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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누군지 하나도 관심 없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거든?”
화영은 스킬의 강도를 높였다.
“이런 꼴이 되고도 여전히 뻗대는 걸 보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짐작이 가네.”
억지로 고개를 쳐드는 윤상호의 목에 굵은 핏줄이 섰다.
계속 이러고 있다간 몸이 펑 터져버리는 건 아닌지.
그렇게 생각될 정도의 압력이었다.
양쪽에서 두 인간들이 괴성을 질렀다.
“야! 그만하고 알겠다고 해!”
“뭐해? 빨리 말해!”
친구들이 재촉하는데도 윤상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여자한테 보호나 받고. 남자 새끼가 쪽팔리지도 않냐?”
윤상호는 고통을 참으며 수호를 향해 소리쳤다.
그 말에, 화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신 못 차리지?”
“끄억!”
“애쓴다.”
수호가 코웃음을 쳤다.
나름 뼈 때려보려고 저러는 거 같은데 우습기만 했다.
수호는 윤상호에게 다가가서 그를 내려다봤다.
“그쪽이 그런 말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자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추 떼라, 새끼야!”
말이 안 통한다.
가볍게 무시하려던 수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딴 인간의 도발에 놀아날 필요는 없지만, 잘 모르는 화영에게 괜한 빚을 지는 것도 좀 그렇긴 했다.
‘이건 서문환의 사고방식인가?’
나는 진수호다.
17세 고등학생이자 수호자 지망생이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기로 다짐한 지 이제 일주일.
이전 생의 자신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위와 같은 말을 되뇌며 억눌렀다.
혈마제였으면 여자애 치마폭 뒤에 숨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진수호라면?
생각을 끝마친 수호가 입을 열었다.
“그만해.”
“응?”
화영의 눈에 물음표가 떴다.
“도와줘서 고맙지만, 역시 이건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윤상현으로부터 시작된 증오의 연쇄.
이는 자신이 끊어야만 한다.
천 년 전에도 그랬다.
은원이란 남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호의 표정이 진지한 것을 보고 화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녀가 스킬을 해제하자 윤상호 트리오를 억누르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
“으헉!”
“허어어억!”
겨우 되찾은 자유에,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윤상호.”
“왜? 뭐!”
“그쪽 말대로 쪽팔리지 않게 하자고.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어? 얼마든지 찾아와. 단, 떨거지들은 떼어 놓고.”
“떨거지? 야, 1학년! 말 다 했어?”
두 떨거지는 자신들을 낮잡아 보는 표현에 격분하다가 화영의 눈초리를 보고 바로 물러났다.
“가자.”
화영이 옆으로 가까이 붙어 왔다.
부드러운 감촉,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좋은 냄새가 났다.
“으음.”
부담스러워진 수호는 거리를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뜻밖의 트러블로 주위의 시선이 둘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하교 시간도 꽤 지난 참이라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본 학생들은 모두 호기심 어린 눈을 떼지 못했다.
혼자인 애는 입을 벌린 채 쳐다보고, 둘 이상의 무리는 서로 쿡쿡 찌르며 뭐라 수군거리고 있었다.
‘왜 저러지?’
요 며칠 투명 인간처럼 지내다 보니 남들의 관심이 낯설었다.
신기해하는 눈빛에는 왠지 모를 부러움이 담긴 듯도 했다.
‘하긴 1학년이 선배를 무릎 꿇렸으니 당연한 건가?’
그렇게 학생들의 눈길을 받으며 걷던 중.
“저기…….”
화영이 수호의 얼굴을 살피며 먼저 말을 걸었다.
“왜?”
“혹시 내가 주제넘었던 건 아니지?”
수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전혀. 좋은 뜻으로 한 거잖아.”
“으, 으응…….”
“성가신 인간을 치워버리려면 그편이 더 확실할 거 같아서. 남의 손을 빌리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잖아.”
“…….”
이에 화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수호가 화제를 돌렸다.
톤도 확 바꾸고 비아냥을 실었다.
“형제간에 우애가 눈물겹던데. 어제부터 계속 따라다니면서 무슨 철천지원수 대하듯 하더라고. 그럴 시간에 병원 가서 동생 간병이나 할 것이지.”
“그 동생이 널 괴롭혔던 그 애지?”
“어, 윤상현이라고 형 못지않은 또라이 있거든? 걔한테 많이 당했었지.”
무슨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다.
수호가 물었다.
“근데 넌 어떻게 아는 거야? 설마 이거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 건가?”
어쩐지 보는 눈들이 심상치가 않더라니.
수호가 얼굴을 구기자 화영이 고개를 저었다.
“나, 난 전혀 몰랐어. 네가 C반으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은 게 어제거든. 그러면서 내막도 알게 됐는데… 정말 미안해.”
“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잖아.”
“진작 알았으면 뭐라도 했을 텐데. 그런데 난 까맣게 모르고.”
“뭐,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잘 된 거지. 그 정도로 내몰렸기 때문에 2차 각성이 된 건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었으면 난 여기 없었겠지.”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수호 외에는 아무도 진의를 이해할 수 없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리둥절해 하는 화영이었다.
수호는 다른 학폭 피해자들과 같다고 볼 수는 없었다.
랭크업 후, 당한 만큼 돌려주는 걸로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으니 꽤 잘 풀린 셈이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쿨한 태도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윤상현한테 고맙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형제가 쌍으로 저러는 거 보니까 더 밥맛이긴 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금세 기숙사 앞까지 왔다.
같은 1학년 기숙사를 쓰지만 남학생과 여학생은 또 그 안에서도 나뉘기 때문에 여기서 헤어져야 했다.
“그럼 이쯤에서?”
화영이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음에 보자.”
“그래, 꼭. 그, 그리고!”
“음?”
망설이던 화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항상 모든 걸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잖아!”
“내가 그랬었나?”
“지금도 그러고 있으면서.”
“전에도?”
화영과 눈이 마주쳤다.
긍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모처럼 진수호와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다.
“내가 안타까운 건, 바로 옆에 널 기꺼이 도울 사람이 있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바로 옆?”
화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
말은 고맙긴 한데, 이럴 정도로 진수호와 친밀한 관계였나?
‘그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갸웃거리는 순간,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뇌리에서 번득였다.
“잠깐. 바로 옆?”
“……?”
“가장 가까이에…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앗!”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수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보 같은 놈.”
“응?”
“아니, 아니야. 아, 내가 원래 이렇게 멍청했었나?”
수호는 뭐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화영을 지나쳐 갔다.
“……”
화영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기숙사 앞 현관.
수호가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야! 진수호!”
돌아보니 영석이었다.
그는 헐레벌떡 뛰어와서 수호를 붙잡고 말했다.
“내,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잘못 보긴 뭘?”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애… 송화영 아니냐?”
“맞아.”
“에엑?”
영석이 언성을 높였다.
“네가 걔하고는 무슨 일인데? 왜 같이 있었던 거야?”
그는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수호는 한시라도 빨리 방으로 가서 조금 전에 떠오른 가능성을 확인하고픈 마음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영석의 상기된 얼굴을 보니 짧게 끊고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딱히 뭔 일이 있어야 하나? 아는 사이니까 오가다 볼 수도 있는 거지.”
“원래 아는 사이라고? 송화영하고?”
영석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 듯했다.
“송화영은 1학년 최고 에이스잖아. 얼굴까지 예뻐서 더 유명하고.”
“그래서, 나 따위가 그런 애를 안다는 게 이상하다?”
“야, 뭘 그렇게 받아들이냐? 나도 유명인 친구는 있어. 너도 이젠 나보다 훨씬 대단하고.”
“대단은 무슨.”
“아무튼, 신기하긴 하잖아. 접점이 전혀 없는 거 같은데 안면이 있다고 하니까.”
“별걸 다 신기해하네. 그래 봐야 같은 1학년인데.”
영석은 그렇지가 않다고 했다.
“1학년에 A반이 없어서 B반에 있는 것뿐이지 실제 랭크는 그 이상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야. 그런 급이면 라이선스는 이미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고. 사실 왜 월반 안 하고 1학년에 있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
화영이 그 정도였나?
영석이 한 말.
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기는 했다.
“아무튼, 덕분에 너도 유명해지는 거 아냐? 둘이 같이 다니는 거 본 사람이 없진 않을 텐데.”
“설마 그런 걸로.”
수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의 관심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남들의 반응이 아니라 새롭게 찾아낸 실마리였다.
두 사람은 304호로 돌아왔다.
곧 저녁 시간, 수호는 오늘도 입맛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너, 내가 아는 진수호가 맞냐?”
영석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왜?”
“수호자를 하려면 체격도 좋아야 한다면서? 너 그래서 밥 먹는 거 절대 안 걸렀잖아.”
“내가 그랬나?”
“배불러서 안 먹겠다고 해도 억지로 끌고 가던 사람이 누군데… 여기서 더 커야 된다며?”
“이 정도면 충분히 컸지 뭘.”
“글쎄, 보통 사람치고는 큰 건데 수호자라면 역시 좀 아우라가 있어야 한달까? 요즘은 수호자도 비주얼이 중요한 시대니까. 아니, 이건 네가 말하던 거잖아! 나도 동의는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더라고. 우리가 운동선수나 패션모델을 지망하는 건 아니잖아?”
“갑자기 그렇게 180도 바뀐다고?”
영석은 납득을 못 하는 듯했지만, 이게 논쟁거리가 될 만한 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영석이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수호는 바삐 움직였다.
바로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했다.
기감이 예민해지자 천지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의 기운에는 신경 쓰지 않고 신체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려 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제 밤을 새우면서 확실하게 알게 됐다.
지금 집중할 부분은 밖이 아니라 안.
더 정확히는 심장 부근에 모여 있는 에너지다.
그의 발상은 이것이었다.
‘에너지도 어쩌면 내공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성질이 다르고 해내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그것도 대자연에서 비롯된 기운 아닐까?’
그렇게 가정해 본다면 에너지를 내공으로 변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수호는 한 가지 무공구결을 떠올렸다.
<흑위마공>
이는 혈마제 무공의 근간을 이루는 내공심법이다.
검법, 권법, 경신술 등 마제의 각종 무공 중에서 흑위마공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으며 전부 그 영향력 아래 있다.
‘외부의 기운을 흡수할 수 없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운을 이용해 주지!’
각성자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미지의 힘, 에너지.
그는 흑위마공을 통해 이를 내공화시킬 생각이었다.
‘이런 발상을 한 사람이 또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물론…….
‘있을 수가 없지. 내가 최초다.’
수호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걸렸다.
“누군지 하나도 관심 없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거든?”
화영은 스킬의 강도를 높였다.
“이런 꼴이 되고도 여전히 뻗대는 걸 보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짐작이 가네.”
억지로 고개를 쳐드는 윤상호의 목에 굵은 핏줄이 섰다.
계속 이러고 있다간 몸이 펑 터져버리는 건 아닌지.
그렇게 생각될 정도의 압력이었다.
양쪽에서 두 인간들이 괴성을 질렀다.
“야! 그만하고 알겠다고 해!”
“뭐해? 빨리 말해!”
친구들이 재촉하는데도 윤상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여자한테 보호나 받고. 남자 새끼가 쪽팔리지도 않냐?”
윤상호는 고통을 참으며 수호를 향해 소리쳤다.
그 말에, 화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신 못 차리지?”
“끄억!”
“애쓴다.”
수호가 코웃음을 쳤다.
나름 뼈 때려보려고 저러는 거 같은데 우습기만 했다.
수호는 윤상호에게 다가가서 그를 내려다봤다.
“그쪽이 그런 말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자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추 떼라, 새끼야!”
말이 안 통한다.
가볍게 무시하려던 수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딴 인간의 도발에 놀아날 필요는 없지만, 잘 모르는 화영에게 괜한 빚을 지는 것도 좀 그렇긴 했다.
‘이건 서문환의 사고방식인가?’
나는 진수호다.
17세 고등학생이자 수호자 지망생이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기로 다짐한 지 이제 일주일.
이전 생의 자신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위와 같은 말을 되뇌며 억눌렀다.
혈마제였으면 여자애 치마폭 뒤에 숨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진수호라면?
생각을 끝마친 수호가 입을 열었다.
“그만해.”
“응?”
화영의 눈에 물음표가 떴다.
“도와줘서 고맙지만, 역시 이건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윤상현으로부터 시작된 증오의 연쇄.
이는 자신이 끊어야만 한다.
천 년 전에도 그랬다.
은원이란 남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호의 표정이 진지한 것을 보고 화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녀가 스킬을 해제하자 윤상호 트리오를 억누르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
“으헉!”
“허어어억!”
겨우 되찾은 자유에,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윤상호.”
“왜? 뭐!”
“그쪽 말대로 쪽팔리지 않게 하자고.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어? 얼마든지 찾아와. 단, 떨거지들은 떼어 놓고.”
“떨거지? 야, 1학년! 말 다 했어?”
두 떨거지는 자신들을 낮잡아 보는 표현에 격분하다가 화영의 눈초리를 보고 바로 물러났다.
“가자.”
화영이 옆으로 가까이 붙어 왔다.
부드러운 감촉,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좋은 냄새가 났다.
“으음.”
부담스러워진 수호는 거리를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뜻밖의 트러블로 주위의 시선이 둘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하교 시간도 꽤 지난 참이라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본 학생들은 모두 호기심 어린 눈을 떼지 못했다.
혼자인 애는 입을 벌린 채 쳐다보고, 둘 이상의 무리는 서로 쿡쿡 찌르며 뭐라 수군거리고 있었다.
‘왜 저러지?’
요 며칠 투명 인간처럼 지내다 보니 남들의 관심이 낯설었다.
신기해하는 눈빛에는 왠지 모를 부러움이 담긴 듯도 했다.
‘하긴 1학년이 선배를 무릎 꿇렸으니 당연한 건가?’
그렇게 학생들의 눈길을 받으며 걷던 중.
“저기…….”
화영이 수호의 얼굴을 살피며 먼저 말을 걸었다.
“왜?”
“혹시 내가 주제넘었던 건 아니지?”
수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전혀. 좋은 뜻으로 한 거잖아.”
“으, 으응…….”
“성가신 인간을 치워버리려면 그편이 더 확실할 거 같아서. 남의 손을 빌리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잖아.”
“…….”
이에 화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수호가 화제를 돌렸다.
톤도 확 바꾸고 비아냥을 실었다.
“형제간에 우애가 눈물겹던데. 어제부터 계속 따라다니면서 무슨 철천지원수 대하듯 하더라고. 그럴 시간에 병원 가서 동생 간병이나 할 것이지.”
“그 동생이 널 괴롭혔던 그 애지?”
“어, 윤상현이라고 형 못지않은 또라이 있거든? 걔한테 많이 당했었지.”
무슨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다.
수호가 물었다.
“근데 넌 어떻게 아는 거야? 설마 이거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 건가?”
어쩐지 보는 눈들이 심상치가 않더라니.
수호가 얼굴을 구기자 화영이 고개를 저었다.
“나, 난 전혀 몰랐어. 네가 C반으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은 게 어제거든. 그러면서 내막도 알게 됐는데… 정말 미안해.”
“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잖아.”
“진작 알았으면 뭐라도 했을 텐데. 그런데 난 까맣게 모르고.”
“뭐,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잘 된 거지. 그 정도로 내몰렸기 때문에 2차 각성이 된 건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었으면 난 여기 없었겠지.”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수호 외에는 아무도 진의를 이해할 수 없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리둥절해 하는 화영이었다.
수호는 다른 학폭 피해자들과 같다고 볼 수는 없었다.
랭크업 후, 당한 만큼 돌려주는 걸로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으니 꽤 잘 풀린 셈이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쿨한 태도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윤상현한테 고맙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형제가 쌍으로 저러는 거 보니까 더 밥맛이긴 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금세 기숙사 앞까지 왔다.
같은 1학년 기숙사를 쓰지만 남학생과 여학생은 또 그 안에서도 나뉘기 때문에 여기서 헤어져야 했다.
“그럼 이쯤에서?”
화영이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음에 보자.”
“그래, 꼭. 그, 그리고!”
“음?”
망설이던 화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항상 모든 걸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잖아!”
“내가 그랬었나?”
“지금도 그러고 있으면서.”
“전에도?”
화영과 눈이 마주쳤다.
긍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모처럼 진수호와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다.
“내가 안타까운 건, 바로 옆에 널 기꺼이 도울 사람이 있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바로 옆?”
화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
말은 고맙긴 한데, 이럴 정도로 진수호와 친밀한 관계였나?
‘그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갸웃거리는 순간,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뇌리에서 번득였다.
“잠깐. 바로 옆?”
“……?”
“가장 가까이에…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앗!”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수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보 같은 놈.”
“응?”
“아니, 아니야. 아, 내가 원래 이렇게 멍청했었나?”
수호는 뭐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화영을 지나쳐 갔다.
“……”
화영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기숙사 앞 현관.
수호가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야! 진수호!”
돌아보니 영석이었다.
그는 헐레벌떡 뛰어와서 수호를 붙잡고 말했다.
“내,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잘못 보긴 뭘?”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애… 송화영 아니냐?”
“맞아.”
“에엑?”
영석이 언성을 높였다.
“네가 걔하고는 무슨 일인데? 왜 같이 있었던 거야?”
그는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수호는 한시라도 빨리 방으로 가서 조금 전에 떠오른 가능성을 확인하고픈 마음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영석의 상기된 얼굴을 보니 짧게 끊고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딱히 뭔 일이 있어야 하나? 아는 사이니까 오가다 볼 수도 있는 거지.”
“원래 아는 사이라고? 송화영하고?”
영석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 듯했다.
“송화영은 1학년 최고 에이스잖아. 얼굴까지 예뻐서 더 유명하고.”
“그래서, 나 따위가 그런 애를 안다는 게 이상하다?”
“야, 뭘 그렇게 받아들이냐? 나도 유명인 친구는 있어. 너도 이젠 나보다 훨씬 대단하고.”
“대단은 무슨.”
“아무튼, 신기하긴 하잖아. 접점이 전혀 없는 거 같은데 안면이 있다고 하니까.”
“별걸 다 신기해하네. 그래 봐야 같은 1학년인데.”
영석은 그렇지가 않다고 했다.
“1학년에 A반이 없어서 B반에 있는 것뿐이지 실제 랭크는 그 이상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야. 그런 급이면 라이선스는 이미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고. 사실 왜 월반 안 하고 1학년에 있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
화영이 그 정도였나?
영석이 한 말.
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기는 했다.
“아무튼, 덕분에 너도 유명해지는 거 아냐? 둘이 같이 다니는 거 본 사람이 없진 않을 텐데.”
“설마 그런 걸로.”
수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의 관심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남들의 반응이 아니라 새롭게 찾아낸 실마리였다.
두 사람은 304호로 돌아왔다.
곧 저녁 시간, 수호는 오늘도 입맛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너, 내가 아는 진수호가 맞냐?”
영석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왜?”
“수호자를 하려면 체격도 좋아야 한다면서? 너 그래서 밥 먹는 거 절대 안 걸렀잖아.”
“내가 그랬나?”
“배불러서 안 먹겠다고 해도 억지로 끌고 가던 사람이 누군데… 여기서 더 커야 된다며?”
“이 정도면 충분히 컸지 뭘.”
“글쎄, 보통 사람치고는 큰 건데 수호자라면 역시 좀 아우라가 있어야 한달까? 요즘은 수호자도 비주얼이 중요한 시대니까. 아니, 이건 네가 말하던 거잖아! 나도 동의는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더라고. 우리가 운동선수나 패션모델을 지망하는 건 아니잖아?”
“갑자기 그렇게 180도 바뀐다고?”
영석은 납득을 못 하는 듯했지만, 이게 논쟁거리가 될 만한 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영석이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수호는 바삐 움직였다.
바로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했다.
기감이 예민해지자 천지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의 기운에는 신경 쓰지 않고 신체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려 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제 밤을 새우면서 확실하게 알게 됐다.
지금 집중할 부분은 밖이 아니라 안.
더 정확히는 심장 부근에 모여 있는 에너지다.
그의 발상은 이것이었다.
‘에너지도 어쩌면 내공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성질이 다르고 해내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그것도 대자연에서 비롯된 기운 아닐까?’
그렇게 가정해 본다면 에너지를 내공으로 변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수호는 한 가지 무공구결을 떠올렸다.
<흑위마공>
이는 혈마제 무공의 근간을 이루는 내공심법이다.
검법, 권법, 경신술 등 마제의 각종 무공 중에서 흑위마공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으며 전부 그 영향력 아래 있다.
‘외부의 기운을 흡수할 수 없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운을 이용해 주지!’
각성자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미지의 힘, 에너지.
그는 흑위마공을 통해 이를 내공화시킬 생각이었다.
‘이런 발상을 한 사람이 또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물론…….
‘있을 수가 없지. 내가 최초다.’
수호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