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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수호는 가만히 있었다.
박형철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수호에게 말했다.
“일단 따라 와라. 부모님께 연락부터 드리자.”
1학년 교무실.
수호는 박형철 옆에 앉아 취조 아닌 취조를 받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알려줘야지, 수호야.”
그런데 진짜 할 말이 없었다.
남의 몸으로 들어온 것에 적응할 시간을 가지느라 그랬어요, 라고 하면 그 말을 과연 믿을까?
해서 박형철의 말을 흘려들으며 딴생각을 했다.
박형철이 아닌, 그 너머의 벽을 보면서.
[동기화에 실패하였습니다.]
하얀 벽 위에는 여전히 그 메시지가 떠 있다.
이건 며칠째 사라지지 않고 계속 시야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알겠는데 이건 진수호의 기억을 총동원해 봐도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호야!”
입구 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보자 낯익은 두 사람이 보였다.
‘아…….’
진수호의 부모님이었다.
수호의 얼굴을 본 어머니가 한달음에 달려와 수호를 껴안았다.
“난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그러면서 코를 훌쩍이는데 덩달아서 코끝이 시큰해져 오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진다.
갑작스레 요동치는 감정의 진폭에 수호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말았다.
‘이건 뭐지?’
가족이라…….
혈마제에게는 무척 낯선 개념이었다.
그는 고아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효심이라든지 부모님에 대한 애끓는 정, 이런 걸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데 자기 가족도 아닌 진수호의 가족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진수호의 기억이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후의 시간이 끝나고, 수호는 다시 취조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번에는 박형철뿐만 아니라 부모님까지.
모두 세 쌍의 눈이 수호의 입만 바라봤다.
“저… 솔직히 말해도 돼요?”
“당연히 되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주기만 하면 돼.”
“솔직히 말해서…….”
“말해서?”
박형철이 침을 삼켰다.
“모르겠어요.”
“뭐?”
“진짜 몰라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학교 밖이었고, 시간은 또 엄청 흘러 있었고.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어요.”
“야! 그게 말이 돼?”
박형철은 어이없어했지만 수호의 부모님 앞이라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전 사실대로 말한 건데요.”
그래도 부모님은 아들의 말이라 일단 믿고 보는 듯했다.
아버지가 박형철을 보며 물었다.
“수호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얼마 전에 전교생 건강검진이 있었습니다. 수호는 아무 이상도 없는 걸로 나왔고요.”
어머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그거… 우리 애가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잖아요. 그래서 생긴 부작용이 아닐지…….”
“각성 말입니까?”
“네, 그거요.”
박형철은 시큰둥했다.
“제가 알기로 그런 부작용은 없습니다. 각성은 새로운 능력을 개발시켜 줄 뿐이지 몸에 부담을 준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수호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른다는 데야 뭐 어쩔 수 있나.
박형철은 몇 번을 더 물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고, 끝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한지 박형철처럼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지, 혹시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그걸 더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당분간 학교를 쉬는 건 어떠니?”
어머니의 제안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괜찮다니까요.”
“이번 한 번으로 끝나면 그렇겠지. 그런데 같은 증상이 또 일어나면 어떡해? 엄마는 너무 걱정이 돼서…….”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앞으로 이럴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오늘은 집으로 가자. 이대로 수업 들으러 갈 수는 없잖니? 검진도 받아봐야 하고.”
그건 그랬다.
대충 씻긴 했지만 3일 동안 비바람 맞고 돌아다닌 흔적을 다 감출 수는 없었다.
소매를 들어 냄새를 맡아 보니 쿰쿰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래야겠네요.”
* * *
다음날.
수호는 제시간에 등교를 했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며칠 더 곁에 두면서 지켜보고 싶은 듯했지만, 병원에서도 기억 상실의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기억이 사라지질 않았으니까.
3일 동안 제대로 못 먹은 탓에, 가벼운 탈수 증세가 있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정상.
그마저도 금세 다 회복되어서 수호를 말릴 명분이 없어졌다.
학교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제 하루.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나름 유익하다고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편안했고 어색한 순간은 별로 없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자연스럽다면 진수호로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이것만 해결되면 좋을 텐데 말이지.’
[동기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이 메시지.
벌써 나흘째 보고 있으니 이젠 지긋지긋할 정도다.
다행히 지직거리는 현상은 없어졌지만 그럴 거면 메시지도 같이 좀 없어졌으면 싶었다.
‘흐흠, 반이… 1-D였지?’
수호는 어렵지 않게 자기 반을 찾아갔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는 반 친구들이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D반 학생들이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들은 수호를 보고 차례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수호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책상 사이를 지나쳐 갔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멀뚱멀뚱 앞만 보며 가만히 있으니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쟤 자퇴한 거 아니었어?’
‘내가 듣기론 실종이라던데?’
‘실종은 뭔 실종이야. 딱 보니까 쫄려서 튀었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거잖아.’
곳곳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끼이익!
그때, 맨 뒤에 앉은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 안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건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뿐.
수호는 뒤를 돌아봤다.
‘윤상현…….’
녀석의 얼굴을 보자 원인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원인이 뭔지는 잘 안다.
진수호를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고 운동장에 처박은 장본인이 바로 이 녀석이니까.
뿐만 아니라 윤상현은 지속적으로 진수호를 괴롭혀 왔다.
윤상현이 가까이 와서 말했다.
“너 뭐냐? 여긴 왜 왔어?”
“이 반 학생이니까 왔지.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러냐?”
수호가 면박을 주자 윤상현은 황당해했다.
“이게 미쳤나. 며칠 잠수 타고 오더니 간덩이가 붓기라도 했냐?”
“그럴지도.”
수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뜻밖의 반응에 윤상현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뭘 잘못 처먹고 이러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낯짝이 얼마나 가나 보자고. 돌아온 걸 후회하게 해주지.”
피식.
수호가 대답 대신 입꼬리를 올리자 윤상현은 얼굴이 붉어지고 눈매가 매서워졌다.
“이게 웃어? 너 죽고 싶냐?”
눈앞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정말 하품 나는 속도다.
진수호는 고작 이런 놈한테 맞고 다닌 건가?
‘뭐 이 정도야.’
수호는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상체만 움직여 피할 생각을 했다.
과연 마제의 자신감.
그 결과는?
퍽!
아침부터 별이 보였다.
수호는 이 한 방으로 고꾸라졌다.
“얼씨구?”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자마자 윤상현이 재차 공격해 왔다.
수호는 그를 경시하던 마음을 버리고 전력을 다해 피했다.
그런데 윤상현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수호는 그 뒤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윤상현이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뭐야, 이게 다야? 믿을 수가 없네.”
‘이런 젠장.’
입안이 터졌는지 피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보다 수호를 더 괴롭히는 건 고작 이딴 놈한테 얻어터졌다는 굴욕감.
퉤!
윤상현이 그의 등에다 침을 뱉었다.
“넌 F 주제에 너무 나대. 또 처맞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는 주제 파악을 좀 하라고.”
비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윤상현은 돌아섰다.
‘왜 이런 꼴이 된 거지?’
수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윤상현의 움직임은 무림인으로 치면… 삼류 턱걸이는 되는 정도?
칼밥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처지에 최하층 취급을 받지만, 그래도 무림인은 무림인이다.
반면 이 몸의 주인, 진수호는 냉정히 말해 삼류만도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주먹 좀 쓴다는 시정잡배쯤 되는 수준.
마제의 눈높이론 그놈이 그놈이고 도토리 키 재기지만, 사실 그 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하던 가락이 있지, 저거 한 놈을 못 이길까 했던 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등급 차이라는 게 이런 거군.’
수호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지금 상태로는 윤상현을 이길 수 없다.
지금은 물러서는 게 현명한 거였다.
하지만…….
“지랄하고 있네. 너도 어차피 같은 D반인 주제에.”
수호는 결국 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자기 자리로 가던 윤상현이 걸음을 멈췄다.
“방금 뭐라고 했냐?”
“다 들었으면서 뭘 다시 물어? D반이니까 네까짓 게 여기서 왕 노릇을 하는 거지, 다른 반이었으면…….”
“이 개새끼가!”
윤상현은 다시 돌아와서 수호를 밟아댔다.
“야, 저러다 죽는 거 아냐?”
“이건 심하잖아, 그만해.”
보다 못한 반 친구들이 와서 윤상현을 붙잡았다.
“놔, 이 새끼들아!”
하지만 D반의 여포인 윤상현이 거칠게 뿌리치자 그들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수호는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맞았다.
입가에서 피가 흐른다.
눈앞은 붉게 물들었고.
너무 많이 맞아서 의식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도발했나? 그냥 참을 걸 그랬나…….’
바로 그때, 수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이, 이건?’
* * *
진수호가 가진 현대의 기억.
서문환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단 압도적으로 발달한 현대 문명.
그리고 두 번째는 각성이다.
각성은 그가 살던 시대에는 전혀 없던 개념이었다.
신화와 기적이 사라진 시대.
21세기의 과학 기술은 미지의 영역을 거의 없애버렸다.
……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각지에 던전이 생성되고 괴수와 마수, 몬스터 등 통칭 마물들이 출몰하기 시작하자 그런 믿음은 단번에 깨지고 말았다.
현대의 무기가 통하지 않는 괴물들의 출현에, 인류는 최악의 가능성까지 생각했다.
멸종?
이러다 다 죽는 건 아닐까?
그렇게 전 인류가 집단 패닉에 빠져 있던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각성자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들이 마물들과의 일전을 시작하자 세계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그때 나타난 각성자들을 <최초의 구원자들>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인류를 지키는 수호자라는 명칭이 대세가 됐지만.
그들의 활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점점 각성자의 수는 늘어만 갔고 이제는 오히려 마물의 멸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각성자 수 자체가 늘어난 것도 있으나, 국가 차원에서 각성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영향이 더 컸다.
그런 2세대 각성자들.
진수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윤상현 또한 마찬가지.
각성자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서문환이 느끼기에 진수호는 딱히 초인 같지가 않았다.
일단 신체 능력은 진수호보다 등급이 높은 윤상현이 겨우 삼류 정도니,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해가 되긴 한다.
그래서 그건 넘어간다 쳐도 각성자의 고유 능력조차 발휘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오로지 보이는 거라곤 고장 난 TV처럼 점멸하는 메시지뿐.
그런데 윤상현에게 개 맞듯 얻어맞은 지금.
시야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수호는 가만히 있었다.
박형철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수호에게 말했다.
“일단 따라 와라. 부모님께 연락부터 드리자.”
1학년 교무실.
수호는 박형철 옆에 앉아 취조 아닌 취조를 받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알려줘야지, 수호야.”
그런데 진짜 할 말이 없었다.
남의 몸으로 들어온 것에 적응할 시간을 가지느라 그랬어요, 라고 하면 그 말을 과연 믿을까?
해서 박형철의 말을 흘려들으며 딴생각을 했다.
박형철이 아닌, 그 너머의 벽을 보면서.
[동기화에 실패하였습니다.]
하얀 벽 위에는 여전히 그 메시지가 떠 있다.
이건 며칠째 사라지지 않고 계속 시야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알겠는데 이건 진수호의 기억을 총동원해 봐도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호야!”
입구 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보자 낯익은 두 사람이 보였다.
‘아…….’
진수호의 부모님이었다.
수호의 얼굴을 본 어머니가 한달음에 달려와 수호를 껴안았다.
“난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그러면서 코를 훌쩍이는데 덩달아서 코끝이 시큰해져 오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진다.
갑작스레 요동치는 감정의 진폭에 수호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말았다.
‘이건 뭐지?’
가족이라…….
혈마제에게는 무척 낯선 개념이었다.
그는 고아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효심이라든지 부모님에 대한 애끓는 정, 이런 걸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데 자기 가족도 아닌 진수호의 가족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진수호의 기억이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후의 시간이 끝나고, 수호는 다시 취조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번에는 박형철뿐만 아니라 부모님까지.
모두 세 쌍의 눈이 수호의 입만 바라봤다.
“저… 솔직히 말해도 돼요?”
“당연히 되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주기만 하면 돼.”
“솔직히 말해서…….”
“말해서?”
박형철이 침을 삼켰다.
“모르겠어요.”
“뭐?”
“진짜 몰라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학교 밖이었고, 시간은 또 엄청 흘러 있었고.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어요.”
“야! 그게 말이 돼?”
박형철은 어이없어했지만 수호의 부모님 앞이라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전 사실대로 말한 건데요.”
그래도 부모님은 아들의 말이라 일단 믿고 보는 듯했다.
아버지가 박형철을 보며 물었다.
“수호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얼마 전에 전교생 건강검진이 있었습니다. 수호는 아무 이상도 없는 걸로 나왔고요.”
어머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그거… 우리 애가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잖아요. 그래서 생긴 부작용이 아닐지…….”
“각성 말입니까?”
“네, 그거요.”
박형철은 시큰둥했다.
“제가 알기로 그런 부작용은 없습니다. 각성은 새로운 능력을 개발시켜 줄 뿐이지 몸에 부담을 준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수호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른다는 데야 뭐 어쩔 수 있나.
박형철은 몇 번을 더 물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고, 끝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한지 박형철처럼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지, 혹시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그걸 더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당분간 학교를 쉬는 건 어떠니?”
어머니의 제안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괜찮다니까요.”
“이번 한 번으로 끝나면 그렇겠지. 그런데 같은 증상이 또 일어나면 어떡해? 엄마는 너무 걱정이 돼서…….”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앞으로 이럴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오늘은 집으로 가자. 이대로 수업 들으러 갈 수는 없잖니? 검진도 받아봐야 하고.”
그건 그랬다.
대충 씻긴 했지만 3일 동안 비바람 맞고 돌아다닌 흔적을 다 감출 수는 없었다.
소매를 들어 냄새를 맡아 보니 쿰쿰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래야겠네요.”
* * *
다음날.
수호는 제시간에 등교를 했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며칠 더 곁에 두면서 지켜보고 싶은 듯했지만, 병원에서도 기억 상실의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기억이 사라지질 않았으니까.
3일 동안 제대로 못 먹은 탓에, 가벼운 탈수 증세가 있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정상.
그마저도 금세 다 회복되어서 수호를 말릴 명분이 없어졌다.
학교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제 하루.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나름 유익하다고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편안했고 어색한 순간은 별로 없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자연스럽다면 진수호로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이것만 해결되면 좋을 텐데 말이지.’
[동기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이 메시지.
벌써 나흘째 보고 있으니 이젠 지긋지긋할 정도다.
다행히 지직거리는 현상은 없어졌지만 그럴 거면 메시지도 같이 좀 없어졌으면 싶었다.
‘흐흠, 반이… 1-D였지?’
수호는 어렵지 않게 자기 반을 찾아갔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는 반 친구들이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D반 학생들이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들은 수호를 보고 차례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수호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책상 사이를 지나쳐 갔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멀뚱멀뚱 앞만 보며 가만히 있으니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쟤 자퇴한 거 아니었어?’
‘내가 듣기론 실종이라던데?’
‘실종은 뭔 실종이야. 딱 보니까 쫄려서 튀었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거잖아.’
곳곳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끼이익!
그때, 맨 뒤에 앉은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 안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건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뿐.
수호는 뒤를 돌아봤다.
‘윤상현…….’
녀석의 얼굴을 보자 원인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원인이 뭔지는 잘 안다.
진수호를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고 운동장에 처박은 장본인이 바로 이 녀석이니까.
뿐만 아니라 윤상현은 지속적으로 진수호를 괴롭혀 왔다.
윤상현이 가까이 와서 말했다.
“너 뭐냐? 여긴 왜 왔어?”
“이 반 학생이니까 왔지.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러냐?”
수호가 면박을 주자 윤상현은 황당해했다.
“이게 미쳤나. 며칠 잠수 타고 오더니 간덩이가 붓기라도 했냐?”
“그럴지도.”
수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뜻밖의 반응에 윤상현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뭘 잘못 처먹고 이러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낯짝이 얼마나 가나 보자고. 돌아온 걸 후회하게 해주지.”
피식.
수호가 대답 대신 입꼬리를 올리자 윤상현은 얼굴이 붉어지고 눈매가 매서워졌다.
“이게 웃어? 너 죽고 싶냐?”
눈앞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정말 하품 나는 속도다.
진수호는 고작 이런 놈한테 맞고 다닌 건가?
‘뭐 이 정도야.’
수호는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상체만 움직여 피할 생각을 했다.
과연 마제의 자신감.
그 결과는?
퍽!
아침부터 별이 보였다.
수호는 이 한 방으로 고꾸라졌다.
“얼씨구?”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자마자 윤상현이 재차 공격해 왔다.
수호는 그를 경시하던 마음을 버리고 전력을 다해 피했다.
그런데 윤상현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수호는 그 뒤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윤상현이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뭐야, 이게 다야? 믿을 수가 없네.”
‘이런 젠장.’
입안이 터졌는지 피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보다 수호를 더 괴롭히는 건 고작 이딴 놈한테 얻어터졌다는 굴욕감.
퉤!
윤상현이 그의 등에다 침을 뱉었다.
“넌 F 주제에 너무 나대. 또 처맞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는 주제 파악을 좀 하라고.”
비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윤상현은 돌아섰다.
‘왜 이런 꼴이 된 거지?’
수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윤상현의 움직임은 무림인으로 치면… 삼류 턱걸이는 되는 정도?
칼밥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처지에 최하층 취급을 받지만, 그래도 무림인은 무림인이다.
반면 이 몸의 주인, 진수호는 냉정히 말해 삼류만도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주먹 좀 쓴다는 시정잡배쯤 되는 수준.
마제의 눈높이론 그놈이 그놈이고 도토리 키 재기지만, 사실 그 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하던 가락이 있지, 저거 한 놈을 못 이길까 했던 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등급 차이라는 게 이런 거군.’
수호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지금 상태로는 윤상현을 이길 수 없다.
지금은 물러서는 게 현명한 거였다.
하지만…….
“지랄하고 있네. 너도 어차피 같은 D반인 주제에.”
수호는 결국 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자기 자리로 가던 윤상현이 걸음을 멈췄다.
“방금 뭐라고 했냐?”
“다 들었으면서 뭘 다시 물어? D반이니까 네까짓 게 여기서 왕 노릇을 하는 거지, 다른 반이었으면…….”
“이 개새끼가!”
윤상현은 다시 돌아와서 수호를 밟아댔다.
“야, 저러다 죽는 거 아냐?”
“이건 심하잖아, 그만해.”
보다 못한 반 친구들이 와서 윤상현을 붙잡았다.
“놔, 이 새끼들아!”
하지만 D반의 여포인 윤상현이 거칠게 뿌리치자 그들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수호는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맞았다.
입가에서 피가 흐른다.
눈앞은 붉게 물들었고.
너무 많이 맞아서 의식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도발했나? 그냥 참을 걸 그랬나…….’
바로 그때, 수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이, 이건?’
* * *
진수호가 가진 현대의 기억.
서문환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단 압도적으로 발달한 현대 문명.
그리고 두 번째는 각성이다.
각성은 그가 살던 시대에는 전혀 없던 개념이었다.
신화와 기적이 사라진 시대.
21세기의 과학 기술은 미지의 영역을 거의 없애버렸다.
……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각지에 던전이 생성되고 괴수와 마수, 몬스터 등 통칭 마물들이 출몰하기 시작하자 그런 믿음은 단번에 깨지고 말았다.
현대의 무기가 통하지 않는 괴물들의 출현에, 인류는 최악의 가능성까지 생각했다.
멸종?
이러다 다 죽는 건 아닐까?
그렇게 전 인류가 집단 패닉에 빠져 있던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각성자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들이 마물들과의 일전을 시작하자 세계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그때 나타난 각성자들을 <최초의 구원자들>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인류를 지키는 수호자라는 명칭이 대세가 됐지만.
그들의 활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점점 각성자의 수는 늘어만 갔고 이제는 오히려 마물의 멸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각성자 수 자체가 늘어난 것도 있으나, 국가 차원에서 각성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영향이 더 컸다.
그런 2세대 각성자들.
진수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윤상현 또한 마찬가지.
각성자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서문환이 느끼기에 진수호는 딱히 초인 같지가 않았다.
일단 신체 능력은 진수호보다 등급이 높은 윤상현이 겨우 삼류 정도니,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해가 되긴 한다.
그래서 그건 넘어간다 쳐도 각성자의 고유 능력조차 발휘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오로지 보이는 거라곤 고장 난 TV처럼 점멸하는 메시지뿐.
그런데 윤상현에게 개 맞듯 얻어맞은 지금.
시야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