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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꾸에엑!”
자르쿰은 입에 철퇴가 처박힌 채, 뒤로 날아가 풀밭으로 고꾸라졌다.
턱관절이 빠져 안면이 평소보다 더욱 찌그러진 모습이었다.

[마물을 쓰러뜨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업 메시지가 몇 개나 떴다.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을 했다.
숫자가 꽤 바뀌어 있었다.

<진수호 (Lv. 9) 랭크 C->

‘저거 하나 잡은 걸로 6레벨이 올라간다고?’
아마 레벨 차이 때문인 것 같았다.
한참 높은 레벨의 마물을 잡았으니 보상도 큰 것이다.
수호가 몸을 돌렸다.
다음 타깃은?
그는 자르쿰들의 무장 상태를 살폈다. 전부 제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중, 검을 든 놈이 수호의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보자마자 할버드를 낮게 세우고 돌진!
날 끝은 초원의 공기를 가르고, 자르쿰 전사의 어설픈 수비를 뚫고 들어가 놈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푸욱!
“끄에에에엑!”
상처 입은 자르쿰이 미쳐 날뛰며 칼춤을 춰댔다.
수호는 자루를 짧게 잡고 적당히 부딪혀 주다가 빈틈이 보일 때마다 옆구리를 찌르거나 간간이 스킬도 날려 줬다.
‘형편없군.’
이딴 놈에게서 무슨 고차원의 검술, 이런 건 당연히 기대도 안 했다.
그래도 정도가 있지, 이건 뭐 그냥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는 수준이다.
‘모자란 놈들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
사실 마물 주제에 도구를 쓸 줄 아는 것만 해도 칭찬해줄 일이긴 했다.
털썩!
놈의 체력이 바닥났다.
수호는 검을 주워들고 다음 사냥감을 찾아 떠났다.
‘반갑다.’
익숙한 감촉, 기분 좋게 전해져 오는 무게감.
칼자루를 손에 쥐자 잠시 잊고 있었던 심오한 검의 묘리가 방금 막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제 과거의 몸은 아니지만 서문환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일깨워지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수호의 자르쿰 학살이 시작됐다.
챙! 챙!
예의상 몇 번 경합해 주자 도끼를 든 자르쿰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수호는 놈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촤앗!
자르쿰의 피가 들판 위에 흩뿌려졌다.
놈의 손에서 도끼를 빼내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자르쿠우우움!”
자르쿰이 앞을 가로막았다.
수호는 도끼를 던져 놈의 몸에 박고는 이어 검으로 휘몰아쳤다.
‘스킬 사용!’
틈을 주지 않고 찍어 누른다!
날카로운 바람이 자르쿰의 눈을 후벼 팠다.
외눈이 된 놈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푹! 푹!
킬 메시지가 뜰 때까지 자르쿰 전사의 복부를 난도질했다.
이건 수호가 압도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칼날바람.
수호는 전략적으로 써먹을 스킬까지 있는데, 기본적인 무기 활용능력부터 너무 차이가 나버리니 당연히 이렇게 되는 것이다.
“시시하네. 다 덤벼!”
수호는 자르쿰 네 마리가 모인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둘렀다.
자르쿰 전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쿵!
마지막 자르쿰이 드러눕자 제대로 땅을 짚고 서 있는 놈은 없게 되었다.

[마물을 쓰러뜨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어?’
그런데 메시지를 확인한 수호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분명 네 마리를 잡았는데 메시지는 세 개뿐이었다.
“크와아앙!”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르쿰이 벌떡 일어나 뒤를 덮쳐왔다.
수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겨드랑이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칼날바람으로 마무리!
풀썩!
자르쿰이 쓰러졌다.
“후우…….”
수호는 땀을 닦으며 레벨을 확인했다.
하나 더 잡은 것으로 레벨이 또 올라 버렸다.

<진수호 (Lv. 18) 랭크 C->

‘10이 넘게 올라도 랭크는 여전하군.’
그래도 성장은 성장이다.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다음 사냥을 이어가려는데,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따가운 것을 느꼈다.
‘음?’
돌아보니 친구들이 놀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너, 너 뭐야!”
전대환은 벌어진 입을 간신히 다물고 수호에게로 가까이 왔다.
“내가 헛것을 본 건 아니겠지?”
“아닐걸요.”
“그럼 방금 그건 뭔데? 어떻게 한 건지 설명해 줄래?”
“제가 검에 소질이 좀 있거든요.”
“그런 수준이 아니잖아! 너 지금 몇 마리나 잡았지? 다섯? 여섯?”
수호는 가만히 헤아려 봤다.
“여덟 마리요.”
“뭐어?”
전대환의 눈이 커졌다.
“그건 더 말이 안 되는데? C등급 애들도 그렇게는 못 해.”
“사냥 능력이 등급순인가요, 뭐.”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전대환은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수호가 지나쳐 가려 하자 그가 물었다.
“어디 가?”
“사냥 계속해야죠.”
“지금까지 한 걸로도 이 스테이지 신기록이다. 뭘 얼마나 더 경신하려고 그래. 그냥 친구들한테 양보해.”
“그러죠.”
수호는 순순히 받아들이곤 한적한 곳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었다.
레벨업으로 확보되는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음? 생각보단?’
칼날바람을 꽤나 썼는데도 늘어난 에너지가 그걸 커버해서 평소보다 양이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수호는 그 절반을 내공으로 변환시켰다.
그가 운기를 하는 동안.
전대환은 교사들 무리로 돌아가 그중 한 명에게 묻고 있었다.
“수호가 원래 저렇게 전투 능력이 뛰어났나요?”
“글쎄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은 박형철이었다.
이번 실습에는 1학년 담임들이 전부 동원되었다.
해서 그도 여기 와 있는 거였다.
“애초에 거의 눈에 띈 적이 없어서…….”
“그런데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겁니까?”
“뭐, 원래는 F였으니까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등급이 그러면 별수 있나요?”
박형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반면, 전대환은.
“뭔가 있는 거 같은데……. 갓 랭크업한 놈이 2학년도 이기고, 처음 온 던전에선 날아다니고.”
“음? 2학년을 이기다니요?”
“아, 그게요.”

운기를 마치고 나니 이번 스테이지는 거의 정리가 돼 가고 있었다.
전투 중인 학생들이 있긴 했지만 다들 그 전투가 마지막으로, 지금 잡고 있는 자르쿰들만 다 잡으면 더는 사냥할 마물은 없는 걸로 보였다.
“너 대단하더라?”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기 위해 포탈로 가는 중.
경태가 수호를 발견하고 밀착해 왔다.
“대인전만 괜찮게 하는 게 아니라 마물도 잘 잡네? 처음엔 좀 헤매는 거 같더니만 발동 걸린 뒤론…….”
경태가 엄지를 추켜올렸다.
“뭐, 보통이지.”
“다음 스테이지부터는 조 짜서 다녀야 하거든? 근데 너 조 없잖아. 혼자선 어렵지. 어때, 우리 조에 들어오는 건?”
“우리라면?”
경태는 포탈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을 가리켰다.
한 명은 기훈, 다른 한 명은 고경빈이라는 애였다.
“어떻게 할래? 인이냐?”
“받아준다면 나야 좋지.”
“좋았어, 이제야 구색이 맞춰지는구만.”
경태는 친구들에게 가서 새 조원이 생겼음을 알렸다.
“수호 좋지. 아까 잠깐 봤는데 완전 미쳤던데? 있으면 무조건 플러스지 않겠어?”
경빈은 긍정적인 반면, 기훈은 좀 애매하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인원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더 많이 잡아야 하잖아. 과연 그게 효율적일까?”
하지만 2대 1이라, 결국 수호가 끼는 걸로 결정됐다.
기훈도 이를 받아들이고는 경태에게 물었다.
“얘는 어떤 포지션인데?”
“세미딜러지. 스킬이… 바람? 딜이 아주 좋진 않더라고. 근데 근접전이 되니까 딜러 겸 탱커 역할을 맡기에는 제격이야. 어그로 끌어주고, 딜 넣어야 할 땐 넣어주고. 지금 우리 조에 가장 필요한 스타일 아니냐?”
“전사 타입이라……. 그래, 좋아 보이네.”
기훈과 경빈은 끄덕끄덕.
그런데 수호만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게임 용어라는 건 알겠는데 어그로는 뭐고 탱커는 또 뭔지.
경태가 수호에게 물었다.
“너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지?”
“…….”
수호는 두뇌 풀가동 중.
진수호의 기억을 동원해 머릿속으로 용어 풀이를 하고 있었다.
좋다 싫다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경태가 그의 눈치를 봤다.
“왜? 싫어?”
“아니, 좋아.”
대강 해석이 끝났다.
“그러니까 선두에서 적의 시선 분산, 그리고 공격 지원을 맡으란 말이지?”
이번에는 경태가 어리둥절해 했다.
“어디 전쟁 나가? 뭐야 그건?”
“내가 게임을 안 해서. 아무튼, 내 역할은 알겠고. 너희들은 뭔데?”
경태는 기훈과 경빈을 차례로 가리켰다.
“얘는 홀딩 전문이고, 쟤는 디펜더라고 보면 되나? 나는 극딜러고.”
“흐흠.”
“기훈이가 기회를 만들어 주면 너하고 내가 마무리를 짓는 거지. 경빈이가 뒤에서 지원해줄 거고. 오케이?”
“알았어.”
2번 스테이지는 이 던전의 마지막 단계로, 여기부터는 난이도가 급등하기 때문에 다들 조를 짜는 것이었다.
“다 모였군.”
전대환은 학생들의 수를 셌다.
그의 시선이 수호에게로 가서 멈췄다.
“맞다, 수호만 조가 없구나. 누구 데려갈 사람 없어?”
경태가 손을 들었다.
“제가 이미 스카우트했어요.”
“그래? 하여간 그런 건 엄청 빠르단 말이야.”
전대환은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스테이지 2다. 정신 바짝 차리고. 마물 잡아서 레벨업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은 안전! 최전선에서 싸우다 다치면 남들이 알아주기라도 하지, 근데 실습하다가 치명적인 손상이라도 입어봐. 그걸 누가 보상해 주지? 아무도 안 해줘. 그러니까 몸 챙겨가면서 잘하자. 그게 내 유일한 부탁이다.”
학생들은 별로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전대환은 한숨을 쉬며 포탈 옆에 놓아둔 박스를 가지고 왔다.
거기에 가득 든 건 무전기였다.
그가 무전기를 하나 꺼내서 흔들었다.
“위험해지면 바로 무전 치도록 해. 선생님들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니까. 조장들, 사용법은 다 알지? 그럼 준비된 조부터 먼저 들어간다.”
전대환은 포탈 옆에 서서 무전기를 나눠줬다.
경태도 그에게서 하나를 받았다.
“그럼 이제 가볼까?”
수호도 조원들과 함께 포탈을 지났다.
이번에도 거의 비슷한 공간일 거라 생각하고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기를 기다리는데…….
‘여긴?’
예상은 빗나갔다.
이번 스테이지는 앞선 스테이지와는 아예 콘셉트 자체가 다른 듯했다.
앞선 스테이지는 마물들이 돌아다니는 게 문제였을 뿐이지, 그래도 초원 자체는 거의 휴양지급이었다.
‘근데 갑자기 밀림이군.’
그런데 이곳은 빽빽하게 자라난 풀과 나무가 하늘을 가리는, 진짜 정글이었다.
‘일단은 조원들부터 만나야겠다.’
포탈 근처를 두리번거리는 중.
“여기야!”
경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벌써 다른 조원들을 다 모아 놓고 수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해? 빨리 가자고. 다른 조는 다 출발했어.”
“어, 그래야지.”
경태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수호가 선두에 섰다.
눈높이까지 자란 풀이며 덩굴 등이 시야를 차단했다.
사악사악.
수호는 검을 빼 들고 칼질로 길을 열었다.
정글도를 든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반 검이다.
그런데 베어내는 데에 막힘이라곤 전혀 없었다.
“와아, 수호 잘한다?”
“어디 아마존 같은 데서 사교육이라도 받았나?”
“거의 인간 제초기 수준 아니냐?”
수군거리는 소리에 수호는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 그는 남만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곳의 밀림은 여기만큼 무성하지는 않지만 훨씬 지독하고 위협적인, 극한의 오지였다.
수호는 계속 전진하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 마물은 뭐지? 또 자르쿰인가?”
뒤에서 경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르쿰은 자르쿰인데, 급이 다르지. 숲 자르쿰은 만만하게 볼 마물은 아니야.”
“대체 어떻길래?”
이전 스테이지에서 봤던 자르쿰도 못생긴 걸로만 따지자면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긴 했다.
하지만 지능이 떨어지고 체격도 사실 좀 작은 편.
위압감을 주는 마물이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뭐 얼마나 달라졌기에 만만하지 않다는 평가인 거지?
물어보려는 찰나, 왼쪽 수풀에서 도끼를 든 자르쿰이 튀어나왔다.
“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