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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수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주천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단전이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운기조식은 내공심법을 통해 천지자연의 기운을 흡수,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쯤 했으면 천지의 기운이 일부나마 내력이 되어 단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이건…….
이상한 일이다.
인체는 외부 물질이 들어왔을 경우, 두 가지 작용을 한꺼번에 한다.
배출하는 동시에 흡수도 하는 것이다.
이 기본 원리는 내공 수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이기나 보자.”
수호는 오기가 생겨 운기조식을 계속했다.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몇 번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라도 하는 것처럼.
단전으로 들어왔던 기운은 잠깐 숨을 돌린 사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대종사, 무학의 극을 봤던 그조차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 * *
다음날, 수업 시간.
수호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앞에서는 오늘 처음 본 교사가 뭐라고 말을 하며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뭔 짓을 해도 내공이 쌓이지를 않는다.
믿기지가 않아서 날이 샐 때까지 운기를 계속했는데 그래도 단전은 텅 빈 그대로였다.
‘대체 왜지?’
수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천 년 사이에 천지의 기운이 쇠약해진 건가?’
그건 가능성 높은 추측이었다.
그동안 문명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그만큼 자연이 크게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안개 대신 스모그가 도시의 상공을 뒤덮었고, 원시림을 빌딩 숲이 대체한 시대다.
그렇지만 대자연의 기운이 모조리 사라진 건 아니었다.
사실 수호는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각성자라서?’
일단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 여부가 왜 내공 수련에 영향을 미치는 건지, 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전생과 현생의 가장 달라진 점을 꼽자면 역시 그것밖에는 없었다.
‘무공을 못 쓰는 몸이 된 게 맞다면, 그건 큰일인데…….’
할 수 있는데 그럴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지금은 무공이 절실…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필요한 상태였다.
‘흐음.’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수호는 책상에 코를 박고 엎드렸다.
그런 그를 아까부터 유심히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교탁에 선 박태규였다.
영 수업에 집중을 못 하는 인원이 눈에 띄기에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젠 대놓고 엎드려 잠을 청하는 게 아닌가?
잔뜩 열이 받은 그는 칠판 받침대에서 분필을 집어 들며 소리쳤다.
“거기 너! 일어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박태규가 분필을 던졌다.
조는 학생을 깨우는 교사의 모습.
이건 어느 교실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 학교, 각성자 특별고는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조차도 평범하지가 않았다.
그가 던진 분필은 상식 밖의 속도로 날아갔다.
파공음까지 들릴 정도였다.
수호는 자고 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어?’
뭔가 자그마한 게 코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건 피할 새도 없었다.
분필은 수호의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단순히 분필에 스친 수준이 아니었다.
따가운 느낌에 눈가로 손을 대보니 피가 묻어 나왔다.
날카로운 부분에 긁혀 피부가 찢어진 것이다.
또르르.
피가 흘러내려 턱까지 내려왔다.
수호는 멍하니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데, 당황한 건 박태규도 마찬가지였다.
“괜, 괜찮냐? 머리를 맞추려고 한 건데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해?”
“일어나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너 이름이 뭐지?”
“진수호인데요.”
“아, 네가 D반 걔구나.”
박태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의무동 가서 치료부터 하고 와.”
“그럴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냐, 수업도 거의 끝났고. 흉이라도 지면 어떡해? 어서 가.”
수호는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런데 의무동에서는 뭐 이런 거 때문에 왔냐며 핀잔을 줬다.
“살짝 긁힌 거구만 뭐.”
의무원은 투덜거리며 드레싱을 해줬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는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여기가 무슨 양호실도 아니고. 너희는 이 정도 상처는 가만히 있어도 금방 사라지잖아. 의학의 힘까지 빌릴 거 있어?”
“선생님이 꼭 가라고 해서요.”
“그래? 흐음, 오늘 실습 있는 반은 없는 걸로 아는데, 뭐 하다 이렇게 됐어? 쉬는 시간에 싸움박질이라도 했냐?”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수업 중에 다쳤는데요.”
“엥?”
의무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간단한 처치를 마치고, 수호는 C반으로 돌아왔다.
아까 그게 마지막 수업이었기에 반은 텅 빈 듯 조용했다.
“오늘도 내가 문 닫고 나가는 건가…….”
누가 보면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는 학생인 줄로만 알 것 같다.
그런 건 전혀 아닌데.
수호는 교실로 들어갔다.
안을 본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아직 안 나간 애가 있는 건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남의 자리에 앉아서 이쪽과 시선을 마주한다는 것은, 분명 무슨 의도가 있다는 거였다.
“안녕?”
그 애가 입을 열었다.
청아한 목소리.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웬 여자애였다.
낯설지는 않다.
진수호의 기억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송화영?”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화영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듯.
“굳이 그렇게 생각을 해야 내 이름이 떠오르는 거야? 너무한 거 아냐?”
이렇게 말하며 눈빛을 쏜다.
화영은 어딜 가나 눈에 띌 타입의 미소녀였다.
눈망울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서 아이컨택을 하면 시선을 유지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수호는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냈다.
그가 가까이 가자 왼쪽 얼굴에 붙은 반창고가 화영의 눈에 들어왔다.
거즈 색깔이 아직 새하얘서 방금 붙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 다쳤어?”
그녀가 박차고 일어나더니 수호 앞으로 다가왔다.
“어쩌다가?”
화영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조심스레 상처 옆에 갖다 댔다.
“별거 아니야. 의무동 갔더니 뭐 하러 왔냐면서 짜증만 내더라고.”
“교실에서 다칠 일이 뭐가 있는데? 너 혹시…….”
그녀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코앞으로 다가온 화영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그리고 기억 속의 영상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왜 화장을?’
그 때문인지 원래는 마냥 청초한 스타일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좀 고혹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지 변신을 노린 거라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호도 잠시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으니.
‘으음.’
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그녀에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지?”
“어쩐… 일이라니?”
“아무 일도 없는데 교실까지 찾아올 리가 없잖아.”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거야?”
수호는 대개 그렇지 않느냐고 했다.
“절친한 사이 아니고서야, 뭐.”
“아, 절친. 그렇지…….”
화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두운 얼굴의 그녀.
하지만 곧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무슨 일 있잖아. 너 C반으로 올라온 거! 축하해, 정말 잘 됐어.”
“어, 고마워.”
축하해주러 와준 건 고맙지만 그게 용건이라면 딱히 중요한 일로 찾아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수호가 말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긴 좀 그렇고, 나가면서 얘기하자.”
“아, 그럴래?”
수호는 가방을 들고 화영과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같이 교정을 걸었다.
각 학년마다 쓰는 건물이 다 다르고 기숙사, 의무동 및 각종 편의시설까지.
이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학교 부지는 어지간한 대학 캠퍼스 급으로 넓었다.
그런데 한참 걷는 동안에도 둘 사이에는 침묵만 감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화영이었다.
“난 네가 해낼 줄 알고 있었어.”
“뭘?”
“랭크업 한 거 있잖아.”
이건 며칠 동안 여러 사람에게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수호는 의문이 들었다.
“다들 그런 말을 하더라고. 근데 좀 의아하긴 하다. 발전 가능성이라곤 없는 구제 불능 F 취급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선 엄청 기대했던 것처럼 구는 게…….”
“구제 불능이라니, 누가 그래!”
화영은 갑자기 화를 냈다.
“너보다 수호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러면 많이 나오겠지. 칭찬은 고맙지만 그건 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오버였는지 화영은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시험장에서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중요한 건 랭크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던 거.”
“내… 가 그랬던가?”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화영은 수호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꼭 강력한 마물을 때려잡을 수 있어야만 수호자인가? 남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라고.”
“으음.”
수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수호, 이 정도였나.’
역시 자기와는 너무 극과 극이다.
왠지 모르게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주위에 자길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진수호인 척은 할 수 있어도 진짜 진수호는 아닌 것이다.
화영의 생각을 알고 나니 그녀를 보기가 불편해졌다.
해서 괜스레 주위를 둘러봤는데 어제 본 인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석진 곳에서 흘끔흘끔 이쪽을 쳐다보는 윤상호 트리오다.
그 셋은 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나 참.”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의 반응에, 화영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들 뭐야?”
“있어, 스토커들. 무시하면 돼.”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지?”
“글쎄?”
화영의 생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려는데, 그녀는 이미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화영은 그들 중 하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무슨 할 말?”
“아까부터 따라왔잖아.”
“따라오긴 개뿔. 그냥 가는 방향이 같은 건데.”
화영은 이들의 교복 디자인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2학년? 2학년이 1학년 기숙사엔 왜 가는데? 너희들… 뭐야?”
그녀가 노려보자 녀석은 찔끔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녀석이 그를 커버해 줬다.
“선배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랭크 높으면 다냐?”
윤상호도 거들었다.
“이건 나와 진수호,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제삼자는 빠져.”
“무슨 문제?”
“저 자식이 내 동생을 어떻게 한 줄 알아? 어제 겨우 퇴원했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고!”
“아, 내가 뭘 모르고 있었네.”
화영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렇게까지 수준 이하일 줄은.”
그녀가 홱 돌아섰다.
털썩! 털썩!
그와 함께, 3인방이 차례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화영은 수호를 흘끗 보곤 다시 몸을 돌려 윤상호 트리오를 내려다봤다.
“그 동생에 그 형 아니랄까봐. 혼자선 자신 없어서 몰려와 놓고 제삼자 운운하는 건, 웃기려고 하는 말이지?”
“이, 이거 얼른 안 풀어? 어, 어디 하늘같은 선배한테!”
윤상호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부풀어 올랐다.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몸은 점점 땅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선배면 선배답게 행동을 해. 부끄럽지도 않아?”
“닥쳐!”
피식.
화영이 싱겁게 웃었다.
“끄윽!”
더 강한 힘이 세 사람을 짓눌렀다.
결국 윤상호와 친구들은 납작 엎드린 자세가 되고 말았다.
“경고할게. 앞으로 수호 앞에 나타나기만 해봐. 그때는 아예 쥐포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알겠어?”
다른 녀석들은 바로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윤상호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
“이, 이따위에 굴복할 줄 알고!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수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주천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단전이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운기조식은 내공심법을 통해 천지자연의 기운을 흡수,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쯤 했으면 천지의 기운이 일부나마 내력이 되어 단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이건…….
이상한 일이다.
인체는 외부 물질이 들어왔을 경우, 두 가지 작용을 한꺼번에 한다.
배출하는 동시에 흡수도 하는 것이다.
이 기본 원리는 내공 수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이기나 보자.”
수호는 오기가 생겨 운기조식을 계속했다.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몇 번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라도 하는 것처럼.
단전으로 들어왔던 기운은 잠깐 숨을 돌린 사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대종사, 무학의 극을 봤던 그조차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 * *
다음날, 수업 시간.
수호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앞에서는 오늘 처음 본 교사가 뭐라고 말을 하며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뭔 짓을 해도 내공이 쌓이지를 않는다.
믿기지가 않아서 날이 샐 때까지 운기를 계속했는데 그래도 단전은 텅 빈 그대로였다.
‘대체 왜지?’
수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천 년 사이에 천지의 기운이 쇠약해진 건가?’
그건 가능성 높은 추측이었다.
그동안 문명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그만큼 자연이 크게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안개 대신 스모그가 도시의 상공을 뒤덮었고, 원시림을 빌딩 숲이 대체한 시대다.
그렇지만 대자연의 기운이 모조리 사라진 건 아니었다.
사실 수호는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각성자라서?’
일단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 여부가 왜 내공 수련에 영향을 미치는 건지, 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전생과 현생의 가장 달라진 점을 꼽자면 역시 그것밖에는 없었다.
‘무공을 못 쓰는 몸이 된 게 맞다면, 그건 큰일인데…….’
할 수 있는데 그럴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지금은 무공이 절실…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필요한 상태였다.
‘흐음.’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수호는 책상에 코를 박고 엎드렸다.
그런 그를 아까부터 유심히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교탁에 선 박태규였다.
영 수업에 집중을 못 하는 인원이 눈에 띄기에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젠 대놓고 엎드려 잠을 청하는 게 아닌가?
잔뜩 열이 받은 그는 칠판 받침대에서 분필을 집어 들며 소리쳤다.
“거기 너! 일어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박태규가 분필을 던졌다.
조는 학생을 깨우는 교사의 모습.
이건 어느 교실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 학교, 각성자 특별고는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조차도 평범하지가 않았다.
그가 던진 분필은 상식 밖의 속도로 날아갔다.
파공음까지 들릴 정도였다.
수호는 자고 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어?’
뭔가 자그마한 게 코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건 피할 새도 없었다.
분필은 수호의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단순히 분필에 스친 수준이 아니었다.
따가운 느낌에 눈가로 손을 대보니 피가 묻어 나왔다.
날카로운 부분에 긁혀 피부가 찢어진 것이다.
또르르.
피가 흘러내려 턱까지 내려왔다.
수호는 멍하니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데, 당황한 건 박태규도 마찬가지였다.
“괜, 괜찮냐? 머리를 맞추려고 한 건데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해?”
“일어나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너 이름이 뭐지?”
“진수호인데요.”
“아, 네가 D반 걔구나.”
박태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의무동 가서 치료부터 하고 와.”
“그럴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냐, 수업도 거의 끝났고. 흉이라도 지면 어떡해? 어서 가.”
수호는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런데 의무동에서는 뭐 이런 거 때문에 왔냐며 핀잔을 줬다.
“살짝 긁힌 거구만 뭐.”
의무원은 투덜거리며 드레싱을 해줬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는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여기가 무슨 양호실도 아니고. 너희는 이 정도 상처는 가만히 있어도 금방 사라지잖아. 의학의 힘까지 빌릴 거 있어?”
“선생님이 꼭 가라고 해서요.”
“그래? 흐음, 오늘 실습 있는 반은 없는 걸로 아는데, 뭐 하다 이렇게 됐어? 쉬는 시간에 싸움박질이라도 했냐?”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수업 중에 다쳤는데요.”
“엥?”
의무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간단한 처치를 마치고, 수호는 C반으로 돌아왔다.
아까 그게 마지막 수업이었기에 반은 텅 빈 듯 조용했다.
“오늘도 내가 문 닫고 나가는 건가…….”
누가 보면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는 학생인 줄로만 알 것 같다.
그런 건 전혀 아닌데.
수호는 교실로 들어갔다.
안을 본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아직 안 나간 애가 있는 건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남의 자리에 앉아서 이쪽과 시선을 마주한다는 것은, 분명 무슨 의도가 있다는 거였다.
“안녕?”
그 애가 입을 열었다.
청아한 목소리.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웬 여자애였다.
낯설지는 않다.
진수호의 기억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송화영?”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화영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듯.
“굳이 그렇게 생각을 해야 내 이름이 떠오르는 거야? 너무한 거 아냐?”
이렇게 말하며 눈빛을 쏜다.
화영은 어딜 가나 눈에 띌 타입의 미소녀였다.
눈망울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서 아이컨택을 하면 시선을 유지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수호는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냈다.
그가 가까이 가자 왼쪽 얼굴에 붙은 반창고가 화영의 눈에 들어왔다.
거즈 색깔이 아직 새하얘서 방금 붙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 다쳤어?”
그녀가 박차고 일어나더니 수호 앞으로 다가왔다.
“어쩌다가?”
화영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조심스레 상처 옆에 갖다 댔다.
“별거 아니야. 의무동 갔더니 뭐 하러 왔냐면서 짜증만 내더라고.”
“교실에서 다칠 일이 뭐가 있는데? 너 혹시…….”
그녀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코앞으로 다가온 화영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그리고 기억 속의 영상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왜 화장을?’
그 때문인지 원래는 마냥 청초한 스타일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좀 고혹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지 변신을 노린 거라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호도 잠시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으니.
‘으음.’
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그녀에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지?”
“어쩐… 일이라니?”
“아무 일도 없는데 교실까지 찾아올 리가 없잖아.”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거야?”
수호는 대개 그렇지 않느냐고 했다.
“절친한 사이 아니고서야, 뭐.”
“아, 절친. 그렇지…….”
화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두운 얼굴의 그녀.
하지만 곧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무슨 일 있잖아. 너 C반으로 올라온 거! 축하해, 정말 잘 됐어.”
“어, 고마워.”
축하해주러 와준 건 고맙지만 그게 용건이라면 딱히 중요한 일로 찾아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수호가 말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긴 좀 그렇고, 나가면서 얘기하자.”
“아, 그럴래?”
수호는 가방을 들고 화영과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같이 교정을 걸었다.
각 학년마다 쓰는 건물이 다 다르고 기숙사, 의무동 및 각종 편의시설까지.
이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학교 부지는 어지간한 대학 캠퍼스 급으로 넓었다.
그런데 한참 걷는 동안에도 둘 사이에는 침묵만 감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화영이었다.
“난 네가 해낼 줄 알고 있었어.”
“뭘?”
“랭크업 한 거 있잖아.”
이건 며칠 동안 여러 사람에게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수호는 의문이 들었다.
“다들 그런 말을 하더라고. 근데 좀 의아하긴 하다. 발전 가능성이라곤 없는 구제 불능 F 취급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선 엄청 기대했던 것처럼 구는 게…….”
“구제 불능이라니, 누가 그래!”
화영은 갑자기 화를 냈다.
“너보다 수호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러면 많이 나오겠지. 칭찬은 고맙지만 그건 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오버였는지 화영은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시험장에서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중요한 건 랭크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던 거.”
“내… 가 그랬던가?”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화영은 수호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꼭 강력한 마물을 때려잡을 수 있어야만 수호자인가? 남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라고.”
“으음.”
수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수호, 이 정도였나.’
역시 자기와는 너무 극과 극이다.
왠지 모르게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주위에 자길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진수호인 척은 할 수 있어도 진짜 진수호는 아닌 것이다.
화영의 생각을 알고 나니 그녀를 보기가 불편해졌다.
해서 괜스레 주위를 둘러봤는데 어제 본 인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석진 곳에서 흘끔흘끔 이쪽을 쳐다보는 윤상호 트리오다.
그 셋은 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나 참.”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의 반응에, 화영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들 뭐야?”
“있어, 스토커들. 무시하면 돼.”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지?”
“글쎄?”
화영의 생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려는데, 그녀는 이미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화영은 그들 중 하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무슨 할 말?”
“아까부터 따라왔잖아.”
“따라오긴 개뿔. 그냥 가는 방향이 같은 건데.”
화영은 이들의 교복 디자인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2학년? 2학년이 1학년 기숙사엔 왜 가는데? 너희들… 뭐야?”
그녀가 노려보자 녀석은 찔끔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녀석이 그를 커버해 줬다.
“선배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랭크 높으면 다냐?”
윤상호도 거들었다.
“이건 나와 진수호,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제삼자는 빠져.”
“무슨 문제?”
“저 자식이 내 동생을 어떻게 한 줄 알아? 어제 겨우 퇴원했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고!”
“아, 내가 뭘 모르고 있었네.”
화영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렇게까지 수준 이하일 줄은.”
그녀가 홱 돌아섰다.
털썩! 털썩!
그와 함께, 3인방이 차례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화영은 수호를 흘끗 보곤 다시 몸을 돌려 윤상호 트리오를 내려다봤다.
“그 동생에 그 형 아니랄까봐. 혼자선 자신 없어서 몰려와 놓고 제삼자 운운하는 건, 웃기려고 하는 말이지?”
“이, 이거 얼른 안 풀어? 어, 어디 하늘같은 선배한테!”
윤상호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부풀어 올랐다.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몸은 점점 땅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선배면 선배답게 행동을 해. 부끄럽지도 않아?”
“닥쳐!”
피식.
화영이 싱겁게 웃었다.
“끄윽!”
더 강한 힘이 세 사람을 짓눌렀다.
결국 윤상호와 친구들은 납작 엎드린 자세가 되고 말았다.
“경고할게. 앞으로 수호 앞에 나타나기만 해봐. 그때는 아예 쥐포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알겠어?”
다른 녀석들은 바로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윤상호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
“이, 이따위에 굴복할 줄 알고! 너 내가 누군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