탈 근처로 다가왔다.
놈은 검을 고쳐 쥐고 안개 속, 소리가 난 곳을 마구 찔러댔다.
“크움.”
걸리는 게 없었다.
실망한 듯 몸을 돌리는 자르쿰이었다.
스스스슷.
수호는 이미 늪 자르쿰을 지나쳐 간 뒤였다.
발을 뻗을 때마다 몇 미터씩 쭉쭉 나아간다.
아까와는 달리 진흙을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랜만이군, 이 감각.’
지금의 그에게는 뭐든 오랜만이지 않은 게 있을까.
그래도 진수호의 몸으로 처음 펼쳐보는 경공술은 무척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직은 답설무흔이나 초상비 같은 상승의 경공술을 선보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뭐 이런 놈들 정도는…….’
보스 스테이지에 도전하는 이유.
멋모르고 덤비는 것도 아니고 자신감이 과해져서도 아니었다.
스으으으.
뜨거운 진기가 전신 혈도를 따라 순환했다.
아까 운기했을 때만 잠깐 밖으로 나갔을 뿐, 내력은 쭉 단전에만 머물러 있었다.
스테이지 1, 2는 검과 스킬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내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부터는 봉인을 풀고 전력을 다할 생각.
‘보스 스테이지면 뭐?’
수호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수가 남아 있었다.
스테이지 2의 숲 자르쿰은 덩치가 무척 컸다.
초원에서 봤던 자르쿰은 아직 덜 자란 청소년 키 정도.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이놈은 건장한 성인 남자, 거기서 벌크업까지 추가로 한?
그런 느낌이다.
숲 자르쿰이 노리는 사람은 끝에 선 기훈이었다.
후우웅!
놈의 도끼가 기훈의 팔을 잘라내려 하고 있었다.
챙!
하지만 들린 건 비명이 아니라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어느새 수호가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제때 왔군.”
도끼질을 막아낸 그가 역공을 시작했다.
“자르쿠우움!”
자르쿰의 관심은 완전히 수호에게로 옮겨갔다.
놈도 도끼를 높이 들고 반격을 해왔다.
“야, 빨리 홀딩해!”
경태가 멍해져 있는 기훈을 흔들었다.
“어? 어.”
기훈은 정신을 차리고 숲 자르쿰에게 뭔가를 휙 던졌다.
빛나는 끈 같은 게 자르쿰에게로 날아갔다.
수호는 몸을 틀어 피해줬다.
끈은 하체 쪽으로 향했고, 곧 자르쿰의 양 발목을 휘감았다.
“됐어!”
“그르르르.”
이상함을 느낀 놈은 발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르르르?”
흡사 땅에 박히기라도 한 듯 발은 들리지 않았다.
“수호야, 비켜!”
경태가 숲 자르쿰의 뒤로 접근해 왔다.
그가 주먹을 뻗자 허공에서 칠흑색 창이 생성되었다.
“이거나 먹어라!”
쉬익!
발사된 창은 자르쿰의 등을 관통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끄어어어!”
놈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경태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으앗!”
경태는 방패를 들어 올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자르쿰이 묶인 건 발이지 손이 아니었다.
놈이 허리를 돌려 도끼를 휘두르자 방패에 도끼 자국이 났다.
“조심해!”
물론 그러면 이쪽에 또 빈틈이 생긴다.
수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칼날바람!’
회오리가 자르쿰의 상처를 헤집자 피 분수가 치솟았다.
“야, 잡으면 안 돼!”
경태가 양팔로 엑스 자를 그리며 소리쳤다.
수호는 일단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경태를 쳐다보자 그가 이유를 설명했다.
“막타는 기훈이한테 주자. 물론 너한테도 기회를 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막타?”
“파티 플레이 안 해봤냐? 경험치는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니까 돌아가면서 먹는 거야. 우리야 언제든지 막타가 가능하지만, 기훈이나 경빈이 같은 포지션은 그게 어려우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둬야지.”
“흐음, 그렇다면야.”
경태가 턱짓으로 놈을 가리키자 기훈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숲 자르쿰을 처리하고 나서 수호에게로 다가왔다.
“고, 고맙다.”
“뭐가?”
“덕분에 내 팔 멀쩡히 붙어 있잖아. 나는 너 별로인 거 같다고 했는데, 같이 안 왔으면 어떻게 됐을지…….”
“뭘 그렇게까지. 당연한 일을 한 건데.”
수호는 덤덤히 대답했다.
여기에 감동을 먹었는지 기훈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수호야! 너 진짜… 좋은 녀석인 거 같은데?”
“기훈아, 나한테도 좀 고마워해라.”
경태가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너한테는 왜?”
“나 아니었으면 수호가 우리 조로 왔겠어? 내가 은근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 * *
사냥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수호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경태의 자화자찬은 어느 정도는 맞는 걸로 해줘도 될 듯했다.
넷이 뭉쳐서 발생하는 시너지가 말도 안 되게 좋았고, 그만큼 성과도 나오고 있었다.
“경빈아, 뒤쪽 다 막아!”
경태가 오더를 내리자 경빈이 스킬을 마구 사용했다.
구구궁.
구구구궁!
거대한 나무 벽들이 죽순처럼 자라나 자르쿰들의 앞을 장벽처럼 가로막았다.
“자르쿠움?”
혼자 남겨진 자르쿰이 갸우뚱거리는 사이.
두 사람이 놈에게 달려들었다.
수호와 경태다.
기훈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수호의 커버가 워낙 좋아 숲 자르쿰 한 마리 정도는 둘만 나서도 됐다.
“야, 벽 무너진다! 빨리 끝내!”
난데없이 벽이 나타나서 앞을 가로막으니 자르쿰들은 흥분해서 미친 듯이 도끼질을 해댔다.
쿠웅!
자르쿰이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이 무너졌다.
동료를 잃었기 때문일까?
숲 자르쿰 두 마리가 분노하며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쿠우우움!”
수호는 경태와 눈빛을 교환했다.
약속한 작전대로 가자는 것.
이럴 때는, 수호가 한 놈을 전담하고 경태와 기훈이 다른 놈을 잡으면 된다.
이미 저 두 사람의 조합은 검증된 것이었기에 숲 자르쿰 하나쯤이야 잡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수호는 그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능력이 된다.
수호는 숲 자르쿰과 수차례 부딪치면서 곁눈질로 옆을 바라봤다.
피이이잉!
경태의 스킬, 섀도우 스피어가 발동되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특성상, 물리력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적을 관통해 큰 피해를 입힌다.
스스로 극딜러라고 자부할 만한 스킬이었다.
칠흑색 창이 숲 자르쿰의 몸을 뚫고 가슴 쪽으로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혼자 남은 숲 자르쿰을 처치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다음 경험치는 수호의 차지였다.
“혹시 레벨업 했어?”
경태의 질문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마어마하게 올랐네.”
“몇인데?”
“아까 18이었으니까… 이 스테이지에서만 7 올렸다.”
“오, 이제 거의 C- 평균 급인데? 빠르다 빨라.”
조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네 사람은 각자 잡은 숲 자르쿰의 수를 합산해 봤다.
“열셋? 인당 셋도 넘겨버렸네? 이거 신기록 아니냐?”
“그렇지. 보통 셋이 하면 두당 두 마리 정도? 다 해서 일곱 마리 넘어간 적이 있긴 했었나?”
기훈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 수호가 캐리한 덕분이지. 우리가 숲 자르쿰 세 마리를 어떻게 한 큐에 다 잡아? 3인 체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야.”
“나는?”
경태가 얼굴을 들이대자 기훈이 그를 밀어냈다.
“그래, 너 잘났다. 그 적성을 살려서 수호자 말고 스카우터 같은 거나 하는 건 어때?”
“말이 심하네.”
“심하긴 뭐가 심해?”
“그만하고.”
경빈이 말씨름을 끊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지나 정하자. 더 가볼 거야?”
한 명씩 입을 열었다.
“아직 사냥 더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으면 가는 게 맞지.”
“그래, 끝까지 해보자. 계속해서 신기록 경신해 보자고!”
이런 의견들이 모이자 조원들은 의기양양, 자신감에 넘쳐 진격을 시작했다.
수호는 앞으로 나서서 줄기며 나뭇가지 등을 끊어내줬다.
“어?”
그러던 그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경빈이 물었다.
“왜 그래?”
“밀림이 끝났어.”
계속 펼쳐져 있을 것만 같던 녹색 풍경도 끝이 있었던 것이다.
뒤쪽으로는 우거진 풀숲과 까마득한 나무들이 좁은 틈을 비집고 자라나 있지만, 한발 더 나아가면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수호가 조원들에게 물었다.
“여기 어딘지 알아?”
“아니, 우리도 정글 끝까지 와본 건 처음이라.”
“일단 가볼래?”
조원들은 정글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꽤 넓고 하늘이 보인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앗! 저건?”
기훈이 손가락질을 했다.
그 끝에 있는 건…….
“왜 여기 포탈이?”
조원들은 포탈 근처로 가서 안을 기웃거렸다.
그 안쪽은 칠흑같이 어두워 내부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흘러나오는 암녹색 빛만이 무언가를 암시할 뿐이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경태가 입을 열었다.
“이 던전에 3번 스테이지가 있었던가?”
기훈이 고개를 저었다.
“없지.”
“그럼 혹시 첫 스테이지로 돌아가는 포탈 아닐까?”
경태가 포탈에 들어가려 했다.
“안 돼!”
말없이 있던 경빈이 나서서 그를 뒤로 잡아당겼다.
“왜? 우리 에너지도 얼마 안 남았잖아. 자르쿰도 충분할 만큼 잡았고. 너희들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아? 돌아가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어, 그건 좋지. 근데 내 생각에 거긴.”
경빈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보스 스테이지야.”
“뭐?”
그 말에, 경태는 무슨 더러운 걸 밟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발을 뺐다.
“와씨, 큰일 날 뻔했네. 진짜야?”
“물론 추측이지만, 딱 봐도 수상하잖아. 포탈 색부터가 영.”
“썩은 미역 색깔이 뭐가 어때서? 그리고 보스 스테이지가 있으면 선생님이 미리 말을 해줬겠지. 난 있단 말 못 들었는데? 넌 들었냐?”
기훈이 대답했다.
“아니 전혀.”
“그래서 오히려 더 말을 안 한 걸 수도 있지. 정글 끝까지 가면 보스 스테이지 있으니까 거긴 절대로 가지 마라~ 라고 하면 C급 애들이 아 진짜 가지 말아야겠다~ 이럴까? 맨날 낮은 등급 애들 때문에 낮은 레벨 던전에만 간다고 투덜거리는 놈들이.”
여기에는 다 동의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클리어하려고 하겠지.”
경태가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가지 말자.”
세 사람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수호였다.
경태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뭐해, 안 가고?”
“난 들어갈래.”
“그래, 가야지. 잠깐, 뭐라고?”
“난 보스를 공략해 보고 싶은데? 보스니까 당연히 보상도 훨씬 후하지 않겠어?”
경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제정신 박힌 놈이 맞나 싶은지, 할 말을 잃고 눈만 끔벅거렸다.
“공략이야 나도 하고는 싶지. 보상 좋은 거 누가 몰라? 근데 보스 스테이지는 장난이 아니라니까? 지금보다 강력한 마물들, 그놈들을 거느리는 더 강력한 보스까지. 우리 능력으로는 턱도 없다고.”
경태는 수호가 아직 뭘 몰라서 이러는 줄로 생각하고 다양한 근거를 들어 설득하려 했다.
“그렇단 말이지? 흐음, 그래도 역시 도전해 보고 싶은데?”
수호는 포탈 안쪽으로 발을 내밀었다.
“아, 안 돼!”
다들 경악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휙!
어떻게 말릴 새도 없이 포탈 안쪽으로 몸을 던져버리는 그였다.
“갔네…….”
“이, 이거 실제 일어난 일이 맞는 거지?”
“어, 맞아.”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은 경빈이었다.
“처음 오자마자 엄청 활약하고 그러니까 자신감이 과해졌나? 무리수도 무슨 이런 무리수를……. 가서 데리고 나올까?”
“아니.”
경태가 고개를 저었다.
“맥주병이 물에 빠진 사람 구하러 간다? 구조할 사람만 늘어날 뿐이야. 우린 빠지고 선생님들한테 맡기자.”
그가 무전기를 들었다.
* * *
스테이지가 바뀌면서 배경도 바뀌었다.
이번엔 늪지대였다.
한층 칙칙해진 풍경.
정글도 꽤나 어두운 편이었는데 여긴 더 어둡고 심지어 안개까지 덮여있다.
‘음산하고 축축한 곳이군.’
수호는 미소를 지었다.
불쾌지수 만땅인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를 유리함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크르르룸.”
근처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르쿰이다.
놈을 발견한 수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더 강력해 보이긴 하는군.’
늪 자르쿰은 숲 자르쿰보다 더 컸고 무장도 훨씬 좋았다.
투구에 방패와 갑옷, 다리에는 철로 된 각반까지.
무슨 근위병 같았다.
‘보스를 지키는 호위라 이거지?’
중얼거리며 발을 내딛자, 물컹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철퍽!
“크으우움?”
인기척을 느낀 늪 자르쿰이 포탈 근처로 다가왔다.
놈은 검을 고쳐 쥐고 안개 속, 소리가 난 곳을 마구 찔러댔다.
“크움.”
걸리는 게 없었다.
실망한 듯 몸을 돌리는 자르쿰이었다.
스스스슷.
수호는 이미 늪 자르쿰을 지나쳐 간 뒤였다.
발을 뻗을 때마다 몇 미터씩 쭉쭉 나아간다.
아까와는 달리 진흙을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랜만이군, 이 감각.’
지금의 그에게는 뭐든 오랜만이지 않은 게 있을까.
그래도 진수호의 몸으로 처음 펼쳐보는 경공술은 무척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직은 답설무흔이나 초상비 같은 상승의 경공술을 선보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뭐 이런 놈들 정도는…….’
보스 스테이지에 도전하는 이유.
멋모르고 덤비는 것도 아니고 자신감이 과해져서도 아니었다.
스으으으.
뜨거운 진기가 전신 혈도를 따라 순환했다.
아까 운기했을 때만 잠깐 밖으로 나갔을 뿐, 내력은 쭉 단전에만 머물러 있었다.
스테이지 1, 2는 검과 스킬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내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부터는 봉인을 풀고 전력을 다할 생각.
‘보스 스테이지면 뭐?’
수호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수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