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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조인아가 입을 열었다.
“학생들 간의 분쟁에 관해선 무간섭이 원칙입니다. 다만, 교실에서의 스킬 사용은 금지되어 있는데 진수호, 윤상현, 두 학생 다 스킬을 썼으니 징계는 불가피하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유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 걱정할 만한 건 아닙니다. 둘 다 처음이고 큰 피해가 없는 걸 감안하면 3일 정학 정도로 끝날 겁니다.”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상현이는 병실에 누워 있는데 어떻게 처벌이 똑같아요? 이게 말이나 되는 거예요?”
이쪽은 흥분해서 얼굴이 시뻘게졌는데 조인아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네, 여기선 그게 말이 되거든요.”
정유선의 눈빛이 표독스러워졌다.
“말이 되긴 뭐가 돼! 고소할 거야! 저 애는 물론이고 이 학교도!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 줄 알아?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야!”
“해보세요. 어차피 공소권 없음으로 끝나겠지만.”
조인아는 검지를 들어서 안경을 위로 올렸다.
“아까도 말씀드렸죠? 여긴 여타 학교하고는 다르다는 거요. 그것도 모르고 자제분을 각성자 특별고에 보내진 않았을 텐데요? 애초에 일반고였으면 윤상현 학생은 이미 전학 조치를 받았겠죠. 뭐, 장단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이익!”
정유선은 몸을 부들거렸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인아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걸 그녀 또한 알기 때문이었다.
곧, 정유선은 풀이 죽어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 그래도 사과는 받아야겠어요!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구요!”
그러자 조인아가 수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하면 해주는 게 어떠냐는 것 같았다.
수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윤상현은 몇 달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날 괴롭혔는데… 그만하라고 애원도 해봤지만 단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내가 자비를 베풀지 않은 건, 뭐 그거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그걸 사과라고 하는 거야?”
정유선은 다시 흥분하려 했다.
조인아가 이를 차단했다.
“자, 사과 받으셨죠? 어머님은 이제 가보세요. 박 선생, 모셔다드려.”
“아, 네. 가시죠.”
박형철은 체육 교사 같은 스타일로, 거구인 데다 실제로 힘도 엄청 셌다.
정유선은 그에게 이끌려 교무실 밖으로 끌려 나가다시피 했다.
“수호하고 어머님은 아직 가지 마세요. 더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까.”
조인아의 말에 수호 어머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중요한 얘기라니, 어떤……?”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일은 이걸로 다 끝난 거니까요. 아, 정학 처분에 혹시 불만이라도?”
“그, 그럴 리가요.”
조인아가 수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수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조금 의외였다.
조인아는 무조건 윤상현의 편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보고 넘어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진수호가 약간 오해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일관성은 있다는 건가.’
조인아는 계속 수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 넌 F급이고 윤상현은 D급인데, 정작 실려 간 쪽은 D급이란 말이야? 그냥 D급도 아니고 승격이 유력한 수준이었지. 누가 봐도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게 맞거든?”
그녀가 본론을 꺼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으음, 그게…….”
뜬금없이 랭크가 올라간 이유, 수호도 그게 뭐 때문인지 궁금했기에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이라고 해봐야, 자기도 잘 모르겠고 갑자기 랭크가 올라 버렸다는 증언밖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설마?”
분노한 학부모를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조인아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혹시 무슨 특이한 메시지가 뜨거나 하진 않았니?”
“메시지라면… 2차 각성에 성공했다는? 뭐 그런 건 있었는데요.”
“정, 정말이야?”
“정말이죠, 그럼. 그런데 2차 각성이라는 게 원래 있는 건가요?”
“있기야 있지. 극히 드문 현상이기는 하지만.”
조인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녀는 자기 자리로 가서 랭크 측정기를 가지고 왔다.
랭크 측정기는 투명한 태블릿 PC처럼 생겼다.
이건 진수호의 기억에도 있는 물건이었다.
명색이 각성자 특별고인만큼, 이 학교는 각성자만 입학 가능했다.
물론 자기가 각성자라는 건 스킬을 쓰는 걸로도 손쉽게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반 배정을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측정이 필요했다.
그때 쓰는 도구가 바로 이 랭크 측정기.
조인아가 랭크 측정기를 내밀었다.
“입학 전에 한 번 써 봤지? 손 올리고, 편안히 있으면 돼. 약간 따끔하긴 할 거야.”
수호는 그녀 말대로 했다.
잠깐 기다리자 찌릿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들어왔다.
곧 그의 랭크가 표시되었다.



정확한 수호의 랭크다.
조인아가 눈썹을 오므렸다.
“겨우 C-라고? 2차 각성인데?”
그녀는 실망한 기색이었다.
어머니가 급히 물었다.
“수호가 C급이 됐다고요?”
“네, 2차 각성의 효과에요. 일반적인 레벨업과는 차원이 다른 향상을 이루어 내곤 하죠. 그런데 이 정도면 차원이 다른 수준은 아니고…….”
“그래도 세 단계나 올라갔으면 대단한 거잖아요.”
어머니는 뜻밖의 기쁜 소식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조인아는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2차 각성은 C급을 A급으로, A를 S로 올려줄 수도 있는 엄청난 기회거든요. 물론 지금 같은 랭크 상승도 행운인 건 맞지만.”
분명 대박은 대박인데 수호의 경우엔 기본 포텐셜 자체가 너무 낮았달까?
최하급 랭크였던지라 터져 봐야 겨우 C-인 것.
“뭐, 어떻게 된 건지는 이제 알겠네요.”
조인아는 급 관심이 식은 듯 했다.
그녀가 수호를 보고 말했다.
“간단한 징계 과정이 있긴 하겠지만, 거의 3일 정학으로 결론이 날 거야. 그동안 집에 가 있으면 되고, 정학이 풀리면 C 클래스로 옮기도록 해.”
“네? 왜요?”
“이젠 D 클래스에 있을 수준이 아니잖아. D+만 됐어도 승격 시험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C-면 사실 D반에 있을 이유가 없지. 그것도 그렇고, 윤상현 학생하고 계속 같은 반에 있는 것도 껄끄럽지 않겠어?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
“당연히 찬성이죠!”
어머니는 정말 좋아했다.
수호도 알겠다고 했다.
상위 클래스로 올려주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어머니는 내내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낙제급이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중위권인 C급으로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왔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이라니. 이런 거라면 매일 불려 와도 괜찮을 것 같아. 너무 잘했어, 수호야!”
“잘하긴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그것도 아들이 노력해서 된 거지. 중간에 포기했으면 이런 행운이 찾아왔겠어? 우리 수호, 너무 장해.”
이게 이 정도로 칭찬받을 일인가?
수호는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또 다른 모양이었다.
“오늘 저녁은 수호가 좋아하는 걸로 해줘야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수호는 잠시 생각했다.
“으음, 어향육사하고 회과육이요?”
며칠 동안 한식만 먹다 보니 중원의 음식이 그리워진 참이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뭐야 그게?”
“중, 중국 요리요.”
“우리 아들이 중국 음식도 좋아했나? 짜장면도 느끼하다고 잘 안 먹고 그랬잖아.”
“아, 맞아요.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거예요. 저 불고기 해주세요.”

* * *

그날 저녁.
조촐하게 수호의 랭크업을 축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래 봐야 평소보다 식탁이 좀 더 풍성해진 것뿐이지만.
“오빠, 축하해! 난 오빠가 금방 치고 올라갈 줄 알았다니까?”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네는 사람은 수호의 여동생, 수연이다.
“그래, 고맙다.”
“이대로 쭉쭉! 계속 레벨업해서 레이븐 님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야. 할 수 있지?”
“레이븐?”
“뭐야, 그 미적지근한 반응은? 오빠 우상이잖아. 레이븐 님처럼 되고 싶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던 사람이 오늘은 왜 그래?”
“으응, 그랬었지.”
진수호가 평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다니긴 했던 것 같다.
레이븐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각성자였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SSS 랭크를 기록해 트리플 S의 사나이, 블랙 엠퍼러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꼭 레이븐 님처럼 돼야 해! 내가 우리 오빠는 반드시 엄청 멋있는 수호자가 될 거라고 자랑하고 다니거든? 이름부터 수호인데 이건 운명이잖아. 아빠, 던전 생기기 전에 오빠가 태어난 거 맞죠?”
“한참 전이지. 나도 가끔은 신기하긴 하다. 근데… 오빠한테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니니?”
아버지가 슬쩍 핀잔을 주었지만,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는 게 역시 기분이 좋은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C반이면 일단 2학년까지는 보장되는 거지?”
수호가 대답했다.
“그렇죠, D반만 벗어나면 되니까.”
“그럼 졸업은?”
“그건 아직 몰라요. 랭크를 몇 단계는 더 올려야 하니까. 지금으로선 먼 이야기죠.”
“그래, 아빠도 수호자가 된 우리 아들을 보고 싶긴 하다. 또 네 꿈이기도 하잖아. 지금처럼 열심히 해서 그 꿈 이루었으면 좋겠다.”
“네…….”
화기애애한 저녁 식탁,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 전체를 잇는 듯한 끈끈한 감정.
수호는 어쩔 수 없이 훈훈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뇌리에 자리 잡고 있는 진수호의 기억 탓인지 이들이 남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가슴이 따뜻해지는 한편, 바늘로 찌르는 듯한 불편함도 같이 느껴졌다.
결국 자신은 겉만 진수호이지 속은 서문환이기 때문이다.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지만, 그가 진수호의 몸을 빼앗고 그 안으로 들어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를 알게 되면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확실한 건, 절대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는 거였다.
“…….”
수호는 복잡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 * *

3일 뒤.
수호의 정학이 풀렸다.
주말에 C반 담임으로부터 이를 통보받은 수호는 월요일부터 등교를 재개했다.
교무실로 들어가자 C 클래스 담당인 전대환이 그를 맞이했다.
“어, 수호야. 학년부장님께 말씀은 들었다.”
“네.”
그에 대한 진수호의 기억은, 전혀 없다.
다른 반 학생이 굳이 남의 반 담임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전대환이 D반 수업에 들어온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승격 학생을 받으라니, 뜬금없이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전대환은 작게 투덜거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가보자. 새 친구들 소개시켜 줄게.”
C반은 D반 위층이었다.
전대환을 따라 반으로 들어가자 수십 명의 시선이 수호에게로 쏠렸다.
전대환은 수호를 교탁 옆에 세웠다.
그가 말했다.
“이번에 승격해서 우리 C반으로 오게 된 친구다. 이름은 진수호이고. 수호, 할 말 있으면 해.”
“어… 반가워. 앞으로 잘 부탁한다.”
썰렁한 반응.
C반 학생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무안해진 전대환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뭐 차차 친해지면 되겠지. 수호야, 뒤에 빈자리 있으니까 거기 앉아.”
“아, 네.”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루 수업을 전부 마칠 때까지, 수호는 쭉 혼자였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도,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수호가 먼저 다가가 보기도 했지만, 다들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못 들은 척하기 일쑤였다.
쉽게 녹아들 수는 없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
수호는 가방을 챙기며 생각했다.
‘아래에서 올라온 게 아니라 B 클래스에서 내려온 거였다면 좀 달랐겠지?’
가끔 시선이 마주쳤을 때 녀석들의 눈빛은 좀 깔보는 것 같달까?
D반 출신이라 무시하는 게 티가 났다.
‘귀여운 녀석들.’
그는 미소를 지으며 C반 교실을 나왔다.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일어선 거라, 건물 밖은 한산해져 있었다.
‘일단은 기숙사로 가야겠지?’
주위를 살피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 쪽이 맞는 방향인지 떠올리는 중, 입구 쪽에 서 있던 사람이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음?’
누군가 하고 봤지만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냥 지나가려는가 보다 하고 신경을 안 썼는데, 그가 수호 앞을 가로막았다.
“네가 진수호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