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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그냥 매니저(1)



제6장 그냥 매니저



오후가 되자 모르는 얼굴들이 하나둘 사무실을 찾아왔다.
CS와 계약 중인 헌터들이라고 했다.
차수린은 사장실에서 그들과 면담을 했다.
마음만 먹으면 능히 내용을 엿들을 수도 있었지만 심혁진은 그러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던 까닭이다.
“귀띔 안 해줬으면 헌터인지도 몰랐을 겁니다.”
면담이 끝나고 헌터들이 떠난 후.
심혁진의 말에 차수린은 쓰게 웃었다.
“우리 회사의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도 다들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에요.”
“헌터 랭크는…….”
“대부분 C예요. 좋은 의뢰를 건지기는 어렵죠. 그래서 투잡 뛰는 분들도 많아요. 안정적인 직장에 헌터 투잡이면 그럭저럭 먹고는 살 만하니까요.”
“갑자기 우르르 찾아온 이유는 뭐랍니까?”
“희수 얘기를 들은 거겠죠.”
“연희수가 그런 얘길 떠벌리고 다닐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소문은 새게 되어 있어요. 레이드 기록은 이래저래 접근하기도 쉬우니.”
“그래서…….”
심혁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희수가 레이드에서 대박이 났으니 자기들한테도 그런 일거리를 달라고 찾아온 거랍니까?”
“그런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가지급을 바라고 찾아온 거예요.”
“가지급? 가불 말입니까?”
“네.”
“……그래서 달라는 대로 준 겁니까?”
“대부분은요. 너무 크게 바라는 경우엔 솔직하게 힘들다고 얘기했어요.”
“숨통 좀 트였다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닙니까? 미리 말해 두지만 내게서 뭔가를 바라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도와달라고 안 할 테니.”
“아니, 도와달라고 한다면 도와줄 수도…….”
“혁진 씨는 이미 많은 걸 도와주셨어요.”
차수린이 웃으며 말했다.
“제 능력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까지도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아요. 미안한 건 둘째 치고 나 자신이 무능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심혁진.
하지만 이내 못 참고서 말을 덧붙이고 말았다.
“근데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요. 정말로. 진짜로요.”
차수린이 수차례 강조하고 나서야 심혁진도 걱정을 거뒀다.
본인의 말마따나 그녀의 능력은 결코 뒤떨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굳이 일 없는 헌터들에게 가불을 해줄 것까진 있나 싶은데.”
“안 그래도 횡령 건으로 우리 회사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졌어요. 이런 일로 헌터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면 헛돈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 봤자…….”
C급 헌터 아니냐고 물으려던 심혁진이 말을 삼켰다.
그 역시 밑바닥부터 시작했던 몸.
헌터 랭크가 낮다고 사람을 무시해선 안 될 일이었다.
“하긴 성장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건 C랭크대 헌터들이죠.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면 괜찮을지도.”
“게다가 회사 입장에선 랭크를 불문하고 많은 수의 헌터를 확보해두는 게 좋아요. 도그마 레이드 건처럼 머릿수만이라도 채우는 의뢰가 은근히 많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일개 매니저가 사장님한테 사업 훈수를 두려 했군요.”
“후후.”
차수린은 부드럽게 웃었다.
“혁진 씨는 일개 매니저가 아니잖아요.”
“그냥 매니저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어쨌거나…….”
덜컥!
거칠게 문을 열고 들이닥치는 이들.
심혁진이 찾아왔던 날에 차수린과 대치하고 있던 사채업자 무리였다.
“여, 차 사장.”
으레껏 우두머리 사내가 친한 척을 했다.
협박조로 일관하던 지난번과는 너무나 다른 태도.
헌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그마 차원 건으로 냄새를 맡고 왔다는 게 뻔히 보였다.
“이방철 사장님, 웬일이시죠?”
차수린은 지난번과 다를 바 없는 싸늘한 태도로 사채업자를 맞았다.
“아직 대출금 납입일까진 시간이 남아 있을 텐데요.”
“아. 그건 걱정 말라고, 차 사장. 푼돈 가지고 차 사장을 쪼아대려고 온 건 아니니까.”
지금껏 그 푼돈 때문에 사람을 쪼아댔으면서.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차수린은 참았다.
심혁진 때문이 아니더라도 저들이 무섭진 않았다.
그저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 용건만 간단히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어이구, 붙임성 없는 건 여전하구만. 그리 차갑게 굴어서야 예쁜 얼굴이 아깝지 않겠나?”
“성희롱이나 하러 오신 건가요?”
“어허, 성희롱은 무슨. 그냥 농담일 뿐이야.”
실실 웃는 이방철.
어울리지 않게 실실거리는 것이, 지난번의 험상궂던 표정이 오히려 낫겠다 싶었다.
“떨어지는 콩고물을 핥아 보려고 온 거면 좀 많이 늦었는데.”
심혁진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즉시로 이방철과 똘마니들이 동시에 그를 돌아봤다.
“넌 또 뭐냐?”
“이거 서운한데? 지난번에도 봤으면서.”
“지난번? 아하, 그래. 여기 방문했을 때 중간에 들어온 놈.”
이방철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그래서 넌 뭐냐? 결국 저번에도 묻지는 못했다만.”
“나? 여기 소속 매니저.”
“매니저? 그 헌터 뒷구멍 닦아주는 애들 말이냐?”
“와하하하!”
이방철의 농에 왁자지껄한 웃음을 쏟아내는 덩치들.
차수린이 눈살을 찌푸린 반면 심혁진은 피식 실소만 흘렸다.
“그래. 뒷구멍 닦아 주는 매니저. 그게 내 일이지.”
“오냐. 자기 본분은 잘 아는 놈이로구나. 근데 아가야, 이 형님은 지금 사장 대 사장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시다. 그러니 같잖게 끼어들지 말고 저기 찌그러져 있어라.”
“그럴 순 없겠는데?”
“허, 이놈이 좀 똘똘한 줄 알았더니 정반대로구만.”
이방철의 얼굴이 급속도로 냉각됐다.
“좋게 말해주니 자기 주제도 파악 못하고 기어오르려 들어?”
“주제 파악은 언제나 잘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심혁진은 이방철의 뒤쪽을 훑었다.
하나같이 인상을 팍팍 쓰고 있는 덩치들.
그중 하나가 새하얘진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떠는 게 보였다.
지난번, 심혁진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았던 덩치였다.
“그날 일을 기억하는 건 하나뿐인가 보군.”
“뭐여?”
이방철이 눈을 부라렸다.
“뭔 개소리를 계속하는 건지 모르겠구만. 보시오, 차 사장. 이 얼 빠진 놈더러 얼른 꺼지라 하시오. 안 그러면 못 볼꼴을 보게 될 테니.”
“그럴 생각 없습니다.”
차수린이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빚 이외의 일로 찾아오신 거라면 그만 물러가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이방철 사장님과 더는 할 얘기가 없어요.”
“허, 진짜 사람 성질 나오게 하는구만. 내가 정말 착하게 살려고 해도…….”
“그나저나 말입니다.”
이방철의 말을 끊은 심혁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왜 저런 것들한테 돈을 빌린 겁니까?”
“뭐여? 저런 것들?”
“제가 빌린 게 아니에요.”
거의 동시에 반응하는 이방철과 차수린.
심혁진은 철저히 이방철을 무시하고 차수린만 쳐다봤다.
“그럼 사장님네 아버지가……?”
“예, 그랬어요. 저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는데, 인감이나 서류를 확인해 보니 사실이더군요.”
“자금 횡령뿐만 아니라 빚까지 끌어 모으고서 종적을 감춘 겁니까?”
“네.”
“그 이유는 모르는 거고요?”
“그게 사실…….”
“이 연놈들이! 뒈지고 싶어 쌍으로 환장했나!”
소리를 빽 질러 대화를 끊어버리는 이방철.
차수린이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심혁진이 휙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안 갔어? 후회할 일 생겨도 상관없다는 걸로 해석해도 되겠지?”
“뭔 개소리야. 후회는 지금부터 네놈이 미치도록 하게 될 텐데!”
“아닐걸.”
쉬릭!
심혁진이 한 번 발을 구르자 그와 이방철 간의 거리가 삽시간에 좁혀졌다.
단숨에 날아든 심혁진을 본 이방철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둥그레졌다.
“서, 설마!”
꽝!
살갗과 살갗이 아닌, 망치가 고깃덩이를 짓뭉개는 소리가 터졌다.
심혁진의 주먹은 이미 섬전처럼 이방철의 인중에 꽂혔다가 빠져 나온 뒤.
개떡처럼 찌그러진 이방철의 얼굴에선 아직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으……!”
길게 늘어지는 비명 소리.
그 찰나를 파고든 심혁진의 두 주먹이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뻗어 나왔다.
손끝을 따르는 각각의 궤적이 덩치들의 급소를 꼼꼼하게도 파고들었다.
퍼퍼퍼퍽!
“……아아악!”
이방철이 뱉은 비명의 말꼬리가 끝날 때쯤, 심혁진은 이미 난타를 끝내고 슬쩍 물러난 뒤였다.
정지됐던 영상이 재생되듯, 멈춰 있던 덩치들이 우르르 고꾸라졌다.
“끄아아악!”
“아이고오!”
“흐어어억!”
갖가지 비명과 죽는 소리를 내며 골골거리는 덩치들.
그 맨 앞에서 이방철이 박살난 코를 부여잡고 씩씩거렸다.
“이, 이런 미친! 헌터가 민간인에게 폭력을 휘둘러? 헌터 특별법 무서운 줄도 모르고!”
“헌터 특별법?”
심혁진이 돌아보자 차수린이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헌터에게만 특별 적용되는 형법이에요. 아무래도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보통 사람과 같은 법을 적용할 순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헌터한테만 통용되는 법이란 것 아닙니까?”
“일단은 그렇죠.”
“그럼 됐네.”
심혁진이 피식 웃으며 이방철을 돌아봤다.
“난 헌터 아니거든.”
“거짓말! 헌터가 아니면 대체 뭔데!”
“말했잖아. 그냥 매니저라고.”
“그런 개소리를 누가……!”
“설령 내가 헌터라고 해도.”
심혁진의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이렇게 하면 그만이지.”
“뭐야?”
천천히 다가간 심혁진이 이방철의 왼팔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살짝 접었다.
접혀선 안 되는 방향으로.
“끄아아악!”
깔끔하게 탈골된 이방철이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심혁진은 나머지 팔 한 쪽과 두 다리에도 같은 식의 조작을 가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팔다리가 뒤틀린 이방철은 꺼이꺼이 울었다.
“아이고오! 아이고! 으아아악! 사람 살려!”
“소용없어.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해뒀거든.”
“언제 그랬어요?”
“쟤들이 계단 올라오는 동안요.”
차수린의 질문에 태연히 대꾸하는 심혁진.
차수린은 살짝 질린 기분이 들었다.
더불어 이방철과 똘마니들에게 약간은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저기요, 혁진 씨.”
“압니다. 적당히 손만 봐주려는 거지 심하게 할 생각은 없어요.”
“이미 충분히 심한 것 같은데요.”
“죽진 않았잖습니까.”
심혁진이 이방철의 등 위에 걸터앉았다.
꺽꺽거리던 이방철이 병든 개처럼 앓는 소리를 냈다.
“부, 부탁이니 제발 살려주…….”
“안 죽인댔잖아. 아, 참. 사무실에 CCTV 있습니까?”
“없어요. 원래는 있었는데 내다 팔았죠.”
“뭐, 그럼 뒷맛 찝찝해질 일도 없겠군요.”
“당사자들의 증언이 남아 있죠.”
“물증을 없애면 그만이죠.”
심혁진의 손아귀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베히모스의 체액.
몇 번이고 걸레짝이 됐던 김태성을 멀쩡히 치료한 아이템이었다.
“시간은 많으니.”
심혁진이 태연히 말했다.
“천천히 놀아보자고.”