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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전대환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퇴근했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실습 때문에 여러모로 준비할 게 많았다.
“후우,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이나 하고 있는 건지.”
넋두리를 하던 그가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리모컨 키를 누르자 빠앙하고 경적이 울렸다.
그의 차종은 벤츠 E클래스.
자기 차로 향하던 전대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누군가가 차 뒤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새 차를 바꾸셨네요? E클… 쿠페인가요?”
“누구냐, 너?”
흠칫하던 그가 경계를 풀었다.
“아, 너구나. 또 왜?”
어두운 구석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윤상호였다.
“C반 담임이시면 C클을 타시지 왜 통일성 없게 E를……. 근데 교사 월급으로 이거 굴릴 수 있어요? 유지비 장난 아닐 텐데.”
전대환의 표정이 굳었다.
“뭐 어쩌라고? 협박하러 왔냐?”
“에이, 협박이라뇨. 우리 한배 탔잖아요. 그런 짓은 안 하죠.”
“타긴 뭘 타. 나 뱃멀미 있다.”
계속 틱틱거리자 윤상호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아, 또 이러시네. 어차피 돈 내밀면 못 이기는 척하고 받을 거면서.”
“…….”
“포지션을 어느 한 쪽으로 정하는 게 어때요? 부패인지 청렴인지, 오락가락하니까 헷갈리네요.”
전대환은 대꾸하지 못했다.
며칠 전, 윤상호의 부탁으로 그와 진수호 매치를 성사시켜준 게 바로 전대환이었다.
그 대가로 수고비를 챙겼고.
절대 떳떳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손목은, 괜찮냐?”
“다 나았죠, 뭐.”
윤상호는 보란 듯이 오른손 관절을 돌리며 화제도 같이 돌렸다.
“아무튼, 말은 그렇게 해도 돈 받을 때만은 정직하시잖아요? 일단 얘기나 들어 보세요.”
“으음, 뭔데?”
전대환이 경계를 누그러뜨리자 윤상호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 *

3일 뒤, 월요일.
C반 학생들은 아침 일찍 운동장에 모였다.
전대환이 앞에 서서 출석을 불렀다.
“음, 다 왔군.”
C반 전원이 참석한 것을 확인한 그가 수신호를 보냈다.
운동장으로 대형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버스가 멈추자 학생들, 그리고 인솔 교사들은 차에 올라탔다.
수호도 버스에 탑승하려는데 어디선가 경태가 나타나서 뒤따라 붙었다.
“옆에 앉아도 되지?”
“어.”
어차피 그가 아니면 딱히 같이 앉을 사람도 없다.
경태가 좌석에 엉덩이를 걸치고 입을 열었다.
“가는 데 또 한참 걸리겠네. 너 D반일 때 갔던 던전은 얼마나 걸렸어?”
수호는 기억을 되살려 봤다.
“으음, 거기도 몇 시간? 꽤 먼 데 있긴 했지.”
“D반이면… 레벨 1 던전이었지?”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 1에서는 마물이라고 하기에도 좀 뭐한 놈들이 나온다.
“너무 쉬워서 다들 ‘동물원’에 간다고 했었나?”
F급 진수호도 큰 어려움 없이 실습을 마쳤던 최하급 난이도였다.
“푸핫! 동물원? 하긴, 레벨 1이면 실습이 아니라 거의 레저지. 근데 오늘 가는 곳은 두 단계 위야. 괜찮겠어?”
여기에 대해선 이미 얘기가 다 끝났다.
“괜찮지, 당연.”
곧 버스가 출발했다.
안이 너무 어두운 것 같아 커튼을 걷었는데 차창에 검은 필름이 붙어 있었다.
“뭐야, 이건?”
선팅을 안쪽에다 해놔서 밖이 깜깜했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우리를 못 믿는다는 거지.”
경태가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
“협회가 그렇지 뭐.”
현재 한국의 모든 던전은 정부와 각성자 협회에서 독점하고 있었다.
그나마 특별고 학생들에게는 제한적으로나마 개방이 되는데, 그건 상당한 혜택이었다.
랭크업을 하려면 레벨을 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물 사냥이 필수적이다.
마물들을 때려잡기에는 던전만큼 최적의 장소는 없었다.
경태가 문득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 던전이 진짜 멀리 있긴 한 걸까? 실은 엄청 가까운 데 있는 거 아냐?”
“가까운 데라면 서울?”
“서울이든 수도권 어디든. 던전이 어디 있는지 짐작도 하지 말라는 건데. 협회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추측이 맞는다면 단체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거의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웬 방공호 같은 구조물이 보였다.
그 옆에는 가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소리를 듣고 안에서 남자 한 명이 나왔다.
그는 협회 직원으로, 이 던전의 관리를 맡고 있었다.
“제때 오셨네요.”
그는 교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바로 가시죠.”
몇 번 와본 곳이라 그런지 다들 익숙한 것 같았다. 학생들은 관리인을 따라 방공호로 들어갔다.
긴 통로를 지나고, 던전 앞.
안쪽에서 녹색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포탈인가?’
허공에 생긴 틈?
아니면 공간의 일그러짐?
포탈은 구조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신비로운 개구멍처럼 보였다.
그 앞을 얇은 막 같은 게 가로막고 있었는데, 빛은 거기서 나오는 거였다.
던전 관리인은 입구 옆에 놓인 의자로 가 앉았다.
“언제나처럼, 전 여기 있을 거니까 무슨 일 있으면 알려주시고. 이제 한 분씩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그럼.”
먼저 앞장선 사람은 전대환이었다.
녹색 광막을 넘어간 그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그를 시작으로, 학생들이 하나둘 던전으로 입장했다.
곧 수호 차례가 왔다.
‘흐음.’
다들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걸 보면 별거 아닌 거 같긴 한데, 어째 좀 거부감이 든다.
이글거리는 녹광.
증발하듯 사라지는 사람들.
무공과 각종 비술이 존재했던 천 년 전 기준으로 봐도 충분히 기이하다 할만 했다.
‘뭐, 진수호도 몇 번이고 했던 거니까.’
수호가 발을 내밀었다.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그 느낌은 금세 사라졌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들자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초원?’
푸른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탁 트인 전망에, 공기가 상쾌했다.
수호는 의문을 품었다.
‘분명 지하로 들어왔는데?’
진수호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던전은 주위 환경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일종의 아공간. 이럴 수도 있다.’
수호의 뒤를 이어 나머지 학생들도 던전으로 들어왔다.
전대환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동해 온 것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
그는 학생들을 집합시키고는 주의사항을 말했다.
“한두 번 말한 것도 아니니까 짧게 끝낸다. 1번 스테이지는 개인별 자율 실습. 2번부터는 조별로 바뀌는 거 다 알고 있지?”
“네, 알아요!”
이구동성으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흠흠, 몇 마디 하지도 않았어. 마지막으로, 이거는 꼭 지켜야 한다는 거 다 알 거라 생각한다. 클리어하고 다 모인 다음에, 내가 넘어간다고 해야 넘어가는 거야. 알겠지?”
학생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입을 모았다.
“그럼 이제 장비 챙기자.”
교사들이 둘씩 짝을 지어 철재 캐비닛을 들고 왔다.
포탈 앞에 하나씩 내려놓자 학생들이 다가가 검이며 도끼, 단창 등의 무기를 꺼냈다.
경태도 뭔가를 가지고 오고 있었다.
그가 든 건, 고대 그리스 시절의 스파르타 병사들이나 썼을 법한 원형 방패였다.
수호가 그에게 물었다.
“뭐야, 그건?”
“난 스킬이 좀 공격적이라서. 무기보단 이런 게 더 나아. 너도 뭐 하나 들고 오지?”
“아, 그래야지.”
수호도 가서 캐비닛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남은 거라곤 표창이나 부메랑 같은, 무기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들뿐.
“어, 수호야…….”
이를 본 전대환은 살짝 난감해했다.
“네가 있었지. 으음, 이게 다 개인 무기라 남은 게 없거든? 준비해야 한다고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미처 신경을 못 썼네. 미안하다.”
그는 캐비닛을 뒤져 그나마 쓸 만한 것을 찾아냈다.
“이거라도 쓰는 건 어때?”
전대환이 내민 것은 강철로 된 쌍절곤이었다.
“아, 네…….”
그래도 빈손인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받아들었다.
“뭐야, 이소룡이냐?”
경태 옆으로 돌아오자 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런 거밖에 없어.”
“그런 장난감으론 좀 빡셀 텐데.”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건 그렇지만…….”
무기 분배가 끝나자 바로 실습 시작이었다.
담임의 허락이 떨어지자 C반 전원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오직 수호뿐.
전대환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왜 그러고 있어?”
“일단 좀 보려고요.”
던전은 처음인 데다, 진수호의 기억에도 없는 낯선 던전이어서 약간의 신중함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조심스러운 건 좋은데, 빨리 움직여야 할 걸? 넋 놓고 있다간 다 뺏긴다.”
같은 반 녀석들은 이미 초원 곳곳의 마물들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 던전의 마물은 정말 못생겼다.
우둘투둘한 파충류 같은 피부에 잔뜩 찌그러진 면상.
양쪽 어금니는 매우 발달해서 입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누가 봐도 괴물 같이 생겼는데, 그런 놈이 또 이족보행 하는 인간형이라 더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건 뭐라고 부르죠?”
“자르쿰. 아주 호전적이고 잔인한 놈들이지. 머리는 좀 나쁘지만. 근데 계속 보고만 있을 거니?”
“슬슬 움직여야죠.”
수호도 자르쿰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좀 돌아다니다 보니 혼자 남겨진 놈을 찾을 수 있었다.
푸르르르르!
자르쿰은 거무죽죽한 입술을 진동시키며 투레질을 했다.
놈은 사람 머리통만 한 철퇴를 들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그쪽도 수호를 인지했는지 괴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자르쿰! 자르쿰!”
‘저래서 자르쿰인가?’
놈은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후웅! 후웅!
파공음이 살벌하다.
그런데 이에 맞설 무기로 수호가 들고 있는 건, 어디 체육사 같은 데서 구입해 온 듯한 쌍절곤인데…….
수호는 철퇴를 피하면서 쌍절곤으로 자르쿰 전사의 등을 후려갈겼다.
그래도 알루미늄이나 나무로 된 게 아닌, 속이 꽉 찬 강철이라서 살인 무기라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도 놈은 등에 몇 대나 맞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어서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가는지 의문이었다.
원래가 좀 몇 대 맞은 듯한 얼굴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렇게는 답이 없어 보인다.
수호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는 먼저 사냥을 시작한 동기들을 찾아다녔다.
‘다 잡아가는군.’
마침 발견한 사람은 홍기훈이란 녀석이었다.
그는 경태의 절친 중 한 명으로, 그나마 수호가 C반 중에서 좀 안다고 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의 스킬은 홀딩.
윤상호의 <죽은 자의 손길>과 같은 계열이다.
그가 상대하던 자르쿰의 발목에는 빛나는 끈 같은 게 족쇄처럼 채워져 있었다.
이게 유지되는 동안은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한다.
“죽어, 이 괴물아!”
기훈은 무방비 상태인 자르쿰의 뒤에 서서 칼질을 해대고 있었다.
자르쿰의 숨은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놈이 쓰러지자 수호가 가서 물었다.
“나 이거 써도 되지?”
바닥에 놓인 무기를 가리키자 기훈이 의아해했다.
“되긴 하는데, 그걸 어디다 쓰게?”
수호는 쌍절곤을 보여줬다.
“이거보단 낫잖아?”
“흐음, 그러네. 아직 하나도 못 잡았어?”
“어…….”
“자식, 열심히 해라.”
기훈은 수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다음 사냥을 하러 갔다.
‘근데 이건 뭐지?’
자르쿰이 떨어뜨린 것은 할버드였다.
긴 자루 끝에 도끼 모양의 날이 달린 것으로, 서양에서 쓰던 무기라 당연히 수호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월아극하고 좀 비슷하긴 하군.”
그는 자루를 길게 잡고 할버드를 휘젓듯이 돌렸다.
간만에 느껴보는 손맛이었다.
하긴, 환생 이후로는 무기를 잡아볼 일이 없었다.
“뭐,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몇 번 휘둘러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전생에 그의 주병은 검이었지만, 그렇다고 검만 파는 외길 인생은 또 아니었다.
그는 십팔반병기 전반에 걸쳐 통달해 있었고, 그 외에 무기로 쓸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달인급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괴물이라……. 누가 더 잘 쓰나 보자고.”
수호는 할버드를 들고 철퇴를 든 자르쿰에게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그의 활약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한 게 하나도 없는 수준이다.
다른 녀석들은 다 한 마리씩은 잡은 시점인데, 수호 혼자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병기를 손에 쥔 지금, 갑자기 존재감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