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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너도 덩달아 유명해지는 거 아니냐고 영석이 말했을 때.
수호는 그럴 리가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날 교실.
자리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 너 송화영 친구라며?”
“친구?”
반문하자 녀석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수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미 소문 쫙 돌았어. 송화영이 2학년들 참교육 시켰다더라? 너 건드릴 생각 말라고 엄포 제대로 놓았다던데?”
갑자기 아는 체를 하는 이 녀석은 최경태였다.
C반의 분위기 메이커 같은 캐릭터라 이틀 동안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데도 어떻게 이름을 알게 됐다.
“그게 그렇게 알려졌나? 아닌데.”
수호의 해명에도 경태는 짓궂은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계속 캐물었다.
“그 정도면 보통 사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진짜 친구 맞아?”
“글쎄, 잘 모르겠다.”
“헉, 그렇다는 건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애매모호한 사이?”
경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매력 포인트가 뭐길래?”
경태의 눈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수호를 스캔했다.
다부진 몸에 큰 키.
얼굴도 딱히 모난 데는 없었다.
찬찬히 뜯어보면 좀 괜찮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나름 괜찮긴 했지만 그래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스타일,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타입, 둘 다 아닌 건 분명했다.
“송화영이 눈이 많이 낮은가?”
“뭐?”
수호가 살짝 인상을 썼다.
이를 본 경태는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아하하. 뭐,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는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최경태의 반응이 자연스러운 거긴 했다.
자신과 화영의 랭크 차이.
화영이 B반 수준을 넘었다는 말이 맞는다면, 2차 각성 전의 자신과 윤상현보다 더 차이가 나는 거였다.
단순 비교로도 그런데 상위 랭크로 갈수록 랭크 상승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격차는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
그리고 각성자에게 랭크란…….
랭크가 다르면 사는 세계 자체가 다르다.
모든 것을 랭크로만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각성자에게 그보다 중요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지금만 봐도.
화영과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투명 인간 취급에서 벗어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영석의 말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은 셈이었다.
최경태 이후로도 여러 명이 수호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들 그와 화영과의 관계를 궁금해 했다.
덕분에 수업 시작 전까지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쉬는 시간.
수호는 바로 교실을 나왔다.
차라리 무관심이 나았다.
쓰잘머리 없는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건 고역이었다.
“야, 어디 가냐?”
쫓아온 사람은 최경태였다.
짧게 대답해 줬다.
“매점.”
“그래? 어째 나도 좀 출출하긴 한데? 같이 가도 되지?”
“……그래라.”
경태는 좋다고 따라붙었다.
매점에 도착하자 그가 선심 쓰듯 말했다.
“너 우리 반에 온 거 환영하는 겸 해서 내가 쏜다. 마음껏 골라.”
수호는 자판기 앞으로 갔다.
“난 커피. 아니, 에너지 드링크로.”
경태는 그가 고른 것을 뽑아서 줬다.
“밤에 잠이라도 설쳤어? 아니면 원래 이쪽 취향?”
“아, 한숨도 못 잤거든.”
“뭐 하다가?”
“글쎄, 생각할 게 좀 많아서.”
“뭔 철학자야? 근데 그런 것 치고는 쌩쌩해 보이는데?”
수호는 대답 대신 에너지 드링크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진열대로 갔다.
보이는 대로 골라잡아 카운터 위에 올려놓자 경태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그, 그거 다 먹을 수 있어?”
“마음껏 고르라고 하지 않았어?”
“그… 러긴 했지만, 난 못 먹고 버릴까 봐.”
“그건 걱정하지 마.”
경태는 씁쓸한 표정으로 계산을 마쳤다.
수호가 테이블에 앉아 어제 못한 식사를 대신하는 동안, 경태는 자기가 산 빵이며 과자 등에는 손도 안 대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문득 넌지시 물어왔다.
“정말 송화영하고 사귀는 사이 아닌 거 맞아?”
“결국 그게 궁금해서 따라온 건가?”
“뭐, 겸사겸사지.”
“아까 아니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아니, 딱 잘라서 아니라고 선 긋지는 않았지. 그리고 교실하고 이런 진솔한 자리하고 같니?”
“이게 진솔?”
학생들로 붐비는 시끄러운 매점이 어째서 그런 장소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크흠, 아무튼. 비밀은 지켜줄 테니까 이거 하나만 확실히 말해줘. 맞아, 아니야?”
“아니지.”
“진짜로? 썸 타는 것도 아니고?”
“입학시험 보면서 처음 만났고, 거기서 알게 된 뒤로 몇 번 봤을 뿐. 그게 다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별 사이도 아닌데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고?”
“마음대로 생각해라.”
경태는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니라 이거지? 그럼 나한테 송화영 소개시켜 줄 수 있어?”
“그건 좀…….”
수호가 말끝을 흐리자 경태가 거보라는 듯 외쳤다.
“맞네, 이거 뭔가 있어. 왜 대답을 못 해? 아무 사이도 아니면 소개 못 시켜줄 이유가 없는데?”
“아니, 나도 나지만 너는 더 말이 안 되니까.”
“뭐 이 자식아? 너보단 내가 낫지. 너 랭크 뭔데?”
“C-다.”
“크음, 나하고 같네.”
경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괜히 조기 승격한 게 아니긴 하구나.”
그는 갑자기 수호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옆으로 와 앉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같은 등급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힘들었지? 앞으론 나만 믿어.”
글쎄, 과연?
경태는 믿음직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그와 하루 같이 다녀보니 도움이 되긴 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경태는 C반 모두와 두루 친했다.
소위 말하는 ‘인싸 타입’이라고나 할까?
옆에만 있어도 저절로 친구가 생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성격적 특성 외에도 최경태는 C반의 마당발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췄다.
C-는 C반의 중간급 랭크라 상위권이 견제할 일은 없지만, 그만큼 수가 많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그들은 똘똘 뭉쳐 일종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구심점이 되는 게 최경태였다.
수업이 모두 끝났다.
수호는 일찌감치 하교 준비를 하고 일어나는 참이었다.
경태가 와서 어깨동무를 했다.
“너 이제 뭐 하냐? 우리 저녁 나가서 먹을 거거든? 너도 갈래?”
수호가 옆을 바라봤다.
그가 오늘 사귄, 최경태의 절친들이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고마운데, 난 기숙사 갈란다.”
“왜? 같이 놀지.”
“할 일이 있어서.”
“무슨 할 일? 혹시……?”
화영이 언급되기 전에 수호가 먼저 끊었다.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
“뭐?”
“아니, 으음.”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경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다음엔 같이 가는 거다?”
“알았어.”
수호는 학교 건물을 나와서 주위를 살펴봤다.
윤상호 트리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화영의 존재감이 상당하긴 한 모양이다.
그 파파라치 같은 놈들이 경고 한 번으로 사라지다니.
“혼자라면 얼마든지 찾아와도 좋다고 했는데 소심하긴.”
수호는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반에서는 왕따에, 클래스 밖에서는 2학년들에게 린치당할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두 가지 문제가 다 해결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화영이다.
반에 융화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도와준 사람은 경태지만, 결국 그것도 화영과의 친분 관계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다.
‘진작 도움을 구했으면 윤상현한테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진수호 자존심도 보통은 아니군.’
이런 부분은 마음에 든다.
남자라면 닥쳐온 위기를 혼자 힘으로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수호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일찍 온 탓인지 영석은 아직 이었다.
‘빨리 오길 잘했군.’
가방을 던져 놓고,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가부좌부터 틀었다.
어제는 느낄 수 없었던 온기가 그를 반겼다.
아랫배에 든 기운.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불씨로 치면 기껏해야 촛불 정도?
하지만 꺼져버린 불씨를 다시 지폈다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
그는 시야에 뜬 정보창을 살폈다.
=============================
진수호 (Lv. 3) 랭크 C-
<스킬 목록>
칼날바람
마제강림(패시브)
흑위마공(1성)
????
????
……
……
=============================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어 있었다.
흑위마공의 상세 정보는 이러했다.
=============================
<흑위마공>
혈마제의 독문 내가기공.
마공의 특성인 폭발력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정순함까지 갖추었다.
=============================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무공은 스킬과는 다른 건데…….’
하지만 시스템은 이를 하나로 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결국 에너지를 내공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고, 내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절반의 성공이기는 하지만.’
제일 어려웠던 건 변환 과정보다는 딱딱한 성질의 에너지를 녹여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 단계를 지난 뒤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호는 기감을 위쪽으로 옮겼다. 에너지의 양은…….
‘3분의 2는 찼군.’
아침에 텅텅 비워 놓고 나갔으니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대략적으로 계산해볼 수 있다.
그는 내공을 상체로 끌어올렸다.
그것으로 에너지의 표면을 노크하자 어느새 균열이 생겼다.
어제는 여기까지 오는 데도 한참이나 걸렸지만, 지금은 내공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다.
곧 에너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호는 흑위마공의 구결에 따라 운기를 시작했다.
점차 에너지는 본래의 성질을 잃고 흑위마공의 기운으로 변해 갔다.
내공을 다시 단전으로 돌려보내 갈무리하고.
수호가 눈을 떴다.
번쩍!
두 눈동자에 정광이 감돈다.
막 마공 수련을 마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한 눈빛이었다.
그는 내공이 얼마나 늘었는지 헤아려 봤다.
‘미미하네.’
굳이 따지자면 손톱만큼?
둔감한 사람이라면 눈치를 못 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내공 수련은 눈밭에서 공을 굴리는 것과 같아서 경지가 깊어질수록 탄력이 붙는다.
많은 내공은 보다 많은 양의 외부 기운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호가 개발해낸 이 방식은 내공의 깊이와는 관계가 없고 오로지 가진 에너지의 양에만 영향을 받았다.
C-급의 에너지는 그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험 삼아 새로 생긴 내공을 가지고 운기조식을 해봤지만, 그렇게 모은 기운은 또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해서는 하세월인데.’
지금의 상황은 눈앞에 대양이 펼쳐져 있는데 그걸 놔두고 도랑에 고인 물만 퍼내고 있는 격이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여기에 크게 집착하진 않았다.
그가 원했던 것은 스스로를 지킬 정도의 힘을 되찾는 거지 혈마제의 재림이 아니었다.
해서 일단은 이렇게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돌파구.
혹은 또 다른 실마리?
뭐가 됐든 한계를 뛰어넘을 계기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마련되었다.
너도 덩달아 유명해지는 거 아니냐고 영석이 말했을 때.
수호는 그럴 리가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날 교실.
자리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 너 송화영 친구라며?”
“친구?”
반문하자 녀석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수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미 소문 쫙 돌았어. 송화영이 2학년들 참교육 시켰다더라? 너 건드릴 생각 말라고 엄포 제대로 놓았다던데?”
갑자기 아는 체를 하는 이 녀석은 최경태였다.
C반의 분위기 메이커 같은 캐릭터라 이틀 동안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데도 어떻게 이름을 알게 됐다.
“그게 그렇게 알려졌나? 아닌데.”
수호의 해명에도 경태는 짓궂은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계속 캐물었다.
“그 정도면 보통 사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진짜 친구 맞아?”
“글쎄, 잘 모르겠다.”
“헉, 그렇다는 건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애매모호한 사이?”
경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매력 포인트가 뭐길래?”
경태의 눈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수호를 스캔했다.
다부진 몸에 큰 키.
얼굴도 딱히 모난 데는 없었다.
찬찬히 뜯어보면 좀 괜찮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나름 괜찮긴 했지만 그래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스타일,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타입, 둘 다 아닌 건 분명했다.
“송화영이 눈이 많이 낮은가?”
“뭐?”
수호가 살짝 인상을 썼다.
이를 본 경태는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아하하. 뭐,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는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최경태의 반응이 자연스러운 거긴 했다.
자신과 화영의 랭크 차이.
화영이 B반 수준을 넘었다는 말이 맞는다면, 2차 각성 전의 자신과 윤상현보다 더 차이가 나는 거였다.
단순 비교로도 그런데 상위 랭크로 갈수록 랭크 상승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격차는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
그리고 각성자에게 랭크란…….
랭크가 다르면 사는 세계 자체가 다르다.
모든 것을 랭크로만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각성자에게 그보다 중요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지금만 봐도.
화영과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투명 인간 취급에서 벗어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영석의 말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은 셈이었다.
최경태 이후로도 여러 명이 수호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들 그와 화영과의 관계를 궁금해 했다.
덕분에 수업 시작 전까지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쉬는 시간.
수호는 바로 교실을 나왔다.
차라리 무관심이 나았다.
쓰잘머리 없는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건 고역이었다.
“야, 어디 가냐?”
쫓아온 사람은 최경태였다.
짧게 대답해 줬다.
“매점.”
“그래? 어째 나도 좀 출출하긴 한데? 같이 가도 되지?”
“……그래라.”
경태는 좋다고 따라붙었다.
매점에 도착하자 그가 선심 쓰듯 말했다.
“너 우리 반에 온 거 환영하는 겸 해서 내가 쏜다. 마음껏 골라.”
수호는 자판기 앞으로 갔다.
“난 커피. 아니, 에너지 드링크로.”
경태는 그가 고른 것을 뽑아서 줬다.
“밤에 잠이라도 설쳤어? 아니면 원래 이쪽 취향?”
“아, 한숨도 못 잤거든.”
“뭐 하다가?”
“글쎄, 생각할 게 좀 많아서.”
“뭔 철학자야? 근데 그런 것 치고는 쌩쌩해 보이는데?”
수호는 대답 대신 에너지 드링크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진열대로 갔다.
보이는 대로 골라잡아 카운터 위에 올려놓자 경태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그, 그거 다 먹을 수 있어?”
“마음껏 고르라고 하지 않았어?”
“그… 러긴 했지만, 난 못 먹고 버릴까 봐.”
“그건 걱정하지 마.”
경태는 씁쓸한 표정으로 계산을 마쳤다.
수호가 테이블에 앉아 어제 못한 식사를 대신하는 동안, 경태는 자기가 산 빵이며 과자 등에는 손도 안 대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문득 넌지시 물어왔다.
“정말 송화영하고 사귀는 사이 아닌 거 맞아?”
“결국 그게 궁금해서 따라온 건가?”
“뭐, 겸사겸사지.”
“아까 아니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아니, 딱 잘라서 아니라고 선 긋지는 않았지. 그리고 교실하고 이런 진솔한 자리하고 같니?”
“이게 진솔?”
학생들로 붐비는 시끄러운 매점이 어째서 그런 장소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크흠, 아무튼. 비밀은 지켜줄 테니까 이거 하나만 확실히 말해줘. 맞아, 아니야?”
“아니지.”
“진짜로? 썸 타는 것도 아니고?”
“입학시험 보면서 처음 만났고, 거기서 알게 된 뒤로 몇 번 봤을 뿐. 그게 다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별 사이도 아닌데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고?”
“마음대로 생각해라.”
경태는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니라 이거지? 그럼 나한테 송화영 소개시켜 줄 수 있어?”
“그건 좀…….”
수호가 말끝을 흐리자 경태가 거보라는 듯 외쳤다.
“맞네, 이거 뭔가 있어. 왜 대답을 못 해? 아무 사이도 아니면 소개 못 시켜줄 이유가 없는데?”
“아니, 나도 나지만 너는 더 말이 안 되니까.”
“뭐 이 자식아? 너보단 내가 낫지. 너 랭크 뭔데?”
“C-다.”
“크음, 나하고 같네.”
경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괜히 조기 승격한 게 아니긴 하구나.”
그는 갑자기 수호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옆으로 와 앉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같은 등급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힘들었지? 앞으론 나만 믿어.”
글쎄, 과연?
경태는 믿음직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그와 하루 같이 다녀보니 도움이 되긴 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경태는 C반 모두와 두루 친했다.
소위 말하는 ‘인싸 타입’이라고나 할까?
옆에만 있어도 저절로 친구가 생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성격적 특성 외에도 최경태는 C반의 마당발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췄다.
C-는 C반의 중간급 랭크라 상위권이 견제할 일은 없지만, 그만큼 수가 많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그들은 똘똘 뭉쳐 일종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구심점이 되는 게 최경태였다.
수업이 모두 끝났다.
수호는 일찌감치 하교 준비를 하고 일어나는 참이었다.
경태가 와서 어깨동무를 했다.
“너 이제 뭐 하냐? 우리 저녁 나가서 먹을 거거든? 너도 갈래?”
수호가 옆을 바라봤다.
그가 오늘 사귄, 최경태의 절친들이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고마운데, 난 기숙사 갈란다.”
“왜? 같이 놀지.”
“할 일이 있어서.”
“무슨 할 일? 혹시……?”
화영이 언급되기 전에 수호가 먼저 끊었다.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
“뭐?”
“아니, 으음.”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경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다음엔 같이 가는 거다?”
“알았어.”
수호는 학교 건물을 나와서 주위를 살펴봤다.
윤상호 트리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화영의 존재감이 상당하긴 한 모양이다.
그 파파라치 같은 놈들이 경고 한 번으로 사라지다니.
“혼자라면 얼마든지 찾아와도 좋다고 했는데 소심하긴.”
수호는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반에서는 왕따에, 클래스 밖에서는 2학년들에게 린치당할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두 가지 문제가 다 해결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화영이다.
반에 융화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도와준 사람은 경태지만, 결국 그것도 화영과의 친분 관계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다.
‘진작 도움을 구했으면 윤상현한테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진수호 자존심도 보통은 아니군.’
이런 부분은 마음에 든다.
남자라면 닥쳐온 위기를 혼자 힘으로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수호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일찍 온 탓인지 영석은 아직 이었다.
‘빨리 오길 잘했군.’
가방을 던져 놓고,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가부좌부터 틀었다.
어제는 느낄 수 없었던 온기가 그를 반겼다.
아랫배에 든 기운.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불씨로 치면 기껏해야 촛불 정도?
하지만 꺼져버린 불씨를 다시 지폈다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
그는 시야에 뜬 정보창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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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호 (Lv. 3) 랭크 C-
<스킬 목록>
칼날바람
마제강림(패시브)
흑위마공(1성)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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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어 있었다.
흑위마공의 상세 정보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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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위마공>
혈마제의 독문 내가기공.
마공의 특성인 폭발력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정순함까지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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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무공은 스킬과는 다른 건데…….’
하지만 시스템은 이를 하나로 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결국 에너지를 내공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고, 내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절반의 성공이기는 하지만.’
제일 어려웠던 건 변환 과정보다는 딱딱한 성질의 에너지를 녹여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 단계를 지난 뒤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호는 기감을 위쪽으로 옮겼다. 에너지의 양은…….
‘3분의 2는 찼군.’
아침에 텅텅 비워 놓고 나갔으니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대략적으로 계산해볼 수 있다.
그는 내공을 상체로 끌어올렸다.
그것으로 에너지의 표면을 노크하자 어느새 균열이 생겼다.
어제는 여기까지 오는 데도 한참이나 걸렸지만, 지금은 내공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다.
곧 에너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호는 흑위마공의 구결에 따라 운기를 시작했다.
점차 에너지는 본래의 성질을 잃고 흑위마공의 기운으로 변해 갔다.
내공을 다시 단전으로 돌려보내 갈무리하고.
수호가 눈을 떴다.
번쩍!
두 눈동자에 정광이 감돈다.
막 마공 수련을 마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한 눈빛이었다.
그는 내공이 얼마나 늘었는지 헤아려 봤다.
‘미미하네.’
굳이 따지자면 손톱만큼?
둔감한 사람이라면 눈치를 못 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내공 수련은 눈밭에서 공을 굴리는 것과 같아서 경지가 깊어질수록 탄력이 붙는다.
많은 내공은 보다 많은 양의 외부 기운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호가 개발해낸 이 방식은 내공의 깊이와는 관계가 없고 오로지 가진 에너지의 양에만 영향을 받았다.
C-급의 에너지는 그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험 삼아 새로 생긴 내공을 가지고 운기조식을 해봤지만, 그렇게 모은 기운은 또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해서는 하세월인데.’
지금의 상황은 눈앞에 대양이 펼쳐져 있는데 그걸 놔두고 도랑에 고인 물만 퍼내고 있는 격이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여기에 크게 집착하진 않았다.
그가 원했던 것은 스스로를 지킬 정도의 힘을 되찾는 거지 혈마제의 재림이 아니었다.
해서 일단은 이렇게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돌파구.
혹은 또 다른 실마리?
뭐가 됐든 한계를 뛰어넘을 계기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