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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렇긴 한데…….”
대답을 하면서 수호는 앞을 가로막은 사람을 바라봤다.
그는 눈에 힘을 준 채 이쪽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낯선 얼굴 둘이 더 보였다.
그들도 주먹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호의를 가지고 찾아온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네가 상현이를 쥐어 패서 입원시켰다고 하던데, 맞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원까지 한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제대로 찾아온 거긴 한데… 근데 누구?”
“근데 누구?”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념을 밥에다 말아 먹었냐? 선배한테 근데 누구라고?”
“얼굴에 학년을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선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그저 의문 가는 대로 물었을 뿐.
그런데 녀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듯했다.
“이게 죽고 싶나!”
밑도 끝도 없는 공격이었다.
수호는 양팔을 붙여 앞을 막았다. 가드 위로 주먹세례가 쏟아졌다.
‘이 정도면 랭크가 어떻게 되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무림인의 본능이다.
무림에서도 랭크와 비슷한 개념이 존재해서 일류니 이류니 하며 경지가 나누어지곤 했다.
이를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상대에 맞는 대응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물론 여기는 무림이 아니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은 전투의 기본이기에.
경지가 랭크로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자기에 대한 정보는 시야에 표시되니 명확히 알 수 있는 반면, 상대를 파악하는 건 아직 감이 없어서 쉽지 않았다.
‘잘 모르겠군.’
그래도 맞고만 있는 건 역시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수호는 가드를 풀고 맞불을 놓았다.
주먹에 맞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격을 퍼붓자 오히려 저쪽이 당황해했다.
녀석은 몇 번 공수를 주고받다가 은근슬쩍 몸을 뒤로 뺐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라더니 진짜 그렇긴 하네.”
수호의 얼굴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초면에 다짜고짜 주먹질부터 하는 쪽이 더 뵈는 게 없는 거 아닌가?”
“그럼 내 동생을 폭행하지 말았어야지!”
이 말 덕분에, 수호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윤상현의 친형, 윤상호다.
이름까지는 몰랐지만, 윤상현의 형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윤상현이 D반에서 기세등등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의 능력이 개중 뛰어났던 이유가 반 이상이긴 했다.
하지만 윤상호 덕을 아예 안 본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고랭크 선배가 형이다 보니 훨씬 껄끄러운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약한데?’
스킬을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방금 손을 섞어본 바로는 딱히 자기보다 고랭크인 것 같지는 않았다.
윤상호도 이를 느낀 것 같았다.
그가 같이 온 친구들에게 말했다.
“쟤 조져!”
3명이 동시에 수호에게로 달려들어 왔다.
수호는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그 중 한 놈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어딜 도망가!”
녀석이 몸으로 앞을 막았다.
어깨를 세워 뚫고 나가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미 두 명은 방향을 틀어 수호를 에워싸고 있었다.
곧, 수호는 세 사람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이런…….’
여기서 거리를 더 주면 꼼짝없이 멍석말이를 당할 판이다.
수호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칼날바람!’
스킬을 사용하면서 왼손을 내밀자 앞에 있던 녀석이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자신의 앞을 막았다.
예리한 칼날 같은 바람이 녀석의 팔을 마구 할퀴어 댔다.
“끄아아악!”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수호는 몸을 낮추며 빈틈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거기 서, 이 새끼야!”
“야, 우리도 스킬 써!”
윤상호 트리오는 바로 수호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먼저 속도를 붙여 달려 나간 수호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학년 기숙사 앞.
수호는 안으로 쏙 들어갔고, 세 명은 졸지에 닭 쫓다 지붕만 쳐다보는 개가 되어 버렸다.
수호는 현관문 유리 뒤에 서서 밖을 향해 손짓했다.
“뭐해? 들어와, 들어와.”
최대한 밉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도발해 봤지만, 그들은 쉽사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다른 학년의 기숙사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교칙 어기기는 무섭고, 그렇다고 헛걸음한 채로 돌아서기에는 모양 빠지고.
“치사한 새끼! 말도 없이 스킬을 써?”
결국 윤상호가 할 수 있는 건 분통을 터뜨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선배라는 인간들이 후배 담그려고 단체로 몰려와 놓고 할 말인지는…….”
절레절레.
수호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윤상호 트리오에게서 관심을 끄고, 자기 방이나 찾기로 했다.
304호.
노크를 하자마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수호냐? 잠깐 기다려!”
방에 있던 사람은 룸메이트인 서영석이었다.
“너 맞구나!”
수호를 맞이한 영석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3일 동안 사라졌던 건 뭐고, 돌아와서는 윤상현을 털더니 오늘은 또 승격이라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
“어… 그, 그래.”
수호는 영석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사는 2인실이었다.
한쪽 벽에는 2층 침대, 맞은편에는 책상 두 개가 붙어 있는 평범한 방이다.
수호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앉았다.
영석은 그 앞에 서서,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퍼부었다.
요 며칠 계속 해명하고 다녔던 것들이라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C-가 됐다고? 대단하다!”
영석의 눈이 빛났다.
그도 수호와 같은 D반이었다.
등급은 F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호와 사이좋게 최하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최소 D+까지의 랭크업.
이건 D반 모두가 노리는 목표였다.
C 클래스로 승격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데, 이 학교는 특별고답게 진급조차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1학년의 경우, D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유급하거나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현실적으로, 1년 이내에 D+를 달성한다는 건 F급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그런데 수호가 벌써 그걸 해내 버린 것이다.
“뭐, 운이 좋았지.”
“운이 좋은 정도가 아니지, 완전 로또 맞은 거잖아! 2차 각성이라니!”
영석의 눈에 부러움이 가득 담겼다.
하지만 그건 단지 부러움일 뿐, 시기나 질투의 감정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역시 정의는 살아있는 건가? 너 같은 애가 학교에 남아야지, 윤상현이 졸업해서 과거 세탁하고 수호자로 활동하는 건… 그건 진짜 아니지.”
영석 또한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나 같은 애?”
“그럼. 네가 랭크 빼고 뭐가 부족한데? 인성 좋고 마인드도 훌륭하고, 그런 사람이 수호자가 되는 게 맞잖아. 아, 이젠 랭크도 안 꿀리지. 아무튼 잘 됐어.”
면전에서 이런 낯간지러운 칭찬이라니.
진수호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나?
수호는 기억을 되짚어 봤다.
‘흐음.’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정의감이 강하긴 했던 것 같다.
그가 윤상현의 타깃이 된 것도 영석이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섰던 게 원인이 됐던 거였고.
이후 영석의 몫까지 떠안으면서 온갖 수모를 다 당했지만, 진수호는 이를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
그랬던 걸 생각하면, 이러한 영석의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무슨 정파의 풋내기 협객 같군.’
서문환의 성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진수호로 산다는 건 예상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영석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근데 너 이제 조심해야 해. 윤상현, 걔 형이 있잖아. 자기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오는 길?”
“아, 아니야. 조심해야지, 물론.”
수호는 린치를 당할 뻔했다고 하려다 말을 주워 담았다.
괜히 영석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줄 필요는 없었다.
자기 때문에 윤상현에게 찍힌 거라고 항상 미안해하던 그였다.
진수호는 그나마 약간이라도 능력치 좋은 자기가 당하는 게 더 낫다며 넌 빠져 있으라고 했다.
그런 서글픈 우정이었다.
아마 진수호였어도 혼자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잠시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영석이 시계를 흘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슬슬 저녁 시간이네. 밥 먹으러 가자.”
“아니, 좀 쉴래. 오늘은 너 혼자 가라.”
“저녁을 거른다고? 웬일이야?”
“글쎄, 배가 안 고파서. 난 잠이나 잘란다.”
수호는 침대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따 배고프다고나 하지 마라.”
영석이 방을 나갔다.
쿵.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는 이불을 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흐흠.”
사실 허기가 살짝 있긴 했다.
그래도 이건 저녁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바닥으로 내려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 번 해볼까.’
수호는 눈을 감고 기감을 일깨우기 위해 집중했다.
전생에 그는 무공광이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궁리하며 정진 또 정진.
결국 마도제일인을 넘어 천하제일인이라는 정점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서문환의 탐구욕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죽음 이후로는 무공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자존의 법칙.
자기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지 누가 책임져 주는 게 아니다.
중원에서 통용되던 상식은 현대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 보였다.
천 년 뒤 미래는 너무나도 말랑말랑했고 치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굳이 강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무난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무공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호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역시 똑같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약육강식의 논리는 이 시대에도 유효했다.
그리고 그건 오늘로써 더욱 확실해졌고.
이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부나마 힘을 되찾긴 해야 했다.
‘됐다!’
수호는 어렵지 않게 기감을 활성화시켰다.
몸은 고등학생일지 몰라도 정신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혈마제다.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이게 그 에너지라는 건가?’
내부를 관조하니 응집된 기운이 상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너지는 각성자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스킬을 쓸 때마다 에너지가 소모되며 전부 소진한 뒤에는 스킬이 발동되지 않아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수호에게 이건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몸 안에 존재하는 기운이라는 점에서는 내공과 같지만, 그게 단전이 아닌 엉뚱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건 큰 차이점이었다.
이는 혈마제의 지식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호기심을 느꼈다.
‘딱딱하군.’
이것도 내공과는 다른 점이다.
에너지는 고밀도로 압축되어 있었다.
내공이 도도히 흐르는 물길이라면 에너지는 그 물이 한곳에 고이고, 또 얼어서 고체화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단전은… 비어 있군.’
수호는 감각을 밖으로 돌렸다.
천지자연의 기운이 압도하듯 전신을 내리눌렀다.
그는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대자연의 기운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가볍게 일주천을 마친 수호가 눈을 떴다.
“흐음.”
순환 자체는 생각한 대로 잘 됐다. 그런데 수호의 표정이 이상했다.
“뭐지 이건?”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재차 일주천을 시도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렇긴 한데…….”
대답을 하면서 수호는 앞을 가로막은 사람을 바라봤다.
그는 눈에 힘을 준 채 이쪽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낯선 얼굴 둘이 더 보였다.
그들도 주먹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호의를 가지고 찾아온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네가 상현이를 쥐어 패서 입원시켰다고 하던데, 맞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원까지 한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제대로 찾아온 거긴 한데… 근데 누구?”
“근데 누구?”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념을 밥에다 말아 먹었냐? 선배한테 근데 누구라고?”
“얼굴에 학년을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선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그저 의문 가는 대로 물었을 뿐.
그런데 녀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듯했다.
“이게 죽고 싶나!”
밑도 끝도 없는 공격이었다.
수호는 양팔을 붙여 앞을 막았다. 가드 위로 주먹세례가 쏟아졌다.
‘이 정도면 랭크가 어떻게 되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무림인의 본능이다.
무림에서도 랭크와 비슷한 개념이 존재해서 일류니 이류니 하며 경지가 나누어지곤 했다.
이를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상대에 맞는 대응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물론 여기는 무림이 아니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은 전투의 기본이기에.
경지가 랭크로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자기에 대한 정보는 시야에 표시되니 명확히 알 수 있는 반면, 상대를 파악하는 건 아직 감이 없어서 쉽지 않았다.
‘잘 모르겠군.’
그래도 맞고만 있는 건 역시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수호는 가드를 풀고 맞불을 놓았다.
주먹에 맞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격을 퍼붓자 오히려 저쪽이 당황해했다.
녀석은 몇 번 공수를 주고받다가 은근슬쩍 몸을 뒤로 뺐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라더니 진짜 그렇긴 하네.”
수호의 얼굴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초면에 다짜고짜 주먹질부터 하는 쪽이 더 뵈는 게 없는 거 아닌가?”
“그럼 내 동생을 폭행하지 말았어야지!”
이 말 덕분에, 수호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윤상현의 친형, 윤상호다.
이름까지는 몰랐지만, 윤상현의 형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윤상현이 D반에서 기세등등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의 능력이 개중 뛰어났던 이유가 반 이상이긴 했다.
하지만 윤상호 덕을 아예 안 본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고랭크 선배가 형이다 보니 훨씬 껄끄러운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약한데?’
스킬을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방금 손을 섞어본 바로는 딱히 자기보다 고랭크인 것 같지는 않았다.
윤상호도 이를 느낀 것 같았다.
그가 같이 온 친구들에게 말했다.
“쟤 조져!”
3명이 동시에 수호에게로 달려들어 왔다.
수호는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그 중 한 놈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어딜 도망가!”
녀석이 몸으로 앞을 막았다.
어깨를 세워 뚫고 나가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미 두 명은 방향을 틀어 수호를 에워싸고 있었다.
곧, 수호는 세 사람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이런…….’
여기서 거리를 더 주면 꼼짝없이 멍석말이를 당할 판이다.
수호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칼날바람!’
스킬을 사용하면서 왼손을 내밀자 앞에 있던 녀석이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자신의 앞을 막았다.
예리한 칼날 같은 바람이 녀석의 팔을 마구 할퀴어 댔다.
“끄아아악!”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수호는 몸을 낮추며 빈틈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거기 서, 이 새끼야!”
“야, 우리도 스킬 써!”
윤상호 트리오는 바로 수호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먼저 속도를 붙여 달려 나간 수호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학년 기숙사 앞.
수호는 안으로 쏙 들어갔고, 세 명은 졸지에 닭 쫓다 지붕만 쳐다보는 개가 되어 버렸다.
수호는 현관문 유리 뒤에 서서 밖을 향해 손짓했다.
“뭐해? 들어와, 들어와.”
최대한 밉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도발해 봤지만, 그들은 쉽사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다른 학년의 기숙사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교칙 어기기는 무섭고, 그렇다고 헛걸음한 채로 돌아서기에는 모양 빠지고.
“치사한 새끼! 말도 없이 스킬을 써?”
결국 윤상호가 할 수 있는 건 분통을 터뜨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선배라는 인간들이 후배 담그려고 단체로 몰려와 놓고 할 말인지는…….”
절레절레.
수호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윤상호 트리오에게서 관심을 끄고, 자기 방이나 찾기로 했다.
304호.
노크를 하자마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수호냐? 잠깐 기다려!”
방에 있던 사람은 룸메이트인 서영석이었다.
“너 맞구나!”
수호를 맞이한 영석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3일 동안 사라졌던 건 뭐고, 돌아와서는 윤상현을 털더니 오늘은 또 승격이라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
“어… 그, 그래.”
수호는 영석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사는 2인실이었다.
한쪽 벽에는 2층 침대, 맞은편에는 책상 두 개가 붙어 있는 평범한 방이다.
수호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앉았다.
영석은 그 앞에 서서,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퍼부었다.
요 며칠 계속 해명하고 다녔던 것들이라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C-가 됐다고? 대단하다!”
영석의 눈이 빛났다.
그도 수호와 같은 D반이었다.
등급은 F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호와 사이좋게 최하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최소 D+까지의 랭크업.
이건 D반 모두가 노리는 목표였다.
C 클래스로 승격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데, 이 학교는 특별고답게 진급조차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1학년의 경우, D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유급하거나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현실적으로, 1년 이내에 D+를 달성한다는 건 F급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그런데 수호가 벌써 그걸 해내 버린 것이다.
“뭐, 운이 좋았지.”
“운이 좋은 정도가 아니지, 완전 로또 맞은 거잖아! 2차 각성이라니!”
영석의 눈에 부러움이 가득 담겼다.
하지만 그건 단지 부러움일 뿐, 시기나 질투의 감정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역시 정의는 살아있는 건가? 너 같은 애가 학교에 남아야지, 윤상현이 졸업해서 과거 세탁하고 수호자로 활동하는 건… 그건 진짜 아니지.”
영석 또한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나 같은 애?”
“그럼. 네가 랭크 빼고 뭐가 부족한데? 인성 좋고 마인드도 훌륭하고, 그런 사람이 수호자가 되는 게 맞잖아. 아, 이젠 랭크도 안 꿀리지. 아무튼 잘 됐어.”
면전에서 이런 낯간지러운 칭찬이라니.
진수호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나?
수호는 기억을 되짚어 봤다.
‘흐음.’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정의감이 강하긴 했던 것 같다.
그가 윤상현의 타깃이 된 것도 영석이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섰던 게 원인이 됐던 거였고.
이후 영석의 몫까지 떠안으면서 온갖 수모를 다 당했지만, 진수호는 이를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
그랬던 걸 생각하면, 이러한 영석의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무슨 정파의 풋내기 협객 같군.’
서문환의 성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진수호로 산다는 건 예상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영석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근데 너 이제 조심해야 해. 윤상현, 걔 형이 있잖아. 자기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오는 길?”
“아, 아니야. 조심해야지, 물론.”
수호는 린치를 당할 뻔했다고 하려다 말을 주워 담았다.
괜히 영석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줄 필요는 없었다.
자기 때문에 윤상현에게 찍힌 거라고 항상 미안해하던 그였다.
진수호는 그나마 약간이라도 능력치 좋은 자기가 당하는 게 더 낫다며 넌 빠져 있으라고 했다.
그런 서글픈 우정이었다.
아마 진수호였어도 혼자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잠시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영석이 시계를 흘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슬슬 저녁 시간이네. 밥 먹으러 가자.”
“아니, 좀 쉴래. 오늘은 너 혼자 가라.”
“저녁을 거른다고? 웬일이야?”
“글쎄, 배가 안 고파서. 난 잠이나 잘란다.”
수호는 침대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따 배고프다고나 하지 마라.”
영석이 방을 나갔다.
쿵.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는 이불을 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흐흠.”
사실 허기가 살짝 있긴 했다.
그래도 이건 저녁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바닥으로 내려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 번 해볼까.’
수호는 눈을 감고 기감을 일깨우기 위해 집중했다.
전생에 그는 무공광이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궁리하며 정진 또 정진.
결국 마도제일인을 넘어 천하제일인이라는 정점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서문환의 탐구욕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죽음 이후로는 무공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자존의 법칙.
자기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지 누가 책임져 주는 게 아니다.
중원에서 통용되던 상식은 현대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 보였다.
천 년 뒤 미래는 너무나도 말랑말랑했고 치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굳이 강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무난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무공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호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역시 똑같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약육강식의 논리는 이 시대에도 유효했다.
그리고 그건 오늘로써 더욱 확실해졌고.
이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부나마 힘을 되찾긴 해야 했다.
‘됐다!’
수호는 어렵지 않게 기감을 활성화시켰다.
몸은 고등학생일지 몰라도 정신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혈마제다.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이게 그 에너지라는 건가?’
내부를 관조하니 응집된 기운이 상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너지는 각성자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스킬을 쓸 때마다 에너지가 소모되며 전부 소진한 뒤에는 스킬이 발동되지 않아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수호에게 이건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몸 안에 존재하는 기운이라는 점에서는 내공과 같지만, 그게 단전이 아닌 엉뚱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건 큰 차이점이었다.
이는 혈마제의 지식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호기심을 느꼈다.
‘딱딱하군.’
이것도 내공과는 다른 점이다.
에너지는 고밀도로 압축되어 있었다.
내공이 도도히 흐르는 물길이라면 에너지는 그 물이 한곳에 고이고, 또 얼어서 고체화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단전은… 비어 있군.’
수호는 감각을 밖으로 돌렸다.
천지자연의 기운이 압도하듯 전신을 내리눌렀다.
그는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대자연의 기운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가볍게 일주천을 마친 수호가 눈을 떴다.
“흐음.”
순환 자체는 생각한 대로 잘 됐다. 그런데 수호의 표정이 이상했다.
“뭐지 이건?”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재차 일주천을 시도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